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동남아시아에서 미·중 전략 경쟁을 바라보는 인식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을 가정한 조사에서 중국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미국보다 소폭 앞서는 결과가 나오면서, 지역 내 전략적 균형 구도에도 변화 조짐이 감지된다.
싱가포르 동남아시아연구소가 4월 7일 발표한 ‘2026년 동남아 정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2%가 중국을, 48%가 미국을 선택했다.
이 조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11개국을 대상으로 올해 1월 5일부터 2월 20일까지 진행됐으며, 총 2008명이 참여했다.
국가별로는 선택 경향이 뚜렷하게 갈렸다. 인도네시아는 80.1%가 중국을 선택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 말레이시아 68%, 싱가포르 66.3%, 동티모르 58.2%, 태국 55%, 브루나이 53.5% 등도 중국 선호가 우세했다.
반면 필리핀은 76.8%가 미국을 선택했으며, 미얀마 61.4%, 캄보디아 61%, 베트남 59.2% 역시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라오스는 양측이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처럼 국가별 차이가 크게 나타난 것은 경제와 안보 구조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국가일수록 중국 선택 비율이 높았고, 미국과 군사·안보 협력이 깊은 국가들은 미국 지지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전체적으로는 양측 격차가 크지 않아 동남아가 특정 진영으로 급격히 기울었다기보다, 전략적 균형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대중 관계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응답자의 55.6%는 향후 3년간 자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거나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중국이 여전히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중국에 대한 신뢰도 역시 상승 흐름을 보였다. ‘중국이 글로벌 공익을 위해 올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9.8%로 나타났으며, 이는 과거 20% 미만 수준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다.
반면 미국에 대한 전망은 다소 신중해진 모습이다. 향후 관계에 대해 37.7%는 현상 유지를 예상했고, 32.8%는 개선, 29.5%는 악화를 전망했다.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낙관론은 줄고 관망 기류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에 대한 우려는 경제 영역에 집중됐다. 응답자의 43.4%는 제재와 관세 등 경제적 압박을 가장 큰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군사 개입이나 외교적 갈등보다 높은 수준으로, 동남아의 인식이 안보 중심에서 경제 리스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국가들은 특정 진영 선택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응답자의 55.2%는 외부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역내 결속과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24.1%는 균형 외교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는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동남아가 일방적 선택보다는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경제와 안보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 속에서 국가별 선택이 달라지는 복합적인 구조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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