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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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CTV ‘2018 실크로드 춘완(春晩)’ 정월 초이튿날 방송
    ▲ CCTV ‘2018 실크로드 춘완’이 오는 2월17일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방송된다.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일대일로’ 연선국가의 문화와 예술을 한데 모은 신춘 완후이(晚會)로서 ‘실크로드情·중국融’을 테마로 한 ‘2018 실크로드 춘완’이 오는 2월17일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방송된다. 관영 신화망(新華網)에 따르면 설날 특집 방송 완후이는 ‘실크로드의 꿈—-오색찬란한 빛이 실크로드를 비추다’ ‘실크로드의 휘황—오색찬란한 빛이 실크로드를 칭송하다’ ‘실크로드의 영광 회복--오악삼천이 실크로드를 빛내다’의 3부로 나누어 4시간 방송된다. 중국,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이란, 이집트, 우크라이나, 몽골 등에서 온 유명한 가수와 배우들이 노래, 단막극, 춤 등 30여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실크로드 민속 풍물과 천 년을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을 선보인다. 중앙TV방송국(CCTV) 완후이는 산시(陝西)위성TV가 간쑤(甘肅)·닝샤(寧夏)·칭하이(青海)·푸젠(福建)동남·광시(廣西)·신장(新疆) 위성TV 및 러시아, 헝가리, 카자흐스탄, 네팔 등 국가의 실크로드 국제위성TV연맹 방송국과 연합, 함께 만들어 황금 시간대에 동시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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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4
  • '너의 등짝에 스매싱' 이현진-엄현경, 선남선녀의 상큼발랄 '브이'
    ▲ 사진제공 :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너의 등짝에 스매싱' 이현진이 엄현경과 함께한 '스윗 케미'가 돋보이는 비하인드 컷을 공개했다. TV조선 일일극의 역습 '너의 등짝에 스매싱'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현진 역을 맡아 열연중인 이현진이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극중 러브라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엄현경(박현경 역)과의 달달한 비하인드 컷을 공개해 설렘지수를 수직 상승시켰다. 14일 소속사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공개된 사진 속 이현진은 엄현경과 차 안에서 카메라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보이고 있다. 상큼 발랄한 브이포즈로 귀여움을 한껏 뽐내고 있는 두 사람은 찰떡 케미를 인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해 보는 이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너의 등짝에 스매싱' 속 이현진은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진 자신과는 달리 항상 긍정 에너지를 발산하는 엄현경에 반해, 사랑에 빠진 남자의 달콤한 모습으로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재난 대비'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운데 로맨틱한 매력까지 더하며 심스틸러로 자리잡은 것. 특히, 현진은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현경이 부담스럽지 않게 묵묵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현진은 훈훈한 비주얼에 따뜻한 눈빛과 특유의 러블리함으로 매 회마다 여심을 자극,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처럼 엉뚱함부터 알콩달콩 풋풋한 로맨스까지 등장했다하면 유잼포인트로 활약하며 극 속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이현진의 활약에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이현진이 출연하는 '너의 등짝에 스매싱'은 매주 월부터 목요일 밤 8시 20분 TV조선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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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4
  • 베이징의 ‘이방인’ - 춘제 기간 귀가하지 못하는 사람들
