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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항일연군 조선인 "여장군" ― 허성숙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여성의 몸으로 육중한 기관총을 보총다루듯 휘두르며 일제놈들을 무리로 쓸어눕힌 한 조선인 “여장군”이 있었다. 그가 바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4사 제1퇀 제1련의 첫 여성기관총사수인 허성숙이다. 허성숙, 1915년 연길현 차조구 중평촌(지금의 안도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가난하여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는 어려서부터 집살림을 도와 산나물도 캐오고 땔나무도 해오면서 노동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남자들 못지않게 힘도 셌으며 성격도 남달리 쾌활하였다. 그가 15살 되던 해인 1930년 5월, 동만일대에서는 성세호대한 반제·반봉건투쟁은 노한 불길마냥 용정을 중심으로 온 동만을 휩쓸었다. 그 당시 중평촌에는 혁명자들이 세운 야학교가 있었다. 선생은 농민들에게 문화지식을 보급한다는 명의로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주의를 반대하고 자유해방을 쟁취할데 관해 선전하였다. 당시혁명가들의 강의를 청취하는 사람들 중에는 동그란 얼굴에 단발머리를 한 12~13세 가량의 소녀가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그는 매일 저녁마다 가장 일찍 야학교에 와 강의시간을 기다렸으며 강의가 시작되면 정신을 집중하여 들었다. 때로는 눈을 깜빡이면서 뭔가를 사색하기도 했다. ▲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4사 제1퇀 제1련의 첫 여성기관총사수인 허성숙(이미지 출처 : 중국해방군보) 이 소녀가 바로 허성숙이였다. 그는 야학교의 선생님을 몹시 탄복, 선생님은 지식과 재능이 있어 강의하는 구절 구절과 마디마디가 이유가 있고 들을수록 격동되고 통쾌하며 새힘이 솟구친다고 생각하였다. 야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차수가 많아질 수록 허성숙의 혁명지식은 갈수록 풍부해 졌다. 한번은 집에서 마을의 애들한테 야학교에서 들은 쏘베트에 대한 얘기를 해주다 아버지한테 훈계를 당하였다. 아버지는 “어린애들은 그런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안다”고 했고 허성숙은 “전 배울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반발하였다. 1930년, 반제반봉건투쟁의 불길이 동만지구에서 활활 타올랐고 편벽한 시골인 중평촌 역시 이 격류속에 말려들었다. 당시 허성숙은 15세였지만 공산당 지하공작원의 교육과 도움으로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였고 혁명투쟁에 투신하였다. 1933년에 허성숙은 청년단에 가입, 그해 그는 또 연길현유격대 여전사로 되었다. 열화와 같은 항일투쟁을 맞으면서 허성숙의 가슴에서는 피가 끓어번지였다. 그는 청년들한테 주어진 중임을 깨달았으며 멸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일본침략자를 몰아내는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제의 “동계토벌”이 시작되었다.일제와 위만주국군은 도합 3,000여 명의 병력을 출동하여 동만항일무장을 요람속에서 없애버리려고 시도했다. 연길현 유격대는 “반토벌”전에서 14일간 전투를 견지, 일제는 유격대를 소멸하지 못햇을 뿐만 아니라 유격대에 의해 10여구의시체를 내버려둔채 현성으로 물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 중에서 허성숙은 남달리 용감하고도 결단성 있게 전사들과 함께 돌격하면서 적을 무찔렀다. 그는 또 행군도중이나 숙영지에서도 다른 전사를 도와 총을 메고 상병원을 돌보는가하면 전사들의 옷을 씻어 기워 주었으며 취사원을 도와 밥도 짓곤 하였다. 오직 부대의 일이고 항일에 유익한 일이라면 뭐든지 개의치 않고 충실히 하였다. 바로 그 시기 포수로 사냥을 즐기던 허성숙의 부친 허기영은 일제의 농락과 협박에 넘어가 자위단 단장으로 되었다. ▲ 1934년 7월의 어느날 허성숙은 중평촌 부근의 한 골짜기에서 아버지 허기영이 인솔하는 자위단과 조우전. (이미지 출처 : 중국해방군보) 1934년 7월의 어느날 허성숙이 소속된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독립 1퇀 1련은 중평촌 부근의 한 골짜기에서 허기영이 인솔하는 자위단과 조우,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이루었다. 이때 허성숙은 딸의 절절한 호소로 부친의 마음을 움직이리라 마음먹었다. “아버지! 딸 성숙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제를 때려엎고 민족을 해방하기 위해 싸우는 대오입니다. 무엇때문에 우리들이 서로 싸워야 합니까? 아버지! 총부리를 돌리십시오, 딸 성숙이와 함께 성스러운 반일투쟁에 참가합시다!” 허성숙이는 애타는 목소리로 웨쳤다. 