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강화회의 대표에서 중국 첫 IOC 위원까지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근대 외교사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왕정팅(王正廷)은 외교관이자 정치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 체육계에서는 그를 외교관보다 먼저 ‘중국 올림픽의 아버지’로 기억한다. 국제 스포츠 무대 진출의 길을 열고 중국의 올림픽 참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1882년 저장성 펑화에서 태어난 왕정팅은 북양대학당에서 수학하며 근대 교육을 받았다. 그가 학교에 다니던 시기는 중국에 서구식 체육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였다. 왕정팅은 각종 육상 경기와 운동회에 적극 참여했을 뿐 아니라 체육대회 기획과 운영에도 관여하며 스포츠 행정 경험을 쌓았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체육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국민 체력 향상을 위한 근대화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왕정팅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스포츠가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07년 미국으로 유학한 그는 미시간대와 예일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중화민국 정부에서 외교총장, 재정총장, 외교부장 등을 역임하며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다. 또한 파리강화회의 중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주미대사를 지내는 등 민국 시기 중국 외교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와 외교 활동 속에서도 체육 발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필리핀 위원과 교류하며 동아시아 스포츠 협력체 구상을 추진했고, 이는 훗날 극동선수권대회(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 창설로 이어졌다.
19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회 극동선수권대회는 중국 스포츠의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다. 왕정팅은 중국 선수단 파견을 주도하며 국제 스포츠 교류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어 1915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2회 대회에서는 조직위원장 역할을 맡아 중국 최초의 대규모 국제 종합 스포츠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1920~1930년대에는 중국 체육단체 조직과 제도 정비에도 앞장섰다. 전국 체육 조직의 운영을 지원하며 중국 스포츠의 체계화를 추진했고, 국제 스포츠계와의 연결망 확대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의 이름이 중국 스포츠 역사에 깊이 남게 된 계기는 올림픽 참가 추진이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 류창춘(刘长春)이 중국 대표로 출전했다. 이는 중국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 처음 등장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당시 중국은 정치적 혼란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왕정팅은 각종 난관을 극복하며 선수 파견을 성사시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약 140명 규모의 중국 대표단이 독일을 찾았다. 경기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중국 전통 무술 시범은 현지 관중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중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왕정팅은 대표단 구성과 국제 교섭, 자금 조달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과 경제난으로 대표단 운영이 어려웠지만 그는 개인 자금과 인맥을 동원해 선수단의 귀국 비용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 중국 스포츠 발전에 대한 그의 강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국제 스포츠계에서의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최초의 중국인 위원으로 활동하며 중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기여했다. 또한 후배 스포츠 행정가들의 국제 진출을 지원하며 중국 체육계의 기반 확대에도 힘을 보탰다.
1957년 국제올림픽위원회 명예위원으로 추대되며 공식 활동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유산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중국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올림픽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왕정팅이 구축한 국제 교류 네트워크와 제도적 기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사학계는 왕정팅을 단순한 정치인이나 외교관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외교와 체육을 연결해 근대 중국의 국제화를 추진한 인물이었으며, 중국 스포츠가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첫 문을 연 개척자였다. 오늘날까지 그가 ‘중국 올림픽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BEST 뉴스
-
용정이 낳은 세계적 과학자…박세룡,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다
베이징대학교를 배경으로 박세룡 베이징대학교 부총장의 이미지를 재구성. [인터내셔널포커스] 1976년 4월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서 태어난 조선족 과학자 박세룡(朴世龙)은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생태·기후변화 연구자이자 세계적인 탄소순환 분야 석학이다. 현재 베이징... -
[중국 외교 인물열전⑨] 근대 중국 법치와 외교의 설계자, 왕충후이
[인터내셔널포커스] 근대 중국 외교와 법학의 역사를 논할 때 왕충후이(王宠惠·1881~1958)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법학자이자 외교관, 정치가였으며, 중국 최초의 근대식 대학 졸업장을 받은 인물이다. 중화민국 외교총장과 사법총장, 국무총리 대리, 사법원장, 외교부장 등을 두루 역임했고, 국제연... -
[중국 외교 인물열전⑩] 쑹쯔원, 미국을 움직인 항일외교의 설계자
쑹쯔원(宋子文)이 1940년대 미국 체류 당시 거리에서 촬영된 모습. 그는 항일전쟁 기간 장제스 정부의 대미 외교를 주도하며 미국의 경제·군사 원조 확보와 중미 협력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인터내셔널포커스] 항일전쟁기 중국 외교를 이야기할 때 쑹쯔원(宋子文·1894~1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