    ▲ 판이샹(潘亦翔)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매년 춘제(春节)가 돌아오면 베이징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지호적의 <이방인(北漂人)>들한테 있어서 귀가 문제가 늘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의 마음은 고향 친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눈에는 일종의 갈망으로 반짝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도리어 <춘제 불회가(春节不回家)>를 선택하고 있다. 13일, 소후망(搜狐网)은 한 촬영사가 찍은 사진을 통해 춘제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일터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환경위생공, 보안일군, 택배배달원, 음식배달원 등 베이징의 <이방인>들을 찾아보았다. 이들로는 다음과 같다. 왕쉐 왕쉐(王雪)은 올해 26살로서 고향은 요녕 푸신(辽宁阜新)이며 현재 베이징 모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왕쉐는 해마다 춘제 기간 병원의 당직 때문에 이미 5년째 고향집에 가 춘제를 쇠지 못했다. “처음으로 연야밥(年夜饭)을 먹던 날 저녁, 당직을 서면서 밖에서 폭죽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혼자 한동안 울었어요. 그러다 후에는 매번 연야밥을 먹을 시간만 되면 친구들과 채팅하는 것으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어요…” 왕쉐한테 있어서 춘제 기간의 가장 즐거운 일이란 자기가 번 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보내주는 것이란다. 새해, 왕쉐의 희망은 가족 성원들의 신체건강과 하루 속히 남친 한명을 찾는 것이었다. 류초우 허베이 창저우(河北沧州)에서 온 류초우(刘超)는 이미 자녀 2명을 둔 부친으로서 베이징에서 택배업에 종사한다. 류초우가 베이징에 온지는 2년 남짓하며 올해 처음으로 고향집으로 갈 수 없게 됐다. “명절 기간 일손은 적고 택배양이 많기에 춘제 기간이 지난 후에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처음으로 가족과 춘제를 함께 쇠지 못하는 류초우는 자녀들이 보고 싶기 마련이며 자식한테 빚진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애들이 좋아하는 공룡 놀이 감을 구입해 고향에 보냈다고 한다. 리수하이 올해 48살인 리수하이(李树海)는 지난 해 9월에 상경해 보안 사업에 투신, 베이징에 오기 전까지는 해마다 허베이 싱타이(河北邢台人)의 고향집에서 처자와 함께 춘제를 쇠었지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리수하이는 현재의 감수를 피로하면서 “비록 집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디에서 춘제를 보내도 괜찮다는 생각이며, 특히 2일 전에 고향에서 한 친구가 찾아와 함께 있게 되어 서로 돌봐 주는 사람이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고씨 남성 허베이 한단(河北邯郸) 사람인 고씨 남성, 올해 31살이고 베이징에 들어 온지 3년이 되며 어느 한 스낵에서 음식배달원으로 일한다. 그는 소학교에 갓 입학한 자식이 있기에 생활압력이 비교적 크다. 때문에 급여가 높은 춘제 기간 돈을 많이 벌고 춘제 연휴 후에 집으로 돌아갈 타산이다. “이전에도 밖에서 춘제를 보낸 적이 있었으며 그 때마다 가정이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공허해지군 했어요. 그리고 아이와 집사람이 몹시 그리웠어요.” 그러면서 고씨 남성은 휴대폰을 통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애 엄마, 난 밖에서 아주 건강하게 잘 있으니 시름 놓으세요. 나 꼭 돈 많이 벌어 집에 부쳐보낼게요”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장씨 아줌마 후베이(湖北) 사람인 장씨 아지미는 1남 1녀를 가진 엄마였으며 그 중 아들 부부는 베이징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희들 부부는 1994년에 상경해 작은 가게를 운영해요. 큰 돈은 벌지 못하고 작은 돈을 버는 재미는 좀 있죠.” 올해 이들은 며느리가 출산일이 다가오기에 고향 행을 포기했다. 장씨 아지미에 따르면 고향에는 노인들과 딸애가 생활, “천리를 떨어져 있는 친인들이예요. 우리도 그들이 그립고 그들 또한 우리를 보고 싶어 할거예요. 춘제예요.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되어 몹시 괴로워요.” 왕하이항 왕하이항(王海航)은 중국 미디어대학의 학생으로서 본인이 배우는 전업이 미술이기에 방학기간 베이징의 한 미술 양성반에 등록하였으며 춘제 기간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춘제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춘제 후에 곧바로 시험을 쳐야 하며 저 또한 작품발표를 준비해야 되니깐요.” 올해는 왕하이항이 베이징에서 춘제를 보내는 세 번째 해이다. 첫 해엔 집으로 가지 않은 친구들과 3시간 동안 채팅하면서 고독감을 달랬다. “해마다 적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춘제를 보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그립기는 여전했어요.” 판이샹 판이샹(潘亦翔)은 쟝수(江苏) 사람으로 현재 베이징에서 음악제작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판이샹은 대학시절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공했었으나 음악에 자질이 있었기에 졸업 후 베이징에서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고 원 전업을 포기, 9년이 지난 지금은 자기의 음악공작실까지 갖춘 상황이다. 판이샹한테 있어서 올해는 관건적인 한해이다. 