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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3대에 걸친 원로’ 김기남 사망...향년 94세
    [동포투데이]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8일 1966년부터 북한의 정치선전을 진두지휘해 온 '3대에 걸친 원로' 김기남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3대에 걸친 지도자들의 이미지 구축부터 권력 공고화, 국가 위상 제고까지 수십 년간 북한에 몸과 마음을 바쳐온 김길남은 현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지닌 혁명적 원로"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기남은 최근 몇 년 동안 신부전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김정은은 8일 새벽 2시에 여러 고위 간부들을 이끌고 영안실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기남의 부고 기사와 사진은 수요일 노동신문 1면에 실렸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김정은과 간부들의 사진은 2면으로 밀려나 북한 정계에서 김기남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9시에 부고 기사를 보도하면서 김정은이 장의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전하고 김정은의 애도사를 담은 짧은 영상을 공개했다. 관영 언론은 김기남이 당에 대한 충성심, 특히 김정일과 김정은 후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정은은 9일 열리는 김기남의 국장을 주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모든 당 간부들이 누리지 못한 최고의 영예이다. 김기남은 1966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전에는 위원장)가 된 김일성과는 친척이 아니며, 같은 해 북한 선전선동부 부장이 되어 김정일과 긴밀히 협력했다. 이후 김길남은 부장으로 승진하여 북한의 국가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김기남과 김정일은 절친한 친구이자 '술친구'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 김길남은 노동신문의 편집장이 되었다. 평양의 정치·문화 웹사이트 북한리더십워치에 따르면, 김기남은 초대 지도자 김일성을 역사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주도했으며 북한 주민들이 그를 국가의 아버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김정일이 정권을 이어받은 후에도 김기남은 국내외 정보 흐름을 통제하고 서구의 문화가 북한에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계속했다. 김정일 사망 1년 전인 2010년 김기남은 선전선동부 부장에 재임명되어 다시 한 번 선전선동 기구를 본격 가동했는데, 당시 후계 준비를 하던 김정은의 나이는 20대에 불과했다.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한 후에도 계속 근무했으며, 2015년 공식 언론 사진에는 키가 크고 안경을 쓴 김기남이 김정은이 연설하는 동안 여러 간부들 사이에서 메모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기남은 2018년 은퇴해 김여정에게 지휘봉을 넘겼지만, 꾸준히 공개 활동에 참여하며 지도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김기남은 2009년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몇 안 되는 북한 고위 간부 중 한 명이다. 공식 매체가 김기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2021년 북한 건국 73주년 기념일에 고위급 인사와 함께 전망대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관람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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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기로에 선 GM, 중국의 도전에 직면
    [동포투데이] 제너럴모터스(GM)가 중국 시장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때 중국 시장은 GM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CNBC 방송은 이에 대해 논평했다. 2014년 1분기에 GM은 1억 6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는 코로나19 전염병 기간 동안의 실적을 제외하면 지난 15년 동안 세 번째로 큰 분기 손실이다. CNBC 방송은 GM 중국 시장 점유율이 2015년 15%에서 2023년 8.6%로 떨어졌다고 지적해 중국 내 이 회사의 미래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CNBC 방송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GM의 손실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았습니다. GM의 패배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중국 자동차 공장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 증가와 기술 성과를 등에 업고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둘째, 차세대 중국차 구매자들은 전기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GM은 이 부분에서 잠시 밀리고 있고, 셋째, 테슬라는 중국에 진출해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혁신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바꾸고 있다. 컨설팅 회사 던인사이트(Dunne Insights)의 CEO이자 중국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던(Michael Dunn)은 '테슬라 효과'가 중국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이들에게 이 모델은 새로운 패션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메리 바라(Mary Barra) GM CEO는 회사가 중국 시장에 계속 전념하고 있으며 성장 잠재력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포함한 신제품이 GM이 잃어버린 기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머 전기차 등 플래그십 모델도 중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이클 던은 "우리는 중국 내 전통적인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종말의 시작점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미국 기업에 나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GM이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스텔란티스 및 포드와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는 중국에서 "가벼운" 운영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투자를 줄이고 기존 자산을 사용하여 자동차를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의미다. 