그는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잘못을 뉘우치고 혁명의 길에 들어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염원과는 반대로 허기형의 멱따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자위단 놈들이 허기형의 지휘하에 공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아군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돌격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전사들은 쏜살같이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놈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어느 하루 허성숙은 유격대원들과 함께 식량을 얻어가지고 돌아오는 도중 토벌대 놈들과 맞띄우게 되었다. 그는 침착하게 다른 대원들을 수림 속에 은폐시키고 자기는 짐을 진채 전봇대에 올라갔다. 5~6명의 토벌대 놈들이 전봇대 부근에 접근하자 허성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놈들에게 수류탄 불벼락을 들씌웠다. 이 일로 하여 부대의 전사들은 허성숙의 지혜와 용감성에 깊이 탄복하였다. (편집 철민 기자/다음에 계속) 참고문헌 金正明 編, 『朝鮮獨立運動』 2, 原書房, 1967, 65~66쪽.☞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1-분책, 563~564쪽.☞김정명 편, 『조선독립운동』 3, 326쪽.☞박용옥, 「조신성의 민족운동과 의열활동」,『오세창교수 화갑기념논총』, 한국근현대사학회, 1995 참조.☞『독립신문』 1921년 1월 15일, 3월 26일, 12월 6일자 ; 『동아일보』 1921년 10월 21일자 ; 박용옥, 「조신성의 민족운동과 의열활동」, 『오세창교수 화갑기념논총』.☞『동아일보』 1921년 6월 13일자.☞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1984.☞村田陽一 編譯, 『コミンンテルンン資料集』 2, 大月書店, 1982, 75쪽.☞조선총독부, 『朝鮮の治安狀況』, 1930, 12~13쪽.☞중공연변주위 당사사업위원회 편저, 『연변인민의 항일투쟁』, 연변인민출판사.☞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101~102쪽.☞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연합회 편저, 『항일녀투사들』, 201~216쪽.허성숙의 열사전은 『불멸의 투사』 및 『빨찌산의 녀대원들』등에 실려 있는데, 그의 장렬한 희생 장면 묘사는 각기 다르다. 『항일녀투사들』에서는 7대의 敵특설부대 중 첫 번째 트럭을 향해 사격하다가 다리와 복부에 적탄을 맞고 쓰러진 것을 그 이튿날 한 韓醫師가 자기 집에 데려다 눕히자 죽었다고 했다. 『불멸의 투사』에서는 다리 부상으로 적에게 체포 압송된 그녀가 自衛團長의 딸임을 알고 전향시키려 했으나 끝내 불복하여 총살했다고 했다. 『빨찌산의 녀대원들』에서는 중상으로 체포되느니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생각, 250여발 보총 탄알을 모두 쏘았고 마지막으로 수류탄을 적에게 던져 큰 희생을 주고 자신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8-02-18
  •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조선족 항일투사 - 이재덕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이(리)재덕(李在德)- 동북항일연군 내의 조선족 여투사이자 국제주의 전사였으며 살아 있은 역사의 증인이다. 그리고 조선인으로부터 중국조선족으로 탈바꿈하게 된 특수시대가 낳은 여성강자이기도 하다. 결혼 뒤 이재덕은 여전히 6군 피복공장에서 근부했고 남편 우보합은 소년련의 100명 기병을 거느리고 부금(富锦), 화남(桦南), 쌍압산(双鸭山), 의란(依兰)으로 진출했다. 1938년은 동북의 항일전쟁 사상 전투가 가장 치열했고 가장 간고한 한해이기도 했다. 5월에 들어서면서 이재덕은 임산기에 이르렀으나 부대를 따라 이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조직에서는 이태준(李泰俊) 부부를 파견하여 이재덕을 돌보게 했다. 그 때 그들은 깊은 밀림속의 한 작은 골짜기에서 은신할 곳을 찾아 숙영했고 이재덕은 그 곳에서 남자애를 출산, 이태준 부부가 새생명을 위해 성의껏 돌봤지만 환경이 열악하고 먹을 것마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생사의 고비에서 울부짖는 이 작은 생명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으며, 어린 것의 숨이 떨어지자 이들은 비통을 참으며 어린 것을 밀림속에 매장해야만 했다. 1939년 1월, 우보합과 이재닥은 동북항일연군 제6군 4사 32퇀의 37명 전사들과 함께 우쑤리강(乌苏里江)을 건너 소련의 임마 누엘을 거쳐 다시 하바롭스크 도착, 하바롭스크에서 이들 부부는 조상지 사령과 6군 군장 및 11군 군장 등을 만날 수가 있었다. 1940년부터 이재덕은 사업의 수요로 소련 하바롭스크에서 무선전 접수 및 발신 그리고 수리 기술을 배웠다. 그 뒤 1941년 7-8월에는 항일연군 제2로군 2지대 왕효명(王效明)이 인솔하는 소부대를 따라 중국내로 잠입, 보청(宝清), 부금(富锦)과 의란(依兰) 등 지에서 활동하면서 소부대의 무선전 접수/발신 임무를 맡아하였다. 