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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사옹위로 연변축구의 명예 지키라!
    이제 하루만 지나면 올해 2013년도 끝나게 된다. 아울러 불행하고 불안했으며 또한 굴곡이 많았던 연변축구에 대한 총화도 한단계 마무리되고있다. 연변축구는 이제 곧 새로운 한해 2014년을 맞이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즌 여러가지 굴곡과 풍파로 연변축구가 강등의 변두리에 이른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런 환경속에서도 우리의 연변축구는 새로운 스타트를 떼기 위한 그 토태를 잘 닦았다고 할수 있다. 거기에 “범(虎)의 감독” 리호은이 새롭게 사령탑을 잡았고 축구명장 고종훈을 비롯한 김광주, 김청 등 알준한 축구엘리트(精英者)들로 감독진을 구성하고있다. 또한 원 연변팀의 로장 한광화를 포함한 적지 않은 연변적선수들이 현재 다시 팀과 합류하고있다고 하니 좋은 징조가 아닐수 없다. 총적으로 새해시즌엔 올해시즌과 같은 불행은 재현되지 않을듯싶다. 이는 최근들어 연변장백호랑이축구구락부의 우장룡주임이 재삼 강조하고있는 얘기이다. 한편 우장룡주임을 비롯한 구락부 지도진은 얼마전 장춘에서 연변축구홍보활동을 펼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선수들에 대한 대우도 개선될 전망이고 연변축구에 대한 팬들의 시각도 기대쪽으로 더욱 달라지고있는 상황이다. 그뿐이 아니다. 홈구장이 연길도 다시 옮겨지고 로인팬들에 대한 티켓우대 등으로 관중수도 대폭 증가될 전망이다. 이제 남은것은 감독진에서 어떻게 기전술체계를 수립하고 변화를 시도하며 선수들이 어느 정도로 감독진포치를 관철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는가 하는것, 거기에 재삼 언급하고싶은것이란 결사옹위정신으로 연변축구의 명예를 지키라는 한마디이다. 그리고 새해시즌엔 갑급리그의 “복병”으로 떠올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해란강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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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30
  • 축구공 하나가 지구촌을 달군다 ( 1 )
    글쓴이 김원범선생은 중국조선족 축구발원지인 룡정시 덕신향에서 출생했다. 축구에 남달리 관심이 많은 그는 축구에 관한 글을 구김없고 짜임새있게 쓰기 위하여 국내는 물론 조선, 한국에 까지 가 어려운 답사를 하여 소중한 사진과 문헌자료들을 수집하기도 한 사람이다. 2006년 18회 월드컵 축구선수권대회를 맞으면서 연변인민출판사 《청년생활》편집부의 위탁을 받고 쓴 “옛날 덕신은 뽈개지 천하였다”라는 실화는 중국조선족으로 축구에 관한 문장에서 첫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시점에서 그가 보내온 “축구공 하나가 지구촌을 달군다”는 글을 몇기에 나누어 싣는다<연변일보> 월드컵축구선수권대회가 오라지 않아 열리는데 월드컵축구선수권대회에 대한 그 유래와 래년이면 몇차례 경기대회라는것조차 모르는분들이 매우 많다. 필자는 축구애호가와 설문조사를 해보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물론 알아도 좋고 몰라도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월드컵을 즐겨하는 축구애호가라면 최소한 축구산생과 월드컵축구의 그 유래, 몇차례 경기대회라는 최저상식만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인류가 그토록 즐겨하고 심금을 울리는 월드컵축구선수권대회는 어느덧 84년이란 세월이 흘러 20회를 맞이하게 되였다. 축구의 산생과 흘러간 축구의 그날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과 축구팬들에게 일정한 도움이 되고저 필자는 이 글을 쓰게 되였다. 지구촌을 달구는 축구는 7~8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진행되던 “화페스톤”(발로 차는 놀이)이라는 놀음에서 유래되였다. 이 놀이는 이딸리아 로마에 전해져 무사들의 훈련에서 리용되고 군사체육으로 발전하였으며 로마사람들이 영국을 침략하였을 때 영국에도 전해지게 되였다. 그후 11세기 단마르크가 영국을 점령하였다가 물러간후 그들의 폭정에 대한 반발로 영국인들이 단마르크의 두개골을 가지고 화페스톤놀이를 함으로써 그것이 영국의 전 지역에 퍼졌으며 15세기말경 이 놀이를 축구라고 부르게 되였다. 1823년 축구가 투구와 갈라진후 1848년에 통일적인 축구경기규칙을 만들려는 기도들이 있었다. 잉글랜드와 그 주변에 있던 11개 축구단체들과 애호가들은 1863년 10월 26일 세계최초의 민족축구협회인 잉글랜드축구협회를 조직하였고 이해 12월 8일에는 14개 조항으로 된 첫 축구경기규칙을 만들었다. 이때로부터 사람들은 1863년을 현대축구가 발생한 해로 인정했고 1870년부터 주변의 여러 나라들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처음 축구공이 없자 돼지방광(오줌깨)에 공기를 주입시켜 뽈을 찬 시작은 1872년이였으며 꼴문대 산생은 기독교문을 향해 꼴을 넣는 시행이 발전하여 오늘날 꼴문대가 산생되였던것이다. 