
361억 원에서 7,925억 원으로.
정부가 내년에 추진하려는 청년문화패스 예산이다. 단순히 조금 늘어난 정도가 아니다. 20배가 넘는다. 지원 대상도 기존 19~20세에서 19~34세로 크게 넓어진다. 공연과 전시뿐 아니라 영화, 도서, 체육활동에도 쓸 수 있다.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취업문은 좁고 집값과 월세 부담은 크다. 직장을 구해도 미래를 설계하기 쉽지 않다. 이런 청년들에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넓혀주는 정책을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7,925억 원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34세까지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스물아홉 살 취업준비생과 서른세 살 안정적인 직장인이 똑같이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 대상에 들어간다. 반대로 실직한 50대 가장이나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60대 자영업자는 나이 때문에 대상 밖이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청년에게 왜 지원하느냐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다면 나이가 먼저인지, 형편이 먼저인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요즘 50~60대의 삶도 만만하지 않다. 직장에서 밀려난 뒤 다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있고, 가게 문을 닫을지 고민하는 자영업자도 있다. 평생 일했지만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고령층 가운데는 영화나 공연은 고사하고 병원비와 생활비부터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생활이 청년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번 사업은 규모가 작지 않다. 올해 상반기 청년문화예술패스 이용 건수 가운데 영화가 80%를 차지했다는 국회 제출자료도 공개됐다. 그렇다면 정부도 사업의 성격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형편이 어려운 청년에게 문화생활의 기회를 주기 위한 복지사업인지, 청년층을 문화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문화정책인지가 궁금하다.
영화나 공연을 볼 생각이 없던 청년이 문화패스 덕분에 처음 극장과 공연장을 찾았다면 정책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지역의 작은 공연장이나 서점, 체육시설까지 혜택이 돌아간다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 원래 자기 돈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사고 운동을 하던 사람의 비용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데 그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로 이 부분을 국회가 예산심사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7,925억 원을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 돈을 썼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확인하자는 말이다. 소득에 관계없이 34세까지 폭넓게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형편이 어려운 청년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편이 나은지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청년은 분명 우리 사회가 힘을 보태야 할 세대다. 하지만 어려운 삶에는 나이표가 붙어 있지 않다.
취업하지 못한 스물다섯 살도 힘들고, 직장을 잃은 쉰다섯 살도 힘들다. 생활비가 부족한 일흔 살 노인의 하루 역시 가볍지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면 “몇 살인가”와 함께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가”도 살펴야 한다.
361억 원이 7,925억 원으로 늘어난다.
이 정도라면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늘려야 하는지, 그리고 이 돈을 쓰고 나면 청년들의 삶이 무엇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그 설명이 충분할 때 7,925억 원은 투자가 된다. 그렇지 못하면 ‘왜 또 특정 세대인가’라는 질문은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BEST 뉴스
-
건보 땐 ‘먹튀’, 연금 땐 ‘꼼수’…또 조선족 때리기인가
국내에서 불과 한 달가량 국민연금에 가입한 뒤 추후납부 제도를 이용해 가입기간 10년을 채우고 노령연금을 받는 중국인 사례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는 최근 외국인의 추납 신청과 연금 수급 사례가 늘고 있다며 “특히 한국계 중국인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②] 장률, 국경을 넘어 세계영화의 ‘지음’을 찾다
중국 조선족 영화감독 장률(张律)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을 이야기할 때 장률(张律)은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던 그는 마흔을 전후해 뒤늦게 카메라를 잡았지만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
장동혁의 ‘중국 편이냐’ 질문…안보는 편 가르기가 아니다
▲ 외국 세력의 간첩 활동과 정보 유출, 대공수사를 둘러싼 논란을 형상화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인터내셔널포커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정부를 향해 “중국 편인지 대한민국 국민 편인지 확실하게 밝혀라”고 말했다. 중국의 선거 개입과 간첩 활동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대... -
야스쿠니 향해 고개 숙인 일본 총리…패전 81년, 무엇을 말하나
▲ 일본 총리가 패전 81주년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방향을 향해 요배하고 자민당 총재 명의로 다마구시료를 봉납하면서 일본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사진은 야스쿠니 신사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인터내셔널포커스] 일본이 패전을 맞은 지...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⑤] ‘영화황제’ 김염…식민지 조선에서 상하이 은막의 전설로
[인터내셔널포커스] 1930년대 중국 상하이 영화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조선 출신 배우가 있다. 중국식 이름 진옌(金焰), 한국 이름 김염. 본명은 김덕린(金德麟)이다. 그는 중국 영화에 출연한 외국 출신 배우 정도가 아니었다. 중국 영화의 첫 황금기로 불리는 1930년대, 당대 최고의 남자 스타 자리에 올... -
선거만 이기면 시장·도지사…행정능력은 누가 검증하나
▲ 선거 유세 현장과 투표소를 배경으로, 대중적 인기와 선거 경쟁이 행정능력 검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한국 선거제도의 과제를 형상화한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한국에서 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행정 경험이 필요할까. 의외로 답은 ‘필수적인 행정 경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