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김철균


여기는 스페인 항구도시 라스팔마스  출항의 쌍고동을 길게 뽑는 “카나리아립퍼”호는 서서히 육지와 떨어진다.


근 한달 간의 수리와 정비를 거친 이 원양화물선은 붉게 타는 바다의 저녁노을 속을 헤치며 22노트속도로 미끌어 질 듯 질주한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선박이 등대탑 해수욕장 앞바다를 지나고 가물거리던 라스팔마스항의 아스디캉 도커장이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자 뎃기에서 정든 항구 라스팔마스를 바라보던 이 동아의 마도로스들은 아쉬운 듯 하나, 둘씩 침실로 들어갔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뎃기, 배머리를 철썩철썩 갈기는 파도소리에 깊은 감개에 빠져 있던 나도 정신이 부쩍 들었다. 주방과 식당의 설거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라스팔마스에서 나의 주방조리수가 병으로 입원하는 통에 이번 항차만은 주방장인 내가 도맡아 해야 했다.


“오빠 ? ”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 주방에 들어서던 나는 흠칫 걸음을 멈췄다. 좌 우와 앞 뒤를 둘러 봐도 아무도 없었다.


“오빠…”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와 더불어 나의 두 눈을 감싸는 보드러운 여자의 두손, 필경 꿈도 착각도 아니었다. 


수산나! 너 어떻게?!

내가 수산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반년 전의 일이었다. 내가 한국 ××해운주식회사의 선원으로 고향 연변을 떠나 스페인 라스팔마스에 도착한 것은 19991년 5월, 우리가 승선할 선박이 스켓줄이 갑자기 바뀌면서 라스팔마스항에 입항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그 곳에서 약 한달가량 대기상태에 있게 됐다. 그러자 당시 국가급 2급요리사 증서가 있었던 나는 라스팔마스 현지에서 한국인 이횡권씨가 경영하는 “호텔강촌”에 줄을 놓아 쉽게 그 곳의 주방장 조리수란 일자리를 찾을 수가 있었다. 


주방일은 일반적으로 자정이 넘어야 끝나군 했다. 당시 내가 들어있는 곳은 “세멘스클럽(선원회관)”이었는데 자정이 넘어 그곳으로 오자면 어쩔 수 없이 창녀촌으로 불리우는 싼타까따리나 거리를 거쳐야 했다. 때는 또한창녀들이 한창 손님을 끄는 고봉기었다. 


“꼬레안노, 올라? 지기지기 노프로그램아?(스페인어: 한국사람, 안녕하세요? 섹스요청해도 괜찮을가요?)”


“야, 그년 그 몸매 하나 싹 죽여 주는데, 어째 끝내줄 만 해?”


이러한 지껄임은 이 거리의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바로 그 거리에서 수산나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었던 것이다. 헌데 내가 보는 그녀는 여느 창녀와는 달리 보였다. 대마초나 마리화나를 복용하여 시누렇게 시들어가는 그 곳 오리지날 창녀들에 비하면 수산나는 아직 싱싱한 그대로었다. 그만한 미모라면 얼마든지 신사들도 끌 수 있겠으나 그는 손님한테 끈질기게 매달릴 줄도 몰랐고 간혹 술주정을 하는 사내가 다가 설라치면 겁에 질려 “노…노”하며 뒤걸음 치기가 일쑤었다. 이는 사내라면 흑인이든 술취한 알코올중독자든 가리지 않고 서로 빼앗기를 하는 다른 창녀들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날도 내가 그 거리에 들어서는데 감실감실하게 생긴 필리핀 선원 한명이 징글거리며 수산나한테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오기같은 것이 생겼고 어쩐지 내 여동생이나 처제가 짐승한테 짓밟히는 듯한 감이 들었다. 그리고 고향 연변에 아내와 따님까지 둔 몸이었지만 그때 그 순간만은 내가 절대 너같은 반깜둥이한테 그 여자를 양도할 수 없다는 반발심까지 생겼다. 