꼴문대의 그물은 어떻게 나왔는가? 경기도중 두팀이 “꼴이 들어갔다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대판싸움이 벌어졌다. 두팀선수들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한 어부가 참다못해 자기 집에 있던 고기그물을 갖고 와 꼴문대에 씌워놓았다. 그랬더니 들어간 공이 빠지지 못했다. 그것이 발전하여 오늘날 축구, 배구, 탁구, 수구, 롱구 등 스포츠운동에 사용하게 되였던것이다. 그 옛날이나 지금도 축구경기도중에 두팀이 싸우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지금은 심판이 레드카드나 옐로카드를 꺼내들고 규칙위반을 선언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심판원이 목이 빠지도록 소리쳐도 두팀 선수들의 싸움을 말려내지 못했다. 여기에 지금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면 텔레비죤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축구경기를 보던 한 할머니는 선수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고 “다 큰 청년들이 뽈 하나를 놓고 왜 싸우오. 국가에서 매 선수들한테 뽈을 사줄거지”라고 혀를 끌끌 차더란다. 이는 축구를 모르는 할머니의 말이다. 두팀 선수들의 싸움은 어떻게 말려내는가? 사정을 두지 않고 싸우는 장면을 보고있던 한 관중이 밸이 난김에 입에 손가락을 넣고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심판원은 물론 싸우고있던 선수들도 싸움을 멈추고 괴상한 소리나는쪽을 모두 바라보았다. 그 괴상한 소리가 발전하여 오늘날 모든 스포츠운동에서 사용되는 호르래기로 되였던것이다. (1)
    • 스포츠
    2013-12-25
  • 연변축구의 "3두마차"
    우장룡주임은 《새 시즌(赛季) 연변팀은 당년 중국축구무대를 주름잡던 갑A시절의 분위기로 돌아가 더욱더 많은 축구팬이 연변팀 경기장으로 돌아오고 사회 각계의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것이다》고 밝혔다.연변에는 과외축구선수가 약 4000명 내지 5000명 있고 3월부터 11월말까지 날마다 과외축구경기가 있다. 이런 과외경기를 지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참여하게 할것이다. 더욱 많은 축구팬들이 경기장에 모이게 하겠다. 현재 연변팀 홈장 입장권은 20원, 매껨 경기의 수입은 단 3, 4만원뿐이다. 우리는 연길시정부와의 교류를 통해 홈경기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즉 입장권은 상징적인 가격으로 정하고 여기서 생기는 부담은 연길시정부에서 민심공정의 일부로 지출하게 된다. 더욱 많은 학부모들이 축구를 관심하게 할것이다. 연변을 보면 학교에는 교내련맹경기, 현시에는 학교간 련맹경기, 주에는 현시 련맹경기 즉 3급련맹경기가 있다. 우리는 연변주교육국과 협상해 교육요강에 따라 축구중점학교들에서는 날마다 훈련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다. 축구보급 전통, 중점 학교들에서는 매일 한시간을 내서 훈련을 하게 된다. 또한 올해는 선수와 팀이 새로운 형상으로 사회와 가까와지겠다. 사회공익활동을 배치하고 팬들과의 교류도 많이 하겠다. 공익활동이 일반백성가정, 기업과 학교에 들어가게 하겠다.국내 기타 지역에서도 연변축구의 분위기를 형성하겠다. 현재 북경, 천진, 청도, 상해, 심양은 우리의 《홈장》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곳의 축구팬은 기본상 우리 조선족이다. 연해지역에는 조선족이 많이 널려있다. 우리는 올해 이런 곳에 축구팬협회를 세우고 조직적으로 개발하겠다. 또한 그곳에 널려있는 조선족 사업가, 기업가들의 적극성을 발굴할데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다.언론과의 교류를 많이 하겠다. 언론을 동원하는것이 가장 큰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이다. 감히 언론과 교류하는 구락부, 매체에 향해 개방하는 구락부로 되겠다. 브랜드 우장룡주임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함금량을 더 높이면 자연스럽게 정부와 기업의 지지를 더 받을수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연변팀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말할 때 세가지 원칙은 반드시 견지할것이라고 밝혔다.즉 《연변팀은 연변의 홈경기장을 떠날수 없고 팀명칭에 연변이란 두글자를 빼서는 안되며 팀의 기전술특점면에서 연변팀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를 지키는것이다.목전의 직업축구는 《정부주도, 구락부주최, 시장운행》의 3원구조로 진행되는데 대부분 구락부에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있다. 