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a2852b1aff9f52b80523ee9965d4f239_5Xuv2gY1343urPiSdcQnaZLlMwcK6DSu.png[동포투데이] 기원전 수백년 홈로스는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화신” 호언스타스의 아내 아브로디나가 자기의 동생과 성관계를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장쟁이가 호언스타스한테 몸에 붙는 코르셋(紧身褡- 여자의 속옷)을 만들어주에 아내한테 입히도록 했다. 그러자 호언스타스의 아내 아브로디나는 더 이상 남편밖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가 없었다. 하다면 이 코르셋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먼저 나온 정조띠의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사람들은 정조띠의 발명을 십자군의 동정시기인 기원 11세기로 추측하지만 이는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 정조띠에 관한 유럽의 기재에 따르면 정조띠의 발명은 1405년 8월 28일이었다. 시인 K 지샬은 이날 정조띠에 관한 시와 함께 한장의 그림도 완성, 그는 “피렌체(佛罗伦萨) 남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무거운 철띠로서 잠그면 이런 모양이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의 시에는 이딸리아의 로마, 베니스, 밀란 등 도시들에서 이런 정조띠를 만들고 있다는 단락이 있었다.  또한 다수 역사고찰자들의 증명에 따르면 이딸리아 파도바의 폭군 프랑시스크 2세(14세기 말 즉위)가 최초로 자기의 모든 부인들한테 정조띠를 착용하게 했는데 이는 시인의 기재와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딸리아 베니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정조띠는 당시 프랑시스크 2세의 한 왕후가 사용하던 것이다.

그 뒤 유럽에서는 15-18세기 기간에 만들어진 정조띠는 주로 상층사회에서 유행됐고 중세기 기간에 만들어진 정조띠는 주로 부유계층에서 유행돼왔다. 그러다가 후기에 들어 정조띠는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져 상아를 박아넣은 것이 있는가 하면 금은보석을 박아넣은 것도 있었으며 점점 화려한 장식품처럼 만들어지는 쪽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런 정조띠는 오랫동안 착용하기 불편하기 그지 없었으며 위생문제는 더욱 잘 해결할 수 없었다.

유럽 19세기 남성용 정조띠 출현

영국 빅토리아여왕시기(1836-1901년)에 들어 영국에서는 미성년 남자애들의 수음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남자애들은 밤에 잘 때에도 정조장치를 착용하도록 하였다. 당시 남자애들의 수음문제가 사회문제로 가장 현저하고도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녀자애들이 착용한 수음방지용 정조장치는 역사상의 정조띠와 대동소이(大同小异)하였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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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문화시리즈(2) 정조띠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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