바로 이때 “모멘또(스페인어?잠간만)”하는 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더니 모로코 여자 한명이 불쑥 그들의 중간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필리핀 사내녀석과 한동안 옥신각신하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수산나쪽으로 홱 돌아서며 욕질해대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기가 정했던 파트너를 유혹하지 말라는 으름장 같았다. 이에 수산나가 몇마디 변명해 나서자 그녀는 다짜고짜로 수산나의 머리칼을 걸머쥐는 것이었다. 둘은 대뜸 한덩어리로 엉켜졌는데 몸집이 작은 수산나가 그 야생암말같은 그 모로코 여자의 상대가 될리 만무했다. 


차마 더 지켜볼 수 없는 정경, 나는 수산나가 나의 뭐라도 된 것처럼 그 여자들 싸움에 끼어들어 수산나한테서 그 모로코 여자를 뜯어내었다. 그러자 그 모로코 여자는 입에 게거품을 물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어 우리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구석쪽 골목으로부터 곰같이 생긴 흑인사내 세놈이나 칼을 빼들고 다가서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필리핀 선원 녀석은 슬슬 뒤걸음 쳤다. 나 역시 잘못 걸렸구나 하는 후회가 없지 않았으나 언제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맞다들고 볼 판이었다. 수산나를 슬쩍 뒤로 피하게 한 뒤 나는 늘 호신용으로품속에 넣고 다니던 쇠사슬을 뽑아 들었다. 우선 위엄부터 보일 심산으로 그놈들한테 접근한 후 내가 그 쇠사슬을 휙휙 내두르며 군복무를 할 때 배운 무술동작 몇가지를 표연하자 뜻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오우, 치이나쿵우!(중국무술이다)”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그 깜둥이들은 줄행랑을 놓았다. 


“아밍고, 무쵸그라시아스,(스페인어 대단히 고마와요.”


수산나는 내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사태는 수습했으나 나는 이런 수산나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를 아니했다. 결국 나는 수산나의 손목을 이끌고 나의 숙소가 있는 “세멘스클럽(선원회관)”으로 갔다. 


숙소에서 나는 출국할 때 몇권의 외국어교재를 가졌던 행운이랄가? 수산나와 스페인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다.


수산나는 콜롬비아의 스페인계 아가씨로서 이곳에 온지 10여일밖에 안되었다. 라스팔마스는 천국이고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대서양을 건너온 그녀었으나 그것이 떨어지는 사과를 받아 먹기보다는 훨씬 고된 노릇이었다. 거리마다 몇해째 해먹던 창녀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기에 수산나같은 애숭이 창녀는 이골목 저골목에서 쫓겨 다니기가 일쑤었다. 그렇다고 많은 빚을 내고 이민권을 산 수산나가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다음날 아니 정확히 그날 오후, 나는 수산나를 데리고 “호텔강촌”으로 갔다. “호텔강촌”의 이횡권 사장님은 교회의 1등집사로서 선교사업과 자선사업을 각별히 중시하는 분이었는데 동란지역에서 온 많은 난민들을 받아 들여서는 그들한테 알맞는 일자리를 알선해 주군 했다. 


“갓 피기 시작한 꽃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 아깝다. 어떤 출신, 어떤 상황에서 시작했던 간에 창녀의 운명이란 모두 비참한 것으로 끝난다. 한 생령이 타락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손을 내밀어 구해줘야 할게 아닌가?!”


내가 이렇게 언어밑천을 몽땅 동원하여 이횡권 사장님한테 사정하자 수산나의 일자리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날로 호텔의 스튜어드가 된 수산나는 너무너무 좋아하었다. 


그날 밤 우리는 누구의 제의라 할 것 없이 한방에 들었다.


이 수산나가 지금 남몰래 우리 선박에 승선했다. 이젠 배가 한바다에서 항행하는 중이라 하선시킬 수도 없는상황이다. 그녀가 내곁에 있게 된 것이 못내 기쁘기도 했으나 뒤 일이 몹시 근심되었다. 


“호텔일은 어떻게 하고 나왔어?”


“건 신경 안써도 돼. 사장님한테 허락을 받았으니까.”


천진난만한 수산나는 그동안 한국말을 그렇게도 유창하게 잘 배웠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걸 칭찬할 기분이 아니었다. 


내가 침울해있자 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빠, 왜 이래? 무슨 일 생겼어?”