올해 자기의 음악전집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경 후 줄곧 베이징에서 방랑생활을 해온 판이샹은 매년 춘제만 돌아오면 각별히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그는 이제 기회와 조건만 허락되면 부모님을 베이징으로 모셔 올 타산이다. 춘제를 맞으면서 그의 소망은 부모님이 건강하실 것과 자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 것 등이었다. 치노인 치노인(齐大爷)은 허난 안양(河南安阳) 사람으로 베이징에서 교통순찰 사업을 하고 있다. 치노인은 이전에도 자주 춘제 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적이 있다. 해마다 동료들과 함께 춘제를 보내군 했단다. 그는 이번 춘제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춘제를 쇨 수 없어 아쉽지만 가족이 유쾌히 명절을 보낼 것을 희망하며 그들의 신체건강을 기원한다”며 소망을 밝히었다. 환경위생관리원 이미 여러 해 동안 춘제에 고향을 가지 못한 이 환경 위생공 여인은 매년 섣달그믐날 저녘의 마지막까지 일터를 지켜왔다. 이 여인의 새해 소망이라면 1년간의 사업이 순리롭기를 바라는 것이며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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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4
  • 다재다능한 조선족 여가수- 최연희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최연희(崔莲姬)라고 하면 중국 조선족 연예인들 중 별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서류를 보면 최연희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과는 달리 가창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용에도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었으며 중국어와 한국어에 유창한건 물론 일본어 구사에도 막힘이 없다. 또한 시가창작과 복장 코디(服装搭配)와 형상 디자인에 짙은 애착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로 된 가이드 생활에도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어 말 그대로 다재다능한 조선족 인재라 할 수 있다. 그 외 최연희한테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그녀가 조선족이 많은 연변이나 동북 3성이 아닌 수도 베이징 태생이며 거기에 그 외모 또한 매우 귀엽고도 사랑스럽다는 점이다. 최연희의 홈페이지를 보면 각종 풍격의 사진이 많다. 무대에서의 현란하고도 미감적인 장면과 생활속의 진실한 모습, 스타들과의 합영모습 그러한 것들은 신중하고도 내성적인 그의 성격과는 달리 그 거개가 활달하고 씩씩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 중, 가장 흡인력이 있는 사진은 스키를 탈 때의 모습으로 당시 최연희가 입은 주황색의 스키복과 머리에 쓴 하늘색 모자, 손에 든 캐릭터 장갑(卡通手套) 등은 주위의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최연희의 홈페이지에는 그녀를 찬양하는 글들로 도배되고 있다. 예하면 그녀가 한국가수 이정현(李贞贤)을 많이 닮았고 노래하는 것도 이정현과 너무 근사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중국의 <보아(宝儿)>라고 찬양하는 글도 있었다. 모두 최연희에 대해 긍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들이었다. 현재 베이징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연희는 연습과 공연 그리고 콩쿠르에 참가하는 외 겸직으로 글 번역, 가이드 등으로 자신의 생활을 풍부히 하고 있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도, 그렇다고 비관하는 타입도 아니다. 인생에 대해 그냥 담담한 심태라고 할까? 이 역시 팬들이 그녀를 좋아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내성적이며 자신에 대해 절대로 크게 떠들어대지 않는 타입인 최연희- 그녀의 향후 목표는 창작형의 여가수로 되는 것이라 한다. 경 력 제1회 베이징시 예술절에서 독무 <부채춤> 1등상 획득, 무용 <여해군의 풍채(女海军的风采)> 2등상 획득 <아름다운 행동> 전국 예술콩쿠르에서 노래 <두이우얼(独一无二)>과 무용 <용감성>으로 청춘미 소녀상 획득 CCTV 3 음악무대에서 1등상 획득 CCTV 3 음악무대에서 우수선수상 특별 프로상 획득 CCTV3 <싱광다도(星光大道)> 춘제만회에서 한국스타 장나라와 함께 아리랑 열창 중국 교육방송국 한국어교육프로 제작 CCTV3 <싱광다도(星光大道)>의 연경연 우수선수로 평선 개인열창집 <1분 1초(一分一秒)> 제작 길림성 제7회 신묘컵 예술계열콩쿠르에서 독무 2등상 획득 2010년 개인음반 출판 제37회 세계 관광아가씨 콩쿠르의 초대가수로 <여자천하(女孩天下)> 열창 앨 범 <1분 1초(一分一秒)> <당신, 당신(是你是你)> <사랑은 나의 공기(爱就是我的空气)> <사랑엔 이유가 없어(爱没什么道理)> <내가 발견한 나의 세계(我发现我的世界)> <나의 사랑은 말한다(我的爱在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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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4
