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김혁(재중동포 소설가)

 
1

재난영화라는 쟝르가 있다. 자연재해나 천재 지변으로 인한 재난을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영화, 흔히 지진, 대화재, 화산 폭발, 외계인의 침략이나 유성의 충돌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다.

재난영화 하면 선참 떠오르는 경전으로는 “타이타닉 호”이다. 지난세기초 사상 초호화 유람선이였던 “타이타닉 호”가 처녀항행에서 침몰한 비극을 다룬 영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또 한 편의 재난영화경전으로는  일본영화 “일본침몰”이 있다. “일본침몰”은 일본열도를 뒤흔든 거대한 지진과 연쇄적인 화산폭발로 일본 전역이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는 내용의 재난극복 영화다.

내가 “일본침몰”을 맨처음 보았던것은 아마 초중시절로 기억된다. 요즘 눈부시게 발전한 영화의 특수효과에는 못 미치겠지만 지진으로 레루가 엿가락처럼 탈리고, 아스팔트길이 계곡처럼 갈라 지는 특수효과 장면들은 영화라면 사죽을 못쓰던 어린 나의 어섯 눈을 휘둥그레 키우기에는 족했다.

“일본침몰”은1973년에 출판되여 400만권이라는 판매기록을 올린 일본 과학환상 문학의 거장 코마츠 사쿄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했다. 당시 사상최고인 4천만원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초특급 대작영화였다. 그 결과 6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3억 원 이라는 흥행 수익을 거두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월에 출판된 원작을 같은해 12월 말에 제작, 개봉한 것은 전례없이 이례적인 일로써 당시 얼마나 큰 붐이 일었는지 짐작할수 있게 한다.


“일본침몰”은 그 이후로도 TV시리즈, 만화 등 각종 쟝르로 뻗어 나가 일대 사회 현상이 되면서 계속 거대 붐을 일으켰다.


발달된 미디어의 혜택으로 변강오지에 사는 나도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된지 얼마안되여 DVD로 구입하여 볼수 있었고 또 CD점들을 “이 잡듯 뒤져”1973년판본 “일본 침몰”도 구입하는 영화수집광으로서의 수집 벽(癖)의 기쁨도 만끽했다.

30여년이 흐른뒤 리메이크되여 나온 “일본침몰”은 70년대의 첫 상영과 마찬가지로 일본영화 역사를 뒤집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추고 대대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또 한번 일본영화 통틀어 최고 액수의 제작비인 1억5천여원이 투여되고 일본연예계 최고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일본 굴지의 특수효과팀과 전례 없는 륙해공군의 지원으로 만들어 진 영화는  일본에서 개봉한뒤 12일 만에 제작비 전액을 회수했고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재난영화에 이렇게 “편집광(偏执狂)”적인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걸가?

“할리우드 묻어가기”로 엄청난 제작비로 쌓아올린 상업효과다,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시점에 잘 맞추어졌다… 등등의 평정이 난무하지만 위기상황 속 일본을 향한 일침을 보여 준 영화라는데 그 최종 포인트가 있다. 

단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다는 가상 시나리오로 관객들을 대거 스크린앞으로 불러모은 영화는 무관심과 자기중심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오늘날, 민족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으며 그 위기상황에 대해 급박하게 깨우쳐 주고있다. 온 나라가 침몰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배경으로 인간이 할수있는 것은 무엇이고 해야하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영화는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일본인들만의 공동체의식, 위기의식을 진하게 엿볼수 있다.

2

몇해전, 서울에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젊은 감독 하나가 연변행차를 했다가 내가 발족시킨 “조선족영화동호회”의 극성스러운 팬들과 마주했다. 그 감독이 만약에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만들 조건이 주어진다면 어떤 영화부터 만들겠냐고 묻자 나는 “백두산 화산의 폭발에 관한 재난영화를 만들거다, 시나리오는 구상중이다”라고 답했었다.

술좌석에서 광적인 영화팬들끼리 기분으로 말해제낀 일인데 그 친구가 “김작가, 참 좋은 발상이다, 꼭 시나리오로 만들어 보라”며 귀국해서도 그냥 메일로 전화로 시나리오의 진척여부를 물어오는 것이었다. 알콜의 작용으로 인한 호기도 있었겠지만 사실 백두산화산에 관한 자료를 읽고 어진간히 충격을 받은 데서 나온 이야기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백두산은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휴화산(休火山)이다. 백두산의  폭발시기는 1668년, 1702년, 1903년경에 천지화산으로부터 분화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보다 오래 된 것은 화산재 속에 묻힌 탄화목의 탄소동위원소 년대를 측정하면 기원 960년에 대폭발을 하였던 것으로 알수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의 폭발 규모를 따져 보면 대략 어느정도 일까?