“너 참, 말도 안돼, 예가 뭐 너 맘대로 오르는 곳인줄 알아! 너 누구한테 신고했어?”


“그럼 이제라도 신고하면 되잖아?”


“이 철없는 아가씨야, 너한테 선원수첩이 있나, 여권이 있나, 더구나 이번 스켓줄이 쿠바로 정해졌단 말이야. 캡틴이 알면 난리난다, 난리가 나.”


전반 쿠바가 그러하듯이 수도 아와나항구는 스페인의 라스팔마스항이나 네델란드의 로토르담항처럼 사람이 제멋대로 드나드는 자유항이 아니었다. 쿠바에 입항하자면 사람은 물론 배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한테도 수첩이 있어야 했고 지어는 선원들이 소지한 술담배와 돈까지도 몽땅 체크하고 신고해야만 했다. 때문에 선내스피카에서는 쿠바입항시의 유의할 점과 주의사항들이 매일같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첩도 여권도 없는 여자, 그것도 타국인 콜롬비아 아가씨가 한국선박에 편승했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는 판이었다. 


아니나다를가 이튿날 저녁, 설거지가 끝나자 선장의 호출이 있었다.


내가 3층에 있는 선장사무실에 들어서니 징계위원들인 선장, 기관장, 1기사, 1항사, 통신장 이렇게 다 모여 있었다. 


눈살이 꼿꼿해 앉아 있는 선장 강귀수.


“주방장, 오늘 왜 불렀는지 알만한가?”


“죄송합니다. ”


“이 사람아, 그 말 한마디면 단거요? 내가 묻고저 하는건 쿠바입항시 어떡허면 탈없이 무사하겠는가 하는거여. 여자를 올렸으니 대책 있을거 아니여?”


뒤이어 수산나가 승선한 걸 주방장이 몰랐다는건 턱도 없는 소리라는둥, 어느 누구는 여자를 올리기 싫어서 안올렸겠느냐, 주방장이 다 뭔데 선장도 감히 하지 못하는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연변놈이 간이 커도 한정 없다느니 뭐니 하며 기관장과 1기사가 맞장구를 쳐댔다. 


“캡틴, 우리 선박에서 연변 놈들이 너무 날치고 있어요. 이번 사건을 꼭 엄하게 처리해야 선내 분위기가 개선되는줄 알겠습니다.”


기관장의 건의에 뒤이어 선장 강귀수는 사무상을 탕 치며 호령했다. 


“주방장 문성화, 금일부터 즉시 근무중지, 시말서를 쓰고 다음 항구에서 하선할 준비를 할 것. 1항사, 문성화의 강제하선 서류를 작성하고 장본인을 독방에 가두며 주방일은 잠시 보숭(갑판장)이 대신할 것. 이상 동의하는 자 손 드세요. ”


그러자 모두들 하나같이 손을 들었다. 다만 통신장 이덕수씨만이 눈치를 살피며 주저주저하더니 마지막으로 손을 들었다. 


“자, 의문사항 없으면 즉시 집행!”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2항사와 2기사가 뛰어 들어 와서는 나의 두팔을 휘여 잡았다. 


“어서 걸엇!”


독방에 갇히고 밖으로부터 자물쇠를 철렁 잠그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공포가 뇌리를 탁 쳤다. 2년이라는 출국근무기회에 꼭 큰 돈을 벌어 내 가정을 일신시키리라던 내가 강제귀국이라니? 그것도 일개 창녀 때문에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돈을 벌기는커녕 이제 귀국하면 회사에서는 집을 팔아서라도 왕복 항공료를 본인더러 물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떠나기 전에 꾼 이자돈 만원은 뭘로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그것보다 어린 딸을 업은채 달리는 기차를 따라오며 울부짓던 아내를 대할 면목조차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할 수록 기가 막혔다.


뉘라서 세인을 놀래우는 거사를 치러서만이 기적이라 했는가. 자신이 가장 실망했던 일이 뜻밖으로 풀리어 그의 인생을 다르게 만들었을 때 이것 역시 그의 인생으로서의 기적이 아닐가?


내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 이틀후 독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통신장 이덕수씨가 소리치며 들어섰다. 