포드를 예로 들면, 미국으로 수출한 '링컨 내비게이터' 모델을 포함해 2023년 중국에서 차량 10만 대를 수출했다. 광저우 자동차 그룹과의 합작 회사가 파산한 후 스텔란티스는 중국에서 지프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중국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인 립모터에 투자했다. CNBC 방송 자료를 보면 경쟁 심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중국에서의 GM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회사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중국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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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5-09
  • 튀르키예, 마약 밀매자 365명 체포...마약 217kg 압수
    [동포투데이] 알리 예를리카야 터키 내무부 장관은 튀르키예 경찰이 전국적인 마약 소탕 작전에서 365명의 마약 밀매 용의자를 체포하고 217kg의 마약을 압수했다고 7일 밝혔다. 예를리카야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튀르키예 경찰이 이스탄불, 앙카라 등 전국 52개 주에서 2340명의 경찰관과 9대의 헬기, 38마리의 마약 탐지견을 동원해 마약 단속 작전을 펼쳤다고 전했다. 국제 마약 밀매는 튀르키예에서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였다. 2023년 5월 선거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마약 밀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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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헝가리 외무장관 “우크라이나, 나토 무기 보유해도 핵대국 이기지 못해”
    [동포투데이] 시아르도 헝가리 외무장관은 8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공급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도 우크라이나는 핵 대국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아르도는 러시아에서 극단주의로 간주돼 금지된 페이스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 메시지에서 "나토의 새 제안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때까지 계속 싸우자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과 나토 모두 전쟁의 종식을 이 군사적 성과와 연결하고 있는데, 이 성과는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이며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더 나아가 갈등이 전쟁에서 해결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시어도르는 또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유형의 전쟁에서 핵 대국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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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독일 교통부 장관,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한 EU 관세 거부
    [동포투데이] 볼커 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이 EU의 중국 자동차 업체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를 거부했다고 DPA통신이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독일 자유민주당 정치인은 "우리는 시장을 봉쇄하고 싶지 않으며 경쟁에 참여하고 싶다"며 "독일 정부가 독일 기업들이 계속해서 자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글로벌 무역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징벌적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이 아닌 공정하고 규범적인 경쟁환경에서 국제무역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위싱은 이것이 독일처럼 세계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에게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VDA)도 지난달 EU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가 무역전쟁을 촉발하고 독일의 고용을 위협해 EU의 전기차 보급과 디지털 전환 목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앞서 이달 초 돔 브로브스키스 EU 집행부 부위원장 겸 무역위원은 EU의 중국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반대 조사가 '추진 중'이라고 밝히면서 브뤼셀이 여름휴가 이전에 중국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9월 폰 데어라이언 EU 집행위원장은 중국 보조금으로 인한 시장 경쟁 왜곡에 대한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중국이 무역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된다면, EU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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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실시간 국제뉴스 기사

