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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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승리의 날' 열병식... 푸틴, 서방에 핵전쟁 경고
    [동포투데이] 러시아는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위국전쟁승리 79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서방에서 발발할 수 있는 세계 분쟁의 위험을 언급하며 러시아의 핵무기는 전쟁에 대비 중이며 누구도 세계 최대 핵무장 국가를 위협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승전기념일 기념식에서 오만한 서방 엘리트들이 나치 독일을 물리친 소련의 결정적인 역할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푸틴이 "우리는 그러한 과도한 야망의 결과를 알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 분쟁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 "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누구도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의 전략군은 항상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서방이 모스크바의 영양권을 침범해 러시아를 모욕했다고 주장하며 이 전쟁을 서방과의 싸움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에서 우크라이나의 수백만 명을 포함하여 2700만 명의 인구를 잃었다. 결국 소련홍군은 나치군을 베를린으로 몰아냈고, 히틀러는 그곳에서 자살했다. 1945년 독일제국의회 의사당 건물에 소련의 깃발이 게양되었다.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 8일 밤 11시 1분 조건 없이 항복했고, 프랑스와 영국, 미국은 이날을 유럽 승리의 날로 정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이미 5월 9일이었고, 이 날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치른 소련의 위국전쟁 승전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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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0
  • 중국 고대 건축의 보물 ‘일안천년(一眼千年)’ 조주교
    [동포투데이] 최근 중국 고대 건축의 보물 조주교가 각광을 받으면서 이 다리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다. 중국 허베이(河北省)성 스자장(石家庄)시 자오(赵县)현 샤이허(洨河) 위에 위치하고 있는 조주교는 수나라 때 건설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세계 최초이자 가장 넓은 단일공 원호 오픈 숄더 아치교로, 1961년 첫 번째 국가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선정되었다. 조주교 전체 길이가 64.4m로 건설된 날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 자오저우교 공원이 조성되면서 폐쇄되었다. 합리적인 설계가 조주교가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중요한 이유이다. 자오현 박물관 리쿤홍 관장은 “교량으로서 가장 큰 위험은 여전히 홍수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63년과 1996년에 조주교근처의 많은 하천에서 심각한 홍수가 발생했다. 조주교는 홍수 피해를 입은 후에도 무사했다. '오픈 숄더 아치' 설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인 아치의 양쪽 끝에는 4개의 작은 아치가 있다. 이 작은 아치는 자재를 절약하고 교량의 무게를 줄일 뿐만 아니라 홍수가 교량 본체에 미치는 영향도 줄여준다. 조주교에는 28개의 아치가 있는데, 설계자 리춘(李春)에 따르면 세로로 병렬로 쌓는 방법을 사용하여 먼저 하나의 아치로 쌓고, 쌓은 후 이 아치를 독립적으로 세워 차례로 다음 것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아케이드가 독립적이기 때문에 한 가지가 파손되면 다른 아케이드와 브릿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별도의 보수가 용이하다. 조주교가 수천 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대 중국인의 독창성과 혁신 정신을 반영하는 이 석조 공법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조주교는 고도의 과학적 가치와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형예술과 석조예술도 뛰어나다. 조주교는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국내외에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1991년 미국 토목공학회로부터 ‘국제 토목 역사 유적지’ 로 선정되기도 했다. 2023년 11월, 조주교 관광지가 무료로 개방됐다. 지금은 다리 아래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다리 위에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천년의 역사를 품은조주교는 오늘의 번영을 견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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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0
  • 北 ‘3대에 걸친 원로’ 김기남 사망...향년 94세