“성화씨, 당신 진짜 복있는 사람이라구. 강제귀국 결의가 취소되고 원직이 회복됐지 뭐겠어.”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슬푸르던 강귀수 선장이 이틀밖에 안되는 사이에 자기의 결정을 그렇게 소홀히 취소하다니 그래 그가 갑자기 부처님이라도 됐단 말인가. 해가 서쪽에서 뜰 지경이었다. 


“통신장님,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혹시 쿠바에 갈 때까지 주방사정 때문에 그러는건 아닌지요?!”


“참, 사람 그렇게 기만할 수가 있어요. 한국사람은 그런 거짓말까지는 하지 않아요. 그리고 성화씨의 복직은 완전히 이 수산나 아가씨가 자신을 희생시킨 덕분이라구.”


뭐, 수산나가?!…


어느 사이 다가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는 수산나가 나는 썩 반갑지를 아니했다. 


“오빠,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다시 내 몸에 기대여 울며 흐느끼는 수산나.


미구하여 나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내가 독방에 갇히자 문제의 엄중성을 느낀 수산나는 그날로 선장 강귀수를 찾아 올라가서는 왜 죄없는 사람을 가두느냐, 가둘테면 나를 가두고 죽여도 나를 죽이라고 야단을 쳤다. 이에 강귀수가 그녀까지 가두라 하고 을러멘데서 수산나 역시 독방에 갇히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속으로 딴 궁리를 한 선장 강귀수는 다시 수산나를 찾아가서 제말을 들어주면 풀어주겠노라고 꼬셔댔다. 이에 수산나는 주방장까지 풀어 주어야 말을 듣겠노라고 잡아떼다가 그러마 하는 선장의 승낙을 받고서야 선장을 따라 갔다. 

그날 저녁 수산나는 선장방에서 몸서리치는 성시달림을 받았다. 


선장 강귀수라면 선내에서 다 아는 변태성욕자였다. 그는 자기의 남근을 수술해서는 그 속에 구슬 몇개씩이나 집어 넣었는데 그것이 여자라면 밤낮이 따로 없이 쳐들군 해댔다. 그리고 그의 장끼라면 여자를 장밤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물건이 기능을 다 한후에도 천방백계로 여자를 괴롭히고는 고통스러워하는 여자한테서 쾌감을 얻군 했다. 그날밤 선원들은 밤이 새도록 선장방에서 째는듯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수산나는 큰 대가를 치르고서야 나의 강제귀국결정을 취소한다는 선장의 싸인을 받아냈다. 대신 그녀의 몸에는 꼬집어 퍼렇게 멍든 자리, 담배불로 지져놓은 자리 등 숱한 흉터가 생겨났다. 


선장한테 몸을 바친 수산나의 대가, 이건 확실히 내 운명을 바꿔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쉰음식을 먹은듯 께름하었다. 여자의 몸을 방패로 액운을 피햇다는 것 자체가 광채롭지 못할 뿐더러 또한 그 여자 역시 창녀경력이 있는 여자라 그 자신이 돈많은 선장한테 붙어 보자는 욕구가 없었다고 어떻게 장담하랴.


이렇게 오래도록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뜻밖에 있은 선장과 수산나의 싸움이 그것이 아니라는 걸 해석해 줬다. 


그날, 브릿치쪽에서 하도 떠들어 대기에 주방일손을 놓고 올라 갔더니 선장방은 완전히 수라장이었다. 깨긴 유리병쪼각, 뒤엎어진 냉장고, 각종 서류들은 되는대로 널려 있었으며 어떤 서류는 배바람에 날리어 바다물위에 낙엽마냥 떨어지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 이발자국이 난 볼을 붙잡고 있는 선장과 머리가 흐트러진 수산나가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이미 옆에서 말린 뒤라 싸움은 일단 끝났지만 싸움의 계기는 그녀가 선장방을 청소하는 기회에 선장이 재차 그녀를 범하려다가 그 꼴이 됐다는건 물어보나마나었다. 


헌데 시어미역정에 개배때기를 찬다고 선장은 나한테 화풀이를 해댔다. 


