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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⑦] 용정에서 중국 스크린으로…배우 리송죽의 길

  • 허훈 기자
  • 입력 2026.09.1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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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계에서 활동한 조선족 배우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중국 은막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린 한 연변 여성을 만나게 된다. 「빙설진달래(冰雪金达莱)」의 김숙자, 「침략자타격(打击侵略者)」의 윤옥선을 연기한 리송죽(李松竹)이다.


리송죽은 1936년 지린성 용정의 가난한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6남매 가운데 둘째였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16세 무렵에는 로투구의 한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됐다.


영화와는 거리가 먼 출발이었다. 그러나 노래와 춤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공장 문예활동에서 무대에 오르던 리송죽을 연변가무단이 눈여겨봤고, 그는 전문적인 무용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가무단에 들어갔다.


연변가무단은 당시 조선족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무대였다. 리송죽은 이곳에서 부채춤과 장고춤을 비롯해 여러 작품의 선도 무용수와 독무가로 성장했다. 무대에서 몸짓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경험은 훗날 그의 영화 연기에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그의 운명을 바꾼 작품은 1963년 장춘영화제작소의 흑백영화 「빙설진달래」였다.


주원순(朱文顺) 감독이 연출하고 관말남(关沫南)이 각본을 쓴 이 영화는 1930년대 중국 동북지역을 배경으로 일본의 침략에 맞선 조선족 여성 김숙자와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제작진은 작품의 중심인 김숙자를 연기할 배우를 찾기 위해 연변가무단을 찾았고, 여러 후보 가운데 리송죽을 선택했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선 리송죽에게 가장 큰 장벽 가운데 하나는 언어였다. 당시 그는 중국어 회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지만 한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통해 감독의 요구를 이해하고, 함께 출연한 포극(浦克)·하패걸(夏佩杰) 등 선배 배우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며 촬영을 이어갔다.


무용수로 쌓은 표현력은 카메라 앞에서 힘을 발휘했다. 「빙설진달래」에서 리송죽이 맡은 김숙자는 남편이 항일유격대에 참여한 뒤 일제와 괴뢰세력의 탄압을 겪으면서 점차 저항의 길로 나아가는 여성이다. 개인과 가족이 겪는 고통에서 민족과 시대의 비극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인물이었다.


「빙설진달래」는 1963년 12월 촬영을 마치고 이듬해 배급됐다. 94분 분량의 흑백영화로 제작됐으며 리송죽은 포극, 하패걸 등 당시 장춘영화제작소의 배우들과 함께 주요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다.


첫 영화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1965년 팔일영화제작소가 전쟁영화 「침략자타격」을 제작하면서 리송죽에게 조선인민군 여성 윤옥선 역을 맡겼다. 「빙설진달래」에서 보여준 연기가 새로운 작품으로 연결된 셈이다.


「침략자타격」에서 윤옥선은 단순히 화면을 장식하는 여성 인물이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중국인민지원군과 함께 싸우는 조선인민군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리송죽은 장용수(张勇手), 장량(张良) 등과 호흡을 맞추며 두 번째 영화에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영화가 알려지면서 그의 인생에는 중요한 갈림길도 찾아왔다. 당시 팔일영화제작소 측에서 리송죽을 배우극단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영화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연변에 있는 가족과 생활을 선택해 다시 고향의 무대로 돌아갔다.


이 선택은 리송죽의 예술 인생을 이해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중국 영화계에서 얻은 인지도를 발판으로 베이징에 남기보다 자신을 성장시킨 연변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 그의 중심 무대는 다시 춤이었다. 연변가무단에서 배우와 독무가로 활동하며 80여 개 공연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970년대에는 무용 창작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장군부인」을 비롯해 「수연포」, 「물방울」, 「노화」, 「추엽」 등의 작품을 만들며 안무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영상과의 인연도 끊어지지 않았다. 「포공영」, 「애적회성」, 「황혼」, 「유성」 등 TV 작품에 출연했고, 「유성」의 주연 연기로 동북 3성 ‘금호상’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리송죽의 삶을 단순히 ‘1960년대 영화배우’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출발점은 영화촬영소가 아니라 용정과 연변의 무대였다. 공장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조선족 여성이 춤을 통해 전문 예술인이 됐고, 중국어라는 장벽을 넘어 중국 영화의 주연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다시 연변으로 돌아온 뒤에는 자신이 익힌 예술을 지역의 무용과 창작으로 이어갔다.


특히 「빙설진달래」는 리송죽 개인의 데뷔작이라는 의미를 넘어 당시 중국 영화가 조선족의 역사와 항일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스크린에 담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실제 연변에서 성장한 조선족 무용수 리송죽이 있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은 젊은 세대에게 낯설다. 그러나 「빙설진달래」의 김숙자와 「침략자타격」의 윤옥선을 따라가다 보면 중국 영화 속 조선족 배우의 역사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용정에서 태어나 연변의 무대에서 춤을 배우고 중국의 은막에 얼굴을 남긴 리송죽. 그의 예술 인생은 중국 영화계에서 활동해 온 조선족 배우들의 역사를 되짚을 때 빼놓기 어려운 한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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