《선수개인의 리익도 중요하지만 구락부, 투자자, 연변의 축구전통 계승발양이 더욱더 중요하다. 력사에 책임지고 연변축구에 책임지며 단기적인 투기는 하지 않을것이다.》슈퍼리그(超級联赛)진출도 중요하지만 당면 제일 중요한것은 실제에 립각해 더욱 적절한 계획을 세우는것이다. 새해에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청해 연변팀에 대해 진맥하고 확실한 중장기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연변팀은 연변의 본토감독중 능력과 영향력이 있는 감독들을 초빙해 여러해동안 구락부측을 곤혹스럽게 하던 감독문제를 해결했다. 현재의 연변팀 감독진은 매우 특색이 짙고 응집단결된 감독대오라고 말할수 있다. 또한 연변축구의 또 하나의 브랜드인 갑A시절의 명장들을 후비력량 감독진에 포섭했다. 연변축구팀의 개방도를 확대하겠다. 지금 연변팀은 모두 조선족이다. 고종훈시대의 황경량, 좌조개, 왕광위, 송소우 모두 연변팀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한족선수들이다. 고유한 전통도 중요하지만 전통속에서도 혁신해야 한다. 올해 가능하게 국내 기타 구락부 청년팀에서 출중한 선수 3~5명 받아들일것이다. 시종 정부투자를 주요 자금줄로 하는데 앞으로는 변해야 한다. 투자기업이 축구를 통해 리득을 볼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을 통해 리득을 볼수 있게 정책적인 우대를 해주어야 한다. 선수양성 우장룡주임은 목전 연변팀의 수준은 갑급리그에서 중류수준이라고 자아평가한다. 우리는 슈퍼리그진출보다는 목표를 청소년선수양성에 두고 이에 모를 박을것이다. 우리 연변팀은 자기만의 특점과 풍격이 있기때문에 반드시 자기만의 후비력량을 키워야 한다. 목전 연변축구구락부의 양성기지인 연변체육학교에서는 U13, U15, U17, U19 팀 선수들을 각각 30명좌우씩 보유하고있는데 이는 매우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주류후비력량이다. 현재 연변에는 청소년선수가 600~700여명이 있다. 이들은 연변축구 미래의 희망이다. 우리는 이들을 기반으로 연변에 진정으로 축구선수를 생산하는 생산라인을 구축할것이다. 일전 구락부는 연변주 당위와 정부에 보고를 올려 금후 3―5년사이 정부의 투자규모를 3500만원 좌우로 하기로 기본상 결정됐다.구락부와 체육학교는 모두 정부에서 꾸리는것이다. 체육국당위에서는 명년부터 구락부자금에서 10% 좌우 내서 후비력량강화에 쓰게 했다. 현재 연변팀에는 많은 젊은 선수들이 들어왔다. 우리는 련맹경기를 통해 후비력량을 강화할것이다. 나젊은 선수들이 련맹경기에 참가하는것을 보면 어린 선수들도 동력이 생길것이다. 이는 반드시 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고종훈감독에게 젊은 선수들에 대한 양성을 맡겼다. 이 몇년간 연변팀에 하프선(中끝) 선수가 모자라지 않았던것도 고종훈의 영향력때문이라고 생각한다.올해 우리는 U11후비력량을 준비하고있다. 대략 40명인데 이제 겨울철 훈련을 할 예정이다. 명년에는 조선에 보내거나 한국에 보내서 외지훈련을 하게 할 생각이다. 연변체육학교는 식비외에 학비가 없다. 가능하게 국내 유일무이일것이다. 이제 명년 이때쯤이면 신축체육학교가 완공되는데 그때면 조건도 좋아질것이다. 감독양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새시즌에 우리는 리호은, 고종훈 등 감독을 영입했고 김청을 파견해 공부시켰다. <길림신문>
    • 스포츠
    2013-12-07
  • 연변팀 2014 시즌 경비 3500만원
    지난 시즌에서 한경기 앞당겨 갑급리그잔류를 확정지은 연변장백호랑이팀는 2014시즌을 앞두고 일전 장춘시를 찾았다.주 체육국 부국장이며 연변축구구락부 주임 우장룡, 고종훈과 리광호는 장춘시 축구팬, 매체들과 한자리에 앉아 연변축구에 대해 담론했다. 우장룡의 소개에 따르면 다음 시즌 연변팀의 투입경비는 사상최고인 3500만원에 달할것이라고 하는데 과거 연변팀의 경비는 1500만원-2000만원이였다고 한다. 다음 시즌에서 연변팀의 홈경기는 연길에서 치러지게 되며 축구팬들이 무료로 입장할 가능성 또한 열려있다고 한다. 향후 연변팀은 조선족선수를 위주로 하는 팀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인재양성에 주력하게 될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연변오동팀에서 각기 3번, 22번 선수로 활약하던 리광호와 고종훈은 현재는 선수가 아닌 연변장백호랑이팀 감독진의 일원으로 다시 고향축구를 위해 사업하게 되였다.이날 장춘 축구팬, 매체들과 마주 앉은 고종훈은 다시 연변팀에 돌아온만큼 앞으로 어떤 면에서든지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했다. 연변팀 코치를 맡게된 리광호는 올 하반년 팀의 상금제도를 개변했다고 하면서 팀은 하나의 통일체이기때문에 앞으로는 경기를 뛰지 못하고 훈련만 하는 팀원들도 상금을 향수받을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연변TV
    • 스포츠
    2013-12-06
  • 연변팀 정식 집결 연변적선수들도 복귀훈련 돌입