  • 중국인들 음력설 기간 도쿄서 물건구입에 60억위안 퍼부어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올 음력설연휴 일주일간, 46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도쿄에서 물건을 구입하는데 인민페로 도합 60억위안을 썼다고 중국경제주간이 24일 보도했다. 값싼 일본 상품 중국의 한 여행사에 근무하는 오양은 올 음력설 기간, 일본 도쿄에 관광갔다. 이번이 세번째인 도쿄관광에서 그녀는 일본 도쿄 상품들이 너무 값싸다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됐다. “해마다 더욱 값이 싸져요”. 물건 구입은 오양의 도쿄관광의 주요 내용이었다. 도쿄 상점들에서는 한국 관광때와는 다르다. “한국인들은 흔히 중국인들을 업신여기는 눈빛이인데 일본인들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점원은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그리고 도쿄에서 사치품을 비롯해 허다한 물건들이 중국 국내가격의 1/5, 1/3밖에 되지 않고 화장품은 1/2 가격으로 너무 쌌다.” 정녕 쇼핑의 천당은 한국의 서울도, 더욱이는 미국이거나 유럽의 어느 도시도 아니었다. 오늘날 중국 소비자들이 쇼핑에 적합한 지역은 도쿄라고 오양은 말한다. 이같은 관점은 오양 한 사람뿐이 아니다. 올 음력설 연휴 일주일간, 46만명에 달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 물건을 싹쓸이해 왔다. 일본 엔화는 지난 2년간 30% 가량 평가절하돼 일본 물가가 30%나 인하됐다. 거기에 일본은 언녕 사치품 숭배시기를 지나왔는바 원래부터 유럽, 미국 등 국가의 사치품들이 고가로 팔 수 없는데다가 다년간 적체되어 창고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0년에 달하는 기나긴 경제의 하락, 통화긴축으로 하여 일본의 물가는 줄곧 높지 않았다. “싹쓸이” 물건구입은 2015년 이후 몇년간 일본에서의 중국 관광객들의 중요한 활동으로 될 것이라고 중국경제주간은 내다봤다. “백엔점”으로부터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30여년 전,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주로 구입한 것은 사치품, 미술품들로 일용품을 사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일본 노무라증권회사의 한 분석사는 일본도 국외에 나가 “싹쓸이”하던 시대가 있었다면서 20세기 80년대였다고 말한다. 북경 13릉정릉박물관에서 근무했던 왕여사는 20세기 80년대 일본 관광객들이 중국에 와 상점의 서화작품을 싹쓸이해 가기도 했다면서 “그때 서화 한폭의 가격이 몇십원, 또는 몇백원으로 우리들 한달 월급에 해당했다”고 회억한다. 헌데 오늘날 일부 중국 관광객들은 도쿄에서 30년 전의 중국 서화작품을 보고 몇백위안 또는 몇천위안으로 다시 구입해 오기도 한다. 가치도 있고 무엇보다 중국 국내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한편 도쿄 “백엔점”은 늘 중국인들로 붐빈다. 100엔이면 중국의 5위안이다. 헌데 모든 물건이 100엔이란다. 문구, 휴대폰 부품, 일용품, 기름소금간장식초… 일률로 하나에 인민페로 5원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이런 상점에서 일부 중국인들은 수천엔어치 물건을 구입한다. 노무라증권의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들이 일용품보다 수년 혹은 수십년간 적치되어 있는 사치품들을 구입해 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관광객들은 물건 볼 줄을 알고 통이 큰 것으로 일본에서 정평나 있다. 경제거품 단계를 거친 후 일본인들은 손에 유럽, 미국의 명브랜드 핸드백을 드나 무명의 일본 국산 핸드백을 드나 큰 구별이 없으며 사치품을 휴대한다고 해서 심리상 큰 월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이로 하여 상점에 적치된 명브랜드 상품들은 줄곧 누군가가 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무 싸다.” 중국 한 언론의 기자는 일본에 다녀와서 이같이 말했다. 도쿄의 한 가전제품상점의 한 층에는 몽땅 유럽과 미국의 여러 가지 명브랜드 제품들이이다. 여기에서 만보룡(万宝龙) 등 상품의 가격은 중국 국내가격의 1/3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어떤 명브랜드 사치품들은 중국 국내가격의 1/10로도 살 수 있었다. 중국 은행카드와 제품의 질 일본 도쿄에서 37만 개의 상점에서 직접 중국의 은행연합카드(银联卡)를 사용할 수 있는데 지난해보다 두배나 늘었다고 일본 경제산업성 관원이 소개한다. 길거리에서 기타 신용카드 표시에 비해 중국 은행연합카드 표식은 더욱 크고 선명했으며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은행연합카드를 사용하면 5%의 우대를 해주었고 대형상점들에서는 중국 은행연합카드 사용자들을 선호했다. 음력설 직후, 일본 언론에 중국 관광객들이 음력설 기간 일본 가전제품상점들에서 변기뚜껑을 싹쓸이해 갔다는 보도가 발표돼 중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이처럼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우선은 상품 가격이 중국 국내가격보다 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품질이 중국에서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일본 상점에서 품질이 차한 상품을 판다는 것은 스스로 파산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상가들마다 말한다. 한편 한 국가에서 제품이 극히 풍부해지면 명브랜드나 큰 브랜드나 모두 제품들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신부호들이 추구하는 대상으로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치품들의 가격이 중국보다 싼 것이다. 음력설 연휴 짧디잛은 일주일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도쿄에서 쇼핑에 인민페 60억위안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중국의 소비정책과 소비자들, 그리고 생산기업과 상가들에서 개진해야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중국경제주간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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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4
