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동포투데이] 조선어학회는 일제 식민 통치 시대 한글학회의 이름이다. 나라의 운세가 막다른 고비에 이르자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것만이 겨레를 지키고 끝내 독립을 쟁취하는 유일한 길임을 굳게 믿고 1908년 8월 31일 한힌샘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였다.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날’(1926)을 제정하고 동인지 󰡔한글󰡕(1927)을 간행하면서 국어 연구와 한글 보급 운동을 힘차게 펼쳐나갔다. 1929년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극로가 조선어연구회에 입회하여 각계를 대표하는 108인의 뜻을 모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면서 민족학회로서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다시 바꾸고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에 착수하였다.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 1936년 ‘조선어 표준말’을 사정하였으며 1940년 ‘외래어표기법 통일안’을 제정함으로써 국어는 비로소 문명어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42년 󰡔조선말 큰사전󰡕 출판에 착수하였는데, 조선어 사용 금지령․창씨개명 등 민족 말살 책동을 노골화한 가운데 이야말로 가장 힘있는 민족운동․독립투쟁임을 간파한 일제가 주동 인물들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함흥형무소에 구금하고 더할 수 없이 모진 고문을 가하였다. 이에 이윤재․한징 두 분이 옥사하고,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정태진 등이 광복을 맞아 반주검 상태로 풀려나니 이것이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이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국어는 현대화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을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불과 두 세대 만에 그 처참한 가난을 극복하고 오늘 선진 경제․문화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제 식민 통치 아래서 조선어학회의 투쟁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이고 빛나는 독립 투쟁이라 할 것이다.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으로 투옥된 33인은 다음과 같다.
 
이윤재 한 징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 이중화
이우식 이 인 김법린 김양수 김도연 장현식 장지영 정열모
김윤경 이석린 권승욱 이만규 이강래 김선기 이병기 서승효
윤병호 이은상 정인섭 서민호 안재홍 신현모 김종철 권덕규
안호상
 
그밖에도 조선어학회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홍원경찰서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고초를 겪은 분들이 있다.
 
곽상훈 김두백 김준연 민영욱 방종현 백낙준 임혁규 정세권
 
재정적․법률적으로 혹은 편찬 사업에 크게 도움을 준 분들이 있다.
 
공 탁 김성수 김활란 박원삼 윤상은 윤홍섭 이상춘 이중건
이철원 최순주 한격만 허영호 허 정 신명균 문세영 신영철
 
광복 후 여기 이름을 남긴 분들은 투옥된 1942년 10월 1일, 그날 그 정신을 길이 잊지 않기 위하여 ‘십일회’를 조직, 모임을 함께하고 한글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였다.
 
거룩한 희생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수난 당한 지 72년, 여기 세종로 한 자락에 기념탑을 세우노니 선열들이여 기뻐하소서.
 
 
만 든 이 : 작가 황규연 / ㈜디자인팩토리 · ㈜더스틸 컨소시엄
탑명글씨 : 한내 허경무
글 쓴 이 : 한글학회 회장 김종택
 
2014. 8.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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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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