    [동포투데이]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8일 1966년부터 북한의 정치선전을 진두지휘해 온 '3대에 걸친 원로' 김기남이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3대에 걸친 지도자들의 이미지 구축부터 권력 공고화, 국가 위상 제고까지 수십 년간 북한에 몸과 마음을 바쳐온 김길남은 현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지닌 혁명적 원로"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기남은 최근 몇 년 동안 신부전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 김정은은 8일 새벽 2시에 여러 고위 간부들을 이끌고 영안실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김기남의 부고 기사와 사진은 수요일 노동신문 1면에 실렸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김정은과 간부들의 사진은 2면으로 밀려나 북한 정계에서 김기남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전 9시에 부고 기사를 보도하면서 김정은이 장의위원장이 될 것이라고 전하고 김정은의 애도사를 담은 짧은 영상을 공개했다. 관영 언론은 김기남이 당에 대한 충성심, 특히 김정일과 김정은 후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정은은 9일 열리는 김기남의 국장을 주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모든 당 간부들이 누리지 못한 최고의 영예이다. 김기남은 1966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전에는 위원장)가 된 김일성과는 친척이 아니며, 같은 해 북한 선전선동부 부장이 되어 김정일과 긴밀히 협력했다. 이후 김길남은 부장으로 승진하여 북한의 국가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김기남과 김정일은 절친한 친구이자 '술친구'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 김길남은 노동신문의 편집장이 되었다. 평양의 정치·문화 웹사이트 북한리더십워치에 따르면, 김기남은 초대 지도자 김일성을 역사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주도했으며 북한 주민들이 그를 국가의 아버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김정일이 정권을 이어받은 후에도 김기남은 국내외 정보 흐름을 통제하고 서구의 문화가 북한에 유입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계속했다. 김정일 사망 1년 전인 2010년 김기남은 선전선동부 부장에 재임명되어 다시 한 번 선전선동 기구를 본격 가동했는데, 당시 후계 준비를 하던 김정은의 나이는 20대에 불과했다.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한 후에도 계속 근무했으며, 2015년 공식 언론 사진에는 키가 크고 안경을 쓴 김기남이 김정은이 연설하는 동안 여러 간부들 사이에서 메모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기남은 2018년 은퇴해 김여정에게 지휘봉을 넘겼지만, 꾸준히 공개 활동에 참여하며 지도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김기남은 2009년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몇 안 되는 북한 고위 간부 중 한 명이다. 공식 매체가 김기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은 2021년 북한 건국 73주년 기념일에 고위급 인사와 함께 전망대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관람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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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기로에 선 GM, 중국의 도전에 직면
    [동포투데이] 제너럴모터스(GM)가 중국 시장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때 중국 시장은 GM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CNBC 방송은 이에 대해 논평했다. 2014년 1분기에 GM은 1억 6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는 코로나19 전염병 기간 동안의 실적을 제외하면 지난 15년 동안 세 번째로 큰 분기 손실이다. CNBC 방송은 GM 중국 시장 점유율이 2015년 15%에서 2023년 8.6%로 떨어졌다고 지적해 중국 내 이 회사의 미래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CNBC 방송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GM의 손실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았습니다. GM의 패배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중국 자동차 공장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 증가와 기술 성과를 등에 업고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둘째, 차세대 중국차 구매자들은 전기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GM은 이 부분에서 잠시 밀리고 있고, 셋째, 테슬라는 중국에 진출해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혁신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바꾸고 있다. 