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최근 싱가포르에서 제작·방영된 다큐멘터리 '731부대의 진실: 일본의 인체실험'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의 생존 병사와 세균전 피해자 및 유족, 역사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군의 생체실험과 세균전 실태를 조명했다. 관련 영상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30만 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싱가포르 역사학자 임소빈(林少彬)은 40여 년 전 일본의 동남아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게이오대학에 유학했다. 그는 당시 도쿄의 고서점에서 일본군 관련 문헌과 자료를 수집하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기록을 발견했고, 이를 계기로 731부대와 동남아 지역의 연관성을 장기간 추적해 왔다고 밝혔다.
그가 주목한 자료는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의 측근 사이토 료이치가 전후 미군에 제출한 약 500쪽 분량의 보고서였다. 보고서에는 각 지역의 세균전 연구시설 현황이 정리돼 있었으며, 싱가포르 항목에는 유일하게 '물음표(?)'가 표시돼 있었다. 임소빈은 기존 연구가 이 부분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이 기록을 단서로 싱가포르에서의 일본군 활동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군은 싱가포르에 '오카모토 제9420부대'를 설치하고 이를 거점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조직을 운영한 것으로 분석됐다. 임소빈은 9420부대가 일본군 남방군에 편입된 이후 한때 병력이 1천 명을 넘었으며, 중국 전장 밖에서는 최대 규모의 세균전 부대였다고 주장했다. 본부는 싱가포르에, 분소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설치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임소빈은 전후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그는 일본이 경제협력과 산업 지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과거 침략의 기억이 상대적으로 희석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평가하며, 경제협력이 역사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ODA는 우호와 원조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역사적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ODA 협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국가와는 방위 협력 및 방위 장비 이전도 확대하고 있다. 임소빈은 이러한 흐름을 지켜보며 "오랜 기간 관련 자료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군국주의의 움직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는 ODA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관련 통계를 인용하며 일본 외무성이 2015년 이후 '해외 전략 정보 발신' 사업에 560억 엔 이상을 투입했고, 2025년 예산도 62억2천만 엔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반면 전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지급한 보상 규모는 100억 엔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임소빈은 일부 일본 우익 세력이 역사 왜곡과 허위 정보 확산을 시도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생성 콘텐츠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왜곡된 역사 정보 유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의 중국 침략을 '진출'로, '난징 대학살'을 '난징 사건'으로 표현하는 사례 등을 역사 인식 논란의 사례로 제시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의 고문서와 공식 자료를 수집해 온 임소빈은 2025년 9월 중국 역사연구원 도서기록관에 일본 침략전쟁 관련 사료 64건을 기증했다. 약 4천 점의 사진과 지도, 군사 우편엽서 등이 포함된 이 자료에는 당시 일본의 선전 활동과 전시 동원 방식 등을 보여주는 기록도 담겨 있다. 그는 이러한 자료가 국제 학계의 공동 연구와 역사 검증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소빈은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마저 역사를 잊는다면 미래 세대에 또 다른 부담을 남길 수 있다"며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동남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일본군 세균전 연구를 다시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공개된 사료와 연구 성과를 둘러싼 역사 검증과 역사 인식에 대한 논의 역시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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