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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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3)
    ■ 김철균 “고운 사람 미운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순자는 매우 이쁘게 생긴데다 거기에 마음이 착하고 활달했으며 노래도 잘 불렀다. 그 때도 동네 사람들은 농촌의 힘든 모내기나 가을걷이 그리고 낟알털기같은 일을 할 때마다 여러 집 일군들을 합쳐서 한집 한집씩 돌아가며 일을 해주군 했다. 그렇게 모두들 함께 뭉쳐서 일을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닥 힘들지 않았고 그만큼 빨리 축 났으며 또한 여럿이 어울려서 일을 하면서 농담도 하고 노래도 부르니 그만큼 일터의 분위기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순자를 불러서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것은 순자가 그만큼 노래를 잘 불렀거니와 이쁘게 생겼고 또한 마음씨가 착해 동네사람들과 잘 어울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순자는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동네사람들앞에 자주 나서군 했다. 당시 순자는 아는 노래들이 많기도 했다. 민요로는 “도라지”, “노들강변”, “아리랑”, “조선팔경”으로부터 현대계몽기가요인 “고향의 봄”, “반달”, “고향하늘”과 “오빠생각” 등으로 아는 노래가 부지기수었다. 그 중 그래도 아주 잘 부르고 즐겨부르던 노래가 바로 “오빠생각”이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면서 / 비단구도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 나무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이렇게 순자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일군들속에서는 박수소리와 더불어 “재청”소리가 함성처럼 터져나왔다. 그러면 순자는 주저없이 그 “재청”에 응해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어떤 날에는 10컬레 이상이나 불러 목이 쉴 때도 있었다. “명기어른, 딸 하나를 정말 잘 키웠수다.” “아이구, 윤씨! 저 애가 크면 총각들 애간장이나 태우게 만들겠수그려.” “참, 나두 저런 딸 한명 있었으면 좋겠구만. 저 윤씨, 저 딸애를 우리 집에 주지 않을려우?” 마지막으로 딸비위를 하는 여인은 아들만 5명이나 있는 아낙네었다. 이렇게 마을사람들이 찧고 박고 하는 동안 순자의 어머니 윤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수걱수걱 일만 했다. 기실 순자의 어머니 윤씨는 딸애가 노래부르기에 재미를 붙이는 것에 대해 조금도 달갑지가 않았다. 아니, 한사코 뜯어말리는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보, 딸년한테 소리(노래)나 하게 하고 앞으로 풍각쟁이로 만들겠수? 아니면 가야금을 뜯는 기생년으로 만들겠수?” 윤씨의 말에 김명기어른도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동감이었다. “그러게 말이우다. 나도 걔가 풍각쟁이로 되는 걸 원치 않는다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걸 어떻게 하겠수? 다 팔자소관이 아니겠수? 옛날에 아버지가 남한테 퍼만 주면서 가산을 다 말아먹더니 나도 그렇고 저 애도 아마 그런가 보구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앤 고생할 팔자인 것 같수다. 그리고 사람의 팔자란 하늘이 정했다 하거늘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있겠수?” “글쎄 말이웨다.” 어머니 윤씨는 점도 치고 사주팔자도 보면서 무던히도 딸의 팔자때문에 속을 말없이 썩이군 했다. 이상한 것은 어떤 점쟁이들은 “애가 고생할 팔자”라고 했으나 사주팔자를 보는 어떤 미신쟁이들은 “애가 고생은 하겠으나 남편과 자식복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속에 말을 남기군 하였다. 