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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중국의 가장 걸출한 여성 위인- 송경령(宋庆龄)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송경령(宋庆龄-1893 년 1월 27일-1981년 5월 29일) 여사는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걸출한 여성위인으로 공인받고 있다. 송경령은 일찍 소녀시절에 중국 민주혁명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손중산을 숭배했으며 이어 손중산 선생을 따라 혁명에 투신, 근 70년간의 혁명생애동안 견정불이하고 굴할 줄 몰랐고 시종일관 중국의 노고대중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성원하고 대변하여 왔다. 한편, 부녀아동의 위생보건 및 문화교육 등 복지사업발전에도 솔선수범했고 중국의 완전통일과 세계평화, 일류의 진보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정력을 몰붓었으며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하여 중국인민 및 해외 화교들의 친절한 애대와 다함없는 존경을 받아왔다. 1893년 송경령은 상해의 한 목사 겸 실업가 가정의 차녀로 태어났다. 당시 송경령의 부친 송요여(宋耀如)는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의 선구자 손중산의 친구이자 동지었으며 역시 송경령의 첫 계몽선생이기도 했다. 송경령은 일찍 7살에 상해 중서여숙(中西女塾)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학업에 들어갔고 1907년 15살 나이에 여동생이며 후일 중화민국 대통령 장개석의 부인으로 된 송미령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간다. 미국에 도착한 송경령은 먼저 뉴저지 주 스미트 성에 있는 한 사립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이듬해 조지아 주 메이컨(Macon)시 위엄 반다르(Majesty bandareu) 여자학교 문학부에 입학한다. 이 시기 송경령은 총명하고 공부재질이 뛰어났으며 성정이 활약적이어서 학교에 많은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였다. 이 때 송경령은 중국의 신해혁명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신해혁명은 <20세 초 중국의 가장 위대한 대 사변>이라고 목청껏 환호했으며 더욱 집요하게 중국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면서 민주혁명투쟁에 투신하였다. 1913년, 문학학사 학위를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귀국을 결심, 도중에 일본에 들린 송경령은일찍부터 숭배해오던 손중산 선생을 만났으며 귀국 뒤 얼마 안 있어 손중산의 비서로 된다. 그리고 그 뒤에 있은 공동한 혁명투쟁 중에서 맺어진 깊은 우정과 감정은 애정으로 승화되었다. 하지만 가정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우선 당시 손중산의 나이가 송경령보다 27살이나 많았고 그 무슨 재벌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혁명가와의 결혼생활은 앞날의 풍파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가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경령은 갖은 경로를 통해 상해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1915년 10월 25일 도쿄에서 손중산 선생과 결혼, 스스로 안온하고도 우월하며 또한 권세가도가 있는 가정생활을 멀리하고 손중산과 함께 망명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인생을 선택하였고 손중산이 영도하는 중국민주혁명을 적극 지지하고 또한 그 혁명에 뛰어들었다. 1922년 새벽, 진형명이 손중산을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군은 당시 손중산과 손경령이 거처하는 통수부를 포격, 이 위급한 관두에 손중산은 부하들을 시켜 송경령더러 먼저 통수부를 떠다도록 하였다. 하지만 송경령은 “중국에 이 송경령이 없어서는 되지만 당신이 없으면 절대 안돼요”라고 하면서 포성이 울부짖고 화약냄새가 지독한 그 생사의 고비에서도 마지막 손중산이 안전하게 철거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 뒤에도 송경령은 손중산과 함께 이러한 위험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 혁명가 아내로서의 본분을 철저하게 지켰다. ▲ 송경령과 손문 한편 손중산과 송경령은 상해에서 이대소(李大钊) 등 중국공산당 대표 및 레닌이 파견한 특사를 여러 번 만나 그들과 교류하면서 경험교훈을 총화하면서 국공합작을 모색, 국민당 개조(改组)에 착수하였고 1924년 1월 20일 공산당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광주에서 개최된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손중산이 제정한 <연러(联俄), 연공(联共), 부조공농(扶助农工)> 이 3대 정책을 통과시켰으며 제1차 국공합작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1925년 3월 12일, 손중산이 병으로 북경에서 서거하였다. 