  • 中 시진핑 주석, 싱가포르 리광요 전 총리 타계에 조전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시진핑 국가주석은 23일, 리광요(李光耀) 전 총리의 타계를 두고 싱가포르 천칭얜 대통령에게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했다고 중국 신화망이 23일 톱기사로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은 조전에서 리광요 선생은 싱가포르공화국의 창조자이자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는 전략가이며 정치가라고 높이 평가, 리광요 선생은 중국인민들의 옛 벗이고 중국과 싱가포르 관계의 창시자이고 개척자이며 추동자라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또 리광요 선생은 중국 노일대 지도자들과 공동으로 중싱 관계의 발전방향을 확립하고 두 나라 국민들의 우의를 증진하고 두 나라 협력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면서 리광요 선생의 타계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손실이자 국제사회의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은 조전에서 중국은 중싱 우호협력 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싱가포르와 함께 두 나라 전통우의를 견지, 발전시키며 올해 중싱 수교 25주년 기회에 우의를 공공히 하고 윈윈의 협력을 심화하며 두 나라와 두 나라 국민들의 행복을 창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싱가포르 총리관공서는 23일, 사이트를 통해 싱가포르 리광요 전 총리가 이날 새벽 3시 18분에 향년 91세로 병으로 타계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리광요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며 원적(祖籍)은 중국 광동성 매주시 대포현 고피진 당계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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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3
  • 서경덕 교수, 토론토에서 '한국 문화와 역사의 중요성' 특강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전 세계를 직접 다니며 '한국 문화와 역사의 중요성'에 관한 특강을 진행해 온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21일(현지시간) 저녁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소강당에서 특강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K-lecture(강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특강은 세계 한인 학생회 연합회 캐나다 지부의 주최로 토론토 내 유학생 및 재외동포 약 3백여명이 참여하여 큰 성황을 이뤘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광복 70주년인 올해, 일본의 지속적인 역사왜곡에 맞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대처하는 자세 및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알려 세계적인 여론을 환기시켜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독립기념관 독도학교 교장으로서 독도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의미와 해외에서 잘못 표기된 독도 및 동해에 관련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법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특강은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일본 도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베트남 호치민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벌인 20번째 특강이라 더 의미가 깊다. 이에대해 서 교수는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 내 주요 도시에서 일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특강을 준비 중이며, 분단 70년을 맞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등 분쟁지역에서도 특강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K-lecture(강연) 프로젝트'는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서 교수가 직접 다니며 현지 외국인들 및 재외동포와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에 관한 특강을 진행하는 강연 소통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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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5-03-23
  • 70년간 독일이 지불한 전쟁배상금은?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최근 그리스는 옛 장부를 들춰내며 독일에 2차대전 문제로 도합 1600억 유로를 배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로 하여 원래부터 긴축정책으로 긴장상태에 있는 두 나라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중국 신경보(新京報)가 22일 보도했다. 그리스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독일정부는 즉시 부정했다. 독일정부 대변인 자이베르트는 기자회견을 통해 “독일은 줄곧 나치독일이 유럽국가들에 입힌 재난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고 이에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독일은 언녕 2차대전 피해국들에 전쟁 배상금과 보상성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하다면 구경 그리스와 독일의 금전분쟁이 끝난 것인지? 또 2차대전이 종결된 후 지금까지의 70년간, 독일이 지불한 2차대전 배상금은 얼마나 되는지?   배상담판 제2차대전에서 독일이 투항한 후, 18개 전승국들은 1945년 가을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가지고 독일의 2차대전 배상문제를 논의했다. 회의는 각국이 자국 영토내에 있는 독일의 해외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다고 결의하고 또 배상에서 각 국간의 분배비율을 제정했다. 그리스도 파리 배상회의에 참가했으며 분배방안 가운데서 4.35%의 물질배상과 2.7%의 기타 방식의 배상을 받기로 했다. 헌데 독일이 서쪽점령지역과 동쪽점령지역으로 나뉘고 또 세계가 냉전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배상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동 서 두 지역이 부동한 배상운명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동쪽지역에서 소련은 전쟁 가운데서 손실된 기초시설과 공업설비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부독일에 실물배상과 함께 그것을 소련에까지 수송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규모의 공장 철거이주는 3년간 지속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소련이 동쪽점령구에서 철거해 가면서 획득한 배상은 동쪽지역 모든 자본설비의 35%-45%에 달했고 강철, 화공 등 일부 관건적인 공업분야에서 동쪽점령구는 거의 모든 공업설비들이 회손되었다. 