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1976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추격(君よ憤怒の河を渉れ)'은 자국에서는 큰 흥행작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사토 준야 감독이 연출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다카쿠라 겐과 나카노 료코가 주연을 맡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수많은 범죄영화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영화의 진정한 성공은 국경을 넘어 2년 뒤 중국에서 시작됐다.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초기 외국 영화 수입이 확대되면서 '추격'이 전국 극장에서 상영되자 예상치 못한 사회적 열풍이 일어났다. 극장마다 긴 관람 행렬이 이어졌고 표를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발길을 돌릴 정도였다. 당시 중국 관객들에게 '추격'은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영화 문법과 현대적 감성을 접하는 창이었다.
다카쿠라 겐이 연기한 검사 두추는 정의를 위해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는 강인한 인물로 사랑받았다. 트렌치코트와 선글라스, 세운 옷깃은 젊은 세대가 따라 하는 패션이 됐고, 그의 과묵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는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남성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은 나카노 료코가 연기한 '마유미'였다. 말을 타고 두추를 구하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유미는 기존 여성상과 다른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청순한 이미지와 강단 있는 성격이 어우러진 캐릭터는 수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고, 한동안 중국에서는 '마유미'라는 이름이 아름답고 당당한 여성을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될 정도였다.
1950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나카노 료코는 영화사 연기 교육을 거쳐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입지를 넓혀가던 그는 '추격'을 통해 일본보다 중국에서 훨씬 큰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야성의 증명'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여전히 '추격'으로 평가된다.
영화의 인기는 스크린을 넘어 문화 현상으로 확산됐다. 두추의 복장과 마유미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고, 영화 속 장면과 대사는 오랫동안 회자됐다. 이는 단순한 흥행을 넘어 중국 대중문화가 해외 영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문화계에서는 '추격'을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외국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나카노 료코 역시 영화가 맺어준 인연을 소중히 이어갔다. 1978년 첫 중국 방문 당시 공항에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 그의 이름보다 "마유미"를 더 크게 외쳤고, 이후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각지를 찾으며 문화교류 행사에 꾸준히 참여했다. 중국 방문 횟수는 50차례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중국 팬들의 변함없는 애정을 배우 인생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라고 회고했다.
세월은 흘러 '추격'의 주역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카쿠라 겐은 2014년 별세했고, 주요 출연 배우들 역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현재 당시 주연 배우 가운데 나카노 료코가 그 시대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46년이 지난 지금도 '추격'은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성공한 해외 영화 가운데 하나로 회자된다. 한 편의 영화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수천만 관객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고, '마유미' 나카노 료코는 스크린의 스타를 넘어 문화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을 보여준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추격'이 남긴 유산은 흥행 기록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형성된 세대의 추억과 민간 문화교류의 역사라는 점에서 지금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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