    【동포투데이】스포츠= 일전 연변장백호랑이팀 내부조절과 인사변동이 확정되후 명년시즌에 대비한 동계훈련에 들어갔다. 이번 훈련에 적지 않은 연변적선수들이 복귀해 참가했다.주 체육국 부국장 겸 연변장백호랑이구락부 주임 우장룡의 소개에 의하면 당면 구락부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 바로 선수들을 남기거나 영입해 조절훈련을 진행하는것이라고 한다. 한달간 휴식을 거쳐 12월 2일 연변팀은 다시 집결됐으며 선수영입계획도 가동됐다. 우장룡은 ‘11월말, 이호은감독이 한국에서 리그전을 관람하며 적절한 선수들을 물색했으나 아직까지 확정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목전 연변팀선수들은 매일 연변체육관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12월 4일 오후 기자는 연변체육관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연변장백호랑이팀 선수들과 코치들을 만났다. 이호은감독외 조리감독들인 김광주와 이재호가 현장에서 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훈련이 질서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조리감독 김청은 감독양성반에 참가한 원인으로 훈련에 참가하지 못했고 조리감독 고종훈은 사유로 훈련장에 오지 못했으며 대신 이적소문이 있던 지충국과 연변적선수들인 한호와 한광화의 모습을 모두 볼수 있었다. 이호은의 소개에 의하면 훈련대원 31명중 연변팀에서 원래 뛰던 선수들외에도 연변대학축구팀 선수 4명과 연변적선수 2명이 훈련에 참가했다고 한다.연변장백호랑이팀은 12월 15일쯤 해남도로 3주간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뒤이어 곤명에서 음력설까지 훈련을 진행한후 음력설후에는 한국으로 전지훈련에 떠날예정이다. / 김자
    • 스포츠
    2013-12-06
  • [연변축구] 재미있는 축구, 환상적인 플레이
    □ 김철균【동포투데이】스포츠= 축구는 스포츠이다. 스포츠이기에 경쟁력이 심하고 격렬하며 또한 집단적 응집력이 강하게 표현된다. 한편 축구 역시 문화적 범주에 속하기에 재미가 있어야 하고 독특한 관전적 매혹으로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최근 연 간 FIFA(국제축구연맹)의 랭킹을 보면 유럽축구가 남미축구보다 훨씬 앞서고 있으며 적지 않은 팬들은 유럽축구를 더 숭배한다. 하지만 나는 자로 잰듯 너무 째이고 너무 승부에만 집착하는 유럽축구보다는 보다 활발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남미축구가 더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에서는 또한 기술력을 앞세우는 일본축구보다는 강한 정신력과 투지를 선호하는 한국축구에 아무래도 관심이 더 간다. 이는 결코 연변축구의 풍격과 플레이가 한국축구와 유사하기 때문에서만이 아니다. 그리고 항상 관심이 가는 연변팀의 풍격과 플레이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갑A시대의 연변팀 최정예 포메이션 갑A시대에 연변팀한테는 여러 가지 평가가 많았다. “강팀한테는 약하지 않고 약팀한테는 강하지 못하다”, “국가대표팀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팀은 연변팀이다” 등이였는가 하면 대명사도 많았다. “동북호랑이”, “거물사냥군” 등이었다.당시 연변팀은 강팀한테는 주눅이 들거나 보수적이지 않고 대담히 맞공격을 들이대 상대방으로 하여금 도리어 주눅이 들게 할 때가 많았다. 반대로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많은 병력을 공격에 침투하다 보니 수비에 허점이 생겨 상대방의 역습을 당해 자주 패하기도 했다. 결국 상대방의 밀집방어를 뚫을 만한 “해결사”가 없었기에 패했어도 그 내용만은 아주 이채로왔다. 돌파하고 침투하고 “물고 늘어지고” 하면서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느 한 경기에서 연변팀이 꼴을 넣자 관중석의 한 여성은 흥분된 나머지 앞에 앉은 면목도 모를 한 남정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고종훈이 미드필더선에 버티고 섰다 하면 과연 근사한 “중원 사령관”이었다. 그만큼 그가 공을 잡았다 하면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은제비” 방근섭과 “변선날개” 천학봉의 측면 돌파는 축구보다는 예술에 가까왔다. 그외 “침투첨병” 김청과 “비밀무기” 황동춘, 정동칠의 플레이 등은 짜임새가 있는 구단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인기가 따로 있으면서도 거대한 응집력을 발산하는 움직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갑A시대 연변팀의 최정예 포메이션을 짜보면 다음과 같다. 