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일본 국회가 17일 황실전범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여성 천황의 길을 사실상 닫았다. 여성의 황위 계승을 허용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도 기존의 남계 남성 계승 원칙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일본 황실의 후계 체계는 당분간 큰 변화 없이 이어지게 됐다.
이번 개정은 현행 황실전범 시행 이후 처음 이뤄진 실질적인 제도 개편이다. 그러나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여성 천황과 여성계 천황 허용은 끝내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황실 구성원 감소와 후계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완책이 마련됐다.
현재 일본 황실은 구성원이 16명에 불과하며, 황위 계승권을 가진 남성은 황태자 후미히토(아키시노), 그의 아들 히사히토 친왕,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 등 단 3명뿐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를 두고 있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황실의 안정적인 계승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일본 사회의 오랜 과제로 지적돼 왔다.
개정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족 신분을 잃은 11개 '구(舊) 궁가'의 남계 남성 후손 가운데 15세 이상을 황실의 양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황족으로 편입된 이들의 남성 후손에게도 황위 계승 자격이 부여된다.
또 여성 황족은 일반인과 결혼한 뒤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다만 배우자와 자녀는 일반인 신분을 유지하며, 황위 계승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계승 원칙을 바꾸지 않은 채 황실 인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후계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일본 보수 진영은 약 126대에 걸쳐 이어진 남계 혈통이 황실 정통성의 근간이라고 주장하며, 여성 또는 여성계 천황을 허용할 경우 황통의 연속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계승 규칙을 바꾸기보다 구 황족을 복귀시키는 방안을 선택했다.
반면 국민 여론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교도통신이 올해 5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3.0%가 여성의 황위 계승에 찬성했고, 반대는 13.1%에 그쳤다. 황실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여성 천황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확산되는 모습이다.
구 황족 후손 가운데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구 황족 가문 출신인 구니 아사히로는 "15세 정도면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이름과 신분을 모두 바꾸고 황실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후손들의 황실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번 개정안이 황실 인원 감소 문제를 일정 부분 보완하는 효과는 있지만, 여성 천황과 여성계 천황 논의를 제도적으로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결국 이번 결정은 전통적인 황통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선택과 제도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정면으로 엇갈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시대 변화에 맞춰 제도를 바꿀 것인가는 앞으로 일본 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황실 과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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