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학량이 등영초한테 보낸 답복편지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5월 29일, 여정조는 뉴욕 맨하탄 패조이(贝祖贻) 부인의 저택에서 처음으로 옛상급인 장학량을 배알했다. 첫대면이지만 여정조는 예절성적인 인사말과 예물을 증송하는데 그쳤다.
이튿날 오전, 여정조는 맨하탄에 있는 모든 외부인들을 피한채 한 스위스은행 총재의 집무실에서 장학량과 조용히 만났다. 그들의 담화는 약 한시간가량 지속되었다.
여정조는 먼저 등영초가 보낸 친필편지를 장학량에게 넘겨주었다. 편지를 본 장학량은 대뜸 감개무량해하였다. 그는 확대경을 사용하면서 두번이나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다 읽은 장학량은 “주은래 선생은 내가 잘 안다오. 이 사람 참 좋은 사람이었소. 나를 대신하여 등여사한테 문안을 전해주길 바라오”가고 하며 여정조한테 부탁했다.
이어서 여정조는 장학량에게 그에 대한 등소평, 강택민, 양상곤 등 당과 국가의 지도일군들의 문안을 전하면서 동시에 장학량 장군이 이번에 미국행을 했던 김에 대륙으로 돌아가 친인척들을 방문한다면 조국대륙에서는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장학량은 몹시 감동되어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차 어조를 바꾸면서 “나로 놓고 보면 진짜 대륙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이 소원이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오. 나의 움직임은 곧 대륙과 대만에 모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오. 나는 나 개인의 일때문에 정치상에서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소.”
그 뒤 뉴욕의 각계 인사들이 장학량을 위해 각종 축수활동을 벌였지만 중공의 대표인 여정조는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이 활동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6월 4일, 뉴욕에서의 축수활동이 끝나자 장학량은 주동적으로 여정조와 만나자고 제기해왔다. 지점은 유엔주재 중국대표단 단장 이정상의 관저였다.
이날 장학량과 여정조는 장장 3시간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담화범위도 매우 넓었다. 이날 여정조는 장학량한테 중국공산당의 한 나라 두가지 제도 및 조국의 평화통일방침 등에 대해 소개했고 장학량은 중국공산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찬동을 표하면서 자신도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저그마한 힘이라도 바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이전에 나는 이를 위해 일을 하였었수다. 지금 나는 역시 나의 이 신분을 이용하기를 원하고 있소. 내 나이 이젠 90여살이지만 나를 원하는 곳이나 일거리가 있다면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중국인으로서 중국을 위해 힘을 바칠 것이우다.”
이어 장학량은 여정조에게 솔직하게 아직은 대륙방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친필로 등영초한테 쓴 편지를 내놓았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주부인 영초누님 혜감(惠鉴): ×××선생이 미국까지 찾아와 존찰(尊札)을 베풀어준 것에 대해 매우 기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학량이 대만에 기거하면서 어느 하루도 고향에 대한 정감을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향후 기회와 인연이 닿는다면 긍정코 고향의 땅을 밟아보렵니다.
×××선생을 통해 영초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경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면서 무더운 하계(夏季)의 안녕 빕니다.
1991년 6월 2일
그 뒤 장학량은 미국에서의 볼일을 마무리하고는 1991년 6월 27일 부인 조일적과 함께 하와이를 거쳐 대만으로 돌아갔다.
하다면 당시 장학량이 이미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음에도 왜 조국대륙으로 가지 않았을까? 이를 두고 해내외 언론들에서는 의론이 분분했다. 그때 홍콩 “신보(信报)”의 한 기자는 “장학량의 동향, 먼저 대만으로 돌아간 뒤 다시 두번째 방안 강구할 것”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장학량은 행동으로 자신의 중의(重义)를 증명했다. 그는 이 중의를 위해 미국에서 직접 대륙으로 날아가 조상묘를 첨앙하고 친인척을 만나보는 것을 포기하였다. 장군 신변의 인사에 따르면 장군은 이번에 중공의 여정조 선생을 만난 뒤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중공에서는 여정조 선생을 미국에 파견하여 장학량 장군을 배알하고 그를 대륙으로 초청하는 등 높은 품위를 보여주었다. 여정조 선생은 장군한테 대륙의 모든 사람들, 특히는 동북 고향의 사람들은 장군이 하루 빨리 대륙으로 가는 것을 열렬히 환영할 것이고 전했다. 하지만 장군은 심한 심리적 아픔을 참으면서 이를 사절했다. 장군이 미국에 있는 기간, 외계에서는 모두 그가 중국의 통일과 양안의 관계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지켜보았다. 하지만 장군은 조국의 통일이나 양안관계 등 정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기자들의 취재를 접수할 때면 그저 동북군 시절의 이왕지사에 대해 회고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장군한테 국가의 통일에 어떻게 기여하려는가에 대해 물었을 때 장군은 웃으면서‘나 지금 한운야학(闲云野鹤)처럼 떠도는 몸으로 진짜 국가통일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저 국가에 유익한 일을 하고 싶을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군은 국민당에 충고하기를 ‘공산당과의 담판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학량은 제일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후 가고 싶었던 조국대륙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특히 1년 뒤 재차 대만을 떠나 미국 하와이에 가서 영구성 정착을 한 후 그가 만년에 대륙으로 가지 않은 것에 대해 각종 추측이 난무하였는데 해내외 매체들의 분석은 각양각색이었다. (다음기 계속)
ⓒ 인터내셔널포커스 & 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⑤…우리는 왜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가
“조선족이세요?” 한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별다른 뜻 없이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중국동포’라고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같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 여러 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조선족’이... -
시진핑 방미 D-1…워싱턴 담판 앞두고 뉴욕서 먼저 움직인 미중
▲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뉴욕에서 먼저 움직인 양국 무역협상을 상징적으로 구성한 이미지. 미국과 중국은 정상 담판에 앞서 주요 경제·무역 현안을 놓고 실무 협상을 진행했다. 사진=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하루 앞두고 미·중 ... -
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④…대림동, ‘조선족 거리’라는 두 개의 얼굴
[인터내셔널포커스]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을 나서면 서울의 다른 동네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음식점과 식품점이 이어지고 양꼬치와 만두, 훠궈를 파는 가게들이 골목을 채운다. 한국말과 중국말이 함께 들리고 주말이면 장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중국동포들로 거리가 붐빈... -
미국도 중국도 믿을 수 없다…한국이 배워야 할 ‘희토류의 정치학’
[인터내셔널포커스] 미중 정상회담에서 희토류가 다시 등장했다. 정상회담 때마다 관세와 반도체, 대만 문제가 앞에 나오지만 이번에도 희토류는 빠지지 않았다. 미국도 이 문제는 쉽게 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 지난 5월 미중 간 합의에도 희토류를... -
[중국 영화계의 조선족 감독·배우들 ⑥] 웹드라마·사극 넘나든 배우 김호진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조선족 배우들을 만나게 된다.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채 중국인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때로는 현대극에서 사극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배우 김호진(金澔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4년 8월 8... -
중국은 길을 깔고 러시아는 뿌리내렸다…한국, 중앙아시아서 무엇으로 승부하나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은 철도와 도로를 깔았고 러시아는 오랜 세월 정치·경제권을 공유했다. 그 사이로 한국이 들어가고 있다. 무대는 중앙아시아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5개국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산업 고도화와 기술 확보가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