1942년 겨울, 이재덕은 강신태(姜信泰) 정위를 따라 재자 소련으로 건너가 88국제여단 교통영의 전사로 되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정식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150여만명의 막강한 병력을 동원해 중국의 동북과 조선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 이와 더불어 88국제여단의 많은 항일연군 장병들은 분분히 소련홍군과 배합하여 동북 및 조선 해방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해의 9월 8일, 이재덕의 남편 우보합은 주보중 장군을 따라 비행기에 탑승해 장춘으로 향발했다. 소련군과 배합해 질서를 유지하고 인민무장을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재덕은 남편과 동행할 수 없었다. 두 자녀가 있는 여성인데다 당시 이재덕은 세 번째로 임신한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65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한 이재덕 여사 이재덕은 1945년 12월이 돼서야 부분적으로 자녀들을 거느린 기타 여 전사들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떠나기 앞서 이재덕은 김정숙(김일성 부인), 왕옥환(최용건 부인) 등 함께 동고동락을 해오던 10여명의 여전사들과 뜨거운 포옹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당시 88국제여단의 조선인 장병들 중 두갈래로 나뉘어 한갈래는 중국 동북으로 진출하고 다른 한 갈래는 조선으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김정숙, 왕옥환 등 여전사들은 조선으로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재덕이 귀국해 수분하를 거쳐 장춘에 도착하자 주보중 장군이 장춘역까지 마중나와 있었으며 동북민주연군의 대부분 부대는 이미 장춘을 떠나 길림부근의 차루허(岔路河)까지 철수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련정부는 국민당 정부와 이른바<중소우호동맹조약(中苏友好同盟条约)>을 체결, 소련군이 전반 동북을 해방시킨 후 동북의 대도시들을 국민당 정부에 넘겨주기로 했으며 이 <조약>에 따라 동북민주연군은 잠시 장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북민주연군은 일단 소련홍군이 철거만 하면 신속하게 장춘, 하얼빈, 치치할 등 대도시를 점령할 계획을 잡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장춘의 전략적 위치는 아주 중요하기도 했다. 이 계획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하여 당시 주보중은 우보합을 소련군에 파견, 소련군과 접촉하는 기간 그들이 <66666>이란 신호로 장춘에서의 철수 시간을 알린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렇게 되자 우보합과 이재덕은 윤번으로 잠을 자면서 주야로 소련군의 무선전 통신을 감청, 드디어 1946년 4월 14일 낮 12시, 소련군 무선통신은 과연 <66666>을 발송했고 이재덕은 즉시 참모장한테 이를 보고했다. 이 날 오후 2시, 주보중이 장춘을 향해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동북민주연군은 세갈래로 나뉘어 도심을 향해 총공격을 발동, 18일 새벽에 장춘을 공략하였다. 하지만 국민당이 대병력을 집중하여 수차 공격해오고 또한 중공중앙의 포치에 따라 중공 동북국에서는 임시 대도시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는 5월 28일 재차 장춘에서 철거했다. 그 뒤 동북국과 동북군구는 하얼빈으로 철수했고 이재덕은 길동군구를 따라 길림을 거쳐 연길에 도착, 이재덕은 길동군구 무선전 부문에 배치되어 장장 3년에 거친 중국 국내해방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길동군구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재덕은 3명의 자녀를 거느린 몸임에도 불구하고 중임을 맡고 있는 남편의 내조에 정성을 다하는 한편 자신이 맡은 업무도 출중하게 완수하여 늘 강신태를 비롯한 길동군구 장령들의 표창을 받았었다. ▲ 1992년, 리재덕과 그의 자녀들은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왼쪽부터큰 딸 우화, 이재덕, 김일성 주석, 장남 우영) 1948년 3월, 이재덕은 지방으로 전근, 선후로 길림성 부녀연합회 위원, 연길 조선족간부학교 조직과 과장, 화룡현위 위원 겸 부련회 주임 직을 맡았으며 1949년 1월에는 길림성 부녀대표단 성원으로 심양에 가 동북부녀대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49년 3월, 이재덕은 제4야전군을 따라 남하, 호북성 이창(宜昌)까지 갔다가 이창에서 시부녀연합회 주비위원회(筹委会) 주임으로 활약했으며 그의 남편 우보합은 이창시 전신국의 군대표로 되었다. 새 중국이 창립된 후 이재덕은 중앙인민정부 비서처 당지부 조직위원 및 보위위원으로 있다가 1953년에는 국가 정무원(政务院- 국무원 전신) 당대표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이재덕은 사업에 까근하고 업무완수량이 많고도 실수가 없어 늘 주은래 총리의 애대를 받아왔는바 동료들로부터 늘 총리의 개인도장과 정무원 옥새를 장악하고 있는 <장새대신(掌玺大臣-)>으로 불리기도 했다. 1955년 1월부터 이재덕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판공청에 전근되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1960년, 조선 부수상 최용건이 중국을 방문, 최용건을 환영하는 국가연회를 베풀 때 주은래 총리는 이재덕이 연회에 배석하게 했다. 