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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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지' 재해석⑪ 조조의 두 아들을 죽이고도 환대 받은 장수(張綉)
    ●김정룡(다(多)가치 포럼 위원장) 삼국시대는 벼라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었다. 도적 출신으로 공을 세운 호걸이 있는가 하면 도술로 30년간이나 한중에 군림한 기인이 있었고, 심지어 조조의 아들과 조카를 죽이고도 환대를 받은 인물이 있었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장연(張燕), 장수(張綉), 장로(張魯) 이며 모두 성이 장씨(張氏)라는 공통점이 있다. 장연은 도적패를 만들어 산과 소택(沼澤) 사이를 전전하며 싸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가 2만 명이 넘었다. 장연은 쇠뿔이라 불리는 장우각(張牛角)과 연대하였고 장우각을 우두머리로 추대하였다. 장우각이 죽자 무리는 전 두목의 유언에 따라 장연을 우두머리로 모셨으며 이 때문에 장연의 성이 본래 저(褚)였는데 장씨로 바꾸게 되었다. 장연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표독하고 민첩했기 때문에 군중(軍中)에서는 그를 날아다니는 제비라는 뜻인 비연(飛燕)이라고 불렀다. 그의 무리는 다른 도적무리를 흡수하는 등 나날이 커져 군세는 1백만에 달했고 흑산(黑山)이라 불렀다. 조정은 이들을 정벌할 방법이 없었고 황하 이북의 각 군은 모두 그들에게 패할 만큼 세력이 대단했다. 장연은 도적질에 질렸던지 아니면 관직에 욕심이 생겼는지 아무튼 수도에 사자를 보내 투항의사를 전달하니 그를 평난중낭장(平難中郞將)으로 임명했다. 이후 원소와 공손찬이 기주 땅 따먹기 다툼에 장연은 곤손찬을 도와서 원소와 싸웠다. 그런데 장연의 군사들이 불행하게도 패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조조가 기주를 평정할 때 장연은 명분 좋게 관군을 지지했으므로 조조는 그를 평북장군(平北將軍)에 임명했고 식읍 5백 호를 내렸다. 이렇게 장연은 도저패의 우두머리로부터 일약 관군의 장수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장로는 대대로 도술을 전파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장릉(張陵)은 도술에 관한 책을 지어 백성을 미혹했다. 그에게 도술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다섯 말의 쌀을 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적(米賊)이라고 불렀다. 장릉이 죽자 아들 장형이 도술을 이어 받았고 장형이 죽자 장로가 계승했다. 장로의 대에 이르러 도술은 정식으로 오두미교로 발전했고 교세가 굉장히 팽창해졌다. 각 지방 조직에 좨주(祭酒, 제사를 관장하는 사람, 오두미교에서는 기독교의 목사 역할에 해당함)를 두어 의사(義舍, 의로운 집)를 지어 거기에 쌀과 고기를 비치해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배가 찰 때까지 먹도록 했다. 만약 필요 이상으로 가질 경우 요술로 징벌했다. 법령을 위반한 사람은 세 번까지는 너그럽게 용서하지만 그 후 다시 범하면 엄하게 징벌했다. 장리(長里, 마을 이장)를 두지 않고 모두 좨주가 다스렸다. 한족과 오랑캐는 이것이 편리하다고 여겨 좋아했다. 장로는 이 방법으로 파군과 한중에서 30년이나 웅거했다. 후한 말 조정은 장로를 징벌할 힘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사자를 보내 진민중랑장(鎭民中郞將)으로 삼고 한녕 태수를 겸임하게 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장로 정벌에 나섰다. 장로는 한중을 바치고 투항하려 했으나 부하들이 말려 도망갔다. 당시 부하들이 진귀한 보물을 쌓아놓은 창고를 불태우려고 하자 장로가 말했다. “나는 본래 조정의 명에 따라 귀순하려 하지만 실현될 수 없을 것이오. 현재 도망치는 것은 조조 군대의 예봉을 피해보려는 것이지 결코 나쁜 뜻이 없소. 진귀한 물품을 쌓아놓은 창고는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오.” 장로는 창고를 불태우지 않고 굳게 닫아놓고 떠났다. 조조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장로를 칭찬했으며 장로는 가족을 데리고 조조에게 귀의했다. 조조는 기쁘게 그를 영접했고 진남장군으로 삼아 빈객의 예우를 했으며 낭중후(閬中侯)로 봉하고 식읍 1만 호를 주었다. 장수는 표기장군 장제(張濟)의 아들이다. 