컨설팅 회사 던인사이트(Dunne Insights)의 CEO이자 중국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던(Michael Dunn)은 '테슬라 효과'가 중국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이들에게 이 모델은 새로운 패션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메리 바라(Mary Barra) GM CEO는 회사가 중국 시장에 계속 전념하고 있으며 성장 잠재력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포함한 신제품이 GM이 잃어버린 기반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머 전기차 등 플래그십 모델도 중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이클 던은 "우리는 중국 내 전통적인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종말의 시작점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상황이 미국 기업에 나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GM이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스텔란티스 및 포드와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는 중국에서 "가벼운" 운영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투자를 줄이고 기존 자산을 사용하여 자동차를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것을 의미다. 포드를 예로 들면, 미국으로 수출한 '링컨 내비게이터' 모델을 포함해 2023년 중국에서 차량 10만 대를 수출했다. 광저우 자동차 그룹과의 합작 회사가 파산한 후 스텔란티스는 중국에서 지프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중국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인 립모터에 투자했다. CNBC 방송 자료를 보면 경쟁 심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중국에서의 GM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회사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중국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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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튀르키예, 마약 밀매자 365명 체포...마약 217kg 압수
    [동포투데이] 알리 예를리카야 터키 내무부 장관은 튀르키예 경찰이 전국적인 마약 소탕 작전에서 365명의 마약 밀매 용의자를 체포하고 217kg의 마약을 압수했다고 7일 밝혔다. 예를리카야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튀르키예 경찰이 이스탄불, 앙카라 등 전국 52개 주에서 2340명의 경찰관과 9대의 헬기, 38마리의 마약 탐지견을 동원해 마약 단속 작전을 펼쳤다고 전했다. 국제 마약 밀매는 튀르키예에서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였다. 2023년 5월 선거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마약 밀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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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실시간 국제뉴스 기사

  • 中 남성 나무위 올라 신장을 팔겠다고 “광고”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신화넷에 따르면 12월 5일, 중국 북경에서 30살가량 돼보이는 한 남성이 협화병원 동문 앞의 나무위에 올라 자신의 신장을 팔련다고 큰 목소리로 “광고”했다. 이어 소방인원 및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하여 그 남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약 3시간에 거친 설득 후 소방인원들과 경찰은 소방용차를 이용하여 그 남성과 접근해서야 그 남성을 나무위에서 내려오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날 이 사건으로 북경의 동단 북대가의 교통은 오랫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인원들은 소방차를 이용하여 그 남성을 한동안 설득시키다가 나중에는 강제적으로 그 남성을 나무위에서 내리게 했다. 그것이 오후 4시경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 남성은 계속 반항했고 지어는 한 소방인원한테 발길질까지 했다. 경찰관들과 소방인원들은 참을성이 있게 대화하다가 먹혀들지 않자 나중에 강제로 그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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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7
  • 中 '순정男' 연애 8년, 외지생활 8년끝에 결혼하게 돼
    186장의 기차표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어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최근 중국에서 8년간 연애하고, 8년간 외지에서 생활해오다 이제 곧 결혼하게 될 한 남성의 사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2월 1일, 중국 하남성의 한 남성은 자기 자신이 8년간 연애하고, 8년간 외지에서 사업하다가 이제 곧 결혼하게 되었다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이 포착됐고 일전 기자의 취재를 접수했다. 아래의 글은 피리원(皮理元)이라 불리는 그 남성과 기자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문 : 축하한다. 이제 곧 결혼하게 된다면서? 답: 감사하다. 오는 13일, 하남성 회양에서 혼례식을 치르기로 하였다. 참, 그 기간 수많은 사연이 이었다. 약혼녀와 사귄지 10년이 되어오는데 8년간 연애를 했고 8년간 서로 떨어져서 사업했다. 