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 허길성 
4
 
dspdaily_com_20140405_150815.jpg
(전번기 계속) 어느덧 가을이 되였다. 가을이란 수확의 계절을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와 순자의 사랑도 마찬가지라 할수 있었다. 나와 순자는 일요일마다 만났다. 우리는 함께 영화구경도 하고 사진도 함께 찍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재차 학교뒤 공원의 그 홰나무밑을 찾았다. 벌써 10번도 더 찾아온 홰나무밑이였다. 그런데 그날 그 홰나무를 올리쳐다보는 순간 나의 감회는 여느 때보다 달랐다. 말없이 서있으면서 공원을 지키고있는 홰나무 ㅡ 홰나무는 우리의 모든것을 지켜보았을것이고 또 모든것을 알고있을것만 같았다.

“순자, 이 홰나무가 우리 사랑을 수없이 지켜본 견증인이라 할수 있소.”
나의 말에 순자는 더욱 흥분되여 부르짖었다.
“그래요. 이제 우리 결혼해 아들딸을 낳으면 애들을 데리고 꼭 한번 이 홰나무밑으로 찾아오자요. 그리고 애들한테 이 홰나무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자요.”
“그렇소. 이 홰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뒤 조금도 변함이 없이 이 땅을 지키고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이 홰나무처럼 영원히 변치 말았으면 하오.”
“어머, 나의 류쾌이챈! 시인이 다 되셨네…”
……
그날 우리는 또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서로 상대방을 찍어주기도 하고 공원을 찾은 다른 유람객들한테 부탁하여 홰나무를 배경으로 함께 손잡고 찍기도 했다.

헌데 그 홰나무밑에서의 우리의 랑만은 그날이 마지막으로 될줄이야. 그야말로 자신의 한치 앞날도 예측할수 없는것이 인생이였다.

그 며칠뒤의 어느날 밤, 자정을 앞두고 갑자기 집합나팔소리가 울리였다. 부대를 놓고볼 때 야밤중집합은 흔히 있는 일이였지만 문화학교로 온 뒤엔 처음으로 있는 일이였다. 웬일일가?… 변방지구도 아닌 무석에서, 그것도 문화학교에서의 야밤중집합을 두고 학생들은 옷을 주어입으면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혹시 중앙군위에서 검사단이 내려오는것이 아닐가?”
“하필이면 야밤중에 검사단이 내려온다고 그래?! 아니 아닐거야.”
“거 모르는 일이지. 상급에서 내려오면 언제 예고라도 하고 내려온적이 있었던가!”
……
1000여명의 사생들이 모두 모이자 교장과 정위가 사생들의 앞에 있는 높은 상단에 올라서는것이였다. 이상했다. 일반적으로 정위가 사생들앞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그날은 교장과 나란히 나섰으니 아무래도 일반적인 일이 발생한것이 아닌것 같았다. 미구하여 정위가 문건같은것을 들고 한발 나서며 입을 여는것이였다.

“전체 차렷!”
“다시 쉬였다가 차렷!”
“쉬엿!”

“전체 사생들!
오늘밤 긴급집합을 한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평화롭게 글을 가르치고 공부하고 있지만 조국의 동남지구와 동북지구는 형세가 자못 준엄한 상황입니다. 즉 정세는 우리를 평화롭게 공부할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고있습니다. 즉 형세는 우리를 핍박하고 있단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각도 남해안인 복건지구에서는 대만의 장개석군대가 간첩을 파견하
고 무장도발을 하는 등으로 전쟁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동북변방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전쟁은 지난 1953년에 결속되였지만 이는 정전협정이지 평화협정이 아니였습니다. 현재 남조선에서는 계속 미군이 주둔해 있으면서 전쟁을 획책하고 있기에 전쟁이란 언제 어떻게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렇듯 복잡한 형세하에서 중앙군위에서는 본교의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국내 여러곳에 배치되여 전쟁준비에 종사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는것을 천직으로 삼아야 합니다…”
정위의 연설에 이어 교장이 제1진으로 떠날 학생들의 명단을 공포, 어느 한 반급을 단위로 뽑은것이 아니였다.

제1진으로 뽑힌 학생은 약 300명에 달했다. 이어서 제1진으로 뽑힌 학생들한테 명령이 하달, 그들은 이불짐과 간단한 생활필수품만 지니고 재집합하라는것이였다. 그리고 평소에 읽던 책과 옷 등은 포장한 후 거기에 집주소와 이름을 밝혀 써놓으라는것, 학교에서 책임지고 집에 부쳐준다고 했다.

