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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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롱다리” 이민호 베이징무대서 출연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칭다오맥주YOU & 감은 여름밤 이민호 만나기”활동이 오는 15일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는 이민호가 지난 춘제야회 후 다시 처음으로 중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현재 모든 공연프로그램이 기획중에 있지만 이민호의 팬들한테는 적지 않은 화제거리를 나돌고 있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번 무대는 비록 이민호 개인의 독점공연은 아니지만 그날밤 그는 앨범중의 가요와 지난해 센세이숀을 일으킨 “상속자들”의 주제곡을 부르는 외 주로는 모두가 취미를 갖고 있는 화제로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팬들과 얘기를 나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번 무대에서 이민호는 부분적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최근 생활을 공개하게 되며 기타 놀랍고도 반가운 현장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아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의 무대를 통해 팬들에게 많은 것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민호는 데뷔한 뒤 자신의 영준한 용모와 훤칠한 롱다리로 순식간에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그가 주연한 “상속자들”,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 등 3편의 드라마는 전 지구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으며 이제 곧 그 영향력이 해외에까지 미칠 전망이다. 현재 이민호는 그의 첫 영화 “강남블루스”에 출연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연예·방송
    2014-06-11
  • 김수현 “성형” 질문에 “아직은…”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타이완 “중국시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국스타 김수현이 “별에서 온 그대”때문에 전 아시아의 폭발적인 인기를 몰아오자 그와 만나자거나 취재하려는 팬들과 기자들의 연락이 끊기지 않고 있는 현황이다. 일전 김수현을 취재한 적이 있는 한 기자에 따르면 기자가 김수현한테 “성형시술을 한 적이 있는가”고 묻자 김수현은 “나 현재 젊으니 아직은 필요없다”고 답복했다. 이에 많은 팬들은 은근히 김수현에 대해 흥미를 크게 가지게 되었으며 더우기 어떤 네티즌들은 여태껏 공개된 김수현의 사진을 검색, 앞이마쪽과 헤어스타일에 좀 차이가 날뿐 기타의 오관부분은 거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요해에 따르면 당시 질문했던 그 기자는 김수현의 팬이 아니었기에 앞에서 참지 못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국의 연예인들은 거의 모두가 성형한다는데 김수현씨도 성형했는가”고 물었다. 하지만 이 난처한 문제의 제기에 생각밖으로 김수현의 반응은 아주 빨랐다. 김수현은 웃으면서 “연예인들이라고 다 성형하는 것이 아니다. 나같은 사람은 젊기에 당연히 필요가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그 기자는 “김수현은 성격이 매우 쾌활한바 그 어떤 일에서나 ‘호기심이 많은 귀염둥이’ 같았으며 특히 먹거리에 취미가 큰 것 같다”고 김수현에 대한 인상을 밝혔다.
    • 연예·방송
    2014-06-11
  • 中, 11살 초등학생 뇌암, 림종전 기관 기증해 구인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심수초등학교의 11살 나는 양요예(남)는 뇌암으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림종을 앞두고 그 애는 신장과 간장을 기증하기로 했다. 6월 6일, 요예의 념원이 실현되었다. 그 애가 기증한 기관들은 8시간 내에 더욱 많은 생명들을 구했다. 이식수술이 끝난 후 요예의 유체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의사들이 요예와 그애 어머니를 향해 세차례 허리 굽혀 절을 했다. 요예의 어머니는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는 아직도 요예의 책걸상이 맨 앞줄에 놓여있다. 요예의 어머니 리군이 적십자사로부터 기관기증 영예증서를 수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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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6-11