갑A시대 연변팀의 최우수포메이션442포메이션 꼴키퍼: 블라이마(고수춘) 수비: 김광주, 이광호, 이홍군(황경량), 장경화(왕광위)미드필더: 고종훈(이시봉), 현춘호(이찬걸), 졸라(유봉), 천학봉(방근섭)스트라이커(前锋) : 박문호(황동춘), 정동칠352포메이션꼴키퍼 : 블라이마(고수춘)수비: 김광주, 이광호, 이홍군(장경화, 황경량)미드필더: 김청(왕광위), 고종훈(이시봉), 현춘호(리찬걸), 졸라(유봉), 천학봉(방근섭)스트라이커: 박문호(황동춘), 정동칠 당시 연변팀은 수비에서 공을 차단한 후 양측 변선의 방근섭 혹은 천학봉한테 패스하고 이어 공을 잡은 후자는 빠른 속도와 화려한 드리블로 돌파하다가 센터링(传中), 그러면 흔히 고종훈, 졸라와 황동춘이 멋진 배합을 선보이며 득점에까지 이어진다. 경기내용이 아주 이채로와 자주 관중들의 탄성이 터진다. 갑급시대의 연변의 최정예 포메이션442포메이션꼴키퍼: 윤광(지문일)수비: 한청송, 고기구(이민휘), 배육문(최민), 한광화(강홍권,)미드필더: 김청(레비), 박성(김영준, 지충국, 최영철), 천학봉(최인·김경도·한남용 등)스트라이커: 루뚤라(이재민 등) 461포메이션꼴키퍼: 윤광(지문일)수비: 한청송, 고기구(이민휘 등), 배육문(최민, 이현 등), 한광화(백승호, 강홍권·오영춘 등)미드필더: 김청(레비), 지충국, 박성(김영준), 천학봉(한남용), 최인, 김경도(김기수)스트라이커: 루뚤라(이재민)갑급시대의 연변팀은 일찍 갑A시대의 현춘호, 유봉, 천학봉, 김청, 정동칠 등 선수들이 참여하다가 퇴역, 후배들에게 훌륭한 전통풍격을 전수해 주는 등 많은 기여를 했다. 현재 갑급시대 연변팀 선수들을 보면 이전 갑A시대에 비해 발기술이 출중하고 플레이도 화려한 반면 아직 고종훈같은 든든한 미드필더 핵심은 나타나지 못하고 정신력과 투지면에서도 어딘가 아쉬움이 있다는 분석이다.총적으로 축구에 있어서 경기성적과 승패여하가 아주 중요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내용 또한 절대 홀시할 수 없는 고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유럽축구를 보면 아직도 관중수가 많은 건 사실이나 이전처럼 경기장이 폭발하도록 꽉 차는 그런 초성황을 시대는 아마도 지난것 같다. 이는 단지 최근 몇 년 간의 유럽경제의 불황으로 초래된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여하튼 우리 연변팀도 득점력을 높이는 한편 제2의 고종훈, 천학봉, 박성과 같은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기 바란다. <연변일보 종합신문 김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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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2-01
  • [연변축구]제로톱 포메이션과 연변팀 기본특성
    제로톱 포메이션과 연변팀 기본특성□ 김철균【동포투데이】스포츠=지난 19일 저녁 홍명보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아랍추장국련방의 두바이에서 있은 로씨야축구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1 : 2로 패했으나 경기내용상에서는 55% 이상의 공점유률을 차지하는 등 훌륭한 스피드를 선보였다. 경기에서 한국은 제로톱(无前锋) 포메이션으로 중원에 많은 병력을 배치해 공격과 수비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제로톱은 국내외 축구감독들이 흔히 구사하는 포메이션이 아닌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홍명보감독은 한국인의 장단점과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특성에 맞춰 이한 포메이션을 구사한것이 분명한것 같다. 혹시 이것이 시험적일수도 있지만 아주 그럴듯한 착상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로톱 포메이션이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에도 적용되지 않을가 고민해봤다.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이 한국인과 연변조선족들은 동질감이 짙다. 특히 축구에서는 완강하고 순발력이 삐여난 특점을 갖고있다. 반면에 약점도 있다. 축구에서 보면 상대방 문전에서의 꼴결정력과 수비선에서의 대인마크능력(연변 본토선수들이 더욱 로출됨)에서 허다한 차질을 빚어내고있다. 우선 얼마전 한국 K리그 클래식에서 보면 1위를 기록한 울산현대팀이 60꼴을 기록한 반면 27꼴을 허락했으며 2위인 포항스틸러스도 59꼴 성공에 37꼴 허락이였다. 이는 올시즌 중국 광주항대의 득실차이(득 78, 실 18)에 비하면 득점이 적고 실점이 많았다. 이는 한국선수진영이 스트라이커선과 수비선이 약하고 늘 불안하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한국인들과 성격, 체력 등 면에서 동질성이 많은 연변팀 선수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시즌 연변팀은 42꼴을 성공한 반면 52꼴을 허락했다. 득실면에서 더욱 – 10꼴로 큰 차이를 보이였다. 경기에서의 포메이션 구성은 본팀 선수들의 특장, 감독의 기전술 및 상대방 전력에 대한 면밀한 분석 등으로 선택되는것이 기본이다. 때문에 축구감독들은 경기마다 다른 포메이션과 기전술을 달리 구사하군 한다. 