약 20분 뒤 제1진으로 뽑힌 학생들이 재집합했다. 재집합이 완료되자 제1진으로 뽑힌 학생들에 대한 재점명이 있었고 재점명을 마치자 그들은 이미 대기하고있던 군용트럭에 나뉘여 올라 어디론가 떠나는것이였다.


5

그날밤 나는 다행히도 제1진으로 떠나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순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제1진에는 녀학생이 단 한명도 없었다. 제1진이 떠난 후 이튿날부터 학교의 모든 수업은 중단됐다. 수업마저 중단되자 우리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순자가 학교지도부의 말미를 맡고 우체국에 가서 상해경비사령부에 있는 부친한테 문의했다. 하지만 순자의 아버지 왕륙삼정위 역시 중앙군위의 밀령에 대해 알지 못했고 우리 학교의 수업중단소식에 대해서도 깜깜부지였다. 아무리 경비사령부의 정위라 해도 중앙군위의 행동포치에 대해서는 알수 있을리 만무했던것이다.

우체국에서 돌아온 순자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초조하게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길성동무(그때는 류쾌이챈이라고 별명을 부르지 않았음), 어쩌죠? 아빠도 모르는 일이군요…”
“글쎄…”
“글쎄가 무슨 글쎄인가요?! 우리 사이가 이 정도로 됐다가 어떻게 갈라진단 말인가요?”
“갈라지긴 왜 갈라진다고 그러오. 하지만 우리 둘 다 군인으로서 상급의 명령에는 복종해야 할게 아니오?! 그리고 그 어디에 가도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만 않으면 되는거요.”

순자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때 마음이 불안하기는 나도 순자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자대장부로서 나마저 순자처럼 울먹거릴수는 없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눅잦히며 울먹거리는 순자를 달랬다.

“순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오. 뭐나 다 잘될거요.”
우리는 학교대문을 나와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걷기 시작했다. 한동안 둘은 별로 대화도 없이 그저 각자의 생각에만 골몰했다. 그러다 우리는 부지중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학교뒤 공원에 있는 그 아름드리 홰나무밑에까지 가게 되였다.
순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홰나무를 보자 갑자기 참았던 감정이 북받쳤던 모양이였다. 그녀는 나무를 붙안고는 오래동안 흐느꼈다. 그도그럴것이 그동안 그 아름드리 홰나무한테도 정이 들었다고나 할가?

나는 한동안 그녀한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구절을 생각해낼수가 없어 그냥 그녀가 우는대로 내버려두는수밖에 없었다.

한편 순자가 울고있는 사이에 나는 칼로 나무껍질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내가 새긴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이 마음 영원토록 변치 말자!(永不变心!)”
한동안 실컷 울고난 순자는 내가 새긴 글자를 보더니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나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는것이였다. 이에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는것으로 위안의 말을 대신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는 이제 누가 여기를 먼저 찾아오게 되면 나무에 자기의 이름을 새기는걸로 상대방한테 사랑의 마음을 알리자고 한 다음에야 그 자리를 떴다.

그뒤 또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 아니나다를가 집합나팔소리가 울리더니 역시 전체 학생들을 학교마당에 집합시켰으며 지난번과 같은 명령이 하달되였다.

헌데 이번에는 생각밖으로 내가 아닌 순자가 이동명단에 포함될줄이야. 이는 너무나도 우리의 상상밖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순자를 포함한 녀학생들만은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지 않으리라 여겼던것이다.

“길성동무, 우리 이제 어떻게 되죠?”

전번처럼 흐느껴 울지는 않았지만 순자는 여전히 울먹울먹한 목소리였다. 옆에 숱한 학생들이 있는지라 극력 자제하는것이 분명했다.

“순자, 어디로 가든간 도착하자마자 인차 편지를 쓰오. 나도 여기에 있다가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말이요.”

순자는 말보다는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모든것을 대신하였다.

순자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나의 손을 잡았다. 평소같으면 가슴팍에 안길 그녀였으나 가까스로 리지를 잃지 않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부디 몸 조심하세요.”
“순자도 마찬가지요. 녀자의 몸으로 더욱 건강에 류의하길 바라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을 향해 군례를 붙였다.