  • 군포서, 엉터리「만병통치 천도복숭이」조제 판매한 피의자 2명 검거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군포경찰서는 지난 5일 건강기능식품 스쿠알렌․오메가3 등과 일반의약품인 소화제․아스피린 등을 이용하여 조제한 것을 암환자나 당뇨병 환자에게「만병통치 천도복숭이」라고 속이고 약값 명목으로 총 110회에 걸쳐 4,000만원 상당을 편취한 이 某 (72세, 남)씨 등 2명을 거래 현장에서 검거해 구속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이 씨 등은 2012년 8월경 군포시에 소재한 한 커피숍에서 유방암에 걸린 아내의 치료를 하고 있는 절박한 처지의 남편 권 某씨에게 접근해 돈이 들어가더라고 아내의 유방암을 완치시켜 주겠다고 속여 이를 믿은 피해자에게 건강보조식품(스쿠알렌, 오메가3, 우황청심환 등)과 일반의약품(소화제, 아스피린,인코라민 등)을 마구 섞은「만병통치 천도복숭이」를 조제해주고 1,000만원을 받아 챙기는 등 피해자들에게 총 110회에 걸쳐 4,000여만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약의 성분을 의심스러워하는 피해자들이 「만병통치 천도복숭이」의 이름이나 성분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약을 건네주는 현장에서 바로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셔 삼키도록 하는 등 범죄를 감추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했으며 이와 같은 수법으로 당뇨병 환자에게도 접근해 수차례에 걸쳐 돈을 받아 챙겼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러한 첩보를 입수하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설득 후 피의자들이 피해자에게 약을 건네기로 한 장소에 잠복했다 5월 20일 현장에서 피의자들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군포경찰 관계자는 항암 치료를 중단한 채 피의자들이 제공했던 약만을 복용하다가 사망한 유방암 2기 환자인 김 某씨의 사망원인이 피의자들의 제공한 약 성분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현장에서 압수한 약 성분을 분석 의뢰하는 한편 이들에게 속은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해 피해자 추가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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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0
  • 중국 “석탄 금삼각주”, “녹 쓴 지역”으로 전락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의 “석탄 금삼각주”라 불리웠던 섬서성의 유림, 내몽골자치구의 어얼두어스, 산서성의 수어주가 요금 “녹 쓴 지역”에 들어서고 있다고 중국 경제주간(中国经济周刊)이 10일 전했다. 지도상 이 세 곳은 삼각위치를 이룬다. 휘황했던 10년 아시아주금융위기 폭발 6년 후인 2003년, 석탄수요가 다급해 짐에 따라 중국 석탄업은 신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회복기, 부흥기는 2012년 하반기까지 지속되었는바 업계에서는 석탄업의 “황금 10년”이라 부른다. 그 10년간 중국 최대 석탄전에 위치한 어얼두어스와 유림, 수어주는 석탄으로 하여 흥기, 부유하기로 전국에 소문났으며 “동방의 두바이”, “중국의 쿠에이트”로 불리웠다. 우얼두어스의 경우, 2008년부터 2012년 5년간 GDP가 년 평균 18.5%씩 고성장, 2012년에 이르러 3656억 8000만위안으로 인구당 GDP가 2만 9500달러에 달해 에스빠냐, 한국 등 중진국 수준을 초과했으며 2013년 이 시의 인구당 GDP는 처음으로 3만달러를 돌파한 3만 1768달러에 달했다. 일찍 한 언론에서 어얼두어스에는 억만부자가 7000명이 넘으며 자산이 수천만위안이 되는 부자가 적어도 10만명이 되고 매 217명중 억만부자 1명이 있고 매 15명중 천만부자 1명이 있다고 보도한적 있다. 유림과 수어주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3년, 이 “석탄 금삼각주”의 석탄생산량은 전국 석탄 총생산량의 근 1/3에 달해 중국 “공업식량”의 “주요 생산지”로 되었다. 석탄업의 “황금 10년”은 역시 “석탄 금삼각주”의 “황금 10년”으로 이곳은 석탄으로 인해 흥했었다. 중국경제주간(中国经济周刊)은 “석탄 금삼각주”의 휘황했던 나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일찍 ‘인구당 GDP가 홍콩을 뛰어넘는다’고 호언장담했었고 이곳 한 도시의 1년 고정자산 투자계획이 일찍 1500억위안에 달했으며 이곳의 한 현에서는 전국적으로 맨 처음으로 전민 무료의료를 실시했으며 ‘집집마다 부동산업자, 집집마다 전당포’였고 이곳에서 일찍 억만부자 수만여명이 탄생했으며 이곳의 자동차전시회 단일 판매액이 근 억위안에 달했었다…” 고통스러운 침체기 하지만 2012년 말부터 국제적으로 석탄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전체 업종이 결손을 보며 석탄시장에는 공황정서가 만연되고 있다. 석탄업의 지속적인 침체로 현재 이곳들은 신속히 “석탄으로 인한 쇠락기”에 들어서고 있다. 경제가 급격히 하락하고 기업이 생산을 정지하며 외래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민영기업 자금줄이 죄어들며 서비스업이 적막하고 부동산개발상 등의 거대 민간재부들이 대량 증발하거나 엄중히 줄어들고 있다. 