  •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조선족 항일투사 - 이재덕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리)재덕(李在德)- 동북항일연군 내의 조선족 여투사이자 국제주의 전사였으며 살아 있은 역사의 증인이다. 그리고 조선인으로부터 중국조선족으로 탈바꿈하게 된 특수시대가 낳은 여성강자이기도 하다. <8.15> 참안으로 중공 탕원 현위는 엄중하게 파괴되었으나 혁명가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생존해있던 하운걸(夏云杰), 장인추(张仁秋) 등 혁명투사들은 항일유격대를 재건할 중임을 떠메고는 활발하게 움직이었다. 1934년 2월 13일, 하운걸 등은 칠호툰에 있는 당원과 공청단원들과 함께 김치움에서 은밀하게 전투계획을 연구, 그 날 밤으로 학강 동쪽의 황화강(黄花岗)에 있는 공씨 성을 가진 지주 집을 습격, 총 한방 쏘지 않고 소총 16자루와 탄약 등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노농홍군 탕원 유격대가 재건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재차 나북현 압단하 자위단을 기습하여 50여자루의 소총과 탄약 등을 노획하였으며 유격대 대오는 40여명으로 발전, 하운걸이 대장으로 되고 장인추(张仁秋)가 참모장으로 되었다. 한편 선후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잃고 의지가지가 없게 된 이재덕은 유격대를 집으로, 유격대원들을 자기의 친인으로 삼군 하였다. 매번 유격대가 이동할 때마다 하운걸과 장인추(张仁秋) 등이 15살밖에 안되는 그녀를 지방에 맡길 생각을 하였으나 이재덕은 <유격대는 곧 나의 집>이라고 하면서 견결히 유격대와 동행하겠다고 제기했으며 유격대에서 <배언니>로 불리는 배성춘 역시 <나어린 처녀를 어떻게 지방에 홀로 두게 할 수 있느냐>며 두둔해주기도 했다. 당시 이재덕은 탕원유격대에서 가장 일찍 참군했고 또 연령이 가장 어린 여성 유격대원이었다. 1934년 가을, 탕원유격대에서는 배성춘과 이재덕을 탕왕에 있는 후방 임시피복공장(后方临时被服厂)에 파견하여 공장에서 일하면서 1선의 항일연군 전사들에게 군복을 지어 공급해주도록 하였다. 1936년 항일명장 조상지(赵尚志)의 도움으로 탕원유격대는 정식으로 동북항일연군 제6군으로 개편되었고 군장으로는 하운걸, 정위로는 이조린(李兆麟)이었다. 이 시기 이재덕은 이미 항일연군 제6군의 피복공장과 후방병원의 골간이었다. 그해 7월, 이재덕은 북만 성위서기 풍중운과 피복공장 책임자인 배성춘의 소개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배성춘을 놓고 말하면 이재덕과 일종 특수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재덕의 모친이 희생된 후 배성춘은 단 한시도 이재덕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당시 이재덕한테 있어서 배성춘은 어머니이자 언니였고 또한 전우이기도 한 존재였다. 그리고 배성춘한테는 3명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 중 배석철(裴锡哲)과 배석구(裴锡久)는 탕원유격대의 창건을 위해 그 한몸 바치었으며 셋째 동생 배경천(裴敬天)은 이재덕과 죽마고우였다. 일찍 1928년 최용건이 창립한 송동모범학교가 개학했을 때 배경천과 이재덕은 동시에 입학했으며 배경천의 연령이 그녀보다 몇 살 많은 관계로 이재덕은 늘 배경천의 도움을 받군 했으며 그녀의 입단 역시 배경천의 도움과 갈라 놓을 수 없었다. 한편 배경천은 중등 키에 잘 생긴 얼굴을 가졌으며 재능 또한 출중하여 많은 여자애들이 우러러보는 미남형이었다. 당시 이재덕의 집은 가난한데다 남자가 없었기에 배경천이 늘 이재덕의 집에 가 바깥일을 도와주군 했다. 그리고 이재덕의 할머니와 어머니 역시 이 잘 생기고도 부지런한 젊은 청년을 좋아했는가 하면 이재덕 역시 배경천을 친오빠를 대하듯 그를 따르기도 했다. 후일 할머니와 어머니가 선후로 세상 뜨면서 외롭게 된 이재덕은 어쩐지 몰래 배경천을 그리게 되었으며 간혹 배경천이 자기 앞에 나타나면 기쁘고 유쾌하기가 그지 없었다. 당시 둘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없었지만 이재덕은 배경천을 보기만 해도 일종의 안위가 되고 믿음성이 갔다. 이렇게 이재덕이 배경천을 오빠가 아닌 다른 그 무슨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을 당시 배경천은 이미 동북항일연군 6군 2퇀의 정치부 주임이었으며 나이는 고작 23살이었다. 1935년 겨울의 어느 날, 전방으로부터 돌아온 배경천은 이재덕을 보자 “여자애 크면서 18번 변한다더니 너 날이 갈수록 이뻐지는구나”라고 우스개를 했다. 이에 이재덕은 삽시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금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이재덕이 살며시 쳐다보니 그녀의 앞에는 허리에 권총을 찬 대장부가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던 것이다. 한편 배경천의 누나 배성춘은 진작 동생과 이재덕이 서로 묵묵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시기를 기다리던 배성춘은 어느 날 드디어 이들 둘을 불러놓고는 이들의 혼약을 결정지었다. 그 뒤 1936년에 있은 배경천의 희생으로 이재덕의 이런 꿈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 해 4월, 당시 북만성위의 지시로 배경천은 230여명의 파견대를 이끌고 남하, 남만의 항일유격대와 연계를 취하여 홍군의 북상항일에 배합하기로 하였다. 헌데 부대가 의란현 경내의 <서호경(西湖景)> 산구에서 일본군과 위 만주군 1000여명에게 포위되었다. 10시간의 치열한 격전을 거쳐 배경천 부대는 적군 120여명을 섬멸하였으나 탄약과 식량이 떨어지면서 사상자를 많이 냈으며 배경천도 최후의 1명으로 장열하게 희생되었다. 