장제가 죽자 아들 장수가 그 군대를 이어 받아 유표와 연합했다. 조조가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한 지 한두 달도 채 안 되는 시점, 정확히 건안 2년(197)에 남쪽으로 원정하여 육수(淯水)에 주둔하고 있을 때 장수 등이 무리를 이끌고 투항했다. 이는 조조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얻은 성과였다. 그런데 조조는 손쉬운 승리에 도취되었던지 심중치 못했다. 장수의 부친 장제의 미망인을 첩으로 맞아들여 장수에게 굴욕감을 안기려했고 기를 꺾어놓으려 했다. 뿐만 아니라 조조는 장수의 부장인 호차아(胡車兒)와 좋은 관계를 맺어 장수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했다. 이것이 오히려 조조에게 화근이 되었다. 장수는 복수의 칼을 갈고 또 갈았다. 조조는 장수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비밀리에 장수를 죽이는 것으로 선손을 쓰기로 했는데 비밀이 새나가 장수 귀에 들어갔다. 장수는 아무런 준비가 없는 조조를 기습하였고 조조의 군사들은 패해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 싸움에서 조조는 장남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장수가 조조의 아들 둘이나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사료(史料)들에 의하면 조조의 장남인 조앙이 죽은 것은 사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조조의 친 아들이 아니고 그의 조카 조안민으로 밝혀지고 있다. 조조에게는 아들 하나가 죽었든 둘이 죽었든 또 조카의 죽음도 아들이 죽은 것만큼 비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더욱이 조앙은 조조가 가장 아끼던 후계자였으니 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후한서>에 의하면 장남 조앙이 죽자 조조의 후처로부터 정실이 된 변부인은 마치 자신의 친아들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이 변부인에 대한 ‘미담’이 여러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후속편들에서 다루기로 하고 계속해서 장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하겠다. 건안 2년(197) 가을 조조는 두 번째로 장수 정벌에 나섰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싸움에서 패배한 장수는 근거지마저 잃고 남쪽에 가서 유표와 손잡는다. 이듬해 3월 조조는 아들과 조카의 죽음에 철저하게 복수하려고 세 번째로 장수 정벌에 나섰다. 사실 이때 책사를 맡은 순유(荀攸)가 말렸다. “현재 장수와 유표는 비록 가후(장수의 모사)의 중재로 연맹을 결성하고 있지만 이 두 사람은 동상이몽하고 있습니다. 장수는 유표에게 식량과 마초를 제공받으려 하는데 유표는 제공할 수가 없으니 그들은 조만간 각기 제 갈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싸우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패할 테지만 급하게 다그치면 유표가 반드시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순유의 예측이 100% 맞는 말이지만 조조는 복수심에 불타 그 말이 귀에 들어가기 만무했다. 결국 유표가 지원에 나서자 조조는 양성에서 고생만 하고 철수하고 만다. 조조가 퇴각하자 장수는 이때라 싶어 기뻐서 곧바로 병사들을 보내어 추격하게 한다. 그런데 가후가 말린다. “추격해서는 안 됩니다. 추격하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조조와 마찬가지로 장수도 승리에 도취되어 모사의 말을 들을 리가 없이 추격한 결과 크게 낭패를 보았다. 가후가 또 말했다. “지금은 추격할 수 있습니다. 빨리 쫓아간다면 틀림없이 승리할 것입니다.” 장수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한다. “방금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아 크게 패했는데 또 추격이라니 뭔 소리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추격하기만 하면 됩니다. 빨리 가십시오.” 