거액의 대부금이 은행에 묶여있어 은행들은 이젠 석탄업계에 대출해 주지 않고 있으며 이 기회를 빌어 “지하금융”들이 석탄업에 손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탄 금삼각주”가 “녹 쓴 지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일까? 명사해석: “녹 쓴 지역”이란? 지난 세기 70년대, 일부 선진국들의 노공업기지들은 중공업화시기의 번영을 거친 후 쇠락, 대량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도처에 빈 공장건물과 버려진 녹 쓴 설비들이 널려있었다. 이들 예하면 러시아의 우랄산, 미국의 오하이오주를 두고 역사는 “녹 쓴 지역”이라 형상화 했고 그 시기를 두고 “녹 쓴 시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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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4-06-10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시리즈 (13) 런던타워
    런던타워 자료 소속대륙: 유럽, 소속국가 : 영국, 지점: 런던 템즈강 북안 함의 : 영국황실의 중요한 상징 런던타워는 영국 런던의 동남각의 탑산에 위치, 이미 9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런던타워는 비록 “탑”으로 명명되었지만 기실 이는 성곽식으로 된 건축물이다. 영국역사상에 있어서 런던타워는 일찍 방어가 엄밀한 요새였으며 국왕가족의 거처지었지만 어찌보면 감옥과도 같은 곳이기도 했다. 현재 런던타워는 하나의 저명한 박물관으로 되었는데 박물관내에는 역대 국왕들의 왕관, 왕포(王袍), 금은진주와 생활용기들이 진열돼 있다. 런던타워의 웅위로운 건축풍격과 유구한 역사는 이를 영국의 중요한 문화재의 하나로 되게 하고 있다. “보루”와 런던타워 런던타워는 두개의 방어담장을 갖고 있다. 즉 외부성벽 남쪽의 방어호로서 성벽밖을 둘러싸고 있는데 사병들이 그것을 지키노라면 방어로를 쉽게 통제할 수가 있었다. 다음 내부성벽은 비교적 높고 성벽을 따라 13개의 보루가 있으며 제 2 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보루는 凸형으로 밖으로 돌출되었으며 사병들은 높은 곳에서 성곽밖의 모든 구석들을 살필 수가 있다. 또한 각 곳으로부터 오는 진공을 제지시킬 수가 있다. 이 보루들은 전쟁시에는 방어로 쓰이고 평소에는 거주장소로 이용되었다. “감옥”과 런던타워 런던타워는 일찍 적지 않은 명인들을 수감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명인들 중에는 공상식 사회주의의 조상 토마스 몰과 국왕 헨리 8세의 두 왕후, 에드워드(爱德华) 4세의 두 유공자 등이 수감되던 곳이었다. 당시 대영제국은 국내치안에 타당한 방법이 있었고 대외로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대패시킨 엘리자베스 1세를 이 곳에 수감하기도 했다. 현재 런던타워는 그 어떤 사람도 가두어놓지 않지만 성곽내부에는 아직도 고대형법의 지하감방, 보검, 도끼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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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6-10
  • 오묘한 세계대백과(13) 혜성의 긴 꼬리
    하늘의 어떤 별들은 매우 “장난기”가 심한바 그것들은 긴 꼬리를 끌고 태공중에서 쉬임없이 이리 날고 저리 날고 한다고 한다. 이 별들의 이름이 바로 “혜성”이라고 한다. 그것들은 종래로 가만있지 않고 있는데 아마 자기의 아름답고도 긴 꼬리를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혜성은 얼음입자와 결빙된 먼지기체로 구성, 그것의 중심이 바로 혜핵이다. 혜성이 태양신변에 날아가면 태양이 열량은 혜성자체내의 먼지와 결립입자기체를 운무로 만들어 혜핵의 주위를 감싸게 했다가 혜성의 “털”로 되게 하며 뒷따라 태양풍이 이런 “털”을 불어버리면 커다란 꼬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혜성이 태양신변에 가면 그 꼬리가 길어졌다가 태양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그 꼬리가 짧아진다고 한다. 한편 혜성의 꼬리는 빛을 낼뿐만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기도 한다. 때문에 지구에서도 혜성의 꼬리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혜성중에는 유기분자가 함유돼있는데 이는 생명의 기원과 중요한 연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과학자들의 관측에 따르면 지구가 형성되던 초기에 가능하게 혜성에서 작은 비 내리듯이 일종 유기물질을 지구에 내려보냈는데 이것이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으로 되었을 수 있다고 한다.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제공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10