배경천이 희생된 후 이재덕은 더 이상 혼인담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무정한 타격과 잔혹한 환경은 그녀로 하여금 더 이상 같은 고통을 겪기 싫어서였다. ▲ 이재덕과 그의 전우들 1937년 7월, 중공 북만임시성위 확대회의가 탕원 서쪽으로 이춘(伊春)과의 경계지인 모아산(帽儿山)에 있는 6군 피복공장에서 거행, 조상지, 풍중운, 장란생(张兰生)과 이조린 등이 참가했고 길동성위 대표로 주보중이 초청에 의해 회의에 출석했으며 3군 선전과장 우보합(于保合)이 회의 기록을 맡았다. 이번 회의는 각 군의 행동을 제정하는 중요한 회의로서 회의에서는 원 항일연군의 독립사를 제11군으로 확충하는 결의안도 결정, 군장에 기치중(祁致中)이었고 부군장에 장갑주(张甲州)였으며 정위에 김정국으로 선출되었다. 이번 회의 기간동안 6군 피복공장의 일군들이 후근사업을 맡았으며 이재덕 역시 수장들한테 물을 끓여주고 의복을 씻어주는 등으로 바쁘게 움직이었다. 어느 한번 휴회기간(休会期间)이 되자 누군가 “우리 내에 영준한 총각과 이쁘장한 처녀들이 많은데 우리가 이들을 도와 백년가약을 맺게 하는 것이 좋겠구만”하고 제의하자 모두들 그것이 좋겠다고 환호했다. 이어 조상지가 총각인 우보합을 보고 “자넨 요구표준이 높을 것 같은데 어느 처녀한테 눈길이 가는거요?”라고 묻자 우보함은 곧이곧대로“이재덕 동지가 아주 듬직해보이는데 그가 원하는지 모르겠군요” 라고 했다. 우보함의 말에 조상지 역시 동감을 표했다. 헌데 배성춘이 허락하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으며 거기에 이재덕과 약혼했던 배경천이 1년 전에 희생되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도 일정한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이었다. 결국 조상지는 풍중운을 시켜 배성춘을 설복하고 다시 배성춘이 여자측의 매파로 이재덕을 설복하기로 했다. 그 뒤, 배성춘이 이재덕을 찾아 결혼을 권하자 그녀의 태도는 견결했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테예요. 전 그냥 언니가 있으면 족하며 영원히 언니만을 따를테예요.” 이에 배성춘은 내심성이 있게 이재덕을 설복했다. “현재 부대에는 남성동지들이 많고 모두 산에서 싸우다 보니 그들한테는 여성동지들의 따사로움이 필요하고, 여성동지들 또한 혼자서 생활하자면 불편할 때가 많기 마련이며 역시 남성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한거야. 너도 이젠 20살이야. 이번에 조사령과 풍중운이 직접 나서고 있는데 우보합은 문화수준도 있고 기타 방면도 우월하니 한번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배성춘의 설득에 어느 정도 달통된 이재덕은 드디어 우보합과 대면하는데 동의했고 또한 우보함과 대면한 후에는 그녀의 마음도 봄눈이 녹듯 완전히 풀리었다. 기실 이재덕은 딱히 우보함이 싫어서가 아니었고 다만 그 때까지 그녀가 배경천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회의가 곧 결속될 무렵, 동북항일연군 제6군과 중공북만임시 성위에서는 한차례 특수한 혼례식을 거행, 두 쌍의 예비부부가 혼례식의 주인공이었는데 한 쌍은 만족인 우보합과 조선족 이재덕이었고 다른 한 쌍은 조선족인 오옥광과 한족인 이계란(李桂兰)이었다. 혼례식은 주보중이 주례를 섰고 이조린과 대홍빈(戴洪宾)이 증인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하여 약 1년 뒤, 그렇게도 이재덕과 이들 자매들을 아끼고 사랑해주던 <큰 언니> - 배성춘이 일제와의 격전에서 희생될 줄이야. 바로 1938년 11월 22일, 보청현(宝清县) 솥회산(锅盔山)에서 주력부대의 서정(西征)을 엄호하던 20여명의 6군 장병들은 서광해와 배성춘의 인솔하에 수백명에 달하는 일제놈들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배성춘이 장열하게 희생되었던 것이다.(다음에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8-02-14
  • 인천국제공항, 재즈-퓨전국악그룹 초청 2월 상설공연 개최
    ▲ 이번 공연은 설 명절 연휴를 맞아 가족-연인과 해외여행을 즐기려 공항을 찾은 여행객과 공항 상주직원을 위해 기획된 2월 상설 문화예술공연으로, 재즈 연주팀 '재즈나루'와 여성 4인조 퓨전국악그룹 '하나연'을 초청, 매일 5차례의 화려한 공연을 펼친다.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인천국제공항이 올해 첫 상설공연으로 새롭게 개항한 제2여객터미널에서 베테랑 재즈연주팀과 퓨전국악그룹을 초청, 고품격 공항 예술공연을 2월 한달동안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설 명절 연휴를 맞아 가족-연인과 해외여행을 즐기려 공항을 찾은 여행객과 공항 상주직원을 위해 기획된 2월 상설 문화예술공연으로, 재즈 연주팀 '재즈나루'와 여성 4인조 퓨전국악그룹 '하나연'을 초청, 매일 5차례의 화려한 공연을 펼친다. '재즈나루'는 보컬,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 기타 등으로 구성된 재즈 연주팀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즈를 테마로 한 화려한 편곡과 감미로운 연주실력을 자랑하는 실력파 그룹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매일 그대와', 'Fly me to the moon', 'Reality', 'You've got a friend', 'Just the two of us' 등을 무대에 올려 관람객들과 감동을 나눈다. '하나연'은 가야금, 해금, 대금, 보컬로 구성된 퓨전국악그룹으로, '음악으로 하나되는 인연'이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전통민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국악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국악 앙상블이다. 