백두산은 원래 3000메터가 넘었는데 마지막의 화산폭발로 인해 2000메터대로 낮아지게 되고 산봉우리가 통째로 날라갔다. 이는 지난 1만년동안 전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분출 규모중에서 4위안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산의 사례로는 폼페이 화산이 있다. 기원후 79년 로마의 휴양지 폼페이-헤르쿨라네움 일대에서 적어도 2만 명의 사람을 통째로 매몰시킨 화산. 그 화산의 폭발의 분출량은 약 5 – 8km3 정도라고 하는데 백두산은 100 - 120km3로 추정된다. 그 10배 이상이라는 거다. 그러니 당시 백두산의 분출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화산 폭발시, 화산재가 편서풍을 타고 멀리 블라지보스토크를 지나 일본 혹카이도-혼슈 북부까지 날려가 무려 5㎝ 두께로 덮여 있을 정도였다고한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것은 이 백두산 폭발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을것이라는 설(說)이다. 발해멸망은 926년으로 기록되여있으니 백두산 폭발시기와 미묘하게 맞물린다.


해동성국(海东盛国)이라 불리우면서 활발한 해외무역으로 동북아 최강의 선박인 300톤급 배까지 가지고있었던 발해가 일개 유목민족에 지나지않는 거란에게 허무하게 멸망했다는 강단사학의 추정은 아직도 많은 역사학자들의 의문을 자아낼법한데, 그러한 설이 나옴으로서 백두산 화산 폭발이 발해왕조를 단숨에 멸망시켰다는 논조가 설득력을 더 하고 있다. 백두산화산의 폭발은 당시 발해의 민심혼란과 국론분열을 야기하여 이 “해동성국”의 국력 쇠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설마 일어 날까? 혹은 일어나도 대개 몇백년 혹은 몇 천 년 뒤 일일터이니 나하고는 눈곱어치의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거다.

여기서 오늘의 화제- 우리 모두를 아우를 위기의식이 요청된다.

3

미국의 저명한 리서치(Research- 실천활동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과학적 연구 방법) 전문가인 죠지 바너가 펴낸 저서에는“주전자 속의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모 대학의 실험실에서 개구리의 신경반응 실험을 했다. 먼저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어 보았다. 즉각 반응으로 살기위해 개구리는 필사적으로 튀여나왔다. 이번에는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했다. 개구리는 상황 변화를 느끼지도 상황에 대응하지도 못하고 서서히 삶아져 죽어갔다.

죠지 바너는 이 같은 모습이 코앞에 닥쳐온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요즘 사람들의 현상태라 지적했다. 즉 현상유지, 안주, 편안함, 순간 쾌락으로 우리의 령혼이 무너져가고 죽어 간다는 경고이다.  


죠지 바너의 경고는 곧바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 공동체사회에 요즘처럼 “위기”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실감나게 다가온 적도 없었던것 같다.


한세기 이전에 무어져 세월의 파고(波高)를 넘고 암초를 피해 달려온 “조선족호”라는 인끔높던 선박의 흔들림을 우리는 멀미처럼 겪고있다.


개혁개방과“코리안 드림”이 가져온 제반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조선족 사회를 발전과 진통을 동반한 선택의 물길에 몰아 넣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엄연히 벌어지고있는 농촌집거지의 소실, 인구의 감소, 모어의 위축, 이혼률의 증가와 결손가정의 산생, 인재유실, 혼인난 등등의 현상들은 이미 상당히 위험한 수위에 도달하였다. 역설적으로 공동체사회의 해체와 민족의 동화라는 “위기”가 서서히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점점 뜨거워 지는 물속에서 이변(异变)을 모른채 유유히 물놀이나 즐기는 개구리는 우리의 모습과도 꼭 닮은데가 있다. 배가 물 속 암초에 부딛히고 선창에 구멍이 나 물이 새여들어고 선체가 기울기 시작함에도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자기가 일껏 일구어놓은 터전도 버리고 오로지 네온싸인이 분만해 오르는 도시의 광환을 향해 달려 가는 사람들, 돈벌이에 환혹해 자식들의 절규도 버린 채 서울 행에만 급급한 사람들, 우리 말의 우수성도 잊고 외래어만을 공리적으로 또는 시체멋으로 구사하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것보다는 보이는것을, 영원한것보다는 눈앞의것에 그 가치의 중심을 옮기고있다.