그기간 우리는 69차에 거쳐 작별했었으며 내가 모아둔 기차표만 해도 189장이나 된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패하지 않았고 거리감에 패하지 않았으며 더우기는 자기 자신한테 패하지 않았기에 결국 이제 곧 결혼에 올인하게 되었다. 문: 당신들은 진짜 사랑의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 서로 떨어져 그리워하며 생활했던 사람만이 사랑의 소중함을 더 잘알 것 같다. 답: 그렇다. 기실 그녀는 이내 행복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줄곧 각종 곤난과 애로, 그리고 외로움을 물리치면서 나를 기다려왔다. 비록 그녀는 몇번 나와 “갈라서자”는 말을 해왔지만 이는 기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 역시 그녀가 나와 갈라서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할적마다 눈물을 흘렸고 몹시 상심해하는 모습이었다. 문: 참, 남자다운 포옹력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혼녀가 어떻게 생각하며 또 어떻게 가슴이 아파하는 것을 이해해주는 것이라 생각는다. 이 점에서 당신은 찬양할만한 본보기이다. 당신들의 행복을 기대한다. 답: 기실 나 역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사고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흉금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매번 모순이 생겨 그녀의 불만소리를 들을 때면 나 역시 매우 힘들었고 화가 났지만 나는 내가 그녀한테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 : 그럼 당신들로 하여금 서로 갈라서지 않게 만든 건 그 186장의 기차표였는가? 답: 나 역시 남자였으니까,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나가서 견식을 높이면서 이후에 있게 될 창업토대를 마련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사업의 성공으로 그녀한테 행복을 마련해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근근히 나의 생각뿐이었다. 여인한테 있어서 행복이란 물질적인 것도 존재하겠지만 결국 최종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함께 있으면서 사업을 벌여도 될 일이었다. 문: 듣자니 약 한달반 가량 “갈라선 적”도 있다고 하던데?… 답, 기실 여인한테 있어서 갈라서자고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닐 때가 많다. 사람은 언제나 며칠씩 심정이 저락할 대가 있다. 더우기 그럴 때 약혼남이 옆에 없다면 더욱 힘들어한다. 하지만 일단 남녀가 만나면, 큰 모순이 없는 남녀라면 모든 것이 다 풀리면서 관용해지게 된다. 문: 그럼 당신이 그녀를 감동시킨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물론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의 진정이 그녀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당시 나한테는 돈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한테로 갈적마다 늘 10시간에 달하는 야간열차를 타군 했다. 그리고 침대석인가 아니면 일반석인가 할 때면 우선 일반석을 선택하군 했다. 그리고 자리표가 없는 표를 살 때도 허다했다. 이 것 또한 그녀한테서 점수를 올린 사연이 아닌가 싶다. 문: 잘 들었다. 감동된다. 당신들의 행복을 축원한다. 답: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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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7
  • 中 중공중앙 주영강을 당에서 제명 사법기관에 이송키로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중공중앙 정치국은 5일, 회의를 가지고 중공중앙 기률검사위원회의 “주영강 기률위반 사건에 관한 심사보고”를 심의하고 통과, 주영강을 당적에서 제명하고 그의 범죄 혐의 및 선색들을 사법기관에 넘겨 법에 따라 처리하기로 결정했다고 중국 신화망이 6일 보도했다. 2013년 12월 1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는 회의를 가지고 중앙기률검사위원회가 사건 조사가운데서 발견한 주영강 기률위반 선색에 대한 회보를 듣고 상응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014년 7월 29일, 중앙정치국에서는 회의를 가지고 중앙기률검사위원회의 조사상황에 대한 회보를 청위하고 주영강에 대해 정식 입안조사키로 결정했다. 조사를 걸쳐 주영강은 당의 정치기률, 조직기률, 보밀기률을 엄중히 위반하고 직권을 이용하여 적잖은 사람들이 불법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편리를 주고는 자기가 직접 또는 가족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으며 직권을 이용해 친족, 정부, 친구들이 경영에서 거액의 이익을 취득하도록 도와주어 국유자산의 엄중한 손실을 초래했음이 밝혀졌다. 또 당과 국가의 기밀을 누설하고 염결자률 규정을 엄중히 위반, 본인 및 가족들이 타인으로부터 대량의 재물을 수수했으며 여러 명의 여성들과 통간하고 권리와 여색, 돈과 여색 교역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가운데서 주영강의 기타 범죄 혐의 선색도 발견됐다. 신화망의 6일 다른 한 보도에 따르면 중공중앙에서 그를 당적에서 제명하고 사법기관에 넘기기로 결정함에 따라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에서는 심사를 걸쳐 법에 따라 주영강의 범죄혐의에 대해 입안조사하고 그를 체포하기로 결정했다. 주영강 사건에 대한 조사는 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한편 주영강은 2013년 말, 정식으로 조사받기 전까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고 중앙정법위원회 서기, 국가공안부장 직을 담임했던 인물로 중국 반부패 폭풍 2년간 낙마한 관리들 가운데서 최고위급 관원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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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6
