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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30%, 유럽은 14%"…EU 제조업 방어전의 숨은 배경

  • 안대주 기자
  • 입력 2026.05.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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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포커스] 유럽연합(EU)이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새로운 산업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럽 내 핵심 산업과 공급망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중국 산업정책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EU 주요 회원국들은 28일(현지시간) '산업 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IAA)'을 처음으로 공식 논의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폴란드 등 주요 회원국들은 법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적용 범위와 시행 시기, 비EU 국가 참여 여부 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견해차를 드러냈다.


이번 법안은 전기차와 배터리, 첨단 제조업 등 전략 산업 분야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게 현지 생산 확대와 연구개발(R&D) 투자, 기술 협력, 공급망 구축 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유럽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 기업들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EU 산업전략을 총괄하는 스테판 세주르네 집행위원은 법안 논의에 앞서 유럽 제조업이 직면한 현실을 수치로 설명했다.


그는 "2000년 전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30%에 이르렀다"며 "반면 유럽은 같은 기간 21%에서 14%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변화는 유럽 산업 경쟁력의 구조적 약화를 보여준다"며 핵심 산업과 전략 물자를 해외 공급망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U가 추진하는 산업 가속화법의 목표는 2035년까지 제조업 비중을 EU 국내총생산(GDP)의 2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제조업 비중은 14.3%에 머물러 있어 목표 달성까지는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회원국들은 제조업 경쟁력 회복이 시급하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실행 방안을 놓고는 입장이 엇갈렸다.


이탈리아는 보다 강력하고 신속한 조치를 요구했다. 아돌포 우르소 이탈리아 기업·메이드인 이탈리아 장관은 법안 시행까지 수년이 걸리는 점을 문제 삼으며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너무 늦게 움직인다면 정작 보호할 산업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안은 산업 가속화법이 아니라 산업 감속화법에 가깝다"고 꼬집으며 신속한 정책 집행을 촉구했다.


회원국 간 가장 큰 쟁점은 법안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일부 국가는 '유럽산(Made in Europe)'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 내 생산과 고용 창출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까지 사실상 배제할 경우 공급망 안정성과 투자 유치 측면에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는 산업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폴란드와 스웨덴 등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입장 역시 관심을 모았다.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중국과 가장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독일은 산업 보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중 교역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을 방문 중인 카트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EU의 대중국 정책이 유럽 기업들의 중국 수출과 투자 활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산업 가속화법의 기본 방향에는 찬성하지만 새로운 규제와 행정 절차가 기업 부담을 더욱 키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실제 유럽 산업계 내부에서는 보호주의 확대보다 구조적 경쟁력 회복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독일 기계설비산업협회는 유럽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로 높은 에너지 비용과 복잡한 규제 환경을 꼽았다. 자동차와 기계 산업계 역시 글로벌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정책은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가 단순한 산업보호 정책 차원을 넘어 글로벌 제조업 주도권 경쟁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은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통신장비 등 전략 산업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반면 유럽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생산기지 해외 이전,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제조업 기반이 점차 약화됐다.


중국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들의 유럽 투자 확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중국 자본과 기술이 침체된 제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반면 핵심 산업의 기술 경쟁력과 공급망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최근 EU는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와 투자 심사 강화 등 중국의 산업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산업 가속화법까지 더해질 경우 양측 간 통상 갈등은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도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과잉생산을 이유로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은 유럽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외부 경쟁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중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필요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EU 내부에서도 산업 보호와 시장 개방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전략 산업 보호를 강조하는 반면 독일은 산업 경쟁력 유지와 대중 교역의 균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중국 견제가 아니다. 제조업 경쟁력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유럽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어떤 생존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향후 산업 가속화법 최종안이 어떤 형태로 확정되느냐에 따라 중국 기업들의 유럽 투자 전략은 물론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과 산업 경쟁 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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