“이 씨팔놈아, 넌 왜 올라왔어? 너 이년을 도와 날 때리러 왔지. 그래 이년이 너의 와이프라도 된단 말이냐?”


“선장님, 말이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대체 어쨌다는 겁니까?”


또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릴줄 알았던 내가 강경하게 나오자 선장은 나를 잡아먹을 양으로 미쳐 날뛰었다. 뒤이어 날아오는 강귀수의 주먹질, 나의 눈앞에서는 불꽃이 반짝했다. 


“너 내가 누군줄 알고 말대꾸냐? 네놈이 그래도 여직 고분고분했기에 봐줬다. 이번엔 영낙없이 귀국이다. 시말서 당장 써!”


억울하게 맞는 것만 해도 분한데 또 귀국이요. 시말서요 해댔다. 아무리 선박이 자기 세상이라 해도 그렇지 사람을 완전히 짐승 취급하는 놈이었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싸가지 없는 전라도 새끼야. 네가 무슨 놈의 선장이냐! 너와 나 인간 대 인간, 오늘 네죽기 아니면 내가 죽기이다. 귀국하기 전에 나 너부터 죽일테다.”


나는 대뜸에 선장 강귀수를 메따꼰지고는 얼굴이고 가슴이며를 마구 짓밟아 뭉갰다. 


바빠맞은 선장은 배에서 깡패로 불리우는 2항사와 1타수를 불렀다. 그러나 그 두사람이 나서기도 전에 본선에서 근무하는 6명의 연변동료들이 그 둘을 막아나서면서 주방장한테 손대는 날엔 자기네들이 가만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듯 똘똘 뭉친 기세앞에서, 또한 그들 역시 진작 선장을 아니꼽게 보던차라 감히 어쩌지 못했다. 무졸장군이 된 선장은 그제야 자기의 고립을 알아챘는지 “쿠바에 간후에 보자”고 한마디만 남기고는 부랴부랴 브릿치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헌데 쿠바 아와나항에 입항해 징계를 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선장 자신이었다. 입항한 그날 저녁, 선장 강귀수는 어느 호텔앞에서 한 아가씨를 꼬시다가 당장에서 뽀리시(경찰)한테 덜미를 잡혔으며 그것을 끝으로 다시는 본선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쿠바도 사회주의 국가체제었던만큼 남녀사이의 비정상적 성접촉은 극력 통제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수산나는 세관원들의 수사를 피해 낮에는 줄곧 엔진품에서 숨박꼭질을 했는데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뒤이어 회사본부로부터 선장 강귀수의 강제귀국조치와 신임선장 정인식씨의 부임발령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몇개월이 지나갔다. 


“오빠, 나 아마도 이상해. 벌써 오래전부터 그 것이 오지가 않아.”


디스코클럽 “벌칸”에서 수산나가 이 말을 할 때는 그녀의 아랫배가 이미 어느 정도 부풀어 있었다.


뜻하지도 않던 수산나의 임신, 아내밖의 여자, 그것도 해외에서 만난 여자가 내 아이를 가졌다는 자체가 나한테 큰 충격을 주었다. 


라스팔마스에는 한국선원들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리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헌데 그 여자들 거개가 한국남자들에 대해서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 선원들은 여자를 꾀여낸 후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은 한국이 스페인보다 훨씬 더 잘 산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억수로 많으니 한국에 데려다 살림을 차려 줄테다 라는 감언설로 공갈쳐 놓고는 그대로 실행해 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걸레를 갈아 채듯 또 다른 여자를 봐다니군 했다. 


물론 나는 수산나한테 내 집이 여차여차하다고 자랑한 적도 없고 얼마만큼 잘해 주겠다고 약속한적도 없었다. 허나 내가 귀국 할 때 수산나가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서 위자료요, 생활안치비요 하고 떠드는 날에는 영낙없이 국제재판정에 나서야 할 판이었다.


이튿날 저녁 통신장한테서 500불 가불한 나는 수산나앞에 그 돈을 내놓았다. 


“오빠, 웬 돈인데 날 주는거야?”


“그게 바로 너 바라던거 아니야?! 그것이면 아이를 지우고도 영양비로는 충분할거야.”


“…?!”