그러건 말건 순자는 순자대로 여전히 노래에 큰 취미를 가지고 용정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마을의 언니와 오빠들한테서 자주 졸라 노래를 배우군 했다. 그리고 워낙 총명해서인지 몇번 따라하지 않고도 가사를 암송내고 곡도 제대로 넘길 수가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강점은 순자가 학교에 붙을 때도 큰 작용을 했다. 육도소학교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던 날 순자는 웬간한 산수문제를 풀고 간단한 문장을 줄줄 읽은 외에도 교장선생님이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니 연속 세컬레나 불러 교장선생님과 기타 선생님들의 인상속에 남게 했다. 3 순자가 공부를 할 수 있은 건 결코 집이 유족해서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순자의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조선에서 살 때인 부친세대시기부터 가세가 기울리기 시작했고 간도 대문동에 정착할 때는 완전히 평민과 다름없는 계층으로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여자애들한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건 용정이나 국가가(연길)같은 도회지에서 사는 가정들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가난한 시골에서는 거의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독립활동가의 후손인 김명기 어른은 부친으로부터 받은 영향때문에서었던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죽은 큰 딸 숙자한테도 서당공부를 하게 했고 어린 딸 순자도 글공부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것도 대문동에 학교가 없기에 학교가 있는 육도촌(지금의 신화촌)에 방을 얻어주면서까지 말이다. 그만큼 전주 김씨 양반후손인 김명기 어른은 어리무던하면서도 뼈대가 있는 남정이었다. 소학교에 붙어서 처음에 순자를 포함한 조선인 자식들은 그래도 조선글을 배울 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살기 좋은 우리 나라// 금은보화 넘쳐나는/ 3천리 금수강산… 그리고 조선 경성으로부터 왔다는 한 총각선생님으로부터 몰래 조선의 “태극가”를 배우기도 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3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 당시 간도에서 사는 조선인들은 몸은 비록 간도에 담고 있었지만 하루 빨리 망국노의 삶을 끝내고 독립된 조선에 돌아가 살아야 한다는 협애한 민족주의 의식이 농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에는 간도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되며 조밥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서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도 있었지만 조선이 일본에 의해 병탄된 후 왜놈들의 등살에 못이겨 피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에 반일정서가 아주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간도 역시 1931년의 “9.18사변”이후 일제의 천하가 되었다. 일본이 싫어 그들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왔지만 간도땅에 와서까지도 왜놈들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작고 힘없는 약소국가의 백성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제한테 그저 당하고만은 있지 않았다. 밤만 되면 동네사람들은 가끔씩 그제날 조선독립을 위해 간도지방의 산야를 주름잡던 홍범도, 김좌진 등 독립군장군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반일투쟁과 조선독립을 연결시키군 하였다. (생략) …… 한편 지난 세기 40연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침략행위는 극에 달하였다. 