이번 공연에서 '도라지', '경기 아리랑', '쑥대머리' 등 전통 민요부터 'Nella fantasia', 'Feel so good' 등 현대 음악까지 아우르는 퓨전국악을 연주해 젊은층과 외국인도 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펼친다. 이번 상설공연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 면세구역 동-서편에 위치한 노드정원에서 매일 오후 11시30분, 12시30분, 15시, 16시, 17시에 각각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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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4
  • 北 김정은 위원장, 북남대화 분위기 구축해야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12일 한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고위급 대표단의 회보에 만족을 표하고 북남 화해 대화의 분위기를 진일보 마련하고 양호한 성과를 계속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이 고위급 대표단 등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조선측 인원의 방문에 높은 중시를 돌리고 성의를 다해 조선측 인원들에 편리를 제공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1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이번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양자간 강렬히 갈망하는 평화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키고 좋은 결과들을 계속 쌓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또 향후 북남관계 개선과 발전의 방향을 제기하고 이를 위한 실무적인 대책을 세울 것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고위급 대표단 회견에는 김영남 조선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 성원과 수행인원들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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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3
  • “평창 올림픽플라자, 매일 오후 5시부터 무료로 즐기자”
    ▲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의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평창 올림픽플라자를 매일 오후 5시부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이희범)는 12일 “다양한 문화공연을 비롯해 매일 밤 메달플라자에서 메달을 수상하는 메달리스트들을 더 많은 관람객들이 축하하고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창 올림픽플라자를 13일을 시작으로 매일 오후 5시부터 무료 티켓을 발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평창 올림픽플라자 내에 위치한 메달플라자는 동계올림픽에만 있는 곳이며, 매일 저녁 7시부터 6~7회의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다.시상식에 앞선 18시부터는 강원도의 문화공연과 다양한 논버벌 공연이 있으며, 시상식 후에는 비투비와 B1A4, 장미여관, 2PM, 레드벨벳 등 다양한 가수가 참여하는 K-POP 공연도 예정돼 있다.또, 겨울밤을 수놓는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이어지며 축제에 흥을 더할 계획이다.한편, 강릉에 위치한 강릉 올림픽파크는 기존대로 당일 경기티켓 소지자는 무료이고, 티켓 미소지자는 입장을 위해 별도의 2,000원 티켓 구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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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3
  • 中 외교부, 北 문 대통령 평양 방문 공식 초청에 환영과 지지 표시
    ▲ 사진=중국 외교부 홈페지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김정은 북한 최고지도자가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초청한 사안과 관련해,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각 측이 함께 노력해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을 한반도의 평화를 수호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노력으로 확대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관영 신화망(新華網)에 따르면 겅솽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남북은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 대화와 협력을 추진했고 중국은 이에 환영과 지지를 표시하며 남북은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양측의 근본적인 이익에 부합되고 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촉진하는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현재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보기 드문 완화 추세가 나타났고 각 측에서는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수호해야 한다”고 덧 붙혔다. 