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미 국가 니카라과가 이탈리아와 전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탈리아 정부가 1978년 발생한 전 총리 알도 모로 납치·살해 사건의 가담자인 알레시오 카시미리의 신병 인도를 다시 요구하면서 양국 갈등이 정면 충돌한 데 있다.
니카라과 외교부는 7월 16일 성명을 통해 이탈리아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이탈리아 정부가 니카라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국가 주권과 존엄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갈등의 불씨는 이탈리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 안토니오 타야니의 발언이었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행사에서 "니카라과와 같은 극단주의 정부와는 공통된 가치가 없다"며, 이탈리아 전 총리 암살 사건에 연루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카시미리를 니카라과가 보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니카라과는 이를 "공격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규정하며 유럽 국가들의 우월적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국가 간 상호 존중이라는 외교 원칙을 훼손했다"며 이번 단교가 국가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갈등의 핵심 인물인 카시미리는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정치 테러 사건의 가담자로 알려져 있다.
1978년 3월 16일 이탈리아 극좌 무장조직 '붉은 여단(Red Brigades)'은 당시 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했고, 경호원 5명을 현장에서 살해했다. 모로는 55일간 억류된 끝에 같은 해 5월 로마 시내 차량 트렁크에서 총상을 입은 채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카시미리는 이 사건에 연루돼 1988년 이탈리아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이후 니카라과에 정착해 국적을 취득했으며 수십 년째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여러 차례 신병 인도를 요구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니카라과는 자국 헌법상 자국민을 외국에 인도할 수 없고, 양국 간 범죄인 인도 조약도 체결돼 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거부해 왔다. 과거 정부가 그의 국적을 박탈하려 했지만 사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법적 상황도 바뀌지 않았다.
반면 이탈리아는 카시미리가 국가 지도자 암살 사건의 핵심 피고인인 만큼 반드시 본국에서 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회 역시 과거 관련 결의를 통해 그의 신병 확보를 촉구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범죄인 인도 문제를 넘어 외교적 자존심과 국가 주권 문제로 확대됐다. 니카라과는 외국 정부가 자국 체제와 사법 판단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탈리아는 중대한 테러 사건의 책임자를 계속 보호하는 것은 국제 정의에 반한다고 맞서고 있다.
다만 단교에도 불구하고 카시미리의 신병이 곧바로 이탈리아로 인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히려 양국 간 공식 외교 채널이 끊기면서 향후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48년 전 이탈리아를 뒤흔든 정치 테러의 상처와 국가 주권을 둘러싼 법적·외교적 갈등이 맞물리면서, 두 나라의 대립은 당분간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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