  • 1차,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유명한 여간첩들
    독일의 여간첩 마타 하리 1876년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1897년 마타 하리는 남편을 따라 자바(爪哇-인도네시아의 본섬)에 갔으며 그 곳에서 발레무를 전공했다. 후에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는 1903년에 파리로 가서 무용수가 되었다. 당시 그녀는 무용 “칠겹의 면사포(七层面纱)”에서 주연, 전반 파리를 들썽하게 했다. 숭배자들은 수천프랑의 거금을 내걸고 그녀한테 구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타 하리의 간첩생애는 그녀의 무용생애보다 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독일의 간첩인 그녀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의 어느 한 전역에서 프랑스는 수십만 대군을 손실보았다. 1917년 10월 11일, 마타 하리는 간첩죄로 프랑스 세느강변의 어느 한 수림속에서 처형되었다. 아인슈타인이 반한 구 소련 여간첩 마리아 코텐코바 수많은 미녀간첩 중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 중 구 소련의 여간첩인 마리아 코텐코바를 꼽을 수 있다. 2차 대전 시기, 그녀는 미국의 원자폭탄 기밀을 얻어내기 위해 미국 프리스턴 대학 학자들과 접근하기에 성공, 더우기는 나이 60세를 넘은 유명한 과학가 아인슈타인조차도 코텐코바한테 반해 그녀의 석류치마밑에 휘감겨 들었다고 한다. 당시 코텐코바는 구 소련 카그베(소련 국가안전위)의 성원이었으며 그녀의 대호는 “로카스”였다. 1924년 젊고 이쁜 코텐코바는 조각가인 남편 세르게이 코텐코바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당시 이들 부부는 방문학자의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 1935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요청에 의해 세르게이는 아인슈타인의 조각상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당시 코텐코바는 상급의 지령에 의해 조수의 명의로 남편과 함께 아인슈타인의 사업실로 마음대로 들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45년 이들 부부는 지령에 의해 소련으로 귀국하였다. 그 뒤 아인슈타인은 연속 9통에 달하는 츄피터 화살을 담은 편지를 코텐코바한테 띄웠다.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나는 이제부터 마법과 전조(预兆)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소. 우리들 사이에는 아마도 악마협곡이 있는 것 같소. 그리고 내가 보낸 편지도 그 악마협곡이 삼켜버린 모양이구만…나는 지금 소파에 앉아 그대가 나한테 선물한 담배를 피우며 그대가 좋아하던 연필로 이 편지를 쓰오. 그대가 정녕 바쁘지 않다면 나한테 편지 한통이라도 써보내주오…” 이로 보아 대량의 정보가 아인슈타인과 코텐코바를 통해 모스크바로 날아간 것이 분명했고 그 뒤 구 소련은 대량의 미사일과 핵무기 방면의 첨단기술 자료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쌍면의 얼굴 클리스티나 클리스티나 아길레라는 2차 대전시기 가장 걸출한 여간첩 중 일원이다. 클리스티나는 1915년 폴란드의 한 귀족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는 총명하고 인물이 절색이었다. 성년이 된 후 그녀는 폴란드 미인선발에서 월계관을 받아안기도 했다. 1939년 나치스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범하자 클리스티나는 영국으로 향발, 각종 신비한 신분으로 간첩활동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클리티나는 생명위험도 무릅쓰고 자신의 매력으로 각종 비밀임무를 집행, 초인간적인 용기와 지혜로 가치가 있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서는 동맹군에 넘겼으며 결국 동맹군의 승리를 위해 탁월한 기여를 하였다. 2차 대전이 결속된 후 영국수상 처칠은 클리스티나를 두고 “가장 사랑스런 여간첩”이라고 평가했다. 슈퍼여간첩 신시아 오지크 오랫동안 서방의 첩보전문가들은 여간첩 중 첫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여간첩은 신시아 오지크라고 공인한다. 세계 간첩사에서 보면 신시아는 수많은 풍류적이고도 미인계를 활용하는 여간첩들에 비해 별로 짝지지도 않았지만 그녀한테는 총명하고도 출중한 지략이 겸비되어 있었다. 1910년 그녀는 미국 민니소타 주에서 출생, 그녀의 부친은 미국 해군육전대 소교었고 그녀의 원명은 벨티 소프였다. 신시아는 체격이 미끈하고 한쌍의 푸른 눈을 가졌기에 그녀의 모습은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잘 어룰렸으며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보고 싶다는 그런 타입이었다. 2치 대전이 시작되자 신시아는 곧바로 영국정보기관에 자기의 간첩능력을 과시하였다. 그녀는 주미 이탈리아 대사관의 친구를 이용하여 이탈리아 해군의 비밀번호를 절취하였다. 1941년 신시아는 미국기자로 분장한후 나치스 독일의 괴뢰정권인 프랑스 비시정부의 주미대사관 보도관 찰스 블루스와 접근, 당시 블루스는 첫 눈에 그녀한테 반했으며 둘은 공동으로 나치스 괴뢰정권의 해군비밀번호를 장악한다. 그 뒤 1946년 블루스는 신시아를 아내로 맞이, 둘은 프랑스 산촌의 한 옛성 마을에 정착했다. 말비나 그트레 2차대전 기간 “영국판 마타하리”로는 말비나 그트레를 꼽을 수 있다. 