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7월중 가장 무더웠던 날로 기억될 만한 11일 토요일 26명으로 구성된 중국동포 리더들은 임진각을 방문하고, 군사통제 구역에 있는 도라산역과 도라산 전망대, 제3땅굴을 견학하고, 미군이 주둔해 있던 막사 캠프그리브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남북분단의 현장과 일에 대해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통일부에 등록된 사단법인 통일아카데미(대표 강신삼)와 사단법인 GK희망공동체(이사장 허을진)이 주최한 ‘조선족리더들의 남북 통일 이야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국동포들이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에 참여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DMZ탐방을 해왔던 기자는 좋은 기회다 싶어 이번 워크샵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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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역 증기기관차

어느 때 같으면 시커먼 시멘트 기둥만 남아있는 끊어진 다리 사이로 푸른 물결로 찰랑이는 임진강이 무심코 흐르는 풍경을 볼수 있으려만 이번 방문길에는 긴 가뭄 탓에 바닥을 훤히 드러내놓은 왜소한 임진강을 임진각 전망대 위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임진각을 찾으면 누구나 인상깊게 보는 것이 있다. 바로 장단역 증기기관차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31일 장단역에 멈춰선 증기기관차는 몸체에 1020여발의 총탄을 맞고 바뀌가 휘어진 체로 파괴되어 DMZ내에 방치되어 있다가 임진각으로 그대로 이전해 와서 지금 일반인들에게 남북분단의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는 상징물로, 또 끊어진 경의선이 언젠가 다시 연결되면 북으로 달리고 싶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2004년에는 등록문화재 제78호로 등록되어 있는 문화재가 되었다.

임진각에서 매일 울려퍼지는 <잃어버린 삼십년>

임진각에서는 매일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노래소리가 있다. 설운도의 노래 <잃어버린 삼십년>이다. 1983년 한국방송 KBS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프로그램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 동안 눈물의 감동 속에서 진행했다. 당시 중2 학생이었던 기자도 여의도 KBS본관을 견학 간 기억이 난다.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뿔뿔이 흩어졌던 이산가족들이 저마다 어릴적 사진과 고향 등을 적은 피켓을 목에 걸고 KBS본관 앞에서 인사인해를 이루는 장면을 보았다. 1953년 6.25전쟁이 끝나고 꼬옥 30년만에 이산가족들은 눈물의 재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 동안은 제 각자 먹고 사느냐고 가족을 찾을 겨룰이 없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한국사회는 헤어진 가족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분수처럼 폭발하였다. 이 당시 방송에 출연한 이산가족은 5만3,536명이고, 1만189건의 상봉이 이뤄졌다.

이 방송이 나갈 때마다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 설운도의 <잃어버린 삼십년>은 이곳 임진각에서도 매일 쉬임없이 울려퍼진다. 남북 분단으로 1천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이 발생했지만 6.25전쟁이 끝나고도 60여년 이상 흘러간 지금도 北에 있는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임진각을 찾는 실향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세상 어디에 이런 비극이 있겠는가? 통한의 장벽,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휴전선 길이는 155마일(248km)이다.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로 각각 군사분계선을 그려놓고 군이 대치하고 있다. 이 4 km 구간은 비무장지대, 즉 DMZ 지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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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다리

휴전선을 따라 DMZ 기행을 하다보면 지역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곳 경기도 파주 임진각 앞으로 펼쳐지는 지역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해설사는 “포로 교환을 위해 이곳 임진강에 다리를 가설했다”며 “그것을 자유의 다리라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자유의 다리는 원래 경의선 철교 하행선이다. 상행선은 6.25전쟁 때 파손되어 지금은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있지만, 하행선은 도로로 개조하여 1953년 정전 후 이 다리를 통해 전쟁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군과 유엔군 12,773명이 넘어와 자유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판문점 앞에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포로 교환을 비롯하여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들의 왕래가 이루어졌던 이 다리는 남북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리라고 해설사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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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에서 남북통일(通一) 시대를
 
오후에 가보게 된 도라산역은 2000년 9월 경의선 복원공사를 개시해 2002년 4월 개통된 역으로 임진강역에서 임진강 철교를 지나 DMZ내 장단역 사이의 끊겨진 경의선을 연결하여 향후 유라시아 철도길을 잇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염원을 갖고 있다.

이곳에 와보니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가 떠오른다. 2004년 초 단동에 가게 된 기자는 북한을 보고파 압록강을 찾았다. 역시 인상에 깊이 남았던 것은 끊어진 압록강철교였다. 마찬가지로 6.25전쟁때 끊어진 다리로 중국쪽 철교만 남아있어 압록강단교로 불리우다가 1990년 북한과 중국의 합의에 따라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로 부르기 시작했다.

도라산역에서 인상적인 것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커다란 문구와 ‘평양행’이라 씌여 있는 입구이다. 이제 머지 않아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경의선이 복원 개통되고, 조중우의교도 완전 복원되어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거쳐 중국대륙과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철도를 따라 즐거운 여행을 떠나게 되는 꿈을 꾸게 된다. 이런 생각도 문뜩 들었다.

‘남북통일(統一) 시대는 쉽지 않겠지만 최소한 철도가 이어져 통(通)하는 남북 통일(通一)시대는 열리지 않겠는가!’

그런 통일(通一)시대가 곧 열릴 거라 기대하는 것은, 이미 70만명에 이르는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가는 시대가 되었고, 이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남북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중국동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정부는 중국동포를 한중교류의 가교자 역할에서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중요한 가교자 역할자로 주목하며 다각도의 지원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진핑 정부를 맞은 중국도 이를 과거처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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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주심양한국총영사관 주최로 ‘통일대비 동포협력방안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열렸다는 점, 그리고 세미나에 참석한 조선족 인사가 “조선족은 양쪽과 자유롭게 교류가능한 장점을 바탕으로 남북간 접촉과 교류에 크게 기여해 왔다”면서 “조선족 지식인 기업인의 교량 중재자 역할, 친인척 왕래를 통한 접촉 등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등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90년대 중반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장이 남한으로 망명해 오고, 탈북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까지만 해도 “북한”, “통일” 이런 이야기는 중국동포들이 공개석상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무거운 주제였다.

통일아카데미 강신삼 대표는 “남북통일문제에 대해 이젠 조선족동포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된 것같다”고 말한다. 기자도 동감한다.

이번 한국 민간단체 통일아카데미와 중국 조선족 단체 GK희망공동체를 통해 중국동포들이 함께 DMZ 투어를 하고 남북통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또한 진일보한 분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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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중국동포와 함께 남북통일 이야기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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