장수가 반신반의하면서 패잔병을 수습하여 다시 추격했더니 과연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장수는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아 가후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정예 병사들로 퇴각하는 군대를 추격할 때 선생은 반드시 패한다고 했고 지금 패잔병들로 승리한 군대를 추격할 때는 선생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했소. 매번 선생이 예측한 대로 되니 나는 도통 알 수가 없구려.”가후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비록 용병술에 뛰어나지만 솔직히 조조만 못합니다. 조조가 이미 철수를 결정했다면 반드시 직접 후방을 엄호했을 것입니다. 장군의 병사들이 비록 정예이기는 하지만 장군의 장수들은 조조만 못하고 조조의 병사들도 정예병들이기 때문에 장군이 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조가 장군을 공격할 때에 실책이 없었던 데다 힘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싸우지 않고 철수했으니 분명히 후방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가 기왕에 장군의 추격병들을 물리친 이상 반드시 군대의 무장을 가볍게 하고 속도를 내어 안심하고 길을 갔겠지요. 뒤에 남아 후방을 엄호하는 군대의 지휘관들은 장군의 상대가 안 되었을 테니 이번에는 장군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가후의 예측대로 조조의 후방에 문제가 생겼다. 원소가 조조의 남쪽 원정에 나선 틈을 노려 허현을 습격했는데 결과는 원소의 패배였다. 여기서 물러설 원소가 아니었다. 조만간 원소와 조조 사이 천하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이냐는 생사결단의 큰 전쟁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는 원소의 군대가 막강했다. 거의 열 배 정도의 군사 차이가 있었다. 조조에게는 힘이 부치는 전쟁일 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급시우(急時雨)가 나타났다. 바로 장수의 투항이었다. 원소도 비록 조조에 비해 막강한 실력의 군사를 소유하고 있지만 조조에게 투항하는 무리를 경계하여 먼저 선수를 쳐 자기편으로 만들려 했다. 원소는 사자를 보내 장수를 설득하려 했다. 이때 가후가 나서 말했다. “귀찮으시겠지만 귀하는 원본초(원소의 자)에게 가서 자기 형제(원술)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천하의 뛰어난 선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해주시오.” 곁에서 듣고 있던 장수는 너무 놀라 오금이 저려 났다. “막강한 원소의 미움을 사면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그러시오?” 가후가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조조에게 의탁합시다.” 장수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즉 자기 아들과 조카를 죽인 원수를 받아주겠느냐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하물며 원소는 강대하고 조조는 약소한데 조조에게 붙다니? 말이 되냐는 것이다. 가후가 조리 있게 설명했다. “바로 그 때문에 조조에게 의탁해야 합니다. 첫째 조조는 천자를 받들고 있어 정치적으로 명분상 유리합니다. 둘째 우리 인마(人馬)는 원소에게는 보잘 것 없지만 조조에게는 눈밭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숯불을 가져다주는 격이 될 것입니다. 셋째 천하를 제패하려는 조조는 개인적인 원한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가후의 예측대로 조조는 장수를 환영하는 파티를 성대하게 열고 과거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으며 곧바로 양무장군에 임명하고 제후로 봉했다. 조조의 넓은 도량에 감동을 먹은 장수는 관도대전에서 큰 공을 세운다. 장수의 모사였던 가후도 그 이후로 조조에게 가장 도움이 큰 책사였으며 조비 시대까지 역할하면서 천수를 다할 때까지 현명하게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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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7
  • 中 첫 해상 고속철도 '푸샤 고속철도' 시공 현장