  • 부여 대간첩작전 순직자 현양식 개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경찰교육원(원장 정용선)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 10일, 경찰교육원 보안교육센터에서 유가족과 작전 당시 동료경찰관, 전국의 보안경과 경찰관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여 대간첩작전 순직자 현양식을 개최했다. 부여 대간첩작전 당시 순직한 故 나성주 경사와 故 장진희 경사의 청동부조상과 유품전시대의 제막식을 실시하고, 보안교육센터 강의실을 나성주 강의실, 장진희 강의실로 명명하였다. 부여 대간첩작전은 남한 내 반체제인사에 대한 포섭 임무를 띠고 잠입한 북한의 무장간첩 2명에 대하여, 1995년 10월 24일 충남경찰이 부여 석성산 일대에서 무장간첩을 발견하여, 교전 끝에 1명을 사살, 1명을 생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낸 작전이다. 안타깝게도 작전 당시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 순경(당시 30세, 머리에 총상)과 장진희 순경(당시 31세, 옆구리 총상)이 교전 중 총격을 받고 순직하게 된다. 정용선 경찰교육원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한 예우와 존경은 후손들의 의무와 사명일 것”이라면서, “두 경찰 영웅의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이 경찰조직 전체에, 나아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방군사연구소의 한국전쟁 피해통계집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경찰은 전사자 9천여 명, 실종자 7천여 명, 부상자 7천여 명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빨치산 토벌작전에서도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을 경찰이 사살하는 등 경찰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일반 국민들은 그 공적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부여 대간첩작전 순직자 현양식은 잊혀져가는 호국경찰 활동을 재조명한다는 의미가 깊은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도 경찰교육원에서는 대한민국을 지키려다 희생한 경찰관의 활동과 업적을 발굴하여 국민에 알림은 물론 현장경찰관의 경찰정신 함양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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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10
  •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3)
    ■ 김철균 “고운 사람 미운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순자는 매우 이쁘게 생긴데다 거기에 마음이 착하고 활달했으며 노래도 잘 불렀다. 그 때도 동네 사람들은 농촌의 힘든 모내기나 가을걷이 그리고 낟알털기같은 일을 할 때마다 여러 집 일군들을 합쳐서 한집 한집씩 돌아가며 일을 해주군 했다. 그렇게 모두들 함께 뭉쳐서 일을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닥 힘들지 않았고 그만큼 빨리 축 났으며 또한 여럿이 어울려서 일을 하면서 농담도 하고 노래도 부르니 그만큼 일터의 분위기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순자를 불러서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것은 순자가 그만큼 노래를 잘 불렀거니와 이쁘게 생겼고 또한 마음씨가 착해 동네사람들과 잘 어울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순자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동네사람들앞에 자주 나서군 했다. 당시 순자는 아는 노래들이 많기도 했다. 민요로는 “도라지”, “노들강변”, “아리랑”, “조선팔경”으로부터 현대계몽기가요인 “고향의 봄”, “반달”, “고향하늘”과 “오빠생각” 등으로 아는 노래가 부지기수었다. 그 중 그래도 아주 잘 부르고 즐겨부르던 노래가 바로 “오빠생각”이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면서 / 비단구도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 나무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이렇게 순자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일군들속에서는 박수소리와 더불어 “재청”소리가 함성처럼 터져나왔다. 그러면 순자는 주저없이 그 “재청”에 응해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어떤 날에는 10컬레 이상이나 불러 목이 쉴 때도 있었다. “명기어른, 딸 하나를 정말 잘 키웠수다.” “아이구, 윤씨! 저 애가 크면 총각들 애간장이나 태우게 만들겠수그려.” “참, 나두 저런 딸 한명 있었으면 좋겠구만. 저 윤씨, 저 딸애를 우리 집에 주지 않을려우?” 마지막으로 딸비위를 하는 여인은 아들만 5명이나 있는 아낙네었다. 이렇게 마을사람들이 찧고 박고 하는 동안 순자의 어머니 윤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수걱수걱 일만 했다. 