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인 또 럼(To Lam) 서기장이 아시아 최대 안보회의인 샹그릴라 대화 무대에서 경제 발전과 전략적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중 경쟁 속 베트남의 실용적 균형외교 노선을 재확인했다.
29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한 제23회 샹그릴라 대화에서 또 럼 서기장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제 환경이 필수적"이라며 군사적 대립보다 경제 협력과 상호 신뢰 구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국제사회가 직면한 불안정성이 단순한 군사 충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무역, 금융, 관세, 에너지, 식량, 데이터, 기술 등 다양한 분야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데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럼 서기장은 "규칙에 대한 존중이 약화되고 불신이 확대되면 결국 강대국 중심의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협력과 신뢰 회복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동 분쟁도 아시아 경제에 영향"
그는 최근 중동 정세를 사례로 들며 지역 분쟁이 국경을 넘어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경고했다.
특히 이란과 관련된 긴장 고조와 호르무즈 해협 정세 불안이 에너지 공급망과 국제 무역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직접적인 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의 경제와 사회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럼 서기장은 "오늘날의 불안정성은 전쟁뿐 아니라 발전을 방해하는 각종 요인에서도 비롯된다"며 경제 성장과 안보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중 직접 거론 피했지만 균형외교 메시지 분명
이번 연설에서 또 럼 서기장은 미국이나 중국을 직접 비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비 경쟁 확대와 지정학적 긴장 심화를 우려하는 발언을 통해 강대국 경쟁이 아시아 지역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베트남은 현재 중국과 미국 모두와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베트남 최대 교역국이자 핵심 투자 파트너이며, 미국은 베트남 수출의 최대 시장 가운데 하나다. 최근 수년간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분산되는 과정에서 베트남은 대표적인 수혜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베트남 경제는 중국 공급망과 미국 소비시장에 모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양국 관계 악화가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과 협력 확대, 미국과는 거리감
또 럼 서기장은 올해 4월 중국을 방문해 철도, 첨단기술, 농업, 산업 공급망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반면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다소 복잡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 간 접촉은 이어지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전략적 밀착은 다소 둔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함께 베트남은 한국, 일본, 인도 등 중견국들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하며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미국산 C-130 수송기 도입 등 국방 협력도 병행하면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 적극적 역할 모색"
국제 전문가들은 또 럼 서기장이 베트남을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실용적 중견국으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아시아 담당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기보다 경제 성장과 국가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실용주의 외교를 추구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이 강조하는 '발전을 통한 안정' 전략이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아시아 정세 속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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