항일연군의 여전사로부터 중국 국가의 당당한 중견일군으로 된 이재덕을 보는 순간, 최용건 부수상은 반가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최용건이 양성한 수많은 조선인 항일 여투사들 중 유일한 생존자는 이재덕뿐이었으니 말이었다. 또한 이재덕 모친의 입당소개인이었던 최용건은 이재덕과 그 가정에 특수한 정분을 갖고 있기도 했다. 1964년 이재덕은 제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 문화혁명기간 각종 누명을 쓰고 직무에서 쫓겨나 <5.7> 간부학교에서 노동개조를 하다가 1979년에 누명을 벗고 전국인대 당위 도서관 주임으로 복직하게 됐고 1982년 6월에는 전국인대 당위 비서국 부국장으로 부임되었다. 이재덕은 1982년 9월에 이직하여 은퇴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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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8
  • 강릉올림픽파크, K-POP콘서트· 문화공연으로 구름관중 운집
    ▲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16일 스켈레톤 윤성빈선수의 아시아최초 스켈레톤 올림픽 금메달 소식이 울려펴진 강릉라이브사이트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연휴를 맞아 강릉라이브사이트에는 1만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운집하였고, 오전에 진행 된 윤성빈선수의 스켈레톤 경기를 함께 응원했다.윤성빈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강릉라이브사이트를 비롯 전국 11개소 및 이동형 라이브사이트에서도 환호의 함성이 울려펴졌으며,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윤성빈선수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한편, 17일 토요일 강릉라이브사이트에서는 옥택연과 황광희의 특별 사회로 진행되는 K-POP콘서트가 저녁 8시부터 진행될 에정이며, BAP, 노브레인, 장미여관, 백지영, 구구단, 노현태&박기량, 아리아리걸스등이 출연해 연휴를 맞은 관람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월 18일,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라이브사이트에서는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추월 경기를 필두로 컬링, 바이애슬론 중계 응원전이 펼쳐진다. ▲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강릉라이브사이트는 17일 이후에도 2월23일 금요일과 패럴림픽 기간인 3월 10일 토요일에도 K-POP콘서트가 계획되어있어 국내 및 해외 관람객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 2월 19일에는 모태범 선수가 출전하는 스피드 스케이팅 500m 메달 결전전 경기가 중계된다. 연휴의 마지막 날 태극선수들의 금빛 질주와 더불어 알렉산더 겜린, 민유라 선수가 출전하는 피겨 스케이팅 경기 중계가 라이브사이트에서 펼쳐진다. 19일에는 강릉의 날 <관노가면극>, 난타, 김혜미 재즈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출연진이 강릉라이브사이트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한편, 라이브사이트 바로 옆에 위치한 강릉아트센터에서는 18일 임시완의 특별 사회로 진행되는 팬텀싱어 에델 라인클랑과 도끼(Dok2), 빈지노, 더콰이엇과의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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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7
  • 문재인 대통령, CCTV 통해 중국 국민에 '설 인사' 전해
    [동포투데이]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설 명절을 맞아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설 인사를 전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현지시각으로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편성된 뉴스프로그램인 '조문천하(朝聞天下)'에서 "따지아 하오(大家好)! 중국 국민들께 우리 국민이 보내는 따뜻한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로 인사를 시작한 문 대통령은 "가족들과 교자(餃子)를 드시며 춘절을 맘껏 즐기고 계시죠? 어린이들은 홍빠오(紅包)도 많이 받았나요?"라며 "한국 국민들도 떡국을 먹으며 세뱃돈을 나누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금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입니다"라며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도 성공리에 치러지리라 믿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중국 국민 여러분, 올 한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십시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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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中 춘절, 글로벌 영향력 과시… 전 세계에 ‘레드 선풍’