기실 순자의 어머니 윤씨는 딸애가 노래부르기에 재미를 붙이는 것에 대해 조금도 달갑지가 않았다. 아니, 한사코 뜯어말리는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보, 딸년한테 소리(노래)나 하게 하고 앞으로 풍각쟁이로 만들겠수? 아니면 가야금을 뜯는 기생년으로 만들겠수?” 윤씨의 말에 김명기어른도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동감이었다. “그러게 말이우다. 나도 걔가 풍각쟁이로 되는 걸 원치 않는다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걸 어떻게 하겠수? 다 팔자소관이 아니겠수? 옛날에 아버지가 남한테 퍼만 주면서 가산을 다 말아먹더니 나도 그렇고 저 애도 아마 그런가 보구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앤 고생할 팔자인 것 같수다. 그리고 사람의 팔자란 하늘이 정했다 하거늘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있겠수?” “글쎄 말이웨다.” 어머니 윤씨는 점도 치고 사주팔자도 보면서 무던히도 딸의 팔자때문에 속을 말없이 썩이군 했다. 이상한 것은 어떤 점쟁이들은 “애가 고생할 팔자”라고 했으나 사주팔자를 보는 어떤 미신쟁이들은 “애가 고생은 하겠으나 남편과 자식복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속에 말을 남기군 하였다. 그러건 말건 순자는 순자대로 여전히 노래에 큰 취미를 가지고 용정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마을의 언니와 오빠들한테서 자주 졸라 노래를 배우군 했다. 그리고 워낙 총명해서인지 몇번 따라하지 않고도 가사를 암송내고 곡도 제대로 넘길 수가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강점은 순자가 학교에 붙을 때도 큰 작용을 했다. 육도소학교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던 날 순자는 웬간한 산수문제를 풀고 간단한 문장을 줄줄 읽은 외에도 교장선생님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니 연속 세컬레나 불러 교장선생님과 기타 선생님들의 인상속에 남게 했다. 3 순자가 공부를 할 수 있은 건 결코 집이 유족해서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순자의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조선에서 살 때인 부친세대시기부터 가세가 기울리기 시작했고 간도 대문동에 정착할 때는 완전히 평민과 다름없는 계층으로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여자애들한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건 용정이나 국가가(연길)같은 도회지에서 사는 가정들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가난한 시골에서는 거의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독립활동가의 후손인 김명기 어른은 부친으로부터 받은 영향때문에서었던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죽은 큰 딸 숙자한테도 서당공부를 하게 했고 어린 딸 순자도 글공부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것도 대문동에 학교가 없기에 학교가 있는 육도촌(지금의 신화촌)에 방을 얻어주면서까지 말이다. 그만큼 전주 김씨 양반후손인 김명기 어른은 어리무던하면서도 뼈대가 있는 남정이었다. 소학교에 붙어서 처음에 순자를 포함한 조선인 자식들은 그래도 조선글을 배울 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살기 좋은 우리 나라// 금은보화 넘쳐나는/ 3천리 금수강산… 그리고 조선 경성으로부터 왔다는 한 총각선생님으로부터 몰래 조선의 “태극가”를 배우기도 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3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당시 간도에서 사는 조선인들은 몸은 비록 간도에 담고 있었지만 하루 빨리 망국노의 삶을 끝내고 독립된 조선에 돌아가 살아야 한다는 협애한 민족주의 의식이 농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에는 간도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되며 조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도 있었지만 조선이 일본에 의해 병탄된 후 왜놈들의 등살에 못이겨 피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에 반일정서가 아주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간도 역시 1931년의 “9.18사변”이후 일제의 천하가 되었다. 일본이 싫어 그들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왔지만 간도땅에 와서까지도 왜놈들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작고 힘없는 약소국가의 백성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제한테 그저 당하고만은 있지 않았다. 