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연길의 하루는 서시장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 아침 시장 문이 열리면 주민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하나둘 골목으로 들어선다. 관광객들에게는 여행 코스이지만, 연길 사람들에게 서시장은 오늘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생활의 공간이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김치 익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막 버무린 배추김치와 갓 담근 깍두기, 장독에서 꺼낸 된장과 고추장이 한데 어우러져 연변 특유의 향을 만들어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숯불에 노릇하게 구운 명태와 찹쌀떡, 갓 쪄낸 떡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시장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시장은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곳이 아니다. 조선족의 식문화와 생활방식이 지금도 이어지는 공간이다. 상인들은 손님을 조선어와 중국어로 번갈아 맞이했고, 단골손님들은 가격을 묻기보다 "오늘 김치는 잘 익었나요?"부터 물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기보다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오가는 사랑방에 가까웠다.
한 떡집에서는 수십 년째 손으로 찹쌀떡을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나무 칼로 떡을 일정한 크기로 썰어 종이에 담아 주는 손놀림은 오랜 세월 다듬어진 기술이었다. 맞은편에서는 젊은 직원이 관광객에게 조선어로 "감사합니다"를 적어 주며 기념사진을 함께 찍어 주고 있었다. 오래된 전통과 새로운 관광문화가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시장 안 냉면집에는 점심시간이 되자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 냉면 한 그릇을 앞에 둔 주민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익숙한 한 끼를 즐겼고, 여행객들은 육수 한 숟갈을 마신 뒤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숯불구이와 돌솥비빔밥, 김치말이국수도 연이어 상에 올랐다. 특별한 음식이라기보다 연길 사람들의 평범한 점심이었다.
연길시는 최근 '식상연길·미동중국(食尚延吉·味动中国)' 행사를 열어 시민 투표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연길 10대 필수 음식'과 우수 음식점을 선정했다. 냉면과 숯불구이, 돌솥비빔밥 등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음식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음식을 단순한 관광상품이 아니라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자산으로 키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시장 한쪽 과일가게에서는 두 할머니가 조선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사과 맛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잠시 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봉지에 사과 몇 개를 더 넣어 주며 웃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정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시장은 조금씩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상인들은 진열대를 정리했고, 퇴근길 시민들은 반찬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은 쇼핑백을 들고 시장을 빠져나갔지만, 서시장의 하루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연길 서시장은 유명 관광지이기 전에 연길 시민들의 부엌이다. 조선족 음식과 생활문화, 사람들의 정이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단순히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연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함께 만나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연길을 떠나 중국과 북한, 러시아 세 나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훈춘 방천으로 향한다. 국경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과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를 직접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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