말비나는 1908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슈트에서 출생했고 후에는 폴란드에서 자랐다. 1935년 말비나는 시탐적으로 영국행을 선택, 영국에 간후 그녀는 상층계층에 드나들면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여간첩으로 활동, 지금도 말비나가 어떻게 군정보 5대 분야를 돌면서 첩자로 활동했는지가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영국에 간 뒤 말비나는 당시 영국의 에핑엄 백작의 장자 하워드 훈작과 결혼한다. 그러자 당시 군정보 부문의 정보관들은 말비나가 “가장 위험한 여모험가”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귀족, 대사와 기타 군고위관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의 영향력을 높여 정보를 얻어내는 경로를 넓혀갔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비스 플래터를 대표하기도 했다. 비스 플래터는 전 소련 국가정치보위국 주 영국 대리인이었다. 1941년 말비나는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그녀는 상소를 제기, “난 이 국가에 미안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3개월 후 말비나는 석방되었다. 그녀한테서 “적을 동정하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비스 플래터와의 내왕에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였다는 증거도 없었다. 1945년 전쟁이 결속된 뒤 말비나는 하워드 훈작과 이혼한 후 호주로 건너가 정착하였다. 여간첩 낭시 비크 1940년 낭시 비크가 결혼하여 6개월만에 나치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그 때로부터 낭시는 나치스에 저항하는 행동을 개시, 반파시스트의 견강한 전사와 조직자의 일원으로 되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쓰고 독일군의 봉쇄선을 넘나들면서 활동하였다. 후에 낭시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지하조직에 정보와 식약품을 보내주기 위하여 늘 귀부인으로 가장해서는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갖고 독일군 점령지에서 활동을 조직하군 하였다. 또한 앰블러스 한대를 구입해서는 선후로 1000여명에 달하는 탈출한 전쟁포로와 동맹군의 비행사들을 도와 성공적으로 프랑스에서 탈출하여 스페인으로 가게 하였다. 후에 낭시는 자기의 정체가 탄로되자 산발을 타고 스페인으로 피신했으며 다시 영국으로 건너갔다. 1944년 낭시는 한명의 특별행동 대원과 함께 프랑스 중부의 블뢰 도 베르에 잠적, 당지에서 저항역량을 조직하고 비밀 탄약무기고를 건립하는 등 사업을 책임졌으며 아울러 영국과의 무선전연락도 책임졌다. 당시가 낭시가 이끄는 저항군의 목표는 당지 독일군의 무기장비와 인원들을 기습하는 것이었으며 노르망디 등륙전에 독일군의 저항역량을 쇠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2.2만여명의 독일군과 저항한 낭시의 대오는 초기의 3000명으로부터 최후에는 7000여명으로 발전하였다. 누르 애나아트 칸 2차 대전 기간 영국과 독일 시이에는 치열한 간첩대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영국정보부문에는 일명 “공주간첩”으로 불리는 유명한 간첩이 있었다. 바로 누르 애나아트 칸이란 미녀간첩으로 인도공주 출신이었다. 2차 대전 당시 그녀의 대호(代号)는 ‘특공매들린(Madeleine)’이었으며 프랑스 독일점령지에서 무전수로 활동했다. 후에 누르 애나아트 칸은 한 동료의 비밀누설로 독일군한테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향년 30살이었다. 현재 그녀의 사적은 영국 국가서류관에 보관되어 있다. 동방의 “마타 하리” 가와시마 요시코 가와시마 요시코(川岛芳子),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김벽휘(金璧辉)이다. 가와시마 요시코는 중국 말대황실 만청 숙친왕의 제14위 공주로서 유명한 일본간첩이었다. 가와시마 요시코의 어머니는 일본이었으며 3살적에 부친을 잃었다. 그녀는 일본인 가와시마 나나와의 슬하에서 자라면서 가와시마 요시코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와시마 나나와의 아내는 일본황후와 동족동본으로서 가와시마 요시코는 자연히 귀족으로, 훗날에는 군정과 정계의 요인이 되었다. 중국 동북에서 “9.18 사변”일 일어난 이듬해인 1932년 가와시마 요시코는 위만주국 신경시(지금의 장춘시) 시장 겸 경비사령인 오빠 김벽동과 일본군 다다 가오루 등과 함께 군사요직에 올랐다. 가와시마 요시코는 또 위만주국 부의 황제를 부추켜 만몽독립 및 만청복벽을 꿈꾸면서 일본군 특무기관과 손잡고 왕정위를 이용할 것을 주장했으며 후에는 화북인민자위군 총사령직을 맡기도 한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한 후 가와시마 요시코는 체포되어 북평 제1감옥에서 복역하다가 하북성 고등법원의 기소로 사형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편역: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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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美 , 중국 제3차로 극초음속 미행물체 실험을 했다고 주장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12월 4일, 환구군사넷에 따르면 최근 미국 ‘워싱턴자유등탑보(Washington Freedom deungtappo)’는 지난 12월 2일 미국은 중국이 제3차로 극초음속 비행물체 실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지난 1월 5일과 8월 7일에 이어 이번에 제3차로 이 실험을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정보기관은 이번 주 화요일 중국 서부지구에서 진행한 비행물체실험(WU-14)을 한 것을 감지했다고 하면서 실험 중 발사된WU-14는 극초음속비행물체의 발전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미국방부 