이로부터 민주독일(동부독일)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1953년 소련은 동독이 아직 갚지 못한 배상금 25억 7300만 달러를 지워버리고 정식으로 동독에 대한 모든 배상요구를 포기한다고 선포했다. 당시 소련은 동독으로부터 이미 도합 42억 9200만 달러(1938년 환율로 계산한 것임)를 배상받았으며 그 가운데에는 공업과 설비 철거이전도 포함됐다. 미국과 영국의 서쪽점령구에 대한 배상요구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다. 그것은 배상으로 인해 서부독일의 경제가 파괴되고 그로부터 서독이 유럽의 부담으로 전락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쌍무협정 1953년 동맥국들은 “런던채무협정”을 체결하고 독일 채무의 절반을 감면했다. 1990년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연방과 민주독일은 독일 관련 통일적인 “최종 독일문제 해결 조약”(2+4조약)을 체결, 4개 동맥국들은 이로부터 독일에서 보유하고 있던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기한다고 선포했다. 이에 앞서 1960년, 독일과 여러 전승국들은 각기 쌍무협정을 체결하고 배상을 진행해 왔다. 협정에 따르면 독일은 그리스에 도합 1억 1500만 마르크를 배상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 덴마크 등 국가에도 배상한다. 20세기 70년대에 독일은 폴란드에 14억 마르크를 배상했고 “2+4 조약” 체결(1990년) 후, 독일은 또 소련에 180억 마르크를 지불했다. 그 가운데에는 나치에 의한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도 포함됐다. 법률적으로 보면 “2+4 조약”으로 동맥국들은 독일에 대한 배상요구를 포기했고 그리스정부도 이 조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독일과 그리스 양국간의 2차대전 배상문제도 그때에 이미 끝난 것이다. 헌데 그리스 측은 독일이 1960년에 지불한 배상금은 최초배상금에 불과하며 나머지 배상은 1990년 동, 서 독일이 통일된 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서 국제사회는 보편적으로 독일을 지지하고 있다. “2+4 조약” 담판에 참가했던 유럽의회 구라더 의원은 목전 그리스가 아무리 곤경에 빠졌다 해도 지금에 와서 독일에 2차대전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형편없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간배상 독일연방이 설립된 후 배상의 주요 대상은 정부로부터 미간의 전쟁피해자들로 전이됐으며 독일은 적극적인 배상을 통해 독일의 국제형상을 재수립하려 했다.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하자 독일에 배상을 요구했다. 비록 이때 독일연방도 전쟁의 페허속에서 회복되지 못했지만 당시의 총리 아데나워 정부는 적극적으로 배상에 나섰다. 1951년 9월, 아데나워 총리는 국제사회를 향해 정식으로 독일연방정부는 나치정권이 범한 죄행에 책임을 질 것이며 이스라엘과 유태인세계에 배상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1952년, 독일과 이스라엘은 “룩셈부르크조약”을 체결한다. 조약은 독일연방이 이스라엘정부에 가치가 30억 마르크에 달하는 배상을 지불하며 유태인 “배상요구연합회”에 가치가 4억 5000만 마르크의 배상을 지불해 세계 각국에서 나치의 박해를 받은 유태인들 구조에 쓰도록 하며 배상 지불기한은 12년~14년으로 규정했다. 그 후 독일은 에누리 없이 조약을 집행했고 1966년에 배상을 완성해 이스라엘 경제의 도약을 촉진했다. 이 기간, 독일은 두 가지 법률을 제정, 배상이 법에 따라 진행되도록 담보했다. 1956년에 독일은 “독일연방배상법”을 통과하고 개인배상을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에서 공동 부담토록 했으며 1957년에 연방의회는 또 “연방재산반환법”을 통과해 전쟁피해자들이 독일법정을 통해 자기재산을 돌려받는데 법률적 의거를 제공했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1960년에 전쟁피해자의 개인배상은 서부독일 재정지출의 7.48%에 달했고 1965년 9월까지 심사를 거쳐 지불한 개인배상금은 182억 5000만 마르크에 달했다.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배상 배상이 진행됨에 따라 2차대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의 배상 주체는 정부만이 아니었다. 기업에서도 배상에 적극 참가했다. 2000년에 설립된 “기념, 책임과 미래” 기금회 가운데서 6500개 독일 기업이 51억 마르크를 나치에 의한 강제노역자들에게 기부했다. 그 대부분 기업들이 2차대전 후에 설립되었으며 종래로 나치 강제노역자들을 쓴 적이 없었다. 독일의 일부 유명 대기업들은 2차대전 기간 독일군에 의해 끌려온 강제노역자들을 고용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 IG법본회사는 자기의 집중영도 갖고 있었다. 지난 세기 50, 60년대 유태인 “배상요구연합회”는 유태인 노무자들을 대표해 독일 일부 대기업들을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독일 IG법본회사는 20여 개 국가로부터 끌려온 노역자들이거나 그 가족들에게 도합 2700만 마르크를 배상했고 독일 군공기업 크루프회사는 1000만 마르크를, 독일 통용전기회사는 400만 마르크를, 지멘스사에서는 500만 마르크를 배상하며 만일 부족하다면 최고 200만 마르크를 더 증가하겠다고 밝혔다. 50, 60년대 독일 대기업들의 피동적인 배상과는 달리 80년대 이후, 독일 기업들은 주동적으로 회사의 역사를 반성하고 배상했다. 1988년 독일 벤츠회사에서는 “배상요구연합회”의 요구에 따라 2000만 마르크를 2차대전 기간 벤츠회사에서 강제노역한 노무자들에게 배상했고 1988년 폭스바겐 자동차회사에서는 역사학자들에게 의뢰해 2차대전 기간 회사에서 집중영에 수감된 죄수들을 노역에 쓴 사실을 조사하게 하고 회사역사에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991년에 “배상요구연합회”에 1200만 마르크를 지불해 나치 강제노역자들에게 배상하게 했다. 독일 70년간 640억 유로 배상 독일연방정부는 1986년 11월까지 독일이 여러 가지 전쟁배상금 도합 770억 7000만 마르크를 지불했다고 선포했다. 물론 이것으로 배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독일은 1990년 동서독 통일 후, 선후하여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우크라이나, 백러시아와 모스크바에 나치 강제노역자 배상기금회를 설립하고 15억 마르크를 배상했다. 1998년에는 체코에 설립한 “독일미래기금회”에서도 일부 자금을 나치 강제노역자들에게 지불했다. 