손중산의 서거로 형언할 수 없는 비통에 잠긴 송경령이었지만 인차 이지를 찾고 일어나 손중산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제정한 3대 정책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공산당과 긴밀히 합작하면서 북벌을 지지하고 성원, 북벌군이 무한을 점령하고 수도를 무한으로 옮기자 송경령은 선견인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무한에 도착하였다. 1927년, 대혁명이 고조를 이루던 그 시기, 국민당내의 우파세력들이 손중산의 원칙과 3대 정책을 배반하고 <녕한합류(宁汉合流)> 결성해 공산당원과 기타 애국적인 진보인사들을 대량적으로 살해하자 송경령은 분개에 넘쳐 <손중산의 원칙과 정책에 대한 위반행위에 항의한다>란 성명을 발표하고 그 <녕한합류>와 결렬하면서 <잠시 은퇴>한다고 선고하였다. 그 뒤 송경령은 손중산의 유지를 받들어 보다 새로운 혁명의 길을 탐색하기 위하여 소련을 방문, 소련에서 스탈린과 기타 소련지도자들을 만나 보았으며 카리닌 부부와 깊은 우정을 맺기도 하였다. 소련에서 돌아온 뒤 송경령에 대한 국민당의 감시가 강화되자 그는 어느 한차례에 있은 담화에서 남경에 정착하라는 당국의 건의를 거절, “나의 생활은 남경에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당신들이 나의 입을 막으려면 총살하거나 감금시키는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국민당 당국의 감시속에서도 송경령은 일련의 중요한 국제반제활동에 적극 참가, 1927년 12월과 1927년 8월에 거쳐 두 번 국제반제동맹 명예주석으로 당선되었고 후에는 세계 반파쇼 위원회 주요 지도자로 선출되기도 했다. <9.18> 사변 후 송경령은 장개석의 <외적을 물리치는 욕망 앞서 국내를 안정시킨다(欲攘外,必先安内)>는 부저항 정책을폭로하는 한편 1932년, 일본군의 상해침략에 저항하는 19로군의 애국정신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여러 번 장개석을 찾아가 부저항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장개석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 송경령과 모택동 1932년 12월, 송경령은 채원배(蔡元培), 노신(鲁迅) 등과 손잡고 <중국민권보장동맹>을 결성하여 광범위한 사회활동과 각종 형식의 투쟁 및 경로를 통해 허덕형(许德珩). 나등현(罗登贤), 등중하(邓中夏), 추도분(邹韬奋), 진갱(陈赓), 요승지(廖承志)와 정령(丁玲) 그리고 구국회의 <칠군자(七君子)> 등 많은 혁명가와 애국적인 진보인사들이 감옥에서 석방되게 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좌익작가 노신 선생을 매우 관심하면서“당신의 생명은 당신 개인 것보다도 중국과 중국혁명에 속하는 것으로서 중국과 중국혁명을 위하여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이는 중국과 중국혁명이 당신을 수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늘 타이르곤 했다고 한다. <서안사변(西安事变)>이 발생되자 이 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적극 주장한 송경령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장개석을 총살하거나 다른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종말 지었더라면긍정코 더욱 수습하기 어려운 내전을 초래할 수도 있었으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일본군의 대륙침략에 부채질을 해주는 셈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결과 중국공산당과 송경령 및 동북군 장학량 장군 등의 노력으로 서안사변은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제2차 국공합작도 성사되었다. 한편 항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송경령은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1938년 홍콩에서 <중국보위동맹(保卫中国同盟)>을 결성, 각종 방법과 경로를 통해 해외 화교와 국제사회에 중국의 항전에 대해 선전하는 동시에 해외 애국적인 화교와 국제의 벗들을 통해 많은 자금과 약품, 의료기재와 기타 물자들을 모아서는 전선을 지원, 허다한 물자들은 송경령이 직접 알심 들여 배치해 항일전장에 보내진 것들이었다. 또한 많은 국제인사들이 송경령을 통해 공산당이 영도하는 항일근거지에 가 사업하고 고찰할 수도 있게 했다. 그 중에는 저명한 <서행만기(西行漫记)> 써낸 미국기자 스노가 있었는가 하면 캐나다의 유명한 외과의사 노로돔 베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의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송경령은 원 <중국보위동맹>을 <중국복리기금회>로 개칭, 사업의 기본 기점을 부유위생, 문화교육과 사회복리 등 구제사업에 두었다. 그 시기 국공내전이 일어났고 사회질서도 매우 어지러웠다. 