일제의 침략정책이 가심화 됨에 따라 재만조선인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하게 이그러져갔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약탈에 이어 이제는 인권말살도 노골화되어갔다. 순자가 소학교 4학년이 되자 학교에는 일본인 교장이 부임됐다. 이와 더불어 학교의 분위기는 더욱 험하게 변했다. 교직원은 물론 학생들까지 항일에 대한 말은 일절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지어 조선글을 쓰고 조선말을 입에 올리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를 위반하면 귀쌈을 맞거나 벌을 서군 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몰래 진주항을 기습하여 미국의 태평양함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하였다. 이와 더불어 학교내에서는 일본의 대륙진출과 “대동아성전”을 가송하는 이른바 웅변모임이 도처에서 있었고 대 일본제국의 군가들이 보급되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천황페하의 황국신민으로 된 젊은이들이여, 지금 천황페하의 무적의 황군은 넓고 넓은 지나(중국)대륙의 절반 이상과 동남아의 많은 지역은 물론 저기 저 남태평양의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사이판 등 나라와 많은 섬들을 점령하였고 지금 바야흐로 대양주의 오스트랄리아에로의 진격 전야에 있다. 천황페하의 황군은 승전에 승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아메리카의 양키군대는 무적황군에 쫓겨 풍지박산이 되고 있다. 천황페하의 황국신민으로 된 젊은이들이여, 태평양성전은 서방열강들의 속박과 억압에서 아시아 민족을 해방시켜주는 정의의 전쟁이다. 태평양 성전의 최후 승리는 눈앞에 박두해있다. 아시아인종이 열강들의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두가 일본의 성전에 궐기하라. 천황페하 반자이! 대 일본제국황군 반자이!” 守るも攻むるも黒鉄の まもるもせめるもくろがねの 浮かべる城ぞ頼みなる うかべるしろぞたのみなる 마모루모 세무루모 꾸로가네노 우카베루 시로조따노 미나루 (싸움도 지킴도 떠오르는 강철성의 힘이요) 浮かべるその城日の本の うかべるそのしろひのもとの 皇国の四方を守るべし みくにのよもをまもるべし 독우까베루 소노 시로 히노모토노 미쿠니노 요모오 마모루베시 (떠오르는 그 성의 힘으로 태양의 근본 황국의 사방 지킬것이리) 真鉄のその艦日の本に まがねのそのふねひのもとに 仇なす国を攻めよかし あだなすくにをせめよかし 마가네노 소노 후네 히노모토니 아다나스 꾸니오 세메요까시 (강철의 그 함선은 우리 황국 위협하는 적 격멸할것이리) 石炭の煙は大洋の いわきのけむりはわだつみの 竜かとばかり靡くなり たつかとばかりなびくなり 이와기노 께무리와 와다츠미노 따츠카또 바카니 나비쿠나리 (석탄의 연기는 떠오르는 룡처럼 나붓길것이고) 弾撃つ響きは雷の たまうつひびきはいかずちの 声かとばかり響むなり こえかとばかりどよむなり 따마우쯔 히비키와 이카즈찌노 꼬에가또바까리 도요무나리 (발포음은 천둥소리 되어 대양에 울려퍼지리) 万里の波濤を乗り越えて ばんりのはとうをのりこえて 皇国の光輝かせ みくにひかりかがやかせ 망리노 하토오 오 노리코에떼 미쿠니노 히카리 카가야카세 (만리의 파도를 타고넘어 우리 황국의 빛을 밝혀나가세) …… 당시 조선에는 물론 간도의 곳곳에서도 이와 같이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 이른바 “대동아성전”을 위해 “열변”을 토하는 자들과 “일본군 군가(일명: 군함행진곡)”를 부르며 광란적으로 설쳐대는 자들이 많았다. 모두가 단말마적인 발악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조선에서는 “내선일체(内鲜一体)”란 슬로건(口号)으로 수많은 남성청년들과 처녀들이 학도병, 정신대로 되여 전선에 끌려가기도 했다. 놈들의 총알받이와 수욕해소 도구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 한편 조선에 이어 간도에서도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 조선인의 이름을 몽땅 일본식이름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황국신민”이 되는 추태까지 벌어졌다. 