    [동포투데이] 수 천년 간 전해온 중화민족의 중요한 명절로서 춘절은 중국인들 마음 속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몇년 간, 춘절은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고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떤 나라는 춘절을 법정 공휴일로 정했고, 어떤 나라는 춘절기간에 다양한 경축 활동을 벌이고 있고, 심지어 많은 나라의 정계 요인들도 춘절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끼어들고’ 있다… 춘절은 어떻게 전 세계에서 ‘레드 선풍’을 일으켰을가? 그들에게도 춘절 연휴가 있다—여러 국가에서 춘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 춘절 연휴는 더이상 중국인만의 ‘복지’가 아니다. 갈수록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중국의 음력 춘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음력 춘절을 지내고 법정 공휴일이 있는 나라는 베트남, 한국,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나라다. ▲ 2015년, 춘절 전의 인도네시아 차이나 타운에 경사스러운 명절 분위가 흘러넘쳤다.[촬영/ 구스훙(顧時宏)] 아시아 국가 외에, 미국의 적지 않은 시와 주에서도 중국의 춘절을 자기 지역의 법정 공휴일로 정했다. 현재, 글로벌 근 20개 국가와 지역에서 중국의 춘절을 전 지역 혹은 관내 일부 도시의 법정 공휴일로 정했다. 중국의 춘절은 갈수록 글로벌화 되면서 전 세계가 함께 경축하는 명절로 되었다. 그들은 춘절을 이렇게 보낸다—춘절을 글로벌 초대형 축제로 만들어 춘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중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족 모임, 친지 방문과 새해 인사, 묘회(廟會, 사원의 임시 시장) 구경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춘절을 점차 초대형 축제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모를 것이다. ▲ 2017년, 태국 방콕의 차이나 타운에 짙은 춘절 분위기가 흘러넘치고 있다. [촬영/ 신화사 기자 리망망(李芒茫)] 2017년 중국 춘절 때, 영국 수도 런던에서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의 가장 큰 춘절 축제가 벌어졌다. 용춤, 사자춤과 꽃차 퍼레이드로 구성된 축제 대오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람과 갈채를 받으며 트라팔가 광장에서 출발해 차이나 타운으로 이동했다. 2017년 춘절까지,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이미 연속 17년 중국의 춘절을 위해 경관등을 켰고 시드니오페라하우스도 연속 5년 중국 신년 점등 행사를 거행했다… 중국의 춘절은 이미 글로벌의 성대한 명절로 되었다. 춘절 연휴기간의 해외여행이 열기를 띄게 되면서 많은 국가에서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중국 관광객이 집에 있는 듯한 따스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곳곳에 춘절과 관련된 캐릭터로 장식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원문 출처: 신화망(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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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북측 공연부터 KPOP콘서트까지 강릉라이브사이트 인산인해
    ▲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설 연휴 첫날을 맞은 15일 강릉라이브사이트에서는 북측 공연단의 깜짝 공연이 펼쳐졌다. 라이브사이트를 찾은 5천여명의 관중들은 북측 응원단의 취주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신비롭고 새롭다’, ‘생각보다 표정도 밝고 즐거워 보였다’ 등 다양한 의견들을 표현했다. 강릉올림픽파크에 위치한 라이브사이트에서는 이와 같이 북측 공연단의 깜짝 공연부터 락밴드, 비보이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까지 대회기간 내내 펼쳐질 뿐만 아니라 주요경기 생중계와 함께 단체 응원이 이루어지는 올림픽파크의 핫플레이스로 자리잡고 있다.