하지만 선수들의 특성에 맞는 기본적인 포메이션을 포함한 기전술이 있기마련이다. 세계축구를 리드하는 유럽과 남미의 축구를 봐도 기본적으로 특성이 있다. 즉 유럽축구는 패스를 위주로 하는 묵계적배합과 체력을 우선시하고 남미의 축구는 개인기를 내세우는 드러블 돌파 등 화려한 플레이를 잘 선보이군 한다. 리장수감독이 광주항대를 이끌 때 언젠가 필자한테 중-한-일축구를 두고 다음과 같은것을 알려주었다. “중국선수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발기술이 뛰여나고 한국선수들은 용맹성이 두드러지는가 하면 일본선수들은 패스정확도가 출중하다고 할수 있어요. 감독이란 바로 이런 특성에 따라 경기를 운영하거든요.”이는 주로 조선족선수들로 구성된 연변팀의 경기구사에도 어느 정도 계시를 준다는 생각이다. 주지하다싶이 연변팀은 중원이 강하기에 경기내용은 이채로우나 스트라이커선과 수비진이 약하기에 득점이 어렵고 쉽게 실점하는 페단이 자주 로출되군 한다. 올시즌엔 그래도 출중한 스트라이커인 한국용병 리재민이 18꼴을 성공했기에 그나마 득점이 42꼴로 되였다. 이번에 홍명보감독이 구사했던 제로톱 기전술을 연변팀도 운영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시즌초반 한국인 조긍연감독이 리재민과 김기수를 량측 변선에 세우는 포메이션을 구사해보기는 했다. 훌륭한 시도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시즌초반의 잦은 패스실수 등으로 결국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 후에 조긍연감독은 원톱으로 리재민 1명만 전방에 내세우는 451 혹은 361 포메이션을 구사했지만 톱위치의 리재민선수가 상대방 수비진에 의해 꽁꽁 묶이거나 자주 웹사이드로 판정되면서 실력발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올시즌 리재민 선수가 넣은 18꼴중 6꼴은 페널티킥으로 넣은 꼴로서 직접 상대방 수비진을 파고들며 넣은 꼴은 12꼴에 그친다. 12꼴이라면 갑급꼴잡이중 7-8위쯤이나 된다. 한편 원톱 포메이션은 기타 김기수, 지충국, 최인 등 주력선수들한테 그만큼 득점기회가 적게 생기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갑급꼴잡이 순위에서 봐도 연변팀의 두번째 꼴잡이인 김기수선수는 5꼴에 그치며 주장인 지충국도 2꼴뿐이다. 총적으로 제로톱 포메이션은 상대방한테 중점방어할 선수가 누구인지 어려울 정도로 혼란을 줄수 있으며 화력망이 많아질수 있다는 점과 중원병력이 공격과 수비에 효과적으로 참여할수 있는 우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연변팀은 리호은감독이 사령탑을 잡게 됐다. 하다면 명년시즌 경기에 따른 기전술이 매 경기마다에 주입되겠지만 연변팀 특성에 맞는 기전술운영을 주문하며 선수들의 특성과 자아축구사상을 상호결합하는 축구체계를 수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작자는 연변일보 종합신문 김철균 기자임>
    • 스포츠
    2013-11-28
  • 조선족 축구 명감독 이호은 연변축구팀 감독으로 부임
    [동포투데이=스포츠]지난 90년대 중국축구무대에서 처음으로 3-5-2 공격형 전술을 구사하면서 크나큰 돌풍을 일으켰던 이호은 감독이 2014년시즌 연변팀 사령탑을 잡게 되였다고 길림신문이 보도했다.22일 오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체육국에서 있은 소식공개회의에 따르면 2013시즌 연변팀 갑급보존을 성공시킨 이광호가 연변팀 코치로, 연변대학축구팀 감독으로 있던 이재호와 명장 김광주, 고종훈, 김청을 조리감독으로 임명하였다. 꼴키퍼감독은 이호은 감독이 결정하게 된다.1956년 3월생인 이호은 감독은 1982년 연변대학 체육학부 축구전업을 졸업한후 몇년간 용정시체육운동학교, 길림성무장경찰부대축구팀, 연변체육운동학교축구팀에서 축구지도로 있었으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길림성축구팀 감독으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갑A팀이였던 연변팀 감독으로, 1999년에는 현 연변팀 전신이였던 연변2팀을 손수 일떠세워 북한에서 1년간 페쇄식훈련을,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연변팀 감독으로 을급축구리그에 출전한바 있다. 이호은 감독은 선후로 중국축구협회에서 파견한 독일, 브라질 축구감독학습반과 중국축구협회 제1기 프로급감독학습반에 참가하였다. 2000년 중국축구협회 국제축구련맹에서 개최한 축구강사학습반에 참가해 축구강사 자격을 취득, 2008년 1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연변축구구락부 주임으로, 2011년 1월 중국프로축구 청도중능팀 한국감독 장외룡의 초청으로 통역 겸 코치로 있었다.한편, 연변주체육국당위의 결정에 따라 연변주체육국 부국장 우장룡이 연변장백호랑이축구구락부 주임을 겸직하게 된다. 연변장백호랑이축구팀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한 프로축구팀이며 97년 중국 프로리그 4위에 오르며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면서 2백만 중국 동포들의 자부심이 됐다.