    [동포투데이] 최근 푸샤[福廈: 푸저우(福州)-장저우(漳州), 샤먼(廈門) 경유] 고속철도의 메이저우만(湄洲灣) 대교 건설 작업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공팀은 가을 들어 해상의 풍랑이 커지고, 일교차가 심한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사 진척도를 확보했다. 푸샤 고속철도는 중국 최초의 해상 고속철도이다.(사진=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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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07
  • 국가의 결심, 인민의 호응과 단결 - 코로나 19 전승의 촉매제⑩
    ▲사진은 중국에서 한창 코로나 19가 몹시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 26일 닝바오 저우산(宁波舟山) 항 촨산(穿山) 부두에 정박해 있는 한척의 컨터이너 화물선 모습이다.ⓒ신화사 (전번 계속) 4월 29일, 중국은 2020년 전국 양회(전국인대와 중국 정협 회의) 소집시간을 세계에 선포하였다. ‘감독판(加长版)’ - ‘5.1’ 휴가기간 유동하는 국가 중국은 다시 활력을 띄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누적 국내 관광객 1.15억 인차를 접대하여 국내 관광수입 475.6억 위안을 실현했다. 5월 8일의 중남 해, 중공중앙은 중남 해에서 당 외 인사 좌담회를 개최, 코로나 19 예방통제 사업을 두고 민주당 중앙, 전국공상회연합회와 무당파 인사 대표의 의견과 건의를 청취하였다. “코로나 19 예방통제 전쟁의 실천은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 사회주의 제도 그리고 중국의 국가 치국시스템(治理体系)의 강대한 생명력과 현저한 우월성만이 그 어떤 위험이나 장애도 전승하고 인류의 문명진보를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재차 증명하였습니다.” 이는 좌담회에서 한 시진핑 총 서기의 발언이었다. 중국 ‘양회’의 소집 전야, 시진핑 총 서기는 재차 지방고찰에 나섰다. 산시(山西)에서 시진핑은 코로나 19가 가져온 불리한 영향을 극복하면서 높은 질 발전에로 전환하는 발걸음을 크게 뗀 것을 고무격려, 인민이 첫째라는 것을 견지하여 인민에게 부단히 복을 마련해주며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사상을 각항 정책포치와 실제사업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양회’ 기간 시진핑 총 서기는 제 13기 전국인대 3차 회의에 참가한 네이멍구(内蒙古), 후베이(湖北) 대표단의 심의에 참가했고 해방군과 무장경찰부대 대표단의 전체 회의에 출석했으며 전국 정 협 제 13기 3차 회의에 참가한 경제계 위원들을 찾아줌과 아울러 직접 연합조 회의에 참가하여 대표위원들과 함께 친절히 교류하면서 국사를 의논하였다. 5월 22일, 시진핑 총 서기는 네이멍구 대표단 심의에 참가했을 때 코로나 19의 경외유입을 방지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고 국내에서 재 확산되는 것을 방지할 것을 요구, 코로나 19 예방통제라는 활현을 놓지 않고 정상화 예방통제기제를 개선하며 코로나 19가 재 확산하지 못하도록 확보해야 한다고 부탁하였다. 5월 23일, 시진핑 총 서기는 전국 정 협 회의에 참가한 경제 분야의 위원들을 만났을 때 전면적이고 변증법적이며 또한 장원한 안광으로 당전의 경제형세를 분석하는 것을 견지하면서 위기 중 새로운 기회를 찾는 국면을 열어야 한다고 언급, 이튿날 후베이 대표단 심의회의에 참가해서는 바늘귀만한 구멍으로도 큰 바람이 샐 수 있다고 하면서 코로나 19 예방통제의 활시위를 놓지 말고 시종일관 심중하면서 분발하여 외지로부터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사업을 잘 틀어쥐는 한편 내부적으로 코로나 19가 재차 나타나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쉽지 않게 쟁취한 성과가 물거품으로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 외에도 시진핑 총 서기는 제 13기 전국인대 3차 회의에 출석한 해방군과 무장경찰부대 대표단의 전체 회의에서는 코로나 19를 예방통제 사업을 잘 하는 전제하에서 군대의 각 항 사업을 착실하게 잘하는 것으로 국방과 군대 건설의 2020년 목표와 임무를 견결히 실현해야 한다고 재삼 강조하였다. 인민건강의 수호는 자나 깨나 총 서기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념이었다. 6월 2일, 시진핑 총 서기는 전문가 학자 좌담회를 주최함과 아울러 중요한 연설을 하였다. 