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주·건조·잔량 모두 세계 1위…한중 조선 경쟁 새 국면
[인터내셔널포커스]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축이 빠르게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글로벌 조선시장에서 중국은 압도적인 생산능력과 공급망 경쟁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조선업계와 국제 해운시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선박 건조량은 1,568만 DWT(재화중량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7%를 넘어섰다. 신규 수주량은 5,953만 DWT로 세계 시장의 약 85%를 차지했으며, 수주잔량 역시 3억 2,230만 DWT를 기록해 세계 최대 규모를 유지했다.
세계 조선시장이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갈등, 해운 운임 변동성,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변수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중국 조선업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단순한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규모의 경제와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규모의 경제가 만든 경쟁력
조선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초대형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 LNG 전용 생산라인 등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며, 투자비 회수 기간도 길다.
대형 조선소가 지속적으로 수주를 확보하면 고정비 부담이 낮아지고 생산 효율은 높아진다. 반면 신규 사업자나 중소 조선소는 대규모 설비를 구축하더라도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쉽지 않아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선주들의 발주 관행도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납기 준수 경험과 생산 능력을 갖춘 조선소를 선호한다. 선박 발주는 수억 달러 규모의 장기 투자이기 때문에 건조 지연이나 품질 문제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같은 구조는 대형 조선소와 선주 간 장기 협력 관계를 강화한다. 유지보수 체계와 부품 공급망, 선원 교육 시스템까지 연계되면서 거래 전환 비용도 커진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 MSC와 글로벌 해운기업 머스크의 신규 발주 상당수가 중국 조선소에 집중되는 배경에도 이러한 산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고부가 선종, 중국은 전방위 확대
한국 조선업은 LNG 운반선과 LPG 운반선, 초대형 화학제품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여전히 강점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LNG 화물창 기술과 저온 저장 설비, 재액화 시스템 등 일부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한국 조선사들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컨테이너선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LNG 운반선 시장까지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거에는 중저가 선박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고부가 선종 수주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건조 기간 단축과 생산 효율 개선이 중국 조선업의 새로운 강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규모 생산능력과 다수의 협력업체를 기반으로 한 동시 건조 체계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급망 경쟁력도 격차 확대
중국 조선업의 또 다른 강점은 산업 생태계다.
중국은 철강과 기계, 전자, 엔진, 밸브, 선박 기자재 등 대부분의 핵심 공급망을 국내에서 확보하고 있다. 조선산업과 연계된 상·중·하류 산업까지 폭넓게 구축돼 있어 원자재 조달부터 선박 인도까지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장강삼각주와 보하이만, 주강삼각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선산업 클러스터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 지역에는 수많은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 연구기관, 물류 기업이 집적돼 있다.
반면 한국은 금융위기 이후 중소 조선소와 협력업체 상당수가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산업 생태계가 과거보다 축소됐다.
생산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숙련 기술자 감소와 고령화, 젊은 인력 유입 감소가 장기적인 과제로 꼽힌다.
친환경 선박이 새로운 승부처
향후 조선산업 경쟁의 핵심은 친환경 선박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해사기구는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해운업계는 메탄올·암모니아·수소 연료를 활용한 차세대 선박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친환경 선박 수주와 관련 기자재 생산, 연료 공급망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메탄올 이중연료 선박과 전기 추진 선박 분야에서는 이미 대규모 수주 실적을 확보한 상태다.
한국 역시 암모니아 추진선과 액화수소 운반선, 스마트 선박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생산 규모와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산업 경쟁은 더 이상 개별 조선소의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생산능력과 공급망, 인력, 연구개발 역량, 친환경 연료 인프라를 얼마나 종합적으로 구축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산업의 무게중심 이동
세계 조선시장은 친환경·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중국은 규모와 공급망,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한국은 고부가가치 선종과 핵심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방어에 나서고 있다.
조선업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인력, 산업 기반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산업이다. 한 번 형성된 우위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향후 10년은 글로벌 조선산업의 주도권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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