하지만 상해에 있는 송경령은 갖은 방법으로 각종 물자와 약품 등을 해방구에 보내주는 것으로 새 중국의 탄생을 위해 탁월한 기여를 하였으며 1949년 9월 북평에서 있은 제1차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 중앙인민 정부 부주석으로 당선되었고 1952년에는 아시아 및 태평양 평화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부록: 송경령 여사 대사기 1893년 1월 27일, 상해에서 출생. 1907년 미국으로 유학. 1915년 10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손중산과 결혼. 1922년 8월 23일, 손중산과 함께 공산당원 이대소 등을 만나 국공합작 탐색. 1924년 6월 16일, 광주에서 황포군관학교 개교식에 참가. 1925년 3월 12일, 손중산이 북경에서 병으로 서거. 1926년 1월, 광주에서 열린 국민당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손중산의 3대 정책에 관련해 대회 연설, 국민당 중앙 집행위원으로 당선. 1927년 2월, 무한에서 부녀정치훈련반 개설. 1927년 7월 14일, <손중산의 원칙과 정책을 위반한 행위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당 당국과 결렬. 1927년 12월, 벨기에에서 개최된 국제반제동맹대회에서 명예주석으로 당선. 1932년 1월, 하향응(何香凝) 등과 함께 항일구국 상병들을 위해 <국민상병병원>을 건립. 1932년 12월, 채원배, 노신 등과 함께 상해에서 <중국민권동맹> 결성. 1932년 9월 30일, 상해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위원회> 극동대회를 주최, <중국의 자유와 반전쟁 투쟁>이란 제목으로 연설. 1932년 4월 20일, 하향응 등 1779명과 연명으로 <중국인민 대일작전 기본강령> 발표. 1936년 12월, <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관한 담화문 발표. 1937년 7월, 상해에서 주은래, 박고(博古)와 임백거(林伯渠) 등을 만나 공동항일에 관한 공산당의 주장을 옹호. 1938년 6월 14일, 해외인사들을 초청하여 홍콩에서 <중국보위동맹> 결성. 1943년 9월 18일, <해외에 있는 중국인 벗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발표. 1944년 3월 12일, 미국에서 있은 손중산 서거 기념대회에서 <손중산 선생과 중국의 민주>란 제목으로 강연. 1945년 9월, 중경 상청사(上清寺)에 있는 장치중(张治中) 장군의 거처에서 모택동을 만남. 1946년 7월 23일, 상해에서 <국민당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원을 제지하는 미국인민들을 옹호한다>라는 제목으로 성명 발표. 1947년 9월 16일, 국민당 당국의 <선거참가요청> 거절. 1949년 1월,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창립, 명예주석으로 당선. 1949년 7월 1일, <중국공산당에 경의를 드린다>란 글을 발표, 같은 달 7일에는 <제국주의는 물러가라!>란 제목으로 된 담화 발표. 1949년 9월, 초청을 받고 북경에서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체 회의에 참가, 회의에서 중앙인민정부 부주석에 당선. 1949년 10월 1일, 중국의 개국대전에 참가. 생략 1981년 5월 29일, 북경에서 서거 * 주 : 송경령 여사의 건국 후 대사기를 생략한 것은 민국시기의 생활을 주로 언급하기 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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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5
  • '2018 한중 설 맞이 문예야회' 2월 11일 영등포아트홀서 개최
    ▲ 사진= 2017년 한중 설 맞이 문예야회 [동포투데이] 한중포커스신문(대표 발행인 문현택)이 주최하고 서울 서남권글로벌센터(센터장 김동훈)와 민들레사랑예술단(단장 이옥희)이 공동주관하는 ‘2018 한중 설 맞이 문예야회(韓中迎春文藝晩會)’가 오는 2월11일(日) 오후 2시부터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는 중국 국가1급 배우 이옥희 단장을 비롯한 민들레사랑예술단 단원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노래, 합창, 춤, 코미디 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윤수현, 성민호 등 한국 초대 가수들의 화려한 공연으로 3시간 동안 펼쳐지게 된다. 주최측인 한중포커스신문 문현택 대표는 “이번 행사는 한중간의 우호증진과 한중동포간의 화합 및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위한 장을 마련하고, 특히 2018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기 위한 일환으로 마련하게 되었다”면서 “이 행사가 한중간의 문화예술교류와 재한동포사회의 설 맞이 문예프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사회 각 계층과 동포사회의 성원과 적극적인 지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행사문의 : (한중포커스신문) 02-848-0051 / 010-7663-7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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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4