순자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돌아서더니 제일 마지막으로 군용트럭에 올랐다.

“부르릉” 하고 엔진소리가 나더니 군용트럭은 자리를 떴고 순식간에 학교대문을 빠져나갔다.

순자를 떠나보낸 나는 한동안 학교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겨우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며 숙소로 향했다.

순간, 나는 나자신이 울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성장해오면서 나는 거의 눈물이라고는 모르는 인생을 살아왔었다. 부모님한테서 욕을 먹거나 매를 맞는 일이래야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몇번 안되였기에 울 일이 별로 없었거니와 아주 힘들거나 역경속에서도 눈물이라고는모르고 살아왔다. 그만큼 나는 의지가 견강하거나 지독한 사람같기도 했고 목석같은 인간이기도 했다. 헌데 그런 내가 그 시각 울고 있었던것이다. 왕왕 소리내여 운것이 아니라 몰래 조용히 굵직한 사나이의 눈물을 떨구고 있었던것이다.

아, 사랑이란 과연 이런것이였던가!

그날밤 나는 그만 실면하고 말았다. 순자를 전쟁터 아니면 아주 어렵고 힘든 곳으로 보낸것만 같았다. 그녀가 가는 곳은 과연 어디인지? 복건인지 아니면 동북변방의 어느 한 두메산골에서 벌여놓은 전쟁준비공사장인지? …

그 이튿날에도 나는 여전히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책을 들어도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숙소청소를 하려고 비자루를 잡아도 정신을 집중할수가 없었으며 자꾸 어두커니 서있기가 일쑤였다. 머리속에는 온통 순자에 대한 생각뿐이였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번씩 학교뒤 공원의 홰나무아래를 찾아가서는 홰나무에 새겨진 “영원히 변치 말자!”란 글을 어루쓸기도 하고 홰나무주위를 몇번이고 배회하기도 했다. (지금쯤 순자는 어디에 있을가? 그도 지금 나를 생각하고있을가?…)

드디여 어느날, 나를 포함한 마지막 진의 학생 10여명도 떠나는 날이 되였다. 역시 밤중에 집합나팔이 울리고 정위의 명령하달이 있는 등으로 그 절차는 종전과 같았다. 다르다면 마지막 진으로 떠나는 학생들은 거개가 조선족인 나를 포함한 위글족, 몽골족, 만족 등 소수민족 학생들이였으며 이전에 떠난 학생들과는 달리 책이나 옷 그리고 가질수 있는 생활용품들을 다 가질수 있게 한것이였다. 그러자 나는 다른건 다 제쳐놓고 다른 학생들이 버리고 간 책까지 트렁크에 넣다보니 트렁크 두개가 책으로 꼴똑 찼었다.

군용트럭에 앉아 학교대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학교건물과 교정 그리고 학교뒤 공원쪽을 한번 바라보았다. 특히 학교뒤 공원을 바라보니 공교롭게도 그 아름드리 홰나무가 보이였다. 나와 순자의 사랑을 견증하며 땅에 버티고 서있는 아름드리 늙은 홰나무 ㅡ 순간, 나는 “아차”하며 하마트면 소리를 내지를번 했다. 글쎄 순자와 재상봉할만한 그 어떠한 여건도 마련하지 못했던것이다. 그녀한테서 온 편지를 받지 못했는가 하면 상해에 있는 순자네 집 주소도 적어두지 못했고 또한 나의 집주소를 순자한테 적어주지 못했으니 말이였다.

※ ※ ※

순자와 서로 주소교환을 하지 못한것, 그것은 오래도록 나의 후회거리로 됐다. 모든것이 나의 불찰과 실수로 빚어진것만 같았다.

몇년뒤 나는 요행 기회가 생겨 상해로 갔던 걸음에 상해경비구사령부 근처에 있는 순자네 집으로 찾아갔었으나왕륙생정위는 이미 은퇴하였고 집주인도 진작 바뀐 뒤였다. 이어 나는 또 나와 순자가 늘 만나군 하던 학교뒤 공원의 아름드리 늙은 홰나무 밑으로 찾아갔으나 나무에 새로 글을 새긴 흔적은 발견할수가 없었다. 순자가 찾아오지 못한것이 분명했다.
……
(연재 6)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단독]"굽이굽이 인생길 하많은 사연들" ( 6 )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