밤만 되면 동네사람들은 가끔씩 그제날 조선독립을 위해 간도지방의 산야를 주름잡던 홍범도, 김좌진 등 독립군장군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반일투쟁과 조선독립을 연결시키군 하였다. (생략) …… 한편 지난 세기 40연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침략행위는 극에 달하였다. 일제의 침략정책이 가심화 됨에 따라 재만조선인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하게 이그러져갔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약탈에 이어 이제는 인권말살도 노골화되어갔다. 순자가 소학교 4학년이 되자 학교에는 일본인 교장이 부임됐다. 이와 더불어 학교의 분위기는 더욱 험하게 변했다.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까지 항일에 대한 말은 일절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지어 조선글을 쓰고 조선말을 입에 올리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를 위반하면 귀쌈을 맞거나 벌을 서군 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몰래 진주항을 기습하여 미국의 태평양함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하였다. 이와 더불어 학교내에서는 일본의 대륙진출과 “대동아성전”을 가송하는 이른바 웅변모임이 도처에서 있었고 대 일본제국의 군가들이 보급되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천황페하의 황국신민으로 된 젊은이들이여, 지금 천황페하의 무적의 황군은 넓고 넓은 지나(중국)대륙의 절반 이상과 동남아의 많은 지역은 물론 저기 저 남태평양의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사이판 등 나라와 많은 섬들을 점령하였고 지금 바야흐로 대양주의 오스트랄리아에로의 진격 전야에 있다. 천황페하의 황군은 승전에 승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아메리카의 양키군대는 무적황군에 쫓겨 풍지박산이 되고 있다. 천황페하의 황국신민으로 된 젊은이들이여, 태평양성전은 서방열강들의 속박과 억압에서 아시아 민족을 해방시켜주는 정의의 전쟁이다. 태평양 성전의 최후 승리는 눈앞에 박두해있다. 아시아인종이 열강들의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두가 일본의 성전에 궐기하라. 천황페하 반자이! 대 일본제국황군 반자이!” 守るも攻むるも黒鉄の まもるもせめるもくろがねの 浮かべる城ぞ頼みなる うかべるしろぞたのみなる 마모루모 세무루모 꾸로가네노 우카베루 시로조따노 미나루 (싸움도 지킴도 떠오르는 강철성의 힘이요) 浮かべるその城日の本の うかべるそのしろひのもとの 皇国の四方を守るべし みくにのよもをまもるべし 독우까베루 소노 시로 히노모토노 미쿠니노 요모오 마모루베시 (떠오르는 그 성의 힘으로 태양의 근본 황국의 사방 지킬것이리) 真鉄のその艦日の本に まがねのそのふねひのもとに 仇なす国を攻めよかし あだなすくにをせめよかし 마가네노 소노 후네 히노모토니 아다나스 꾸니오 세메요까시 (강철의 그 함선은 우리 황국 위협하는 적 격멸할것이리) 石炭の煙は大洋の いわきのけむりはわだつみの 竜かとばかり靡くなり たつかとばかりなびくなり 이와기노 께무리와 와다츠미노 따츠카또 바카니 나비쿠나리 (석탄의 연기는 떠오르는 룡처럼 나붓길것이고) 弾撃つ響きは雷の たまうつひびきはいかずちの 声かとばかり響むなり こえかとばかりどよむなり 따마우쯔 히비키와 이카즈찌노 꼬에가또바까리 도요무나리 (발포음은 천둥소리 되어 대양에 울려퍼지리) 万里の波濤を乗り越えて ばんりのはとうをのりこえて 皇国の光輝かせ みくにひかりかがやかせ 망리노 하토오 오 노리코에떼 미쿠니노 히카리 카가야카세 (만리의 파도를 타고넘어 우리 황국의 빛을 밝혀나가세) …… 당시 조선에는 물론 간도의 곳곳에서도 이와 같이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 이른바 “대동아성전”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자들과 “일본군 군가(일명: 군함행진곡)”를 부르며 광란적으로 설쳐대는 자들이 많았다. 모두가 단말마적인 발악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조선에서는 “내선일체(内鲜一体)”란 슬로건(口号)으로 수많은 남성청년들과 처녀들이 학도병, 정신대로 되여 전선에 끌려가기도 했다. 놈들의 총알받이와 수욕해소 도구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 한편 조선에 이어 간도에서도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 조선인의 이름을 몽땅 일본식이름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황국신민”이 되는 추태까지 벌어졌다. 그 창씨개명에 대한 선전 또한 한시기 3.1운동시 조선독립선언에 서명했던 춘원 이광수 등 이른바 유지인사들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자도 창씨개명 때문에 당시의 이름인 기숙(순자의 원래 이름)으로 불리우지 못하고 기슈구로 고쳐졌다. 조선인으로서 당당한 조선이름이 있어도 그 이름을 쓸 수 없는 황당한 시대, 그것이 바로 당시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의 운명이었다. 