그는 각 측에서 함께 노력해 동계올림픽 기간의 대화를 일상적이고 중단되지 않는 대화로 이어가고 남북 간의 인터렉션을 기타 각 측, 특히 북미 간 인터렉션으로 확대하며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의 노력을 한반도 평화의 수호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공동의 노력으로 확대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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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3
  •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조선족 항일투사 - 이재덕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리)재덕(李在德)- 동북항일연군 내의 조선족 여투사이자 국제주의 전사였으며 살아 있은 역사의 증인이다. 그리고 조선인으로부터 중국조선족으로 탈바꿈하게 된 특수시대가 낳은 여성강자이기도 하다. 1917년 12월 29일, 이재덕은 조선 평안남도 개천군답도리(介川郡沓道里)에서 태어났다. 이재덕이 2살 되던 해 이재덕의 부친 이상희(李相熙)가 조선광복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단체에 참가했다고 일제에 의해 체포되자 1920년 전 가족은 할머니 안순희(安顺姬)를 따라 중국 요녕성 안동(지금의 단동)지구의 농촌으로 이주, 다시 4년 뒤 송강성 탕원현 복흥툰에 정착한다. 당시 복흥툰에는 송강성의 군벌 오준생이 개설한 <복풍도전회사(福丰稻田公司)>가 있었으며 이재덕 일가는 그 회사의 논을 임대맡아 지으면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다. 1928년 초봄, 복흥툰에 3명의 조선인이 찾아왔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우람지었으며 목소리도 우렁우렁하였으며 특히 그의 중국어구사가 아주 유창하였다. 그가 바로 유명한 혁명가였으며 후에는 조선의 제2임자로 된 최용건(崔庸健)이었다. 그 얼마 전 최용건은 공산당이 일으킨 광주봉기(广州起义)에 참가, 황포군관학교 교관 겸 제5기 제2구대 대장의 신분으로 200-300명의 병력으로 100여 시간에 달하는 격전을 벌이다가 봉기가 실패하자 국민당 특무들의 감시와 겹겹으로 된 적들의 봉쇄망을 뚫고 광주로부터 동북으로 오게 되었었다. 동북으로 온 최용건은 다니는 곳마다 혁명의 진리를 선전, 결국 이재덕이 살고 있는 복흥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복흥툰에 온 최용건은 김치강(金治刚)이란 가명으로 송동모범학교(松东模范学校)를 창립하고는 이 지구의 조선인들한테 민족 및 계몽 교육을 진행, 당시 10살인 이재덕은 제일 선참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다. 계몽교육을 받는 기간 이재덕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압박하에 있는 중국과 조선은 모두 공동한 운명 속에 있으며 오직 제국주의 침략을 물리쳐야만 진정한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는 혁명의 진지를 깨닫게 된다. 이 송동모범학교에 다니면서 이재덕은 선후로 공산주의 아동단 및 소년선봉대에 가입했으며 소대장에 이어 중대장으로 되기도 했다. 당시 이 학교에서는 어문, 산수, 체육과 음악 등 학과를 설치, 음악학과에서는 제일 처음 배운 노래가 최용건 교장이 지은 모범학교 교가였다. 구락부로 된 학교는 저녁마다 마을 사람들로 붐비었다. 이재덕은 늘 어머니와 할머니를 이끌고 학교로 가서는 최용건 교장의 강연을 들었으며 여기에서 <공산당>이란 세 글자도 알게 되었다. 최교장은 또 일제가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약탈한 죄행을 폭로하였고 레닌이 영도한 10월 혁명에 대해 소개했으며 장개석이 혁명을 배반하는 과정과 자신이 광주봉기에 참가하던 과정을 감명 깊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혁명도리들을 들으면서 마을사람들의 인식과 각오는 날로 높아만 갔다. 최용건의 영향을 받은 복흥툰 마을에는 농민협회, 부녀협회와 반일대동맹, 반일청년회 등 대중혁명조직이 성립되었으며 부녀협회에서 김성강의 활약이 가장 돌출하였다. 1928년 10월, 최용건의 양성과 도움으로 배치운(裴治云), 최규복(崔圭福), 이재덕의 어머니 김성강이 입당, 이들은 삼강지구(三江地区)에서 가장 선참으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이어 1929년 봄이 되자 학립(鹤立) 부근의 북칠호툰(北七号屯)에 중공 탕원현위가 성립, 이는 삼강지구에서 성립된 첫 현위였으며 전반 동북에서 가장 일찍 성립된 현위의 하나였다. 1931년 항일투쟁의 수요와 중공 만주성위의 비준으로 중공 탕원현위가 확대되었고 이재덕의 어머니 김성강은 현위위원 겸 현 부녀연합회 주임으로 되었다. 그 시기, 이재덕은 어머니 및 기타 공산당원들의 영향을 받아 사상상 재빠르게 진보하였다. 