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명 단독 사용 금지·배우 순서도 획수 기준…‘번위 전쟁’ 종식 신호탄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드라마·온라인영상 업계가 배우 표기 방식을 전면 개편한다. 오는 7월 10일부터 방영되는 모든 신작 드라마와 온라인드라마는 배우의 법적 이름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출연 순서 역시 인지도나 소속사의 영향력이 아닌 성씨 획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중국드라마제작산업협회와 중국네트워크시청프로그램서비스협회, 중국광파전시사회조직연합회 배우위원회는 최근 공동으로 「드라마(온라인드라마) 배우 표기 규범 통지」를 발표하고 새로운 배우 표기 기준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규정은 드라마와 온라인드라마의 오프닝·엔딩 크레딧뿐 아니라 포스터, 예고편, 공식 보도자료, SNS 홍보물 등 모든 공개 콘텐츠에 적용된다. 중국 방송·영상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표기 방식 변경을 넘어 연예산업 전반의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배우 실명 사용 의무화다.
새 규정에 따르면 배우는 원칙적으로 신분증에 기재된 법적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예명을 사용할 경우에도 단독 표기는 허용되지 않으며 반드시 ‘본명(예명)’ 형식으로 병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백록(白鹿)은 ‘백몽연(白梦妍·백록)’, 성의(成毅)는 ‘부시기(傅诗淇·성의)’, 임윤(林允)은 ‘비하(费霞·임윤)’ 등으로 표기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연예인 신원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문제 연예인이 이름을 바꿔 활동을 재개하는 편법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배우 직함 체계 역시 간소화된다.
앞으로는 ▲영함주연(领衔主演) ▲특별출연(特别出演) ▲출연(出演) 등 세 가지 표기만 허용된다. 그동안 작품 홍보 과정에서 활용되던 ‘우정출연’, ‘특별주연’, ‘공동주연’, ‘특별참여’ 등 다양한 변형 명칭은 사용할 수 없다.
이번 규정의 핵심은 배우 순위를 둘러싼 오랜 갈등에 제도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중국 연예계에서는 주연 배우의 이름이 누구보다 먼저 등장하느냐를 두고 제작사와 소속사, 팬덤 간 충돌이 반복돼 왔다. 이른바 ‘번위(番位) 논란’이다. 일부 작품은 출연 계약 단계부터 배우 순서를 둘러싼 협상이 장기화됐고, 방영 이후에는 팬덤 간 온라인 공방으로 작품 홍보가 묻히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새 규정은 이러한 갈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같은 직함 안에서는 배우의 법적 이름을 기준으로 성씨 획수가 적은 순서대로 표기해야 하며, 획수가 같을 경우 이름의 다음 글자 획수를 차례로 비교해 순서를 정한다. 작품 크레딧에는 ‘성씨 획수 순 배열’이라는 문구를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번위 전쟁 종식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베이징의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배우 순서를 둘러싼 협상은 제작 현장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였다”며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면 제작사는 캐스팅 서열보다 작품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도는 유명 배우들의 본명에도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가륜(任嘉伦)의 본명은 임국초(任国超), 장릉혁(张凌赫)은 장가위(张家玮), 송조아(宋祖儿)는 손범청(孙凡清)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예명으로 활동해 온 배우들의 경우 본명이 공식적으로 노출되면서 대중의 인식 변화도 예상된다.
특히 예명 자체가 브랜드로 자리 잡은 스타들에게는 적지 않은 변화가 될 전망이다. 수년간 구축해 온 인지도와 상업적 가치가 예명에 집중된 경우가 많아 초기에는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배우 개인보다 작품 자체가 주목받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제기된다.
실제 일부 연예산업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가 최근 중국 당국이 추진해 온 연예계 질서 정비 정책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분석한다. 팬덤 과열 경쟁과 과도한 스타 마케팅을 억제하고 콘텐츠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강화하려는 정책 기조가 이번 규정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미 제작을 마쳤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은 자막과 포스터, 예고편, 홍보자료 등을 새 기준에 맞게 수정해야 해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제작 규모가 큰 작품일수록 후반 작업과 홍보 일정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 방송·영상업계는 이번 조치가 배우 개인의 서열 경쟁과 팬덤 갈등을 줄이고, 콘텐츠 경쟁력 중심의 제작 환경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번위 전쟁’에 제도적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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