그 창씨개명에 대한 선전 또한 한시기 3.1운동시 조선독립선언에 서명했던 춘원 이광수 등 이른바 유지인사들까지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순자도 창씨개명 때문에 당시의 이름인 기숙(순자의 원래 이름)으로 불리우지 못하고 기슈구로 고쳐졌다. 조선인으로서 당당한 조선이름이 있어도 그 이름을 쓸 수 없는 황당한 시대, 그것이 바로 당시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의 운명이었다. 또한 학교에서는 공부하는 시간보다 군사훈련을 내용으로 하는“체육시간”이 더 많아졌다. 워낙 달리기, 그네뛰기와 널뛰기 등 체육운동에는 취미와 소질이 있었고 교내의 대열검열 시마다 늘 학생대표로 선발되어 검열대에 올라가 교장선생님한테 경례를 올린 후 검열대호를 지휘하군 하던 순자였지만 어쩐지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대열짓기, 날창찌르기, 포복전진과 방공호 들어가기 등 훈련만 강요하는 “체육시간”이 점점 싫증이 났다. 취미성이 없는데다 너무나도 엄격하고 포악성이 내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학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순자의 몸은 먼지투성이 아니면 진흙투성으로 되기가 일쑤였고 그 지친 모습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순자의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육도촌에 있는 세방에 왔다가 순자가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참, 세상이 망할려니 별 해괴한 일을 다 보는군, 학교라는 것이 웬 당치도 않는 군사훈련이란 말이냐? 그리고 계집애들이 군사훈련을 해서는 쌈터로 나간단 말이냐?! 안되겠다. 너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질 말거라.” 아버지 김명기 어른은 이렇게 왜놈의 말을 하고 왜놈의 글을 배우는데다 이번에는 왜놈의 군사훈련까지 강요하는 학교가 점점 못마땅한지라 딸을 순자를 퇴학시킬 타산까지 하고 있던터라 드디어 퇴학이란 말을 입밖에 내뱉었다. 순자 역시 군사훈련이 힘들고 싫증나는 건 마찬가지었다. 훈련이 서툴어도 매맞았고 일본군가를 잘 부르지 못해도 욕을 얻어먹기가 일쑤였으며 일본인교관의 험상궂은 낯판대기는 보기만 해도 무서워났다. 하지만 순자는 퇴학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이전에 비해 공부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든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시간만은 재미가 있었다. 일본어로 공부하는 것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순자는 공부에 푹 빠져 있었다. 성적도 매우 우수했다. 언젠가 한번은 순자가 전 학급에서 종합 1등을 하였었다. 헌데 당시 일본인 교원은 조선인 학생이, 그것도 여학생한테 1등을 주기 몹시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2등을 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머리를 썩썩 긁으며 궁리해낸 것이 2등을 한 일본인 학생 교쇼진과 순자한테 공동 1등이란 점수를 주는 것이었다. 이렇듯 순자가 공부에서 전 학교적으로 독특하게 우수한지라 결국 아버지도 순자를 퇴학시키려던 마음을 접게 되었다. 소학교를 다니는 6년간 순자는 공부를 잘하기도 했거니와 지각과 조퇴란 단 한번도 없었으며 6년간 만개근생으로 표창받기도 했다. 이는 전 교내적으로 순자가 유일한 학생이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10