  • 골드만삭스, 중국 경제 ‘스위트 스폿’ 접근
    [동포투데이]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드류 틸튼(Andrew Tilton)은 얼마 전 베이징에서 거시경제관리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중국의 생산은 잠재 생산 수준에 근접했고 인플레이션율은 목표 인플레이션 수준에 근접해 중국 경제는 경기 호황 시기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매우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망(新華網)에 따르면 앤드류 틸튼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글로벌 거시포럼 중국 2018’ 행사에서 지난해는 중국 경제가 매우 좋았던 해로 경제 성장이 가속화한 동시에 대출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됐다고 말했다. “1~2년 전에 많은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은 중국의 부채 문제를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 증가율이 둔화되어 중국의 부채 리스크가 더욱 제어 가능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1년 중국은 일련의 긴축정책 배경에서 비교적 빠른 성장을 실현했다면서 이런 긴축정책은 주로 △그림자금융 등 분야에 대한 금융 감독관리를 강화해 전체적인 대출 증가율을 억제한 점 △1선 도시 부동산 시장을 통제해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을 억제한 점 △공급측 구조개혁을 실현해 PPI(생산자물가지수)의 상승을 추진했지만 더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압박이 나타나지 않은 점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2018년을 전망하면서 앤드류 틸튼은 중국의 긴축정책은 대부분 그림자금융이나 환경오염 등 분야 감독관리 정책의 긴축이지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의 긴축이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와 내년의 세계 경제성장률을 각각 4.1%와 4%로 예측했다. 그 중에서 선진국의 올해와 내년 2.4%와 2%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고, 신흥국의 올해와 내년 5.5%와 5.6%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각각 2.8%와 2.2%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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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4
  • "한정자 작곡집 1" CD 출판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한정자 작곡집 1" CD가 길림민족록음록화출판사에 의해 출판 발행됐다고 현지 언론 연변일보가 보도했다. 작곡집에는 '떠난 사람 그리워' 등 한정자가 작곡한 15수의 노래가 수록됐다. 그중 '떠난 사람 그리워'는 오래만에 다시 연변을 찾은 권명 가수가 불러 인터넷 조회수가 8일 만에 12만명을 돌파했다. 김순희가 부른 '당신이 가는 길에'와 '그리운 내 어머니'는 각각 성음악창작콩클 2등상과 전 주 여성작곡가 창작콩클에서 우수작곡상을 수상했다. 자수성가형 조선족 중견 작곡가인 한정자는 1954년 2월 중국 길림성 안도현에서 출생했으며 1982년 길림사범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연변음악가협회 이사,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사무국장이며 작곡활동을 꾸준히 견지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한정자 작곡집"(카세트 1996), "한정자 작곡집- 청소년 애창가요 30수"(CD), "한정자 작곡집- 유치원, 소학교(초등학교) 노래 24수"(CD) 등이 있다. 대표곡으로는 동요 '눈이 온다야', '다리 하나 놓자야' 등과 성인가요 '당신이 가는 길에', '그리운 내 어머니', '가고 싶은 내 고향' 등이 있다. 한편 이번에 출판된 작품집의 시리즈로 다음달 "한정자 작곡집 2" CD가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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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4