    • 스포츠
    2013-11-23
  • 연변축구를 브랜드로 내세우라
    ● 사회적인 축구열형성 중요 ● 상급 해당지도층의 중시 관건중국축구 갑급리그가 지난 11월 2일, 제30라운드를 마감으로 8개월간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올시즌 갑급리그에서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은 9승7무14패로 갑급리그순위 11위를 쟁취해 갑급잔류임무를 가까스로 완수했다.최근 몇년간 연변축구는 슈퍼리그도 아닌 2부리그인 갑급권에서조차 그 립지가 크게 흔들리고있다. 지난 세기 90년대까지 중국축구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갑A의 《거물킬러》로 중국축구계에서 둘도 없는 고종훈같은 《중원엔진》을 낳았던 연변축구로 말하면 더없이 비참한 현실이다. 연변축구가 왜 이렇게 됐는가. 아니 왜 이렇게 될수밖에 없는가!이를 두고 여러가지로 분석해봤다.저조기의 주객관원인은? 첫째, 사회적으로 저조기에 들어선 축구열현상이다. 이는 주객관적으로 그 원인이 있다. 객관적인 원인이라면 현재 연변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축구열이 저조기에 들어섰다. 그리고 연변의 축구팬들은 축구감상수준이 아주 높다. 그들은 연변축구는 물론 중국의 슈퍼리그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축구에서도 감상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젠 축구팬들은 유럽 명구단인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 혹은 유럽챔피언스리그를 보면서 축구를 담론한다. 지난 세기 80-90년대 TV의 생방송이 잘되지 않던 시기와는 판판 다르다. 그외 최근 몇년간 연변축구의 홈장이 연길로부터 룡정으로, 룡정에서 다시 도문으로 이렇게 수차 바뀌면서 관중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만약 홈장이 계속 연길로 선정됐더라면 이 정도의 관중수는 아닐것이다. 우선 연길은 큰도시이고 인구도 룡정이나 도문에 비해 훨씬 많은가 하면 연길을 중심으로 거리상 룡정, 도문, 왕청과 안도 등지의 축구팬들이 집중되기 편리하다.다음 주관적원인이라면 최근 몇년간 연변축구구락부의 지도층과 감독진이 자주 교체되면서 혼란적국면이 조성된 한편 구락부의 이미지에 여러 가지로 손상을 주었다고 할수 있다. 특히 구락부일군들이 언론인 및 축구팬들과의 여러가지 의사소통이 미흡한 결과 사회상에서는 이러저러한 《골목뉴스》가 란무했다.이리하여 연변축구에 대한 사회상의 관심도 역시 식어가는 현상을 자주 초래했다.지도층의 중시부족 《쟁점화제》축구발전은 해당 지도부문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연변축구구락부처럼 반행정식, 반시장화식의 구락부로 놓고볼 때 더욱 그러할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급 해당 지도층은 연변축구발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연변에 돈이 없어 축구발전이 더디다고 곧잘 의론한다. 그렇다. 연변경제가 상해나 북경, 광주와는 비길수도 없는 거리가 있다. 대형기업이 없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연변은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기에 상급 해당 지도층만 큰마음을 먹고 밀어주려고만 한다면 갑급구단 하나쯤 운영못할 아무런 리유도 없다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연변엔 지난 세기 90년대에 7년간이나 갑A팀을 운영한 경험까지 있다. 당시 오동그룹이 연변축구에 4년간이나 참여했다. 당시 오동그룹의 축구팀참여를 두고 여러가지 여론이 나돌았지만 이는 연변주정부가 직접 나서서 오동그룹을 설복하여 축구에 참여하게 한것이지 결코 구락부에서 그 투자유치에 성공한건 아닌것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기업인 리수림을 놓고볼 때 축구애호자가 아니다. 전문가는 더욱 아니다. 모르긴 해도 그가 중국축구계의 유명선수의 이름을 대라면 10명도 대기 어려울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변축구에 참여했다. 축구를 좋아해서가 결코 아니였다. 리수림이 당시 주정부 주요 지도일군들과 맞장구를 쳤기에 연변축구에는 큰 도움이 됐다. 이는 모두 상급해당지도층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그리고 축구팀을 밀어줌에 있어서 100%의 노력을 하는것과 60% 혹은 그 이하의 노력을 하는것은 판판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마련이다.필자가 알기만 하더라도 지난 세기 90년대 연길홈장에는 늘 정룡철, 남상복, 리결사 등 연변주급지도자들이 나타났었다. 그들은 다만 구경만 한것이 아니라 경기가 끝나면 자주 감독과 선수들을 찾아 《수고했다》면서 독려하는것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승전상금을 현장에서 풀어놓는것도 잊지 않았으며 한국인 최은택감독한테는 《연길시공민》까지 부여하는 《혜택》을 베풀기도 했다. 