설 연휴 셋째 날인 17일은 20시부터 라이브사이트 2회차 KPOP콘서트가 개최되는 날로 BAP, 노브레인, 장미여관, 백지영, 구구단, 아리아리걸스 등 국내 최정상급 가수의 출연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K-POP출연진 라인업이 발표된 15일 강릉라이브사이트 현장에서는 다수의 관람객 사이에서 관람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는 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17일은 프리스타일을 시작으로 피겨남자, 컬링,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등 다수의 태극전사의 출전이 예정되어 있는 날로 단체응원전이 계획되어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KPOP콘서트를 비롯한 라이브사이트의 공연은 경기티켓 소지자와 올림픽파크 입장권 소지자(2,000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설 연휴를 맞아 더욱 다채로운 문화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으니 관람객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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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中 인기배우 류샤오칭(刘晓庆), 76세 남편과의 결혼생활 공개
    ▲ 사진= 류샤오칭(刘晓庆)웨이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동안으로 유명한 인기배우 류샤오칭(刘晓庆· 63)으로 말하면 지난 세기 80~90년대 대륙 연예계에서 하나의 조류를 이끌어 온 ‘별’이라 할 수 있었다. 무릇 경력, 연기 및 미모 등을 보아도 장즈이(章子怡), 판빙빙(范冰冰)과 양미(杨幂) 그 모두가 류쇼칭의 뒤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다. 일전 홍콩 봉황망(凤凰网)은 최근 류샤오칭의 결혼생활을 잠시 조명, 올해 76세 되는 그의 새 남편 왕쇼위(王晓玉)를 공개했다. 왕쇼위는 30여년 전부터 집착스레 류샤오칭한테 애정공세를 보내오던 부호남성이었으며 사진에 보이는 그는 76세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고도 건강한 모습이다. 한편 류샤오칭은 남편 왕쇼위와 함께 찍은 사진액자를 보이면서 “팬들의 요구에 의해 모든 것을 공개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행복한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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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기태영·김병철·김지석, 설 맞이 새해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사진 제공 : 제이스타즈엔터테인먼트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2018 무술년 새해,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이 설 맞이 새해 인사를 건넸다. 15일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배우들의 각양각색 개성이 담긴 사진과 함께 훈훈함이 묻어나는 친필 새해 인사를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기태영, 김병철, 김지석, 박민정, 박훈, 안세호, 이무생, 이진희, 이현진, 허준호, 고수정 등 11인의 소속 배우들이 직접 적은 정성스러운 메시지가 담겨있다. 김지석과 박훈, 안세호, 이진희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무엇보다도 팬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다정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어 허준호, 박민정, 이현진은 새해 행운을 언급했다. 특히 박민정은 "올해는 모든 일 술술술"이라는 멘트로 보는 이들의 미소를 자아냈다. 이밖에 기태영, 김병철, 이무생, 고수정 등이 친필 인사말로 팬들의 행복을 빌었다. 개성만점 팔색조 매력을 지닌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제이스타즈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의 2018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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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中 젊은 남녀 100차의 ‘모의결혼’ 끝에 진짜 부부로