또한 학교에서는 공부하는 시간보다 군사훈련을 내용으로 하는“체육시간”이 더 많아졌다. 워낙 달리기, 그네뛰기와 널뛰기 등 체육운동에는 취미와 소질이 있었고 교내의 대열검열 시마다 늘 학생대표로 선발되어 검열대에 올라가 교장선생님한테 경례를 올린 후 검열대호를 지휘하군 하던 순자였지만 어쩐지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대열짓기, 날창찌르기, 포복전진과 방공호 들어가기 등 훈련만 강요하는 “체육시간”이 점점 싫증이 났다. 취미성이 없는데다 너무나도 엄격하고 포악성이 내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학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순자의 몸은 먼지투성이 아니면 진흙투성으로 되기가 일쑤였고 그 지친 모습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순자의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육도촌에 있는 세방에 왔다가 순자가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참, 세상이 망할려니 별 해괴한 일을 다 보는군, 학교라는 것이 웬 당치도 않는 군사훈련이란 말이냐? 그리고 계집애들이 군사훈련을 해서는 쌈터로 나간단 말이냐?! 안되겠다. 너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질 말거라.”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이렇게 왜놈의 말을 하고 왜놈의 글을 배우는데다 이번에는 왜놈의 군사훈련까지 강요하는 학교가 점점 못마땅한지라 딸을 순자를 퇴학시킬 타산까지 하고 있던터라 드디어 퇴학이란 말을 입밖에 내뱉었다. 순자 역시 군사훈련이 힘들고 싫증나는 건 마찬가지었다. 훈련이 서툴어도 매맞았고 일본군가를 잘 부르지 못해도 욕을 얻어먹기가 일쑤였으며 일본인교관의 험상궂은 낯판대기는 보기만 해도 무서워났다. 하지만 순자는 퇴학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이전에 비해 공부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시간만은 재미가 있었다. 일본어로 공부하는 것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순자는 공부에 푹 빠져 있었다. 성적도 매우 우수했다. 언젠가 한번은 순자가 전 학급에서 종합 1등을 하였었다. 헌데 당시 일본인 교원은 조선인 학생이, 그것도 여학생한테 1등을 주기 몹시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2등을 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머리를 썩썩 긁으며 궁리해낸 것이 2등을 한 일본인 학생 교쇼진과 순자한테 공동 1등이란 점수를 주는 것이었다. 이렇듯 순자가 공부에서 전 학교적으로 독특하게 우수한지라 결국 아버지도 순자를 퇴학시키려던 마음을 접게 되었다. 소학교를 다니는 6년간 순자는 공부를 잘하기도 했거니와 지각과 조퇴란 단 한번도 없었으며 6년간 만개근생으로 표창받기도 했다. 이는 전 교내적으로 순자가 유일한 학생이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10
  • 해외견문 시리즈 (9)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 김철균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 – 섹스서비업으로, 마약밀매로 세계에서 유명해진 나라, 나라의 경제진흥을 위해서 한 세대의 소녀들을 희생시킨다는 명목 아래 창녀들이 출국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매 가정 4명의 여자 중 1명은 창녀라는 오입쟁이들의 천국 - 타일랜드. 1991년 6월 29일, 우리네 선박 “코리안스타”호가 태국의 수도 방콕항에 입항하자 아니나 다를가 그날 저녁으로 에이젠트라고 하는, 전문 선박입항시의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대리점 일군이 거의 60명이나 되는 아가씨들을 이끌고 배에 오르는 것이 었다. 선내는 삽시에 경사가 난 것 같았다. 참, 포클랜드로부터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와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마린, 비고 이렇게 입항할 때마다 여자들을 찾군 하던 한국선원들이었건만 아직도 직성이 안풀렸단 말인가! 하긴 정력제라고만 하면 오징어의 입과 생식기마저 돌아가며 뜯어내군 하던 “배놈”들이었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우리 선박에는 박치국이라는 한국선원 한명이 있었는데 총각인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여자를 밝히는데 이골이 든 녀석이었다. 그의 얼굴은 전형적인 여드름투성이었다. 그래서 그 여드름을 두고 선장과 그한테는 자주 이런 대화가 오가군 했다. “박군, 너 얼굴의 여드름은 왜 그리도 많이 돋아났지?” “선장님도 참, 그걸 번연히 알면서도 왜 묻습니까? 그건 아래로 빠져야 할 것이 제때에 빠지지 못하니까 우로 뻗은거지요.” “에익 이 사람아, 검은 말, 흰 말 가리지 않고 타면서도 채 빠지지 않았다니 너의 몸뚱아리에 도대체 그것이 몇동이나 고여 있는거냐?” “허허허, 그래 저의 몸에 피만 몇동이 고여 있는가 하세요? 그것도 몇동이씩 고여있어 매일 한글라스씩 뽑아도 석달 열흘은 뽑아야 할 겁니다.” … … 아가씨들이 선박에 올라 미구하여 1항사인 김형훈씨가 나타났다. 