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족이세요?”
한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별다른 뜻 없이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중국동포’라고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같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 여러 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조선족’이라는 말은 원래 낮춰 부르는 표현이 아니다. 중국에서 조선족(朝鮮族)은 중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 계통 주민을 가리키는 공식적인 민족 명칭이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다.
연변에서 누군가 “나는 조선족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족이나 만족처럼 자신이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를 밝히는 말이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조선말을 사용하고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에 들어와 조금 다른 색깔을 갖게 됐다.
1990년대 한중수교 이후 중국동포의 한국행이 늘었다. 공장과 건설현장,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가리봉동과 대림동 같은 중국동포 생활권도 생겨났다.
‘조선족’이라는 이름 역시 이때부터 한국 사회에 빠르게 알려졌다.
처음에는 출신과 민족을 설명하는 말에 가까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불법체류 문제가 불거질 때 ‘조선족’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중국동포가 연루된 강력사건에서는 가해자의 출신과 민족이 함께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거친 말투를 쓰는 조직폭력배나 범죄자로 등장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몇몇 사건과 대중문화 속 이미지가 겹치면서 ‘조선족’이라는 말에는 중국에서 사용되던 공식 민족 명칭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뉘앙스가 생겼다.
같은 단어가 국경을 건너와 다른 느낌을 갖게 된 셈이다.
한국에서 ‘중국동포’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국 국적이라는 현실과 한민족이라는 역사적 관계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말이다. 정부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그렇다고 ‘조선족’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스스로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이름에 연변을 비롯한 중국 조선족 사회의 역사와 언어, 문화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 이 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은 현실 때문에 ‘중국동포’나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표현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부르는 말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조선족’을 ‘중국동포’로 바꾸어 부르면 편견도 사라질까.
말 하나 바꾼다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금세 달라지지는 않는다. 국립국어원의 차별적 언어 표현 관련 연구에서도 중국동포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와 함께 그 명칭을 사용하는 사회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
조선족이라는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에는 분명 조선족이라는 민족공동체가 있다. 오랜 세월 지켜온 언어와 문화가 있고 그들만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도 있다.
여기서 ‘없다’는 말은 조금 다르게 읽어야 한다.
한국에서 마주치는 한 사람의 삶을 ‘조선족’이라는 네 글자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연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도 있고 흑룡강이나 요녕에서 온 사람도 있다. 1990년대 공장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 세대가 있는가 하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기업에 취업한 젊은 세대도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아예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도 있고 중국 국적을 유지한 채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 학교를 다닌 다음 세대로 가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한국말이 더 익숙하고 한국에서 친구를 사귀며 자랐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서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들을 하나의 모습으로 묶기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건너뛴다.
처음 만난 사람의 직업이나 살아온 시간보다 출신을 먼저 묻고, ‘조선족’이라는 답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있던 몇 가지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겹쳐놓기도 한다.
이름이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사람을 대신해버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조선족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중국동포라고 불러야 하는가’만이 아니다.
어떤 이름을 사용하든 그 뒤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이라는 말의 느낌이 달라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 가운데 빼놓기 어려운 것이 범죄 보도와 대중문화다.
한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 어느 순간 한 집단의 이미지로 번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다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다음 회에서는 범죄 보도와 대중문화가 ‘조선족’이라는 이름에 어떤 이미지를 덧씌웠는지 살펴본다.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연구자료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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