대변인이며 육전대 중교인 제푸르 팔은 “우리는 이번 실험에 대한 보도를 주목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는 정상적으로 외국군사활동의 진행에 대해 감측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팔은 “하지만 우리의 정보내원으로는 외국무기계통의 상황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면서 “미국방부는 중국이 국방경비와 군사행동방면의 투명도를 높일 것을 독촉하고 있으며 오해를 피면할 것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한 팔은 중국이 1년내 3차에 달하는 극초음속 비행물체를 실험하는 것은 중국이 곧 “WU-14비행물”의 “무기화”를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12월 2일, 중국 태원의 위성발사센터에서는 “장정2호” 운반체로 한매의 로켓을 발사, 이것이 가능하게 미국측이 말하는 비행실험일 수도 있으나 아직은 이에 대한 상세한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른바 미국측이 추측하는 이런 극초음속 비행물체는 중국의 신형대륙간미사일 핵탄두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요해에 따르면 이 비행물체의 속도는 음속의 8배에 달하며 목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런 무기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한편 미국에서는 중국에 내놓은 WU-14 비행물체를 놓고 미국의 “전 지구적 쾌속타격 계획”을 모방한 “산채판(山寨版)”라고 주장, 최근 미공군의 HTV-2 극초음속 비행물체는 기술난도가 너무 높아 포기한적이 있었고 지난 8월에 있은 육군의 극초음속 비행물체의 실험도 실패로 끝났다. 미국은 신형의 극조음속 미사일 연구제작의 진도상에서 이미 중국한테 뒤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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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中 여성 은행에 1위안 은전 1300근 저금
    ▲ 은행 직원들이 은전을 세고 있다. 1위안 짜리 은전 5개 상자 도합 10만위안에 달해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중국 사천성 중경시 무산현의 중경농촌사업은행 무산지행 영업부에 4일, 한 여성이 인민페 도합 10만위안에 달하는 1위안 짜리 은전 5개 상자를 화물트럭에 싣고 찾아와 저금하겠다고 했다. 중국 중원망에 5일 보도에 따르면 은전은 한 묶음에 500위안, 무게가 6근 2냥이었고 큰 상자로 5개이니 도합 1300근에 달했다. 이 은전의 내원(来源)에 대해 소여사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진 빚을 갚은 것이라고만 하고 말을 아꼈다. 소여사는 3일, 무려 10만위안에 달하는 은전을 받은 후 화물트럭에 싣고 은행 두 곳에 찾아갔었지만 다 거정당했다. 은전을 셀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 10만위안에 달하는 1위안 짜리 은전 5개 상자. 4일 오후 2시경, 중경농촌상업은행 무산지행 영업부에 찾아왔을 때 이 은행에서 소여사의 저금업무를 취급하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행 영업부에서는 영업원 6명이 동원되어 은전말이를 하나하나 터뜨려 세기 시작했다. 소여사가 옆에서 봉인된 은전말이를 뜯었다. 은행 직원 6명은 큰 상자 5개에 달하는 1위안 짜리 은전을 4일 퇴근할 때까지 세도 다 세지 못해 5일 출근해서도 계속 셌다. 은행 직원들은 처음 은전상자를 보았을 때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 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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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中 복건 고속도로 터널 붕괴사고... 21명 매몰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복건성 용암 하용 고속도로 확장공사 거주구간에서 5일 아침, 터널 붕괴 사고가 발생해 21명이 매몰됐다. 중국 신화망의 보도에 따르면 오늘 아침, 용암 신라구 적중신사촌에서 작업중이던 하용 고속도로 확장공사 A3구간 후사터널(신건 3차도) 출구가 붕괴되었다. 사건 발생 당시 터널 속에는 21명이 작업하고 있었고 붕괴에 몽땅 매몰되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복건성과 용암시에서는 즉시 구조대를 현장에 파견했다. 목전 현장에서는 생명통로를 뚫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시급시 구조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의 소개에 따르면 터널 암석층은 비교적 성글고 흙과 모래가 많아 붕괴된 두께가 십여미터에 달한다. 목전 현장에서는 지게차가 붕괴된 터널 입구에서 모래흙을 나르고 있는 가운데 공안, 소방, 구급차, 무장경찰들이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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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부패혐의에 연루된 중국군의 첫 여장군