수산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이런 수산나가 슬며시 무서웠다. 수산나가 어떻게 나올런지. 돈이 적다고 뾰로통해 할지 너,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발뺌 하려느나 하며 갑자기 달려들어 내 얼굴을 뜯어놓을는지…


헌데 아래의 수산나의 말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오빠, 알만해. 오빠가 골치 아파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난 어쩔 수가 없어. 난 일부러 오빠의 씨를 받았고 오빠를 닮은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었어.”


나는 그러는 수산나가 더 가슴이 아팟다. 아까 내가 무서워 했던 것처럼 그녀가 선장 강귀수한테 달려들던 때와 같이 나한테 성풀이를 했더라면 차라리 속 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산나, 너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너 지금 나를 한국사람으로 알겠지만 난 아니야. 중국사람, 차이나 아니 스페이말로는 치이나, 너 알지? 사람 많고 가난한 나라. 그런 곳으로 난 돌아가야 해. 널 데려갈 수도 없고 나 혼자 말이야.”


“맞아 오빤 가야 해. 나도 오빠가 언제건 내곁을 떠난다는 걸 예감했어. 오빠가 중국사람이라는 것두 나와는 상관없어. 오빠한테는 중국의 와이프가 좋을 것이나 난 어쨌든 첫 애인으로 오빠가 좋았어. 오빨 붙잡진 못해도 아이만은 가질 수 있잖아!”


한 서양여자의 입에서 그것도 창녀경력이 있는 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나는 이전의 그 여자가 아닌 새 인간 수산나를 보는 듯 했다. 나와 수산나, 여기서 나는 종래로 이 모든 것을 사랑과 연결시켜 본 적이 없었다. 헌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라스팔마스 거리에서의 여느 남녀들보다 우리의 관계는 다른 점들이 많은듯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와 나 사이는 돈을 주고 육체를 사는 그런 매음관계가 아니었다. 하긴 내가 그녀한테 얼마만큼의 돈을 쓴 건 사실이나 그건 절대 몸값을 준다는 기분이 아니었으며 그녀 역시 그런 요구글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만 내가 스스로가 원해서 그녀한테 옷도 사주고 함께 술집이나 디스코클럽에 출입했을 뿐이었다. 돈을 쓴 건 또한 나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그녀가 자기의 돈으로 먼저 값을 치를 때도 몇번 잘 되었다. 


그리고 다른 선원들은 입항할 적마다 다른 여자를 갈아댔고 지어는 한방에 2∼3명으 창녀를 넣고 질탕하게 놀아댔으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외출했던 남편이 아내곁으로 찾아오는 심정이랄가. 라스팔마스에 입항할 적마다 그 매혹적인 아가씨들이 팔을 잡아끌며 유혹했으나 나는 번번히 물리치고 내 유일한 파트너인 수산나만을 찾군 했고 그 때마다 그녀 또한 그 동안의 그리움과 정성을 몽땅 쏟아 나를 섬기군 했다. 이것이 바로 여자 수산나로서의 매력이랄가. 하긴 이러한 수산나가 있었기에 라스팔마스의 그 매혹적인 밤거리에서 내가 다른 선원들처럼 방탕하게 놀지 않았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너 날 버리고 어딜가. 너 죽고 나죽고 해 볼테다 라고 하면서 수산나가 지꿎게 매달린다면 미련없이 그녀를 뿌리칠 수도 있을 나었으나 그녀가 일절 신경 쓰지 말고 집에 가라고 나를 위안하는데는 도리어 그럴 수가 없는 나었다. 연변 고향집의 아내와 따님은 아무 때건 모이면 될 일이지만 밤만 자면 배가 부풀어 오르는 수산나와 그 배속의 씨앗을 두고는 그것이 설사 어떤 사랑이고 또 어떤 결실이던간에 한번 가면 영영 만날 수도 없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귀국일자가 각일각 다가 올수록 이러한 안타까움은 더욱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결국 나는 선박근무날자를 얼마간 연장한느 것으로 나의 얼마만한 책임이라고 다해 보려고 했다. 후에 나의 신청이 허락되자 그것이 반년이라는 짧은 연장임에도 수산나가 그렇게까지 좋아할수가 없었다. 