그전의 배상은 주로 유태노역자들에게 지불했지만 2000년에 독일은 또 “기념, 책임과 미래” 기금회를 설립하고 주로 중동유럽국가 나치 강제노역자들에게 배상했다. 2000년 7월 17일, 독일,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백로시아 등 동유럽 국가의 대표들이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나치 강제노역자 배상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르면 독일은 2차대전 기간 나치에 의해 강제노역을 한 생존자 및 그 후대들에게 도합 100억 마르크(약 48억 달러에 해당)를 배상하기로 하고 독일 정부와 기업이 각기 50%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것은 독일정부가 나치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마지막 배상이었다. 2000년 9월 “기념, 책임과 미래” 기금회가 정식으로 배상업무를 가동, 7년간 중동유럽 지역 160만명에 달하는 2차대전 노역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2007년 6월 12일, 독일 “기념, 책임과 미래” 기금회는 총리관저에서 의식을 가지고 7년간의 나치 강제노역자 배상사업을 종결한다고 선포했다. 이로부터 독일은 끝내 2차대전의 배상을 끝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2007년에 “독일은 2차대전 후 약 640억 유로를 배상금으로 지불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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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中 충칭, 세계최고 길이 5천 미터의 연을 날린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3월 22일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세계 연의 수도”산동웨이팡의 연의 달인들이 5천 미터에 달하는 연을 가지고 와서 충칭 베이베이 룽후즈타이에서 날릴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 화룽망(華龍網)이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길이 5천 미터에 달하는 이 연은 세계기네스북에 제일 긴 연으로 인정 받았으며, 2500개의 작은 연들이 하나가 되어 “중국용”을 이루고 있고, 5천 미터 길이의 연을 날리기 위해 1000근의 연줄이 사용되었으며, 일반 자가용을 매달고 하늘로 상승할 만큼의 큰 장력을 가지고 있다. 주최측에 따르면 당일 연이 하늘로 순조롭게 오를지는 일기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의 축복과 소원을 담은 길이 5천 미터의 초대형 연이 매시간마다 1천 미터씩 날아오른다고 계산할 때 모든 연을 다 날릴 수 있으려면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외에도 25미터 - 40미터의 높고 거대한 연(문어와 고래모양 등) 여섯 개를 날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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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푸틴 중국에서 펼치는 항전승리 기념활동 참가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0일 베이징에서 있은 중국 외교부의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중국에서 펼쳐지는 항전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되며 이에 중국측은 환영을 표하는 것으로 밝혔다고 신화넷이 전했다. 이 날 한 기자가 러시아측은 푸틴 대통령이 오는 9월경 중국에서 거행되는 2차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증실해달라고 했다. 이에 훙레이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는 중러 양국은 2차 대전 시기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전장이었고 파시스트와 군국주의를 전승하고 2차대전의 승리를 위해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수차 언급하였다. 올해 양국은 모두 해당 기념활동을 거행하는바 양국 지도자들이 모두 상대국의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된다. 어제 러시아 대통령 비서청 이만노브 주임은 재차 푸틴 대통령이 중국의 항전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된다고 표했다. 이에 우리는 환영을 표한다.” 중국의 항전승리 기념활동에 어떤 국가들이 참가하며 이 기념활동에 열병식 외 어떤 다른 활동들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훙레이는 다음과 같이 표했다. “최근 중국측은 2차 대전의 주요 참전국인 아시아 국가와 기타 나라 및 유엔 등 국제조직의 지도일군들을 초청했다. 기념활동은 기념대회, 초대회, 문예야회와 열병식 등으로 진행된다.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 등 허다한 국가들은 5년 혹은 10년에 한번씩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거행해왔다. 중국측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한 작법에 따를 것이며 열병식은 이 기념활동중의 일환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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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중국 국가 이미지 글로벌 조사 보고서 발표
    [동포투데이] 지난 18일, 중국외문국(中國外文局) 산하 대외전파연구센터(對外傳播硏究中心)와 시장조사기관 Millward Brown이 공동으로 조사·제작한 ‘2014년 중국 국가 이미지 글로벌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가 이미지는 10점 만점에 5.9점을 기록, ‘13년에 비해 0.8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 조사는 영국, 미국, 호주, 일본,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총 8개 국가 국민 각 500명과 중국 자국민 500명 등 총 4,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전체 응답자 중 46%는 중국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국민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라고 응답, 45%는 중국이 빈부격차가 큰 국가라고 답했으며, 가장 인지도가 높은 중국 브랜드는 Lenovo, 화웨이(華爲), 중국국제항공, 하이얼, 알리바바, ZTE(中興), Hi-sense(海信), TCL, 중국은행, 차이나모바일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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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
  • 中 최연소 여원사 “세계 걸출 여과학가 성과상” 획득