  • 4000년 사상 중국의 제1 미녀 - 쥐징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최근 일본 매체가 <중국의 제1 미녀>를 선정, 놀랍게도 그 제1의 미녀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했던 판빙빙(范冰冰)이나 장즈이(章子怡)가 아닌 신세대 중국 소녀우상단체로 불리는 SNH48의 쥐징이(鞠婧祎)었다. 중국청년망(中國靑年網)에 따르면 일본 매체는 <중국 4000년만에 제1의 미녀 탄생(中国4000年第一美女诞生)>란 제목으로 중국 소녀단체 (SNH48)의 쥐징이를 고도로 평가, 그녀는 일본의 많은 포털 사이트들이 다투어 게재하는 검색 1번지의 인물로 되었다. 쥐징이는 의 2기생으로 SNH48가 진행한 제1기 미녀선발에서 제4위를 한 적이 있다. 한편 일본의 많은 네티즌들은 “쥐징이의 미모는 일본의 시라이시 마이를 훨씬 초과한다”라고 평가하면서 이번에 일본 매체가선정한 쥐징이의 표준을 보면 아시아 국가의 심미관이 미소녀를 위주로 하는 경향으로 되고 있으며 우상관념 역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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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3
  • 연변부덕, 해외유학파 수비수 왕멍(王猛) 영입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일, 시나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시즌 중국축구 슈퍼리그에서 강등한 연변부덕 FC가 해외유학파 수비수인 왕멍(王猛)을 영입, 왕멍의 이적을 두고 최근 연변부덕구단과 수저우덩우(苏州东吴)구단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이미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다. 장수 쉬저우(江苏徐州)가 고향인 왕멍은 1993년 3월 생으로 신장이 1.85미터이고 체중이 65킬로그램으로 선수위치는 중앙수비이다. 2011년 중국 국가청년팀에 입단, 그 해에 포르투갈 유학파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유학기간 포르투갈 프로리그에 출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갑급리그시 한동안 연변장백호랑이팀 전포를 입은 적이 있던 왕멍은 그 뒤 선양둥진(沈阳东进)과 수저우둥오 등 클럽을 거쳐 다시 연변 FC에 가맹하게 되었다. 왕멍은 신체소질이 뛰어나고 억세고도 용맹하며 단체배합의식 또한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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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3
  • 트로트계 엑소 신유 ‘백년손님’ 출연…매력남으로 여심 저격
    ▲ 사진= ‘SBS 백년손님’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트로트계의 엑소’ 가수 신유가 ‘SBS 백년손님’에 출연한다. 3일 ‘SBS 백년손님’에는 ‘트로트계의 엑소’ 가수 신유가 출연해 여심을 저격한다. 훈훈한 외모로 ‘어머님들의 아이돌’로 불리는 일명 ‘트로트계의 엑소’ 가수 신유가 결혼 29일차 사위로 백년손님을 찾았다.신유의 등장에 ‘백년손님’ 스튜디오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특히 ‘백년손님’ 아내들의 반응이 남달랐다. 훈훈한 외모로 여심을 저격하는 신유의 모습에 아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신유는 스튜디오에서 본인의 히트곡 ‘꽃물’을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훤칠한 키와 아이돌 비주얼, 뛰어난 무대 매너까지 갖춘 완벽한 무대에 아내들은 연신 ‘신유’를 외치며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신유는 “아내분들을 직접 뵈니 실물이 훨씬 예쁘신 것 같다”고 말해 스튜디오의 아내들을 설레게 만들기도 했다.또한 녹화 내내 아내들은 신유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MC 김원희가 “신유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부가 궁금하다”고 하자 웨딩사진을 공개하고, 아내들은 “우효광 같다”, “신랑이 너무 잘생겼다”며 신부 대신 신유 칭찬 일색이었다. 이에 MC 김원희가 “신유 말고 아내를 좀 보라”고 말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트로트계의 엑소’ 신유가 ‘백년손님’ 아내들의 여심을 저격하는 모습은 3일 토요일 오후 6시 20분 '백년손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연예·방송
    2018-02-03
  • 유벤투스, 북한의 호날두 한광송에 눈독
