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수원에서 벌어진 오원춘 사건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범행이 워낙 잔혹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제대로 구조되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사회적 충격은 더 컸다.
그런데 사건이 남긴 것 가운데 하나는 범인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조선족’이라는 네 글자도 함께 남았다.
뉴스에서는 범인의 국적과 출신 배경이 반복해서 언급됐고 인터넷에서는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는 중국동포 사회까지 함께 거론됐다. ‘조선족은 위험하다’는 식의 말도 빠르게 퍼졌다.
2년 뒤인 2014년 수원에서 박춘봉 사건이 발생했다. 또다시 잔혹한 강력범죄였고 범인이 중국동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두 사건의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는 어떤 이유로도 가볍게 볼 수 없다. 피해자와 유족이 겪은 고통 앞에서 가해자의 출신을 이유로 범죄를 축소하거나 감쌀 수도 없다.
하지만 당시 중국동포들이 느낀 불안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사건을 저지른 사람과 같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까지 의심받는 분위기였다.
범인의 이름보다 ‘조선족’이라는 민족 명칭이 더 오래 기억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 무렵부터 가리봉동과 대림동 같은 중국동포 밀집지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한층 거칠어졌다.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조선족이 많은 동네’와 ‘위험한 동네’가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언론의 영향도 빼놓기 어렵다.
국내 주요 신문의 중국동포 관련 보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여러 주제 가운데 범죄 관련 기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런 보도가 반복될 경우 중국동포와 범죄를 연결하는 고정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평범한 일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건설현장으로 출근하는 사람, 식당 문을 열고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은 뉴스가 되기 어렵다.
강력사건은 정반대다.
한 번 발생하면 며칠 동안 보도되고 범행 과정과 범인의 신상, 과거 행적까지 되풀이해 등장한다. 몇 년이 지나도 인터넷 검색창에는 당시 기사가 그대로 남는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봤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어느 집단의 가장 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 생활과는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보탰다.
「황해」와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은 작품에서 중국동포나 중국동포 밀집지역은 범죄 서사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는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범죄영화라면 악역이 필요하고 극적인 설정도 들어간다. 작품 한두 편 때문에 한국 사회의 편견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다.
다만 뉴스에서 본 장면과 영화 속 장면이 계속 겹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동포의 미디어 재현을 다룬 연구에서도 범죄영화 속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인물 묘사가 기존의 부정적 인식과 결합할 가능성이 지적돼 왔다.
특히 「청년경찰」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잘 보여줬다.
영화에서 대림동 일대와 중국동포 범죄조직이 연결돼 묘사되자 지역 주민과 중국동포 단체들이 반발했다. 허구의 영화라 해도 실제 지역과 집단의 이름이 결합하면 현실의 주민들이 그 이미지를 떠안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실제 숫자는 어떨까.
여기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외국인 범죄 통계에서 ‘중국인’으로 분류된 사람 모두가 조선족은 아니다. 중국 국적의 한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중국 국적자의 범죄 통계를 그대로 가져와 ‘조선족 범죄율’이라고 표현하면 처음부터 통계의 범위를 잘못 읽게 된다.
체류 인구의 연령과 성별, 취업 형태, 체류 기간도 내국인과 다르다. 단순히 범죄자 숫자를 전체 인구로 나눈 값만으로 어느 집단이 더 위험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공개된 경찰 통계를 이용해 2023년 인구 대비 피의자 비율을 단순 계산한 자료에서는 내국인이 약 2.36%, 국내 체류 중국인이 약 1.65%로 나타났다. 8대 강력범죄 역시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내국인 약 0.047%, 중국인 약 0.031%였다.
그러나 이 숫자 역시 ‘중국동포 범죄율’은 아니다. 중국 국적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단순 비교이고 인구 구성의 차이도 보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계로 편견을 뒤집겠다고 또 다른 단순화를 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몇몇 강력사건만으로 수많은 사람의 성향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원춘의 범죄는 오원춘이 저질렀고 박춘봉의 범죄는 박춘봉이 저질렀다.
그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과 같은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책임을 넓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인이 저지른 흉악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 사건을 한국인 전체의 특성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동포 가운데 누군가는 공장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식당을 운영하며, 누군가는 회사로 출근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수십 년째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 학교를 다닌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 아이들에게 연변이나 중국의 어느 도시는 부모의 고향일 수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은 서울이나 인천, 수원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친구가 부모의 출신을 알게 되는 순간 아이에게도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이름에는 아이가 경험하지 않은 1990년대의 이주도,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강력사건도, 영화 속 범죄자의 모습도 함께 묻어 있을 수 있다.
한 한 사람의 범죄가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뒤다. 사건은 지나갔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사건 당시 한국에 오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까지 따라붙었다.
이제는 그 시선을 부모 세대가 아니라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조선족’이라는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학술연구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에세이입니다.
BEST 뉴스
-
중국차는 꺼린다더니…테슬라·BYD·지커, 한국 전기차 시장 잠식
▲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테슬라 모델Y, 중국 BYD 씨라이언7, 지커 7X. 중국산 전기차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 (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자동차는 싸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한국 시장... -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⑪…누가 당신에게 동포를 대표할 권리를 줬나
한국의 중국동포 사회에는 유난히 '대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정부기관과 만나도 동포 대표, 정치인과 자리를 함께해도 동포 대표다. 무슨 행사가 열리거나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면 동포 전체를 대표하는 듯 나서는 단체장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표로 뽑았다는 동포... -
“동북항일연군은 심사 대상 아니다”…허성숙 서훈 막은 한마디
▲ 중국 지린성 연변 대사하전역기념관에 세워진 조선인 여성 항일투사 허성숙(1915~1939)의 흉상. 허성숙은 동북항일연군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했다.(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열다섯 살에 항일전선에 뛰어들어 기관... -
북·중·러 경제협력의 실체…제재 속 돈과 물자는 어디로 흐르나
▲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전경. 북·중 교역 확대와 국경 물류망 변화의 핵심 기반시설로 주목받고 있다.(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국경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 단... -
중국의 5대 종교, 신앙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나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에서는 불교와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사찰과 교회, 이슬람 사원에서는 신자들이 예배와 종교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자유와 신앙을 전파하는 활동은 구분된다. 개인의 신앙은 헌법으로 보장되지만, 선교와 포교에는 별도의 제한이 따... -
공항엔 미사일, 회의장엔 투자자…사우디의 두 얼굴
▲ 미사일 공격으로 불안이 커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과 세계 투자자들이 모이는 국제회의 현장을 대비해 표현한 이미지. 사우디가 안보 위협 속에서도 국제 투자 유치에 나서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했다. (자료 이미지·AI 생성, 실제 사건 현장 아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