    [동포투데이 김철균] 중국과학원 원사이며 중국과학기술대학 교수인 세이(谢毅) 여사가 기타 나라에서 온 4명의 여과학자들과 함께 지난 3월 18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소르본 대학에서 제17회 “세계 걸출 여과학가 성과상” 획득했다고 중국경제넷이 보도하였다. 시상식에서 유엔 교육과학기구의 간사 이리나 보코바 여사가 축사, 그녀는 이번에 상을 받은 5명의 여성과학자들에게 축하를 표하고 나서 “현재 세계 연구일군 중 여성의 비례가 높지 못한바 근근히 30%에 불과하다. 이는 많은 장애적 요소가 여성들이 과학연구에 투신하는 것을 저애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면서 “세계는 과학을 수요하고 과학은 여성을 수요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전하는데 따르면 유엔 과학교육문화 기구는 17년 전 프랑스 파리의 로레알 그룹과 손잡고 “세계 걸출 여과학가상”을 설치, 취지는 여과학가들의 걸출성과를 공개 표창하고 그들의 탁월한 기여를 인정함과 아울러 그들의 과학연구사업을 지지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날 “세계 걸출 여과학가상”을 획득한 세이 여사는 답사발언에서 “‘세계 걸출 여과학가 성과상’을 받은 것은 나 개인과 나의 연구팀에 대한 긍정이며 특히 나의 미래 사업에 대한 기대인바 나로 하여금 앞으로의 사업에서 더욱 출중하게 연구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나는 이번의 수상을 꼭 과학연구사업에서의 새로운 하나의 스타트로 삼을 것이다”라고 밝히었다. 이번에 세이교수는 나미 고체화학원리를 이용해 신형의 에너지 자원을 찾아 2차원 초슬림(二维超薄) 반도체의 효율전환 방면에 대한 연구성과로 하여 이 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에 세이 교수까지 중국에서는 도합 4명의 여과학자가 이 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이 교수 프로필 1967년 7월 생 한족. 중국 안후이 사람 중공 당원. 교수. 박사생 도사. 중국 과학원 원사 1988년, 샤먼대학 화학학부 석사연구생 1996년, 중국과학기술대학 박사학위 획득 1996년 11월, 중국과학기술대학 화학학부 부교수 1997년 9월 – 1998년 7월, 미국 뉴욕 주립대학 화학학부 박사학위 획득 1999년 4월, 중국과학기술대학 무기화학 박사생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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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
  • 中 CCTV 인턴 아나운서 칼맞아 숨져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전 중국 CCTV 인턴 아나운서가 연인 장모씨의 칼에 맞아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3월 18일, 숨진 전 CCTV 실습 아나운서 마펜란(马翩然)의 부친 마하이버(马海波)가 인터넷에 딸을 애도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 사건은 비로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하이버의 딸 마펜란은 일찍 허난(河南)성 상츄(商丘)사범학원 2008급 방송사회전업을 졸업, 광시(广西)예술학원 방송사회예술 2012급 석사연구과정을 마쳤다. 그 뒤 마펜란은 CCTV 제2채널의 실습아나운서로 있다 허난TV방송국 제9채널의 사회자로 근무했다. 워낙 마펜란은 상츄사범학원 시절 사귀던 남성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상츄시도시관리국에서 사업하는 장모씨였으나 두 집 사이에 혼사말이 오간 정도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마펜란이 CCTV와 허난 TV방송국을 오르 내리는 사이 둘 사이의 감정이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마펜란은 장××의 칼에 7곳이나 찍혀 숨지기에 이르렀다. 현재 장모씨가 어찌하여 마펜란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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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0
  • 깡패두목이 운영하는 호텔 “소탕”한 장군
    [동포투데이]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은 사실이다. 친장군의 행동은 뭔가를 시사하는 바가 많다. 허나 이 사건이 공개되자 중국의 네티즌들 중 친장군을 칭찬하는 비율이 70%나 되었다. 아래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시좌장(石家庄)시에 “진버빤(金伯帆)”이라는 유명한 4성급 호텔이 있다. 사건은 이 호텔에서 일어났다. 2013년 7월 26일 이 호텔에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왔다. 한명은 50여세이고 한명은 30여세로 되어 보이었다. 두 사람은 목욕을 마치고 방에서 휴식하면서 한담하다가 중년 남성이 부주의로 탁자위의 유리컵을 땅에 떨어뜨려 깨뜨렸다. 중년 남성은 젊은이에게 결산할 때 유리컵 값을 배상하라고 말하였다. 결산시 젊은이가 아주 공손하게 부주의로 방안의 컵을 깼으니 함께 계산해 달라고 하자 복무원은 머리도 들지 않고 “유리컵은 50위안입니다”라고 대꾸하였다. 이에 젊은이는 유리컵 하나에 10위안도 안하는데 50위안은 너무 비싸다고 하였다. 이에 복무원이 젊은이를 힐끗 쳐다 보더니 “비싸다구? 그럼 100위안을 내세요”라고 하였다. 이에 젊은이는 대노하여 “이게 무슨 태도냐? 경리를 불러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복무원은 “경리를 부르면 500위안을 내야 해!”라고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성이 나타나더니 “누가 경리를 찾느냐? 내가 경리다. 무슨 일이냐? ”는 식으로 말을 걸었다. 젊은이가 아까 있었던 일을 꺼내자 경리라는 사람은 귀찮다는듯이 한마디 내뱉었다. “500위안 내세요 이는 우리 호텔의 규정입니다.” 이러자 젊은이는 화가 나서 “이게 무슨 규정입니까? 강도의 논리가 아닙니까? 당신들 깡패입니까?”라고 말했고 그 경리라는 사람은 젊은이의 코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그래, 우린 깡패 맞아. 나 깡패두목이야. 어쩔래?” 젊은이는 화김에 옆에 서있는 중년을 가리키며 소리질렀다. “당신들에게 경고하는거요, 이 분은 우리들의 수장(首长)인거야!” 이 말을 들은 경리는 중년남성을을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 흥하고 냉소하더니 여전히 쓴소리를 했다. “우리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 수장이야, 돈을 낼거야 말거야? 안 내면 사람들을 부르겠다.” “이 분은 27집단군 군장이시다!” 젊은이는 화가 꼭두기까지 치밀어올라 급히 외쳤다. 하지만 경리는 한술 더 떴다. 경리는 중년의 곁으로 다가와 한바퀴 돌면서 중년의 아래위를 훑어 보더니 한마디 한다. “얘가 군장이면 나는 군장의 애비다!” 이 때 중년이 한마디 하였다. “우리 돈 주고 가자!” 