회의에서 그는 오직 강대한 공공위생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보 메커니즘(预警响应机制)을 건전히 하는 동시에 전면적인 예방통제와 구급치료 능력을 향상시키고 방호 망을 밀집하게 만들고 격리벽을 견고하게 구축해야 만이 인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유력한 보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양회’가 결속된 뒤 시진핑 총 서기는 선후로 닝샤(宁夏), 지린(吉林)과 안후이(安徽)를 고찰하였다. 닝샤에서 시진핑 총 서기는 코로나 19가 갖다 준 불리한 영향을 극복하면서 우선 취업과 민생을 안정시키면서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는 결승전을 벌이고 빈곤탈퇴 공략의 결전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지린에서 시진핑 총 서기는 새로운 발전의 이념으로 둥베이(东北) 진흥전략을 심도 있게 실시하는 것을 견지하여 새로운 시대 지린의 전면 진흥의 추동력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안후이에서 시진핑 총 서기는 정상적인 코로나 19 예방통제 사업과 경제사회 발전 사업을 통일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홍수방지와 재해후의 회복재건 그리고 창장 삼각주(长江三角洲)의 일체화 발전, ‘14차 5개년 계획’ 시기 경제사회발전 진행에 대해 조사연구를 진행, 처음으로 창장 삼각주 일체화발전 전문 좌담회를 소집해서는 창장 삼각주의 3개 성, 1 개 시가 먼저 신 발전 결구를 형성하여 중국 과학기술과 산업창신의 선봉이 되는 것으로 개혁개방의 새로운 고지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중국경제의 전환기가 도래했다. 7월 16일, 중국경제의 반년보고가 출범, 올해 제 2분기의 중국경제는 작년 동기에 비해 3.2% 증장했고 제 1분기에 비해서는 10% 증장했다. 코로나 19 예방통제와 경제사회 발전사업이 취득한 중요성과를 총괄하고 코로나 19의 중대 고험을 경과한 중국경제는 온당하게 회복함과 아울러 경제운행이 점차 호전을 이룬 이것은 세계경제에 자신심과 동력을 주입하기에 충족하였다. 국내 외 복잡하고도 준엄한 환경에 직면하여 시진핑 총 서기는 목전에 입각하여 중장기를 내다보면서 중국경제의 항선이 거칠고 사나운 파도를 뚫고 항행하도록 키를 잡고 지휘하였다. 7월 21일, 인민대회당 동 대청, 당일 시진핑 총 서기는 기업가 좌담회를 소집, 좌담회에서 그는 코로나 19가 중국의 경제와 세계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면서 중국은 많은 시장주체가 전대미문의 압력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천방백계로 시장주체를 보호하고 시장주체의 활력을 격발시켜 기업가 정신을 고양, 기업의 작용으로 더욱 큰 발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하며 경제발전을 위한 기본역량을 축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4차 5개년 계획’ 시기는 중국이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여 첫 번째 100년 분투목표를 실현한 후 승승장구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을 전면 개척하는 새로운 장정이며 두 번째 100년 분투목표를 향해 진군하는 첫 번째 5년이었다. 이로써 중국은 곧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8월 24일 중남해, 이 날 시진핑 총 서기는 경제사회 영역 전문가 좌담회를 소집 주최하였다. 회의에서 그는 ‘14차 5개년 계획’의 역사적 방향에 대하여 중요한 판단을 하였다. “변증법적 사유로 새로운 발전단계의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도전을 봐야 한다. 국민경제의 순환이 거침없이 통하게 하는 것을 위주로 새로운 발전 구조를 구축하고 과학기술 창신으로 새로운 발전의 에너지를 부여하며 개혁을 심화하여 새로운 발전의 활력을 격발시켜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으로 국제합작과 경쟁우세를 확보해야 하며 함께 건설하고 함께 다스리며 함께 공유하는 사회발전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야 한다……” 8월 31일까지 시진핑 총 서기는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 중앙 정치국 회의 및 중앙 전면 개혁심화 위원회 회의, 중앙 인터넷안전 및 정보화 위원회 회의, 중앙외사사업위원회 회의, 전문가 학자 좌담회, 기업가 좌담회, 당 외 인사 좌담회, 창장 삼각 주 일체화 발전을 