그때로 부터 약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리가 아프리카 앙골라 해상에서 냉동물고기를 받아싣고 라스팔마스를 향해 금방 선수(船首)를 돌렸을 때 “호텔강촌”의 이횡권 사장님으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새로 교체된 통신장 이순택씨의 부름을 받고 통신실로 달려 갔을 때는 스피카에서 이미 수산나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오빠, 오빠 뭘하고 있어? 빨리 말해 오빠야. 오버-”


나는 급급히 대화기를 부여잡았다. 


“수산나. 나야. 너 웬 일이야? 오버-”


“기뻐해 오빠. 내 큰 일 해냈거든. 오빠 알만해. 한번 맞춰봐. 오버-”


순간 나의 온몸에는 전률이 쫙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나와 수산나의 2세 탄생 맞지? 오버-”


“그래 그래 맞았어. 오빠의 복제품 남자애야. 오빠 어서 와봐. 오버-”


산후진통을 깡그리 잊은 듯 수산나는 잔뜩 희열에 차 있는 듯 했다. 


그 뒤에 있은 6일간의 항행. 나는 통 제정신이 아니었다. 된장국을 끓일 때 설탕을 잔뜩 넣어 들큰하게 했는가 하면 반찬을 너무 짜게 하여 입에 댈 수조차 없게 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선원들은 “쩌어식, 돌아도 한창 돌았군”하며 악의 없는 농담질을 했다. 


배가 부두에 와닿자 나는 저녁 설거지가 끝나기 무섭게 수산나한테로 달려갔다. 


그녀는 라스팔마스의 순복음 한국인교회에서 세운 병원에서 출산하고는 이미 이틀전에 자기의 거처로 옮겨와 있었다. 


나와 수산나를 반반씩 닮았다고 할가. 아기는 전형적인 동서양인의 혼혈결정체었다. 그리고 출산카드에 적혀있는 아기의 혈형은 A형, 그것은 생부인 나의 AB혈형과 혈육관계가 건립된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의 한 외국여자와 맺은 사랑의 결실, 그것은 누구나 다 수확해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기쁨이 큰만큼 뒤에 따르는 번뇌는 더 컸다. 자식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무책임한 생육, 생부를 영원히 모르고 자랄 사생아의 운명, 그것이 수산나한테는 어떤 수확으로 될는지는 모르나 나한테는 어쨌든 죄악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위스키를 정신없이 들이 켰다… 


다음날, 나는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겨우 침대에서 눈을 떴다. 헌데 수산나가 보이지 않았고 이횡권 사장님의 부인 유혁선 여사가 거실에서 아기한테 우유병을 물려주고 있었다. 


“맙소사, 아저씨 어쩌면 그토록 곤드레 만드레 취할 수가 있어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아버님, 사탄마귀한테 홀리운 저 영혼을 구원해주옵소서. 아멘-”


교회 전도사인 여사님은 누구를 만나든 먼저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이젠 습관으로 된 모양이었다. 


“여사님, 수산나는요?”


“그것도 모르니 사탄마귀한테 혼백을 몽땅 빼앗긴게 아니고 뭐예요. 아가씨는 아저씨 대신 선원형제들의 밥을 지으려고 새벽에 부두로 나갔어요.”


말을 마친 여사님은 계속 구원해 주옵소서를 연발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도 따위에는 별 흥미도 없었다. 나는 부랴부랴 아기를 싸안고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바르꼬(스페인어-배에로)”


본선에 돌아오니 수산나는 한창 주방조리수와 함께 점심밥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서 거들어 주던 갑판장 김정억씨는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어 주기까지 했다. 그 의미심장한 웃음에서 나는 긴장이 확 풀렸으며 선내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감촉할 수 있었다. 한국선원법에 따르면 무단적 외박은 틀림없는 징계범위에 속했으며 강귀수 선장 때 같으면 그것이 에누리 없이 집행되었을 것이었으나 출산 10일도 안되는 수산나가 열심히 일한 정성이 꽃으로 폈는지 아니면 유혁선 여사님이 드린 기도가 하느님을 감동시켰는지 아무튼 정인식 선장님까지도 흐뭇해서 우리의 아기를 안아 보며 “거참. 우리 선박에 경사가 났구나”하고 우스개까지 피웠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모두들 오침에 들어가자 나는 수산나를 앉혀 놓고 오래동안 벼르고 벼르던 말을 끄집어 냈다. 