  • 해외견문 시리즈 (9)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 김철균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 – 섹스서비업으로, 마약밀매로 세계에서 유명해진 나라, 나라의 경제진흥을 위해서 한 세대의 소녀들을 희생시킨다는 명목 아래 창녀들이 출국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매 가정 4명의 여자 중 1명은 창녀라는 오입쟁이들의 천국 - 타일랜드. 1991년 6월 29일, 우리네 선박 “코리안스타”호가 태국의 수도 방콕항에 입항하자 아니나 다를가 그날 저녁으로 에이젠트라고 하는, 전문 선박입항시의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대리점 일군이 거의 60명이나 되는 아가씨들을 이끌고 배에 오르는 것이 었다. 선내는 삽시에 경사가 난 것 같았다. 참, 포클랜드로부터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와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마린, 비고 이렇게 입항할 때마다 여자들을 찾군 하던 한국선원들이었건만 아직도 직성이 안풀렸단 말인가! 하긴 정력제라고만 하면 오징어의 입과 생식기마저 돌아가며 뜯어내군 하던 “배놈”들이었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우리 선박에는 박치국이라는 한국선원 한명이 있었는데 총각인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여자를 밝히는데 이골이 든 녀석이었다. 그의 얼굴은 전형적인 여드름투성이었다. 그래서 그 여드름을 두고 선장과 그한테는 자주 이런 대화가 오가군 했다. “박군, 너 얼굴의 여드름은 왜 그리도 많이 돋아났지?” “선장님도 참, 그걸 번연히 알면서도 왜 묻습니까? 그건 아래로 빠져야 할 것이 제때에 빠지지 못하니까 우로 뻗은거지요.” “에익 이 사람아, 검은 말, 흰 말 가리지 않고 타면서도 채 빠지지 않았다니 너의 몸뚱아리에 도대체 그것이 몇동이나 고여 있는거냐?” “허허허, 그래 저의 몸에 피만 몇동이 고여 있는가 하세요? 그것도 몇동이씩 고여있어 매일 한글라스씩 뽑아도 석달 열흘은 뽑아야 할 겁니다.” … … 아가씨들이 선박에 올라 미구하여 1항사인 김형훈씨가 나타났다. 그가 호르래기를 후르륵 하고 불자 아가씨들은 미리 훈련이라도 걸친 것처럼 갑판위에 두 줄로 행열을 짓는 것이었다. 이어 1항사가 영어로 뭐라고 꼬부랑소리를 하자 아가씨들은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 하면서 인원수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1항사는 흡족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가씨들의 주위를 돌며 하나 하나 체크하더니 그 중에서 제일 젊고 이쁘게 생긴 아가씨를 골라잡은 뒤 나를 불렀다. “주방장 김군, 이 아가씨를 선장방까지 모셔가도록 하이소.” 그 아가씨는 20살쯤 되어보이는데 진짜 이쁘게 생겼다. 얼굴도 이뻤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다리도 미끈했으며 가는 허리에 반해 히프와 가슴은 어찌도 건뜻 쳐들고 팽팽했는지 진짜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허나 내가 뭔데 감히 선장의 파트너를 다치겠는가! 선장은 진작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침대위에 펴놓은 이불과 방안의 향수냄새 그리고 차탁위에 놓여있는 위스키병 등이 그걸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짐짓 시치미를 떼는 엉뚱한 선장님. “뭐 아가씨?! 참 너나 데리고 놀지 그래?!” “저야 뭐 나중에 좀 보지요.” “그래그래 고맙다. 그럼 이걸 갖고가서 술 한잔 하던지 아가씨 한명 골라잡던지 하이소.” 선장이 넘겨준 봉투에는 미화 50불이 들어 있었다. 한편 내가 3층에 있는 선장방에 갔다오는 사이에 벌써 얼굴이 반반한 아가씨들은 한명도 없고 남은 년들은 말짱 나먹은 들말같은 아줌마들과 겨릅대처럼 깡깡 마른 아가씨들뿐이었다. 창녀들은 대뜸 나를 둘러쌌다. “오빠, 내가 이쁘지요? 어때요, 날 가지겠어요?” “아저씨, 참 멋져. 난 아저씨가 좋아.” 가뜩이나 기분이 잡치던 판에 그녀들이 한국말로까지 지껄여대자 나는 더욱 그년들이 곱지를 아니했다. 그래서 침실로 들어가 잠간이라도 누었다가 저녁밥 지으려는데 2기사인 서춘철씨가 찾아왔다. 아가씨가 배고프다기에 먹을 걸 좀 챙겨달라는 것이었다.그러면서 왜 혼자나며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다. “아니, 주방장 김상, 아직도 한명 골라잡기 못했능기여? 김상은 바보요 바보, 김상이 정조를 지킨다 해서 부인이 믿기나 할줄 아능겨?! 뱃놈은 뱃놈 배짱대로 오입도 해야 하능기라.” “마누라가 겁나서가 아니라 에이즈가 무서워서 그래요.” “아이고 이 사람아 , 사내로 태어나 에이즈에도 걸려보지 못하면 그게 무슨 사내인고?! 자 우리 함께 에이즈에 걸려보자잉께. 알겠습니꺼?” 