이리하여 당시의 경기장은 늘 흥성흥성했다. 그도그럴것이 당시 경기장상공에 울려퍼지는 취주악소리와 함께 5만명이 모여들어 관중석을 몇번씩 휘감는 환호성인파를 이루었다. 경기장 동쪽의 소나무에 《사람이 열리는 장면》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연변팀이 갑A에서 강등해 매각된뒤 다시 2004년 을급리그에 참가했을 때도 연길경기장은 평균 2만명이상의 관중이 모여들어 국내의 슈퍼리그를 뺨칠 정도였다……그러던 연변축구분위기가 최근년간 《원형체》가 알리지 않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느낌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아마도 정붕휘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와서 연변축구를 운영한다고 할 때부터 축구팬들은 《쉬쉬》하기 시작했다. 팬들한테는 연변축구를 남들한테 떠넘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을 계기로 이른바 구락부 주인자리가 자주 바뀌였고 사상 처음으로 《감독선거》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도 생기면서 연변축구의 립지가 크게 흔들렸으며 해마다 갑급잔류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양상으로 되기까지 했다.연변축구의 그 가치와 특수성연변축구는 그 력사가 길다. 지난 20세기초에 룡정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진것으로 기재돼있으니 이미 한세기에 달하는 력사와 그 전통이 있다. 우리 중국내로 말하면 대련, 천진, 북경, 상해, 광주 등 지방과 더불어 그 보급에 있어서 선각자역할을 한것이 연변축구이다. 바로 이 면에서 연변축구의 전통가치가 있다. 그리고 연변축구는 작은 지역에서,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또한 경제력이 보다 미비한 지역에서 대도시와 겨룰수 있다는것에 대단한 가치가 있다. 현재 연변과 규모가 비슷한 국내의 허다한 지구들에 별로 프로축구팀이 없다. 길림성을 놓고보더라도 장춘과 연변뿐이며 지어 프로축구가 없는 성도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연변축구는 대단하다고 할수밖에 없다. 그외 연변축구는 주로 본지방의 선수들로 구성되여있다. 본토선수들로 고향축구의 진흥을 위해 싸우고있다는 말이다. 이는 연변축구팀의 특수성이다. 이는 대부분의 《고용병》들로 구성된 국내의 기타 구단에 비하면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르다. 구단이 주로 본토선수들로 구성되고있다는건 아주 귀중한 《자연유산》이다. 지금 허다한 지방들에서는 돈은 있으나 선수가 없기에 구단을 만들지 못하고있는걸로 알고있다. 이렇다고 할 때 연변은 남들한테 없는 아주 훌륭한 《자연조건》을 갖고있다.언젠가 내륙의 한 조선족언론인이 연변축구를 브랜드화로 내세울것을 주장했다. 아주 그럴듯한 주장이다. 국내의 소수민족지역중 유일한 프로팀이며 대부분 본토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점, 이는 중국축구계의 유일한 브랜드로 최근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광주항대구단도 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다. 내지의 언론인들도 인정하는 연변축구 ㅡ 그렇다면 이런 본토선수들이 뛰고있는 연변축구를 밀어줘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아주 자명한 일이다. 즉 연변축구를 포기한다는건 우리의 우수한 건아들을 포기한다는것과 마찬가지라 보아진다.<연변 종합신문 김철균 기자>
    • 스포츠
    2013-11-21
  • 연변프로축구사상 이재민 최고 꼴잡이로
    연변팀의 이재민선수가 연변프로축구 사상 한개 시즌에 가장 많은 득점(18점)을 기록했다. 이재민선수 1987년 5월 29일생, 신장 178센치메터에 75킬로그람, 한국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2010년 현대미포조선돌고래축구단에 입단해서 일본 J리그 빗셀고베팀, 한국 내셜널리그 현대미포조선팀에서 활약하다2013즌 중국 갑급리그 연변장백호랑이팀으로 입단했다.꼴감각과 과감한 슛시도는 실로 일품, 그의 경험, 올시즌 연변팀 위기상황에서 발휘하는 공격본능은 팀을 번번이 위기에서 구해냈다.올시즌 이재민선수는 총 30라운드경기가운데서 27껨의 경기에 선발출장, 옐로카드루적으로 7월 27일 천진송강전(홈장경기), 발목부상으로 9월 28일 심수홍찬전(원정경기), 신진단련으로 11월 2일 석가장준호전(원정경기), 단 3경기를 결장했으며 출전시간은 2336분에 달했다. 그가 뽑은 18꼴 가운데서 홈장에서 10꼴을 터뜨렸고 원정에서 8꼴을 뽑았다.
    • 스포츠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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