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 급등에도 국내 휘발유 1800원대
- 최고가격제 장기화에 정유업계 선부담 커져
- 유류세 인하까지 연장…고유가 길어지면 출구전략 부담
[인터내셔널포커스] 국제유가는 뛰는데 국내 주유소 가격은 의외로 잠잠하다.
중동 정세가 흔들리면서 두바이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00원대에 머물고 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주유소 가격도 따라 뛰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가격 상승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당장 체감되는 효과가 크다. 하지만 한국이 들여오는 원유 가격까지 낮아진 것은 아니다. 국제유가와 국내 공급가격 사이에서 생긴 차이는 일단 정유업계가 떠안고 있다. 최고가격제가 길어질수록 정부가 나중에 정산해야 할 금액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국제유가는 120달러 넘었는데
산업통상부는 18일 제10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동결했다. 19일부터 4주간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은 휘발유 리터당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지난 6월 27일 가격을 리터당 150원 내린 이후 같은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시장에서는 상황이 빠르게 달라졌다.
9월 16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5.8달러, 두바이유는 128달러까지 올랐다. 8월 넷째 주 두바이유가 92.3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몇 주 사이 상승 폭이 상당하다.
국내 가격은 이런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17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58.6원 수준이었다.
정부가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 가격으로 넘어오는 것을 최고가격제로 막고 있는 영향이 크다.
산업부는 지난 3~8월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월평균 약 0.6%포인트 낮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같은 기간 휘발유 소비는 전년 동기보다 2.1%, 경유는 8.4% 감소했다.
주유소 가격표 뒤에 남은 비용
국내 판매가격이 안정됐다고 원유 구입비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정유사는 국제가격에 맞춰 원유를 사온다. 여기에 환율과 운송비, 정제 비용 등이 붙는다.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 원가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이런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공급가격을 거쳐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된다. 지금은 최고가격제가 그 길을 막고 있다.
정유업계가 일정 가격 이상으로 공급가격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차액을 먼저 부담한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원가 등을 따져 보전한다는 방침이다. 정유사들과 구체적인 정산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곧 내려오면 부담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고유가가 몇 달씩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유사가 먼저 떠안는 금액이 늘고 정부가 정산해야 할 몫도 커진다. 지금 주유소 가격에 나타나지 않는 비용이다.
유류세 인하도 두 달 더
정부는 유류세 인하도 연장했다.
9월 말 끝날 예정이던 조치를 11월 말까지 두 달 더 유지한다. 휘발유는 15%, 경유와 LPG 부탄은 25%의 인하율이 적용된다.
최고가격제로 공급가격을 잡고 세금까지 낮춰 소비자가 실제 지불하는 가격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기름값 상승을 그대로 두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하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자동차 운전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화물차 운송비와 택배, 농수산물 물류비 등으로 번진다. 고유가가 생활물가를 다시 밀어 올릴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다만 유류세를 낮춘 기간이 길어지면 세수 감소도 그만큼 이어진다. 여기에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업계 손실보전까지 겹친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당장 부담하지 않는 대신 다른 곳에서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제는 ‘얼마나 더 버티느냐’의 문제
정부로서 가장 까다로운 대목은 최고가격제를 언제 풀 것인가다.
국제유가가 충분히 내려오기 전에 가격 상한을 해제하면 국내 기름값이 빠르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가격에 반영되지 않았던 원가 상승분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국제유가가 내려올 때까지 무작정 유지하기도 어렵다. 정유업계의 선부담이 계속 쌓이고 정부의 손실보전 부담도 커진다.
산업부가 이번 최고가격을 다시 4주간 유지하면서 중동 상황과 국제유가 흐름을 지켜보겠다고 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까지는 방어선이 작동하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18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유가가 생활물가 전체로 번지는 속도도 늦추고 있다.
앞으로 봐야 할 것은 주유소 가격만이 아니다.
국제유가와 국내 공급가격의 차이가 얼마나 벌어지는지, 정유업계가 먼저 부담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정부가 실제로 얼마를 보전하게 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중동 상황이 진정돼 국제유가가 내려오면 숨통이 트인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가격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어느 시점부터 시장가격을 다시 반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당장은 기름값을 잡았다.
고유가가 길어질수록 그 뒤에 쌓인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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