그도 그럴 것이 서춘철씨는 일도 잘하고 술도 잘 먹고 의협심도 강하고 뭐나 다 좋았지만 그 역시 여자를 좋아하는 범주만은 벗어나지 못했다. 하긴 그의 말을 빈다면 술담배와 여자도 모르는 사내는 세상에서 제일 옹졸하고 깍쟁이고 지독한 놈이라고 했는데 그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는듯 싶었다. 그러나 서춘철씨는 마누라만은 지극히 사랑했는바 침실에 늘 마누라와 자식의 사진액틀을 걸어주었는데 배가 입항할 때마다 꼭꼭 집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군 했다. 또한 그의 마누라 역시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그가 승선한 뒤 여자한테로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부탁이란 그저 에이즈에만 걸리지 말라는것이었다. 하기에 그녀는 남편이 출국할 적마다 “여보, 장화”하며 콘돔 여라문곽씩 짐속에 챙겨 넣어주군 했다는데 그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남편을 그건 곳으로 보내면서 오입조차 하지 말라는 부탁조차 어리석은 노릇이며 남편을 잡아둘려면 그런 곳으로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녀의 말마따나 기계는 돌려야 녹 쓸지 않는다나?! 방콕에 머무르는 사이에 매일같이 여자를 갈아대는 다른 선원들과는 달리 서춘철씨만은 줄곧 아가씨 한명과만 거래를 했는데 그러면 병에 걸릴 근심도 덜하고 돈을 적게 쓸 수도 있었다. 며칠간 도맡으면 몸값도 할인되니까. 헌데 맘씨고운 그는 자주 아가씨와 함께 거리에 나가서는 옷도 사주고 술을 마셨기에 나중에 계산을 때려보니까 돈을 제일 많이 처넣은 이가 다름 아닌 서춘철씨었다. 그래서 매번 아가씨를 사고난 뒤면 그는 언제나 “에익! 정들어 흠뻑 빠지기 전에 훌쩍 떠나버려야지”라고 투덜댔지만 이튿날이면 또 생각나는 걸 어떻게 하지? 참 여자의 몸뚱아리가 과연 무엇인지 밥한끼 굶은 건 괜찮아도 그것만은 떠날 수 없어 늘 사나이의 애간장만을 태우는지?… 방콕에서의 다른 한 인상은 말린 악어몸뚱아리와 상아를 파는 것이 각별히 많았는데 악어는 일반적으로 20~30불 상아는 200불 정도면 살 수 있었다. (다음기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4-06-10
  • 신강 월드컵축구경기로 후끈
    "2014신강록성옥원본지역월드컵" 축구경기가 6월7일 정식으로 개막되였다. 축구를 사랑하는 신강 본지역의 32개 축구팀들이 브라질 월드컵과 똑같은 결승단계의 축구팀규모와 경기규칙을 모방하여 "월드컵을 치르게 된다. 이번 경기에서는 4강을 뽑아 장려하게 되는데 우승팀에게는 특별히 제작한 "월드컵"우승트로피까지 수여하게 된다.
    • 스포츠
    2014-06-09
  • 中 언론, 김수현 기사 호텔 보안과 손찌검...'다 인기탓'
    [동포투데이 연예] 인기가 화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국 배우 김수현씨가 촬영차 상하이에 왔다 그를 대기하고 있던 기사와 호텔 보안직원간에 충돌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연예 기사에 오르게 됐다. 중국 언론 CNTV에 따르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수현씨가 지난 5월 31일 상하이에서 광고를 촬영했다. 비록 광고 촬영 소식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그의 행적을 알아내 호텔까지 찾아 왔다. 김수현씨의 안전을 고려해 기사는 호텔의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입구에 차를 세워 그를 바로 태우겠다고 고집했다. 팬들이 몰려와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호텔의 한 보안직원은 이를 막았다. 이 둘은 팬들이 지켜보는 과정에 티격태격하다 급기야 손찌검까지 하게 됐다. 싸움은 약 10여분간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주위 사람들이 이를 말렸고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한참 후 주차장에 나타난 김수현씨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 곧바로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를 태운 차량은 곧 현장을 벗어났다.