당시 이재덕은 늘 당조직과 공청단 조직에서 조직하는 가무, 연극, 강연 등 문예활동에 참가하여 각종 형식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죄행을 폭로하는 한편 반일계몽 선전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1932년 초만 하더라도 이재덕은 40여 일간에 거쳐 선전대를 따라 학립진(鹤立镇), 연강구(莲江口), 태평천(太平川), 격절하 금광(格节河金矿). 학강탄광(鹤岗煤矿) 그리고 나북(萝北)경내의 압단하(鸭蛋河), 도로하(都鲁河), 의란현(依兰县) 북부 등지를 돌면서 순회공연, 공연장마다 관중들의 눈물바다로 되었으며 이는 또한 대중들의 반일각오를 불러일으킴에 있어서도 큰 작용을 하였다. 원 흑룡강성 군구 부사령원이었으며 저명한 항일장령이었던 왕명귀(王明贵) 등 많은 사람들 역시 항일선전대의 영향으로 총부리를 일제에게 겨누면서 항일전선으로 달려나갔던 것이다. ▲ 이재덕과 남편 우보합 1932년 봄 이재덕은 김성철과 배경천(裴敬天)의 소개로 공청단에 가입, 그 뒤 이 지구에서 가정 어린 공청단 촌소조장이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5살에 불과했다. 공청단 간부가 된 이재덕은 기타 공청단원들을 이끌고 항일표어를 붙이고 삐라도 뿌리었으며 또한 편지를 나르고 망을 보기도 하면서 공청단 활동의 중견으로 활약했다. 그해 봄의 어느 날, 풍중운(冯仲云)과 현위의 간부들이 이재덕의 집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변복을 한 마적떼가 복흥툰 서쪽으로부터 마을로 기어들었다. 그러자 이를 발견한 이재덕은 즉시 집으로 달려가 이 위기상황을 알렸지만 이 때는 마적떼가 이미 집집마다 수색을 하기 시작한 뒤었다. 상황은 아주 위급했다. 풍중운은 기타 간부들더러 피신하게 한 뒤 회의서류들을 정리해 가방 안에 넣기 시작했다. 풍중운의 위기탈출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 때 이재덕의 할머니 안순희 노인이 위기 중 기발한 착상을 내놓았다. “풍동지, 벙어리처럼 가장하우다. 절대 입을 열지 마시우. 모든 것은 내가 막아 나설테니…” 뒤이어 총을 꼬나든 마적들이 들이 닥치면서 이재덕과 할머니의 뒤에 있는 풍중운을 발견, 놈들은 풍중운한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는 그를 끌고 가려고 했다. 이러자 안순희 노인은 급기야 풍중운의 앞을 막아나서면서 “제발 끌고 가지 말아 줘유. 그 애는 나의 벙어리 아들로서 얼마 전 조선으로부터 이 어미를 보려고 여기에 왔수다…”라고 하며 울고불고 하였다. 이어 이재덕과 어머니 김성강 역시 풍중운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적들은 할머니와 풍중운한테 총 박죽으로 치고, 발로 차고 하며 물매를 들이대면서 기어코 끌고 가려고 했다.이 위급한 관두에 촌에 있던 지하당원과 마을 사람들이 몰켜와 이구동성으로 “그 벙어리는 확실히 안할머니의 아들이 맞수다. 이제 온지 며칠 안 되우다”라고 하며 막아나섰다. 그제야 마적들은 마을 사람들의 말에 믿음이 가는지 풍중운을 놔주면서 물러갔다. 마적들은 물러갔지만 안순희 할머니는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피투성으로 됐으며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뜨고 말았다. 한편 이재덕의 어머니 김성강은 정직하고도 소박했으며 견정하고도 군중위신이 높은 여성간부였다. 1933년 10월 4일은 음력 8월 15일로 추석날이었다. 추석날 밤, 김성강과 기타 현위 지도일군들은 배치운, 최규복 등과 함께 유격대를 조직할데 관한 과제를 갖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는 그 이튿날 동틀 무렵까지 진행, 바로 이때 갑자기 학립에 있는 일본헌병대가 들이닥쳤으며 회의참가자 300여명은 포위된 채 가도 오지도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일제는 반역자 이원진(李元珍)을 통해 대부분 군중들은 돌려보냈으나 중공 탕원현위서기 배치운, 조직부장 최규복, 현위 부녀주임 김성강과 공산당원인 정중구(丁重九), 김술룡(金术龙), 임국진(林国镇), 공청단원인 석광신(石光信), 손명옥(孙明玉), 김봉춘(金峰春) 등 12명은 석방하지 않았다. 뒤이어 적들의 비인간적인 고문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일제는 여성인 김성강을 보고 쉽게 입을 열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얼리고 닥치고 하는 수법은 김성강한테 통하지 않았다. 나중에 놈들은 “딸이 있는 곳만 알려주면 집으로 보내주겠다”라고 구슬렸다. 이에 김성강은 “나의 딸은 지금 산에 들어가 일본놈들을 족치고 있다. 내 딸은 언제든지 꼭 너희들을 족치러 올 것이다. 기다려보아라, 이 강도놈들아!”라는 한마디로 대답해 주었다. 이에 악에 받친 일제놈들은 김성강 여인의 손톱을 뽑는 등 갖은 악행을 다 가했으나 그한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 외 놈들은 최규복 등 혁명가들한테 채찍을 휘두르고 입에 고추물을 부어넣고 죽창으로 손톱눈을 찌르고 하면서 고문하였으나 여전히 이들을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일제놈들은 이들 12명 동지들을 생매장, 그것이 세상을 격노시킨 <8.15> 참안이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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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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