    ▲ 북한의 호날두로 불리는 한광송 선수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리지뉴스(荔枝新闻) 등 해외 여러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이탈리아 축구 갑급리그의 유벤투스가 북한의 호날두로 불리는 한광송을 눈독 들이고 있다. 일전 한광송의 매니저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벤투스는 확실히 한광송이 소속되어 있는 칼리아리클럽과 협상을 진행했으며 이 두 클럽은 얼마 뒤 재차 만나 한광송의 미래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협상단판 중 한광송 선수를 두고 제기된 난제가 많기에 현재 쌍방은 잠시 그의 이적문제를 방임하고 있지만 다시 만나 냉정하게 협의할 것이며 이는 겨울철 이적기한의 마지막 날 전으로 결정될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한편 매니저에 따르면 지난 수개월간 한광송은 카리아리 클럽과 경기장에서 유쾌한 나날을 보냈으며 클럽주석 줄리니(Giulini) 또한 북한에서 온 이 사내 아이를 매우 좋아하고 아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광송의 매니저는 “만약 유벤투스가 그를 진짜 눈독 들인다면 다만 그에 대한 호기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카리아리 클럽처럼 큰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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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2
  • ‘너는 내 운명’ 추자현♥우효광 부부 택배 배달부 변신
    ▲ SBS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 추자현♥우효광 부부가 택배 배달부로 변신했다. 5일(월) 밤 11시 10분에 방송되는 SBS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이하 ‘너는 내 운명’)에서 ‘추우택배’의 첫 번째 배송지가 공개된다. 추자현♥우효광 부부는 선물을 가득 챙겨 드디어 택배 배송지로 출발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캐나다-한국 국제커플이자 세 쌍둥이가 살고 있는 한 가정. 세 쌍둥이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우효광은 “(세 쌍둥이네) 아버지에게 어떻게 세 쌍둥이를 낳았는지 물어보겠다”며 욕심(?)을 냈다.추우택배 특성상 신청자의 집에 예고 없이 깜짝 방문한 추우부부는 집 문을 두드리며 “택배 왔습니다”하고 택배 배달부로 가장했다. 이 소리를 듣고 문을 연 세 쌍둥이네 아버지는 추자현-우효광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반겼다. 추우부부는 세 쌍둥이네를 위한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풀었다. 그들은 세 쌍둥이 가족이 신청한 선물 외에도 캐나다인인 세 쌍둥이네 아버지가 좋아한다는 감자탕을 준비해갔다. 이것은 바로 택배를 배달하기 전 추자현이 손수 만든 감자탕이었던 것.추자현이 손수 만든 감자탕을 먹어 본 세 쌍둥이네 부부는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며 감탄했다. “너무 행복하다”며 감자탕 먹는 세 쌍둥이네 아버지와 감자탕 좋아하기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효광은 감자탕 두 그릇을 비우며 때 아닌 먹방 배틀을 보였다는 후문. 이를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추자현은 “너무 민망했다”며 “(감자탕을) 선물 주려고 가지고 온 건데 (우효광이) 자기 집에서 먹듯이 먹는다”고 말해 폭소케 했다. 택배 배달부로 변신한 추우부부의 이야기는 5일(월) 밤 11시 10분에 방송되는 ‘동상이몽 시즌2 - 너는 내 운명’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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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2
  • 日오키나와 의회, '후텐바 비행장' 사용중지 미군에 요구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지난 1일, 일본 오키나와 의회는 오키나와 후텐바 비행장의 미군비행기가 현재 자주 경내에 있는 학교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면서 이 비행장 사용중지를 요구하는 항의결의와 의견서를 통과시켰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결의와 의견서는 일본수상 아베와 주일 미국대사로 있는 하제티(Hagerty)게 전달됐고 “미군이 지난 해 12월과 금년 1월에 있은 헬리콥터 추락사고에 대한 충분한 해석이 없이 일방적으로 계속 비행훈련을 하고 있으며 현재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해군육전대의 철거를 독촉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일본 오키나와 기노와시 시립 후텐바 제2소학교 상공을 날던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에 이어 지난 1월에도 오키나와 우루마시 요미탄 촌 부근에서도 헬기 한 대가 고장으로 강제 착육을 한 사고가 있었다. 오키나와 의회의 결의와 의견서는 2019년 2월 전으로 후텐바 비행장의 일체 운영을 마쳐야 한다고 강조, 이를 두고 오키나와 현의 지명인사 오나가 타케시는 “일미 양국정부는 반드시 결의와 의견서에 반영된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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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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