    • 연예·방송
    2014-06-09
  • 월드컵 승리 위해 옷 벗었다
    [동포투데이 스포츠]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아내들이 브라질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남편들의 경기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옷을 벗었다고 라시아 언론이 전했다. 표도르 스몰로프 공격수 아내 빅토리야 로피레바를 비롯해 아리아 예센코, 인나 지르코바 축구 선수 부인들이 그 주인공들로 사진 촬영 결과물은 맥심 남성잡지 6월호에 공개된다. 러시아 축구선수들 아내들이 사진 촬영으로 남편을 외조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2004 유럽전을 앞두고 10인의 선수 부인들과 여친들이 나체 사진을 찍어 세간의 화제를 모아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오는 13일(한국시간)부터 다음달 14일까지 31일 간 진행된다. 러시아는 18일 오전 7시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날에서 한국과 1차전을 치른다.
    • 스포츠
    2014-06-09
  • 中 훈춘 권하통상구―北 원정리통상구 일요일에도 출입국 허용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훈춘 권하통상구와 북한 원정리통상구는 일요일에도 출입국을 허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로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권하통상구를 통해 언제든지 북한관광을 다녀올 수 있게 됐다고 중국신문망이 훈춘시의 9일 발표를 인용해 이날 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훈춘 권하통상구는 중―북 육로변경통상구 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무일요일 통관”을 실시한 통상구라고 평가했다. 훈춘시의 권하통상구는 북한 원정리통상구와 마주하고 있으며 이곳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직접 북한 나선특별시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이다. 중국과 북한에서 북한 나선경제무역구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공동으로 관리함에 따라 날로 많은 관광객들과 변경무역 종사자들이 중국 훈춘 권하―북한 원정리 통상구를 통해 왕래하고 있는바 매일 권하통상구를 출입하는 인수는 약 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관광객들의 통행에 편리를 주기 위해 권하통상구는 점심휴식시간이 없고 매주 6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출입국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에 올 3월부터 중국과 북한은 “일요일이 없는 통관제” 실시를 논의하기 시작, 6월 초에 협의를 달성했으며 중국과 북한 양측의 법정휴식일과 특수상황 외 통상구는 일요일에도 출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목전 권하통상구에서는 일요일의 출입국을 관광객과 자가운전관광차로 제한하고 있지만 앞으로 변경무역인원과 바이어(客商)들의 소형 여객운수 차량들도 허용할 방침이라고 훈춘통상구 최승룡 주임이 소개했다. 훈춘시 빈해여행사 묘금령 총경리는 과거 일요일이면 훈춘에 체류한 관광객들이 출경할 수 없고 북한 나선시에 체류한 관광객들은 귀국할 수 없어 관광객들과 여행사의 관광원가를 증가했었는데 지금 일요일에도 출경할 수 있어 관광객들과 여행사에 편리를 주고 있다면서 이는 이 지역 출경관광 발전을 더욱 추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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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 연변 올해 대학입시 조선어 수험생 1941명, 해마다 감소
    [동포투데이 연변] 2014년 중국 보통대학교학생모집통일시험이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원만히 결속됐다. 연변일보에 따르면 올해 연변주 대학입시 조선어 수험생이 처음으로 2000명 안으로 줄어들었다. 총 1만 812명 수험생 가운데 한어 수험생이 8871명이였다. 2008년까지만 해도 5000명을 웃돌았는데 최근년간 해마다 감소, 지난해 2287명에서 올해 300여명 줄어 1941명에 머물었다. 따라서 연변1중과 연길시2고중에 나뉘여 시험을 치던 조선어 수험생들은 지난해부터 전부 연변1중 한개 시험지점에서만 시험을 보게 되였다. 한편 한어 수험생중 상당수 조선족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문사류에 474명, 이공류에 545명, 도합 1019명의 조선족학생이 한족학교에 다녀 한어로 대학입시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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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 세월호, 제자 구하러 간 여교사 시신으로 돌아와…실종자 12명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54일을 맞는 8일, 정부 대책본부는 바닷속 선내로부터 2명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그 중 1명은 DNA 감정 결과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배에 탔던 고등학생을 피난시키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희생된 여교사 유니나(28) 씨로 확인됐다. 유니나 씨의 시신은 3층 식당에서 발견되었으며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1명은 4층에서 발견되었으며 신원은 확인 중이다. 