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여름방학이 거의 마감될 쯤,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비록 함께 간 건 아니지만 워낙 인터넷이 발달하고 위챗사용이 활발한지라 거의 실시간 뉴스처럼 화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유쾌한 모습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던 중 플래카드 표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정음우리말학교 고국탐방”…
처음 기획 시에는 ‘모국탐방’이라고 했다가 여러 선생님들이 ‘모국’이라는 용어는 타당치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아서 쓰지 않았는데 최종에는 ‘고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단체방문일 경우에는 개인적인 방문에 비해 표어도 있고, 공식적인 행사도 있기 때문에 용어사용에 여러 면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많은 단체들에서 크게 중시를 하지 않고 한국에서 사용하는 대로 받아들여서 쓰고 있는 현상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모국’과 ‘고국’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사용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모국: 1. 자기가 태어난 나라. 흔히 외국에 나가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에 쓰는 말. 2. 따로 떨어져나간 나라에서 그 본국을 이르는 말.
고국: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사전해석이 알려주듯이 현재 중국에서 중국국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한국을 ‘모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옳지 않은 사용법이다. 한국이 일부 이민 1세의 모국 이였겠지만 3대 4대에 걸치는 우리가 태어난 나라는 아니다. ‘고국’이라고 사용하는 건 더더욱 삼가해야 할 것 같다. 사전에 보면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즉 한국을 ‘고국’이라고 하면 스스로 지금 살고 있는 나라를 ‘남의 나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있는 자세이다.
가끔 조선족을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자처하는 글들을 본다. 같은 피가 흐른다고 친절한 대우를 받을 줄로만 예상하고 있던 한국에서 차별대우를 받을 뿐더러 원래 쓰던 한글 이름마저 그대로 기입하지 못하게 하는 취급을 받는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억울함이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 처신이 맞았는지부터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 가서 무작정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만 믿고 다른 면들도 다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습관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전에,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이 잘 처신했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비록 간단한 하나의 어휘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언어가 지니는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사표명이고, 보고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어휘 하나 사용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 민족 언어를 유지해나가고, 민족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민족 특색을 오래오래 이어나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고 앞으로도 기성세대들이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명확히 해야 할 부분도 꼭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 더 단단하고 성숙된 문화를 만들고 숙성시켜가는 과정에 우리부터 먼저 분명한 의식세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직 사유능력이 여물지 않은 아이들도 우리말, 우리문화를 정확하게 배우고 수용하면서 우리만의 우세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전통을 알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작정 주입시켜 혼란을 주는 것보다는 차츰차츰 혼자의 인지능력으로 판단해나가고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어떤 판단기준을 가지든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선택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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