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다는 가야의 전승, 중국 허국에서 비롯된 또 다른 계보
[인터내셔널포커스] 한국과 중국에는 모두 허씨(許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허', 중국에서는 '쉬(Xǔ)'라고 부른다. 같은 한자를 사용하지만 성씨의 유래를 따라가면 서로 다른 역사와 만난다.
한국 허씨의 뿌리는 가야의 왕비 허황옥(許黃玉)과 연결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옥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가야에 도착해 김수로왕과 혼인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가운데 두 명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버지의 성을 계승하는 관습이 강했던 전통사회에서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해 김씨와 허씨가 같은 왕실에서 갈라졌다는 인식도 이 전승에서 비롯됐다.
다만 허황옥의 출신지와 실제 행적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아유타국을 인도 북부의 아요디아와 연결하는 해석이 알려져 있지만, 이를 확정할 만한 역사적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가야의 전승에서 고려의 명문가로
한국 허씨는 김해·양천·하양·태인 등 여러 본관으로 나뉜다.
김해 허씨는 허염(許琰), 양천 허씨는 허선문(許宣文), 하양 허씨는 허강안(許康安), 태인 허씨는 허사문(許士文)을 각각 시조로 받든다. 이들 문중은 허황옥을 공동의 시조모로 모시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인물로 전해진다. 이후 양천 허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여러 문신과 학자를 배출했다.
조선의 의학자 허준은 「동의보감」을 편찬했고, 허난설헌은 뛰어난 한시를 남겼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 역시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한국의 허씨 인구는 32만6,77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성씨 가운데 29위에 해당한다.
중국 허씨의 뿌리는 고대 허국
중국 허씨의 대표적인 기원은 지금의 허난성 쉬창(許昌)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 제후국 허국(許國)이다.
중국의 성씨 문헌인 「통지」 씨족략에는 주나라 시기 강성(姜姓) 계통의 문숙(文叔)이 허 지역에 봉해졌으며, 그 후손들이 나라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허국이 사라진 뒤 후손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허씨 성도 중국 각지로 퍼졌다는 설명이다.
중국에서는 전설 속 인물 허유(許由)를 허씨의 또 다른 기원으로 보는 전승도 있다. 허유는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은거했다는 인물이다. 다만 그의 실존 여부와 후대 허씨와의 혈연관계는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중국 허씨 가운데 대표적인 역사 인물은 후한의 학자 허신(許慎)이다. 그는 한자의 구조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설문해자」를 편찬해 중국 문자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남겼다.
중국 동북지역의 허씨는 어디에서 왔을까
중국 동북지역에도 허씨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같은 계통으로 묶기는 어렵다.
중국 한족 허씨의 일부는 오랜 인구 이동 과정에서 동북지역에 정착했다. 만주족 등 다른 민족이 한자 성씨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허씨가 형성된 사례도 전해진다.
조선족 사회의 허씨는 또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후손 가운데 허씨가 포함돼 있다.
연변을 비롯한 동북지역의 조선족 허씨는 한국의 허씨와 같은 성씨 문화와 족보 전통을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가문의 출신 지역과 이주 시기, 본관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중국동포 허씨가 모두 김해 허씨 또는 양천 허씨의 특정 계통에 속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를 확인하려면 각 문중의 족보와 이주 기록, 지역 문헌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성씨, 서로 다른 역사
한국과 중국의 허씨는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지만 성씨의 형성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 허씨는 가야 왕실의 허황옥 전승을 중심으로 가문의 정체성을 이어왔다. 반면 중국 허씨는 고대 허국의 역사와 여러 성씨 형성 전승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두 나라 허씨 사이에 역사적 교류나 일부 가문의 이동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허씨가 하나의 조상에게서 갈라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허씨에게 성씨는 조상의 이름을 기억하는 하나의 연결고리다.
가야의 왕비에게서 시작된 전승과 중국 고대 제후국의 역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 허씨라는 두 글자는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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