이로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92명, 실종자는 12명이 됐다. 연합뉴스는 단원고 2학년 1반 담임이었던 유 교사와 동료 여교사들은 상대적으로 탈출이 쉬운 5층 객실에 있었지만 제자들을 구하려고 4층으로 내려갔다가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유 교사와 같은 객실을 쓰며 사고 당시 학생들을 구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간 2학년 2반 담임 전수영(25·여) 교사도 지난달 20일 3층 식당에서 발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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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 일본군 1855부대 사진 등장, 731부대 이은 만행 폭로
    중국 언론 ‘신문종횡(新聞縱橫)’에서는 역사문헌 기록에 근거해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던 당시에 규모가 있는 5개 세균부대 하얼빈(哈爾濱) 731부대, 창춘(長春) 제100부대, 난징(南京)의 룽쯔(榮字) 1644부대, 베이핑자쯔(北平甲字) 1855부대와 광저우(廣州)의 보쯔(波字) 8604부대에서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탄저병 등의 세균과 독가스를 가지고 생체 실험을 비롯한 잔인무도한 생체 해부까지 자행해 중국인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들의 생체 세균실험을 은닉했을 뿐만 아니라 베이핑자쯔 1855부대의 존재까지 부정했다. 얼마 전 1855부대의 옛 사진 165장이 베이징의 한 경매업체에 등장했다. 전문가는 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1855부대의 자료로 그 만행은 731부대와 견줄 만하다고 말했다. 일부 사진 자료를 보면, ‘적십자’ 표식이 있는 대량의 물자와 일본 군인을 비롯한 안에는 군복을 입고 밖에는 흰 가운을 걸친 남자들이 등장한다. 또 어떤 사진에는 실험실을 배경으로 인물 뒤에 실험 기구들이 놓여진 것도 있다. 이 부대는 1939년에 일본군이 ‘방역급수’ 명목으로 베이징 톈탄(天壇)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역사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 부대는 731부대와 마찬가지로 페스트,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악성 전염성 세균을 배양해 대량의 인체 실험을 실시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본군이 신속하게 자료 전부를 폐기했기 때문에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진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함에 따라 이 세균부대의 존재를 확실하게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함은 물론 앞으로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화천(華辰)경매업체의 한 관계자는 사진은 일본에서 수집했고 ‘일본군 중위’가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이며 전쟁에 패한 후 일본으로 가져가 줄곧 일본 민간인들 사이에서 소장되어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는데 이 사진의 소장자 자손들 또한 이 사진의 역사적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그저 특수한 의료부대가 중국 톈탄에서 활동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 전했다. (번역 감수: 조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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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 경찰, “인터넷 광고, 택배 배송” 마약거래 적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인터넷 사이트에 필로폰 판매 광고글을 게시하고 국제택배로 필로폰을 밀반입하여 판매한 일당과 이를 구입한 회사원 등 10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하였다고 밝혔다. (구속 1, 불구속 9, 지명수배 1) 경찰조사에 따르면 판매책 B씨(42세)는 인터넷 광고와 택배 배송을 통해 원거리 마약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중국에서 인터넷 광고와 거래협상을 맡고, 국내 배송책과 판매대금 인출책을 따로 두어 단속에 치밀하게 대비하였다. 배송책 H씨(44세)는13년 4월부터 7월경까지 B씨로부터 8회에 걸쳐 우산 손잡이 등에 은닉한 필로폰 약 24.7g을 전달받아, K씨(37세, 여) 등 8명에게 택배로 배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구매자 중 상당수가 마약 전력이 없는 자들로 마약이 ‘통증 해소’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오인하여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마약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앞으로 택배를 활용한 국제적 마약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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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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