착실히 추진할 데 관한 좌담회(扎实推进长三角一体化发展座谈会), 경제사회 영역 좌담회 및 중앙 전면 의법치국(依法治国) 위원회 회의 등을 연속 주최했고 10차에 거쳐 지방 고찰과 조사연구를 했으며 60여 차에 거쳐 외국의 지도일꾼과 국제기구 책임자와 통화를 했다…… 9월 1일에 소집된 중앙전면 심화개혁 위 제 15차 회의에서 시진핑 총 서기는 개혁이라는 이 관건적인 단추를 계속 잘 활용하고 용왕매진하는 정신을 견지하며 풍랑 속에서도 전진하는 전략 적 추진력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제도를 견지, 완벽 화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 능력을 현대화해야 하며 더욱 심층으로 개혁을 추동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방하여 새로운 발전 판도의 구축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3차 5개 년 계획’과 ‘14차 5개 년 계획’의 교차점에서 시진핑 총 서기는 미래의 5년, 지어는 더욱 긴 시간의 중국발전을 위해 새로운 서막을 열기 시작했던 것이다. (四) 지난 4월 4일은 경자 년 청명절이었다. 이 날 중국의 960만 제곱킬로미터의 땅에는 반기가 내려지고 산천은 비통에 잠겼다. 오전 10시, 방공용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자동차, 열차와 선박이 경적을 울리면서 사람들은 3분간 묵도하였다. 이 날 중국 전체는 국가의 명의로 코로나 19로 희생된 열사와 사망한 동포들을 비통한 심정으로 애도하였다. 이 장면을 보고 주중 이란 대사관에서는 웨이터에 이렇게 썼다. 이 국가의 추모의식은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이란 이 나라가 개인의 존엄과 생명에 대해 어떻게 존중하고 아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으며 또한 14억 중국인민들의 단체 정감 배후에 숨어있는 단결심과 그 역량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 같은 날, 수천 킬로미터 밖의 제네바에 있는 세계위생조직의 통계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 19 확진사례가 110만 건을 초과했고 코로나 19는 세계 207개 국가와 지구를 석권하고 있었다. 이번에 돌발적으로 습격해 온 코로나 19는 일종 아주 처참한 방식으로 재차 세상에 인류는 하나의 동고동락하는 운명의 공동체라는 것을 증명하여 주었다. “간고하고도 지루한 노력으로 거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중국은 코로나 19의 국세를 유력하게 돌려 세웠으며 인민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을 수호하였다. 중국 측은 시종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책임감이 있는 태도로 세계위생조직 및 해당 국가들에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등 정보를 제 1의 시간대에 공개했으며 조금의 비밀도 없이 각 측이 공유하도록 예방통제 및 구급경험을 제공, 될수록 이를 수요 하는 모든 국가들에 대량의 지지와 방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5월 18일 밤, 영상으로 진행된 제 73회 세계위생대회에서 ‘단결 합작으로 코로나를 전승하고 공동히 인류위생건강의 공동체를 구축하자’란 제목으로 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연설이었다. 코로나 19 예방통제사업을 전력으로 잘하고 세계위생조직의 지도 작용을 발휘시키며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고 전 지구의 공공위생 관리사업을 강화하여 경제사회 발전을 회복하고 국제합작을 강화한다 ㅡ 시진핑 주석은 이상의 6가지 건의를 제출하고 전 지구적 코로나 19 대응 5대 조치를 선포했으며 손잡고 인류위생건강 공동체를 구축하자는 중국의 창의를 밝혔다. 이번 전 인류와 바이러스의 전쟁 중 중국은 시종 인류운명의 공동체 구축이란 이념을 틀어쥐고 본국 인민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에 대해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공공위생 사업 앞에서도 해야 할 직책을 다 하였다. 3월 11일, 세계위생조직은 코로나 19는 이미 ‘전 지구적인 유행병’으로 세계의 공공위생안전에 아주 큰 도전을 갖다 주었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중국 측은 해당 국가들과 코로나 19 예방통제 경험을 공유하기를 원하며 약물과 백신을 연합하여 연구개발하며 아울러 현재 코로나 19가 확산하는 일부 국가에 할 수 있는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고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정중히 승낙하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11-07