인간은 위기가 눈 앞에 닥쳐야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근성을 갖고 있다. 뜨거운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빠져나오려할 때 솥은 이미 달구어졌고 내 몸은 뜨거운 물에 갇혀 있다.

이렇게 현실의 변화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생각을 갈급(渴急)하게 사로 잡는 메시지가 바로 위기의식이다.

거금을 부어 “일본침몰”이라는 시나리오를 루차 만든 일본에서 많은 성공사례의 회사들은 위기경영을 그 회사의 불가결의 경영준칙으로 삼고 있다. “닛산” 자동차회사가 바로 그 전범을 보여주고있다. 세계 제 1의 자동차 생산, 판매회사로 부상해 경제형 고품질의 차로 지구촌의 반을 일제차로 덮는데 성공한 자동차회사이다.


1990년대 후반 70년 역사를 자랑하던 “닛산”은 장기불황의 고비를 넘기지 못해 회사의 문을 닫아야할 위기에 빠졌었다. 이에 회사는 최고경영자를 영입하는 것에서 회생(回生)의 해법을 바랐다.  


“닛산”에 부임한 신임사장 카를로스 곤은 곧 위기의식을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들었다. 회사가 위기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종업원의 사기는 둔감해져 수익성있는 회사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를 놓치게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때문에 위기감을 체계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기업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으며 이를 성장동력으로 연결시키려 했다.

애초 곤 사장의 몰아붙이는 위기경영이 계속되자 사원들은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때문에 그에게는 “랭혈동물”,  “장의사(葬仪士)같은 량반”이라는 악명이 줄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부진한 회사에 대한 재건기간중 “닛산”은 곤 사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사원들 사이의 위기감으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러한 풍토에  공장, 연구소, 부품업체 종사자들의 각고의 노력이 기울여졌고 이는 기술 축적과 신제품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랭혈동물”사장의 취임 후 1년만에 6800억엔 적자기업을 3311억엔 흑자기업으로 바꿔놓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180도로 바뀌였다. “없는 위기도 만들어 낸 경영자”가 진정 위대한 경영자임을 절감하며 너나가 엄지를 빼들었다.

이처럼 위기의식의 소요(所要)는 한 개 회사 더 나아가 민족, 국가의 존립과 번영이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여기서 위기(危机)라는 글자를 다시한번 찬히 들여다 보자.


위(危)는 "위태로울" 위이다. 그러나 기(机)는 어떤가?  기는 "기회"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영어에서는 기회를 찬스(Chance)라고 하는데 바로 이 글자의 깊은 뜻을 분명히 해 준다.


위기라는 단어는 이처럼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위기라는 이 단어가 갖고 있는이중성 즉 부정과 긍정, 마이나스와 플라스의 공존에 우리는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이면에서 깊은 바다 속 진주조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진주를 품고있는데다 껍데기는 세공품(细工品)에 활용되여 보배덩이로 일컫는 진주조개, 이 조개에 모래가 들어갈 경우 조개는 두 가지 선택을 할수 있다.


하나는 모래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물질인 모래의 침습으로 인해 진주조개는 병에 걸리거나 죽게 된다.


다른 선택은 모래를 나카(Nacre)라는 물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로서 수년간은 불편하지만 병에 걸리거나 죽지않고 조개는 진주라는 귀한 보석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위기의 상황을 진주와 같은 값어치로 탈바꿈시킬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이 가진 위기에 둔감한 스스로의 함정을 걷어내야 한다. 위기를 알아야 위기를 극복하려는 욕구가 분출될것이고 위기를 알아야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수도 있을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철저한 자아점검과 주변환경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발생, 진행, 해결과정에서 보인 응집력과 성과로 우리 공동체의 미래의 주가, 성장성을 재평가 받아야 한다. 21세기 중국 속의, 더 나아가서 세계 속의 조선족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문명사적 시각에 립각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단순한 엽기제재나 일회용 오락물이나 만드는 유흥을 떠나 백두산화산폭발이라는 제재의 시나리오를 한번 완수해볼 예정이다.

- “청우재(聽齋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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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백두산 화산의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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