젊은이는 500위안을 카운터에 던져 주면서 경리에게 한마디 충고했다. “넌 네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해 두어라!” 말을 마친 젊은이는 중년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온 중년 남성은 젊은이게 지시했다. “딩참모(丁参谋, 장여단장(张旅长)에게 전화하여 내 명령을 전하여라! 한개 영(营)의 병력을 전부 무장시켜 전차로 30분후 이 진버빤 호텔로 오라고 해라!” 30분 후 20대의 전차가 한줄로 서서 굉음을 울리며 진버빤 호텔앞에 나타났다. 27군 보병 여단장이 직접 500명의 무장군인들을 지휘하여 달려왔던 것이다. 여단장은 차에서 뛰어 내려 중년 남성에게로 다가오더니 거수경례를 붙이었다. “군단장동지! 장명이 명을 받고 왔습니다. 보병여단 정찰영의 전체 장병들이 전투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중년 남성은 “진버빤(金伯帆)”이라 쓴 호텔 간판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이 호텔은 깡패집단이 경영하는 호텔이다. 지금 명령한다. 모두 부셔버려라! 명심해라! 기물은 모두 부시되 사람이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 장여단장은 곧바로 명령을 전달했다. “1련은 호텔을 포위하고 경계임무를 수행한다, 2련은 즉시 호텔로 들어가 모든 직원들을 한 곳에 집합시켜 감시하고 손님들을 밖으로 인도한다, 3련은 대기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리가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 나왔다. 군단장(중년 남자)은 접시 하나를 들고 “이거는 얼마냐?”라고 묻더니 바닥으로 내리친다. 이어 “모조리 부셔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삽과 괭이를 든 200여명의 군인들이 호텔 1층부터 4층까지 모조리 부수기 시작했다. 경리는 무릎 꿇고 자기의 뺨을 치며 군단장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군단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곁에 있는 젊은이(딩참모)에게 명령한다. “이 놈에게 귀뺨 몇매 선물하여 사람을 욕한 대가가 뭔지 알게 하여라!” 딩참모는 즉시 경리의 멱살을 잡고 버쩍 들어 올리더니 좌우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 쳤다. 경리의 입가에는 피가 흘렀다. 딩참모는 경리를 힘껏 땅에 멨다 치고는 “꺼져!”하고 외쳤다. 깡패조직이 운영하는 진버빤 호텔은 석가장에서 유흥을 즐기는 가장 크고 세력 있는 호텔이다. 이 호텔 사장은 우디(吴迪)라는 사람으로 당시 마침 호텔에 없었다. 그는 군인들이 호텔을 부순다는 소식을 접하자 몇통의 전화를 하여 부하들을 소집하였다. 이 우디라는 사람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는 사회관계망이 복잡하며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권총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차에 올랐다. … 중년 남성이 호텔문앞에 서있을 때 외곽경계를 담당한 보초병 한명이 달려 오더니 몇십대의 경찰차에 150여명의 경찰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속에는 공안국국장도 있었다. 그는 친군단장이 직접 지휘하는 것을 보자 그만 그 자리에서 어안이 벙벙하게 되였다. 그는 군단장에게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하십시오." 한마디 남긴 경찰국장은 경찰병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경찰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장경찰(武警)이 왔다. 10여대의 차량이 군인들 차량앞에 멈춰섰다. 이 때 200여명의 신분이 불명한 장정들을 태운 트럭 4대도 도착하였다. 트럭위의 장정들은 모두 칼과 사제총을 들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냉소하면서 장여단장에게 전투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명령이 떨어지자 경계를 책임진 병사들이 하늘을 향해 있던 가슴앞의 95식 자동소총의 총구를 일제히 밖으로 돌렸다. 이 때 병사 한명이 무장경찰 대대장 리광(李光)이 친군단장을 뵙기를 청한다고 보고 하였다. 친군단장은 들여 보내라고 하였다. 이어 전신무장을 한 무장경찰대장이 달려 오더니 거수경례를 하였다. “보고! 옛부하 리광이 군단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이에 중년 남자는 “리광, 네 이놈! 감히 부대를 거느리고 깡패들을 도우러 와? 그 껍데기를 벗겨 버리기 전에 썩 꺼져라!” 리광은 이전에 이 중년남자의 밑에서 퇀장(团长)을 한 적이 있으므로 자신의 옛 수장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이렇게 무장경찰도 떠났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호텔사장 우디는 이제야 자기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 했다는 것을 깨닫고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호텔을 부수고 난 다음 중년 남자는 재개업을 하면 또 부셔버릴 것이니 재개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후 우디는 현금 200만위안을 갖고 중년을 만나려고 군영에 몇차례 갔다가 매번 쫓겨나곤 하였다. 우디는 하는 수 없이 허베이 성위의 고위급 인사에게 전화를 넣어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고위급 관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이 일만은 내가 도울 수 없다. 왜 하필이면 그 사람을 건드렸느냐?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군지 아느냐? 바로 전 북경군구 사령관, 국방부 부장 친지워이(秦基伟) 상장이다. 그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후진토우 주석도 친히 화환을 보냈다. 그는 친워이장(秦卫江) 이라 하는데 27집단군 군단장이다.” 호텔사장 우디는 손해를 감수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진버빤(金伯帆)호텔은 아직도 폐업상태이다. 친워이장(秦卫江) 1955. 12년 생, 후난성 훙안현(湖南省红安县)사람, 산시성 군구사령관, 제65 집단군 부군단장, 북경군구 부참모장, 제27집단군 군단장, 2010, 12년 남경군구 부사령관, 2000년 소장, 2012년 중장으로 진급, 현재 남경군구 부사령관임 친워이장(秦卫江)의 부친 친지워이(秦基伟). 1914년 11월 16일 생, 1997년 2월 2일 타계. 윈난(云南)군구 사령관, 쿤밍(昆明)군구 부사령관, 청두(成都)군구 사령관, 베이징(北京)군구 사령관,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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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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