  • 시진핑 中 국가주석, 모니니아트 태후에게 ‘우의훈장’ 수여
    ▲11월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노로돔 모니니아트 시하누크 캄보디아 태후를 위해 중화인민공화국 ‘우의훈장’ 수여식을 개최했다.ⓒ신화사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6일,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习近平)이 인민대회당에서 의식을 갖고 노로돔 모니니아트 시하누크 캄보디아 태후에게 ‘우의훈장’을 수여했다고 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이 날 수여식이 있게 되는 인민대회당 금색대청 내에는 거폭의 중국과 캄보디아 국기가 홍색배경 앞에 나란히 걸려 있었고 홍색배경 판면에는 ‘우의훈장’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의식이 시작되자 중국인민해방군 의장대 예의 병(礼兵)이 바른 걸음으로 회장에 진입, 수훈 대(授勋台)에 올라 양켠에 나뉘어 섰다. 이어 웅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금색대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시진핑 주석과 모니니아트 태후가 대청에 들어섰고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웬(彭丽媛) 여사와 캄보디아 시하모니 국왕이 뒤를 따랐다. 시진핑 주석과 모니나스 태후가 수훈 대에 오르자 군악 단이 중국국가를 연주했다. 의식에서는 먼저 시진핑 주석이 연설했다. 그는 연설에서 모니니아트 태후는 중국과 캄보디아 친선의 중요한 견증 자이자 추동자라고 평가하고 나서 1958년 모니니아트 태후가 시하누크 친왕을 배동 하여 중국을 방문한 이래 양국 우호사업에 적극 투신했으며 중국인민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언급, 중국 측은 중국의 노 일대 지도자들과 시하누크 친왕 및 모니니아트 태후가 이룩한 양국의 전통적인 친선을 계승 발양하여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들어 양국관계가 새로운 활력이 넘치게 할 것이고 아울러 양국인민들에게 더욱 많은 복지가 창조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계속하여 시진핑 주석은 이 값진 ‘우의훈장’은 모니나스 왕후에 대한 중국인민의 숭경하는 감정과 캄보디아 인민에 대한 심후한 우정을 대표하고 있다고 하면서 두 나라의 번영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축원함과 아울러 양국인민의 우의가 영원할 것을 축원한다고 했다. 의식에서는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이며 중앙외사사업 위 판공실 주임이며 국가공훈영예표창사업위원회 부주임인 양제츠(杨洁篪)가 ‘국가주석 수훈 령’을 선 독 하였다. 이어 예의 병이 ‘우의훈장’을 갖고 입장했고 시진핑 주석이 훈장을 받아 모니니아트 태후에게 정중히 달아주었으며 그 시각 군악 단이 캄보디아 왕국국가를 연주했다. 뒤이어 모니니아트스 태후의 답사가 있었다. 모니니아트 태후는 오늘 시진핑 주석이 친히 나에게 중화인민공화국 ‘우의훈장’을 수여, 여기에는 위대한 중국과 중국인민이 나 본인과 캄보디아 인민에 대한 우호적 감정과 형제적 우정이 깃들어 있다면서 이에 대해 나 자신은 더 없이 기쁘게 생각하며 가장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고 나서 장시기 이래 캄보디아의 국가주권과 독립, 영토완정, 국가평화와 민족 단결에 대한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의 지지에 가장 성스러운 사의를 표한다고 했으며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이 시진핑 주석의 영도 하에서 부단히 새롭고 더욱 큰 성과를 이룩하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이 날의 수훈 식에는 중국의 당과 국가와 중앙 군위 관계부서의 해당 일꾼들이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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