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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인구·막대한 자본에도 실패…중국 축구의 불편한 현실

  • 허훈 기자
  • 입력 2026.06.0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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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개국 월드컵 시대에도 본선행 실패…중국 축구의 깊어지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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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중국 축구가 구조 개혁과 유소년 육성이라는 과제를 다시 마주하고 있다. 사진은 월드컵 예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2026 북중미 월드컵부터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본선 진출 기회도 크게 늘어났다. 아시아에 배정된 직행 티켓은 8장으로 확대됐고 플레이오프 진출권도 추가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또다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깊은 좌절을 맛봤다.


최근 영국 언론은 중국 축구의 부진을 분석한 기사에서 "중국 축구의 문제는 인구나 자금 부족이 아니라 축구 생태계 자체에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인구와 막대한 투자에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원인으로 축구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지목한 것이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월드컵 진출,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이라는 이른바 '축구 3대 목표'를 내세워 왔다. 이 가운데 월드컵 본선 진출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 차례 이뤘지만 이후 20년 넘게 다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수천억 원이 투입됐지만 남은 것은 위기


중국 정부는 2015년 대규모 축구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축구 산업 육성에 나섰다. 각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축구 인프라 건설에 투자했고, 중국 슈퍼리그는 세계적인 선수와 감독을 영입하며 아시아 최고의 자본 리그로 주목받았다.


특히 광저우 헝다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중국 축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팀으로 떠올랐다.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중국 무대로 향했고, 중국 자본은 유럽 주요 구단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화려한 외형 성장과 달리 대표팀 경쟁력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무리한 투자에 의존했던 구단들은 재정난에 빠졌고 일부 명문 구단은 해체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수년 동안에는 승부조작, 불법 도박, 심판 비리, 협회 고위층 부패 사건까지 잇따라 드러나면서 중국 축구의 신뢰도 역시 크게 흔들렸다.


영국 언론은 무리한 투자와 행정 중심 운영, 단기 성과에 집착한 정책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주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일본과 한국은 왜 달랐나


전문가들은 축구 경쟁력이 단순히 자본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본은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30년 넘게 지역 밀착형 클럽 시스템과 유소년 육성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현재 일본 대표팀의 주축 선수 상당수는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클럽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한국 역시 K리그 산하 유소년 시스템과 학교 축구, 프로 구단 육성 체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연결돼 있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단 한 번도 본선 진출에 실패하지 않으며 아시아 최상위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엘리트 선발과 단기 성과 중심 정책에 집중하면서 생활체육과 지역 축구 문화 형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소년 육성과 저변 확대보다 단기 성과를 우선시하면서 지속 가능한 축구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축구가 반드시 실패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축구협회는 전국 단위 유소년 축구학교 확대와 학교 축구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부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과거보다 조직력과 기술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축구 선진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시스템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외국인 감독 의존 현상이 보여주는 현실


중국 축구계에서는 오랫동안 외국인 감독들이 국내 지도자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갑급리그 랴오닝톄런은 한국인 서정원 감독 부임 이후 빠르게 조직력을 회복하며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과거 연변FC를 슈퍼리그 승격으로 이끈 박태하 감독과 장쑤 쑤닝의 최용수 감독, 선전FC의 이장수 감독 역시 중국 무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 감독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축구는 오랜 기간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대표팀과 프로 구단의 지휘봉을 맡겨 왔다. 세르비아 출신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2002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며 중국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외국인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 역시 광저우 헝다와 중국 대표팀을 맡으며 큰 기대를 받았다. 스웨덴의 스벤 예란 에릭손, 독일의 펠릭스 마가트, 스페인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포르투갈의 파울루 벤투 등 유럽 출신 지도자들도 중국 리그에서 활동했다.


일본 역시 자국 축구 발전 과정에서 브라질 출신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프랑스 출신 에르베 르나르 감독 체제에서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린 바 있다. 축구 선진국이 되기 위해 외국인 감독을 활용하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축구계에서는 지도자의 국적보다 지도 철학과 시스템의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일본은 브라질 축구의 기술적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자국식 육성 체계와 결합했고, 한국 역시 해외 지도자들의 경험을 국내 지도자 교육 시스템에 반영해 왔다. 반면 중국은 감독 교체와 정책 변화가 반복되면서 장기적인 축구 철학을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문제는 외국인 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성과를 유지할 수 있는 자체 육성 시스템이 존재하느냐다. 일본은 외국 지도자의 경험을 자국 축구 시스템에 흡수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장기 투자와 유소년 육성을 병행했다. 반면 중국은 외국인 감독 교체가 반복됐음에도 선수 육성과 지도자 양성 체계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중국 축구의 과제는 어떤 국적의 감독을 영입하느냐가 아니라 외부의 경험과 노하우를 자국 축구 시스템 안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월드컵 개최 꿈도 멀어져


한때 중국의 월드컵 개최는 시간문제처럼 여겨졌다. 2017년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가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국제 축구계에서는 중국의 월드컵 개최가 언제 실현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개최권이 잇따라 다른 국가에 배정되면서 중국의 월드컵 유치 가능 시점은 빨라야 2040년대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최근에는 월드컵 중계권 계약 규모마저 기대치를 밑돌면서 중국 내 축구 열기가 과거보다 식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축구 열정


그럼에도 중국의 축구 팬들은 여전히 뜨겁다.


중국 프로리그와 국가대표 경기에는 여전히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고 있으며, 주요 국제 경기 때마다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중국 사회의 축구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대표팀 성적이 팬들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영국 언론은 "축구는 돈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돈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브라질과 독일, 스페인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 최근 성장세를 보이는 우즈베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장기간의 유소년 육성과 안정적인 리그 운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결국 중국 축구가 직면한 과제는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축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세계 최대 인구와 막대한 자본도 체계적인 육성과 축구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월드컵 경쟁력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중국 축구가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중국 축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구조 개혁과 유소년 육성 정책을 이어가느냐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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