그가 호르래기를 후르륵 하고 불자 아가씨들은 미리 훈련이라도 걸친 것처럼 갑판위에 두 줄로 행열을 짓는 것이었다. 이어 1항사가 영어로 뭐라고 꼬부랑소리를 하자 아가씨들은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 하면서 인원수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1항사는 흡족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가씨들의 주위를 돌며 하나 하나 체크하더니 그 중에서 제일 젊고 이쁘게 생긴 아가씨를 골라잡은 뒤 나를 불렀다. “주방장 김군, 이 아가씨를 선장방까지 모셔가도록 하이소.” 그 아가씨는 20살쯤 되어보이는데 진짜 이쁘게 생겼다. 얼굴도 이뻤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다리도 미끈했으며 가는 허리에 반해 히프와 가슴은 어찌도 건뜻 쳐들고 팽팽했는지 진짜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허나 내가 뭔데 감히 선장의 파트너를 다치겠는가! 선장은 진작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침대위에 펴놓은 이불과 방안의 향수냄새 그리고 차탁위에 놓여있는 위스키병 등이 그걸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짐짓 시치미를 떼는 엉뚱한 선장님. “뭐 아가씨?! 참 너나 데리고 놀지 그래?!” “저야 뭐 나중에 좀 보지요.” “그래그래 고맙다. 그럼 이걸 갖고가서 술 한잔 하던지 아가씨 한명 골라잡던지 하이소.” 선장이 넘겨준 봉투에는 미화 50불이 들어 있었다. 한편 내가 3층에 있는 선장방에 갔다오는 사이에 벌써 얼굴이 반반한 아가씨들은 한명도 없고 남은 년들은 말짱 나먹은 들말같은 아줌마들과 겨릅대처럼 깡깡 마른 아가씨들뿐이었다. 창녀들은 대뜸 나를 둘러쌌다. “오빠, 내가 이쁘지요? 어때요, 날 가지겠어요?” “아저씨, 참 멋져. 난 아저씨가 좋아.” 가뜩이나 기분이 잡치던 판에 그녀들이 한국말로까지 지껄여대자 나는 더욱 그년들이 곱지를 아니했다. 그래서 침실로 들어가 잠간이라도 누었다가 저녁밥 지으려는데 2기사인 서춘철씨가 찾아왔다. 아가씨가 배고프다기에 먹을 걸 좀 챙겨달라는 것이었다.그러면서 왜 혼자나며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다. “아니, 주방장 김상, 아직도 한명 골라잡기 못했능기여? 김상은 바보요 바보, 김상이 정조를 지킨다 해서 부인이 믿기나 할줄 아능겨?! 뱃놈은 뱃놈 배짱대로 오입도 해야 하능기라.” “마누라가 겁나서가 아니라 에이즈가 무서워서 그래요.” “아이고 이 사람아 , 사내로 태어나 에이즈에도 걸려보지 못하면 그게 무슨 사내인고?! 자 우리 함께 에이즈에 걸려보자잉께. 알겠습니꺼?” 그도 그럴 것이 서춘철씨는 일도 잘하고 술도 잘 먹고 의협심도 강하고 뭐나 다 좋았지만 그 역시 여자를 좋아하는 범주만은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그의 말을 빈다면 술담배와 여자도 모르는 사내는 세상에서 제일 옹졸하고 깍쟁이고 지독한 놈이라고 했는데 그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듯 싶었다. 그러나 서춘철씨는 마누라만은 지극히 사랑했는바 침실에 늘 마누라와 자식의 사진액틀을 걸어주었는데 배가 입항할 때마다 꼭꼭 집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군 했다. 또한 그의 마누라 역시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그가 승선한 뒤 여자한테로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부탁이란 그저 에이즈에만 걸리지 말라는것이었다. 하기에 그녀는 남편이 출국할 적마다 “여보, 장화”하며 콘돔 여라문곽씩 짐속에 챙겨 넣어주군 했다는데 그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남편을 그건 곳으로 보내면서 오입조차 하지 말라는 부탁조차 어리석은 노릇이며 남편을 잡아둘려면 그런 곳으로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녀의 말마따나 기계는 돌려야 녹 쓸지 않는다나?! 방콕에 머무르는 사이에 매일같이 여자를 갈아대는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서춘철씨만은 줄곧 아가씨 한명과만 거래를 했는데 그러면 병에 걸릴 근심도 덜하고 돈을 적게 쓸 수도 있었다. 며칠간 도맡으면 몸값도 할인되니까. 헌데 맘씨고운 그는 자주 아가씨와 함께 거리에 나가서는 옷도 사주고 술을 마셨기에 나중에 계산을 때려보니까 돈을 제일 많이 처넣은 이가 다름 아닌 서춘철씨었다. 그래서 매번 아가씨를 사고난 뒤면 그는 언제나 “에익! 정들어 흠뻑 빠지기 전에 훌쩍 떠나버려야지”라고 투덜댔지만 이튿날이면 또 생각나는 걸 어떻게 하지? 참 여자의 몸뚱아리가 과연 무엇인지 밥한끼 굶은 건 괜찮아도 그것만은 떠날 수 없어 늘 사나이의 애간장만을 태우는지?… 방콕에서의 다른 한 인상은 말린 악어몸뚱아리와 상아를 파는 것이 각별히 많았는데 악어는 일반적으로 20~30불 상아는 200불 정도면 살 수 있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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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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