“이젠 아기까지 있으니 너와 나 더는 떨어 질 수 없구나. 너 나와 함께 중국 가서 살자. 이젠 그럴 수밖에 없어.”


“오빠, 몇번 말해야 돼? 신경쓰지 말라구. 난 이 애면 족해. 중국은 공산권국가기에 여자 둘씩이나 한집에서 와이프로 살 수 없잖아!”


중국에 대한 그녀의 개념이란 고작 이 정도었다. 


“건. 상관마. 내가 마누라와 갈라지면 될거 아냐!”


앞날이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는 나었으나 일단은 그 쪽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 와이프와 나 모두 여자야. 난 그게 싫어. 또 오빤 그럴 사람 못돼. 그러나 오빠 내 말 한가지만 꼭 들어줘.”


“무슨 부탁인데 힘이 닿는대로.”


“심각한건 아니야. 오빤 할 수 있어. 바로 오늘밤 나와 결혼해 줄 것만 약속해줘. 그담에 난 수도원에 들어 갈거야. 오늘 밤 일은 이미 캡틴과 다 연락 있었어.”


결혼?!… 그녀와 나 이미 살을 섞었던 몸. 새삼스레 결혼이란 뭔가. 그것도 말이 결혼이지 법적승인도 없는 형식적 결혼. 그것이 수산나한테 어떤 큰 위안이 되는가. 또한 그런 형식적 결혼을 해놓고 수도원의 수녀로 일생을 기약한다는 것. 그것이 과연 내 아내를 위한 희생인가 아니면 어지러운 속세의 모든 것이 싫어서인가. 하지만 수산나를 놓고 볼 때 이는 너무도 각박한 인생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밤, 나와 수산나는 선박갑판위에서 결혼 아닌 “결혼파티”를 열었다. 습관에 따라 선박에서는 갑판조명을 몽땅 끄고 초불을 켰으며 선수 크레인앞에는 예수그리스도가 못박혀 죽은 십자가까지 세웠다. 


간단한 예식이 있은 후 선장 정인식씨의 설교가 있었다. 


“너그럽고 자비하신 하느님, 원항에서 파도와 싸우는 우리 선원형제들이 오늘 하느님 뜻과 어긋나게 결혼파티를 열었사오니 죄많은 속세의 영혼들을 널리 용서해주옵소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우리 어리석은 영혼들에게 참된 뜻과 참된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고 있사오니 우리 선원형제들은 그 뜻 받들어 영원토록 살겠사옴을 기도합니다. 아멘-”


선장의 설교 역시 형식에 불과했다. 뒤이어 술판이 벌어지고 춤노래가 시작되었다. 바다의 마도로스들한테는 하느님보다 그래도 술과 노래아 여자가 더 좋은 모양이었다. 


파티가 클라이막스에 오를 무렵, 누군가 선박에서 SOS구조용폭죽을 가져다 하늘에 쏴올렸다. 


항구의 밤하늘은 수십갈래의 꽃무늬를 이루면서 한결 더 황홀해졌다…


얼마후 수산나는 과연 이횡권 사장님의 알선으로 스페인 사람이 세운 수도원의 수녀로 들어갔다. 나와 있었던 로맨틱한 과거를 깨끗이 씻고 나를 잊으려는 마음에서인지 그때로부터 그녀는 나를 통 만나주지 않았으며 나는 귀국할 때까지도 그녀와 아기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인 내가 그녀를 잊지 못하는 오늘, 아무리 수녀라 해도 내 아이를 기르는 수산나가 과연 나를 깡그리 잊을 수 있을는지?…세상에 완미한 것이 있을수 없듯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합법적인 것이래서 다 신성한 것이 아니며 비법적인 것이래서 다 죄악만은 아니라고.


이것은 다만 내 아내가 낳지 못한 아들을 수산나가 대신 낳아 주었다는데서만이 오는 변호가 결코 아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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