    (부패혐의에 연루된 중국군의 첫 여장군 고소연(高小燕))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중국에서 군부내의 열화와 같은 반부패 운동이 파급되면서 또 한명의 장군급 군부인물이 낙마하였다. 12월 4일,‘중국청년보’에 따르면 중국인민해방군 정보공정대학의 부정위이며 규율검사위원회 서기였던 고소연(高小燕)소장이 수뢰혐의로 군부대 검찰부문에 의해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18차 당대회 이래의 강력한 반부패 운동에서 탐오수뢰 혐의로 붙잡혀 나온 첫 여장군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해에 따르면 고소연 소장은 지난 11월 27일에 군부대 검찰부문 일군들한테 연행되어 갔다. 당일, 군부대 검찰부문일군은 이 대학에서 고소연 소장을 조사할데 관한 문건을 전달하면서 고소연 소장한테 수뢰혐의가 있다고 통보하였다. 이날밤 고소연 소장의 원 임직단위었던 해방군 총 참모부 총병원(309병원)내에 있던 고소연 소장의 저택의 압수수색 현장에서도 대량의 현금이 발견되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인사가 토로한데 따르면 고소연 소장은 일찍 309병원의 후근부의 기본건설 부문을 맡고 있을 때 탐오수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고소연 소장이 조사를 받기 전에도 이 병원의 몇몇 관리직 군인들이 연행되었었다. 이 중에는 이미 전근되어 간 원 관리처 처장도 망라되어 있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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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中 증시 요즘 폭발적인 상승 ,“5.19” 재연?
    ■ 김 정 중국 증시가 15년 전의 폭발적인 상승을 재연하는가. 2014년 12월 4일, 중국 증권시장에서 상해종합지수와 심천성분지수 모두가 4% 남짓 급등했고 이 두 지수의 거래량은 거의 9000억위안에 달했다. 상해종합지수는 전날보다 119.93 포인트(4.31%) 급등한 2899.46으로, 심천성분지수는 385.91 포인트(4.00%) 뛴 1만 29.83으로 각각 마감했으며 상해지수는 3년 7개월, 심천지수는 2년 6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증시는 최근 두 주일간 크게 하락하는 양이 적고 연이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자들이 증시에 투자했다가 요즘처럼 흐뭇해 하기는 2007년 이후 7년만인것 같다. 돌이켜 보면 중국 증시는 1999년 5월 19일, 즉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국무원에서 대대적으로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증시는 1050를 기점으로 짧디짧은 한달만에 1756으로 , 2년 뒤에는 2245로 배가 넘게 상승, 2007년 10월에 이르러서는 6124라는 중국 증시 사상 최고기록을 냈다. 그땐 산속의 스님마저 주식시장에 내려와 주식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었다. 거기서부터 중국 증시는 급하락하기 시작해 1년 남짓이 지난 2008년 말에 이르러서는 1820선에까지 밀리웠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7년 10월부터 지난 7년간 중국 증시는 남들이 다 올라도 오를줄 모르고 남들이 겪는 무슨 금융위기요, 실적 하락이요…하는 모든 풍파들은 다 겪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자체도 분명 국가의 경제는 발전하는데 증시는 내릴 때에는 많이 내리고 오를 때에는 조금 오르군 하면 등락을 반복했다. 그간 그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주식에 투자하면 돈 번다”는 말을 듣고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려버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성숙되지 못했던 중국 증시가 요즘 오랜만에 “선심”을 쓰고 있다. 두 주일째 매일 “몇년만의 기록”이요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해증시와 홍콩증시의 통합에 이어 중국 경제지표의 하락에 따른 금리인하 등 각 업종에서의 여러 가지 국가 부축정책, 향후에도 기준금리가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면서 풍부해진 자금 유동성에 힘입어 증시가 상승하는 것이다. 외국이거나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명년 언제까지 중국 증시가 얼마에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고있다. 하다면 중국 증시, 언제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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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4
  • 베링해역 한국 선박 80% 구조장비 갖추지 않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배링해에서 조업하는 대부분 한국 선박의 경우 방수복을 비롯해 구명조끼 등 구조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러시아 연방보안국 국경수비대 관계자가 밝혔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국경수비대 관계자는 " 베링해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6척의 선박 가운데 5척의 선박을 조사한 결과 최저 수온에 빠진 사람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방수복을 비롯한 구명 조끼를 구비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국을 비롯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영사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들 선박 가운데 승무원 수를 총족하는 구명보트를 구비하고 있는 배는 2척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바다에서 건진 희생자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맨발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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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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