    ▲ 사진= 봉황망(凤凰网)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4일 봉황망(凤凰网)에 따르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한 쌍의 젊은 남녀가 100번의 <모의결혼(婚礼表演)> 끝에 진짜 부부로 되어 사람들한테서 미담으로 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삼두진(三都镇) 구성 어민촌(九姓渔村)에서 100차의 <수상모의결혼>을 한 끝에 지난해 말 진짜 부부로 됐고 현재 아내는 임신 중이며 새해 우리의 가장 큰 기다림은 귀여운 2세의 탄생이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젊은이는 항저우시 건덕 삼두진 정부의 일군 쑨호우챵(孙浩强)으로 비록 사업경력은 길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한테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와 그의 아내 천후이펀(陈慧芬) 사이의 로맨틱한 애정사 때문이었다. 아내 천후이펀과의 만남에 대해 소개하면서 쑨호우챵은 의미심장한 웃음부터 지었다. “저는 2013년 9월부터 삼두진 정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출근하여 며칠 후 진에서는 저더러 삼두 어민촌에 가서 <수상 모의결혼식>에 참가해 신랑 역을 맡아 하라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하며 이상해 했으나 후에 진에서 관광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주말마다 젊은 직원들을 보내 <임시배역>을 맡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때 워낙 신랑역을 맡은 사람이 있었으나 그 날 그가 몸이 아파 제가 대신 가게 되었는데 아마 연분이었던가 봐요. 만약 그 날 제가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 부부의 오늘이 없었을 거랍니다.” 이 날, 쑨호우챵은 30분간 <모의신랑>역을 소화해냈고 처음으로 천후이펀이란 여성도 알게 됐다. 그 다음 주, 쑨호우챵이 진정부에 출근하여 근무할 때 불현 듯 앞으로부터 한 여성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는데 몹시 낯이 익었다. 그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우리 어디서 만나 본적이 있는 같군요.” 이에 그녀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렇게 그들 둘은 같은 진정부에 출근하는 <동료>였다. …그 뒤 그들 두 남녀는 계속 <수상 모의결혼>에 출연, 또 거의 매 주말마다 만나군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쑨호우창이 <가짜 일 진짜로 하자(假戏真做)>며 천후이펀한테 프로포즈했고 이에 그녀 역시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거부의사는 없었다. 그 때가 그들이 <모의결혼>에 30번째로 출연하던 날이었다. 이렇게 매 주말마다 <신랑신부>로 되군 하던 이들은 <모의결혼> 100차가 된 뒤엔 진짜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 마침 2017년 9월이 되자 그들의 <모의결혼> 100차가 되었고 그 시간은 정확히 4년이었다. 그렇게 되어 2017년의 마지막 주말 정식으로 웨딩마치를 울렸다. 이는 더 이상 <모의결혼>이 아닌 진짜 결혼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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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 환구시보, 中 무기수출 세계가 주목
    ▲ 사지= 인타넷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16일, 중국의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环球时报)>는 <중국산 무기 세계가 주목>이란 글을 발표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되고 있는 중국산 무기에 대해 조명했다. 글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난 세기 80연대 사우디아라비아 특사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둥펑-3(东风-3)> 미사일을 보고 구입의향을 표시, 가격은 중국이 정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중국은 미사일에 있던 원 핵탄두를 철거한 뒤 다시 상규적인 탄두를 장착해서는 최종 35억 달러의 가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수출계약을 맺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 미사일을 구입한 후, 전반 중동이 이 미사일의 사정권 범위 내에 들었다. 이어서 <환구시보>는 “그 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선진적인 <둥펑 21>(东风-21)형 미사일, PLZ-45형 155밀리 자행유탄포와 <무지개 -4>형 무인 정찰공격기 등 무기 및 중국이 파키스탄에 위탁하여 제조한 <홍전 -8(红箭-8)형 반탱크 미사일> 등 무기를 구입했다”라고 하면서 석유 비축량과 생산량이 세계 톱 자리를 차지하는 <석유왕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이윤이 돈독한 군사무기시장으로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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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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