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8(토)
 


불초의 참회


유도리 (애보)

알수 없는 시간속을 헤매던 가냘픈 생명, 무수한 날들은 바람처럼 지나쳐가고 어쩔수 없이 되풀이하던 고달픈 나날, 그 생명은 끝없는 미로를 헤매다 끝내는 무기력하게 사라져버렸다.

특별히 눈물이 많으셨고 겁도 많으셨던 울 엄마, 극심한 가난속에서 땀과 눈물로 오남매 자래워 시집장가 보내고 고생끝에 휘여진 등에 손자손녀들 업어 어른으로 내세운 엄마, 자리에 누워 100일동안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약간의 미음물로만 겨우겨우 연명하시며 이국땅에 있는 그리운 얼굴들 보기를 기다리셨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다리다 지쳐서 간신히 잡고있던 이승의 끝자락을 맥없이 놓고 한줌의 재로 외롭게 떠나셨다.

엄마가 음식을 전페하시고 드러누우신지 꼭 100일이 되던 날 밤, 엄마는 이 막내아들의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엄마가 운명하실 때 올해 들어 첫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빠트생활이라 옆집들에서 놀라깰가봐 목놓아 통곡하지도 못하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하늘이 대신 슬프게 슬프게 울어주는것이였을가…

나와 둘째형님 그리고 둘째형수님 셋이서 엄마가 생전에 손수 손바늘로 알뜰히 지어놓으신 이부자리를 깔아드리고 상시옷을 입혀드렸다. 나는 원래 엄마의 유체를 그냥 집에 모셨다가 사흘이 되는 날 장례치르려 하였지만 한 어른이 나보고 대낮에 시신을 내가면 아빠트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른새벽에 조용히 내가라고 일깨워주는것이였다. 나는 그 어른의 말대로 차를 불러 동트기전에 나 혼자 엄마의 유체를 장의관 랭동실에 모셔갔다. 엄마를 홀로 두고 돌아올 때 나는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우러러 실신한 놈처럼 목이 터지게 통곡하고 고함질렀다. 간밤부터 내리던 비가 새벽에는 진눈까비가 되여 휘청거리는 나의 몸을 흠뻑 적시였다…

집안 구석구석 엄마의 따뜻한 온기가 식어간다. 이 밤도 엄마의 유상은 야속하게 나를 바라보며 굳어있다. "난 정말 불속에 들어가기 싫어."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밤마다 장작불이 되여 내 가슴을 아프게 지진다. 몇년전에 아버지를 고향산에 묻고나서 엄마는 둘째형님네 집에 와서 지내셨다. 연길에서 운명하셨기에 엄마를 고향산에 누워계시는 아버지 곁에 모시지 못하고 한줌의 재로 보내드린 나의 마음은 밤마다 이렇게 불의 세례를 겪어야만 한다.

서쪽하늘을 야금야금 집어삼키던 노을은 붉은 눈물로 번져갔다가 암흑속에 묻혔다. 흑백사진처럼 지난 삶들은 퇴색되여가고 불초자식은 슬픈 가슴앓이를 한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뵐수만 있다면 이 어두운 밤 깊은 골짜기라도 마다않고 찾아가고 쇠스랑 같았던 가슴을 다시한번 오래도록 쓰다듬어드리고싶건만… 허망한 미련덩어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엄마를 고향산에 모시지 못한 참회의 채찍은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그리움은 실타래처럼 자꾸만 엉켜가고 불초자식은 고독과 참회에 흐느낀다. 가난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서럽도록 힘겹게 살아오셨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된 성실한 삶을 일구시며 살아오셨던 불쌍하고 소중했던 엄마의 부재. 엄마께서 그냥 그 자리에 누워 숨만 쉬고있어도 좋은것을, 바라볼 사람도, 말 나눌 사람도 없는 적막한 곳으로 가신 엄마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메울수 없다. 엄마의 사랑과 체취만 남아 나의 눈시울을 적시는데 정호승시인의 "엄마를 위한 자장가"가 떠오른다.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슬픔은 그리움으로, 그리움은 외로움으로, 외로움은 참회로 번져가고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리고… 창밖에서 외로운 삶의 비애에 흐느끼는 추적추적 비소리에 동녘은 희붐히 밝아오는데 불초자식의 참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세월은 또 이렇게 쓰라린 새 날을 가져다준다.

오늘, 래일 그리고 또…

미지의 날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건만 엄마를 고향산에 모시지 못하고 한줌의 재로 보낸 나의 참회는 갈수록 갈수록 커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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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불초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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