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 민 함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에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대 이공팀과의 경기ㅡ 무너져도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다. 대승은 못하더라도 2 : 1정도로는 앞설 것으로 여겼었고 적어도 빅을 수는 있으리라 장담했었는데 어이없다. 실망이고 우려되며 비애로 엉켜진다. 시즌초반 원정이 많아서, 객관환경이 열악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홈장에서의 학생군단한테 1 : 5 대패! 이제 이길만한 팀은 과연 어느 팀?…

연변축구가 대패한 기록-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 사천전흥한테 0 : 6으로 대패한 적은 있었다. 그때는 원정이고 또한 “흑사심” 대위광이란 심판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지만 이번의 대패는 어이없는 참패이고 “인재(人灾)” 이다. 경기 15분까지의 연속되는 3골 허락,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많은 팬들이 기가 막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보니 당시의 천공은 노랗기만 했다. 교묘하게도 1995년 10월 8일, 원정에서의 대패와 이번 참패 때의 경기지휘자는 한사람이었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실력이 약해서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될 수 있었다. 톱라인이 어느 정도 미흡할뿐 골키퍼로부터 수비와 미드필더 라인은 상대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공점유율도 상대방보다 많은 것 같았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투혼도 화염방사기에 못하지 않았고 화려한 장면도 수차 있었다. 하다면 뭐가 모자랐던가? 상대한테 자신을 너무 노출시킨 것이 흠이었다. 상대는 우리를 알고 빤히 꿰뚫어 보고 북상했다. 변화가 없다. “비밀카드”도 없다. “전면진공, 전면방어”, 20여년전의 “카드”였다. 우리 연변축구 전통풍격에 너무 얽매였다. 전통을 계승하되 새로운 풍격 수립에도 남보다 한발 앞서야 할테지만 그것에 실패했다. 키가 작고 기술 또한 짝지며 거기에 체능우세가 없으며 기전술운영도 막말로 “생산대축구”와 근사했다. 백라인에서 변선으로, 변선돌파에 이어 센터링(传中) … 너무나도 단조롭다는 생각이다. 공연결 라인이 다양하지 못하고 선수의 속도와 공제공 사이의 차질이 잦았으며 득점할만한 화력망구축이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지난 제 6 라운드에서는 10여차의 코너킥 기회가 생겼지만 그것으로 단 1골도 만들지 못했다. 이에 대비한 전문적인 훈련미흡이라 볼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노상 “애도”하며 “제사”만을 지낼 수는 없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사령탑이 바뀌었다. 이는 일종 반전의 계기로 될 수도 있다. 그 사례는 많다. 2008년부터 김광주와 이광호 “소장파” 축구인들이 타인한테서 수차 감독직을 이어받으며 팀위기를 만회하기도 했다. 연변팀을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갑급 중위 권에는 속할 수 있는 팀, 절대 꼴지그룹에 처질 팀은 아니다. 연변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영단묘약”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연변팀은 꼭 반전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불현듯 오또기가 생각난다. 오또기는 넘어뜨려도 다시 절로 일어난다. 올해의 연변팀을 그렇게 비유하면 어떠할는지?

2001년 여름, 당시 연길시에서는 원 시인민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포장길로 만들었다. 그 때 국내의 어떤 매체들에서는 “연변에서 오동팀의 갑B로 가는 길을 수건한다”고 빈정댔다. 올해 연변팀은 새로 세운 현대화한 연길시인민경기장에서 홈장경기를 펼치고 있다. 하다면 연길시인민경기장이 우리 연변천양천팀의 “무덤”으로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바이다.

지난 5월 10일은 연변축구의 “애도일”이다. 아니, 막말로 얘기하면 “제삿날”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고, 슬프고 또한 힘들더라도 지난간 일에 너무 빠져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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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기록될 연변축구의 “애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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