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중국 후난성 창사(长沙)에서 한 상인의 은행신용카드에서 지난 몇년간 수억위안에 달하는 인민폐 금액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발생해 은행 저금호들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1973년생인 그 상인의 이름은 우젠핑(吴建平)이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장사를 해왔으며 선후로 그의 이름 및 회사의 명의로 358개의 은행계좌를 개설했었다.
 
“지난 5년간 적어도 4억 위안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 2010년부터 그는 여태껏 없었던 “자금미궁(资金迷局)”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간 우젠핑과 그의 회사에서는 창사시내의 많은 은행들에 계좌를 개설, 이 중 중국건설은행 후난분행 창사지행에 계좌가 집중되었으며 큰 액수의 자금유동량도 많았다고 한다.
 
2010년 12월 말, 우젠핑 회사의 부총재이며 재무총감인 천치잉(陈奇英)이 그한테 보고하기를 “유동자금이 3000만위안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우젠핑은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2005년부터 회사의 부총재이며 재무총감인 천치잉가 회사 소유의 재무를 총괄하였으며 평소 우젠핑은 재무상황에 대해 아주 적게 묻군 하였다.
 
하지만 당시 그는 부득불 회사의 재무에 대해 검토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회사에서는 “생활예술성”과 “금방 • 만수단제(金房·万树丹堤)”를 지어 판매한 수입만 해도 9.6억위안이 되며 거기에 중국 건설은행과 장사우화농촌합작은행으로부터 각각 9500만위안과 5000만위안의 대출을 맡았었고 우젠핑 자신 또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쟈난호텔(佳楠酒店)까지 매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질구레한 수만위안짜리를 제쳐놓고라도 이상의 4개 항목에서만 적어도 12억위안이 있어야 하였지만 귀신이 곡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해의 지출 4.6억위안을 덜어버려도 장부에는 마땅히 7억위안이 있어야 했다.”
 
한편 우젠핑은 회사내에서 장부를 검사하기 시작, 최초로 경악한 것은 창사시안의 몇개 은행들에서 나타난 문제들이었다.
 
그가 자기 및 회사의 명의로 설치한 358개의 은행계좌 중 100여개의 은행계좌에서 자금유동이 특별히 잦았으며 그것은 모두 우젠핑의 서명으로 빠져나간 자금들이었다.
 
거기에는 그가 모르는 자금유출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그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서 자금유출액수가 더욱 컸으며 이는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2011년 9월 29일, 우젠핑은 자기가 서명했다는 지출단 32개를 후난성 감정기관에 보내어 감정, 결과 그중 25개는 우젠핑의 서명을 모방한 것이었고 금액은 도합 760만위안이었다.
 
이렇게 되자 우젠핑은 더욱 의심이 들었다. 그 뒤에 감정결과 그가 자기와 회사의 이름으로 개설한 은행계좌 358개에는 모두 다른 사람이 우젠핑의 필체를 모방해 서명한 것이었다. 우젠핑은 의심의 중점을 점차 천치잉, 회사재무경리 수효버(苏晓波) 및 총출납 황위(黄宇) 등 사람들한테 돌리었으며 나중에 법원에 기소하였다. 하지만 사법기관의 조사와 심리 결과 최종 천치잉은 비국가 사업일군이 수뢰한 죄로 유기형 1년 4개월에 언도되었다. 그것인즉 천치잉이 회사 재무총감으로 있는 기간에 인민폐 8만위안을 수뢰했다는 죄명에 대한 판결이었다.  
 
이에 우젠핑의 불만은 컸다. 그는 이러한 판결결과는 최초이 기소목적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내가 수억위안이나 손실보았는데 천치잉의 혐의가 가장 컸다. 헌데 생뚱같은 8만위안이 수뢰죄라니?”
 
한편 천치잉의 남편 (원 중국건설은행 창사 텐신지행 지행장)은 2012년 1월 인터넷에 글을 발표하여 자기의 아내는 억울하며 우젠핑 회사의 “검은 구멍”은 자기의 아내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난 4월, 우젠핑은 인터넷에 글을 발표해 천치잉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녀가 은행의 내부인원과 짜고 들어 거액의 자금을 절취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친치잉의 남편 쉬헝량(徐恒亮)은 “나는 지금 은행행장이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나를 비방하여 상급에서 내려와 조사했지만 아무런 것도 조사해 내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우젠핑은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자기의 돈을 되찾아 오기 위하여 5년래 우젠핑은 매일 많은 시간을 내어 증거를 수집하고 은행의 재료, 지출단, 개설자료 등을 연구하군 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필체를 개변, 원래의 풍격에 비해 현재의 필체는 확연히 달랐다.
 
연구를 거듭하던 끝에 그는 더욱 복잡하고도 많은 문제를 절감, 이는 근근히 천치잉 등 회사 내부사람들의 부패일뿐만 아니라 은행 내부의 실직과도 관계되는 경제범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하면 2006년 1월 25일, 우젠핑이 개설한 어느한 계좌의 마지막 수가 1850이었는데 그 170만위안이 천치잉의 이름으로 된 마지막 수 3442 계좌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창사시 공안국 텐신분국 형사경찰지대에서는 친치잉의 그 마지막 수 3442번의 은행계좌를 놓고 조사하고 분석, 자금유출경과를 조사해본 결과 이 자금은 먼저 류진펑(刘金凤), 펑화잉(彭华英) 등 사람의 계좌로 넘어갔다가 다시 천치잉의 계좌로 넘어왔으며 나중이 이 자금이 다시 우젠핑의 계좌로 넘어왔다.
 
이 중 류진펑, 펑화잉 등은 모두 건설은행 텐신지행의 사업일군들이었다.
 
일찍 2013년 우젠핑은 매스컴을 찾아 자기를 도와 답안을 찾아줄 것을 희망하였다. 당시 “중국청년보” 후난기자소의 훙커페이(洪克非)는 중국 건설은행 창사시 텐신지행의 한 부행장을 찾았었다. 당시 그의 해석에 따르면 상술은 은행직원들은 일찍 2011년에 연고에 의해 이직했으며 지금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젠핑은 은행측의 이러한 해석을 접수할 수 없었다. 그가 자상히 해당 증거들을 통해 발견한데 의하면 그 170만위안이 그의 계좌로 다시 넘어오기까지 4개월이란 시일이 걸렸으며 계좌의 마지막수도 1750이 아닌 6306번이었다.
 
하다면 똑같은 우젠핑이란 이름으로 된 2개의 계좌가 돌고 돌면서 그의 필체를 모방하여 선후로 2차례에 거쳐 도합 150만위안이 빠져나갔던 것이었다.  
 
위탁을 받은 변호사 수창(舒畅)은 이들의 모든 행위가 곧바로 “돈세탁”으로 되는바 이는 법죄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측은 여전히 변호사의 주장을 부정하면서 이는 최근 업무수준이 발전하고 은행시스템이 부단히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발생하는 일로서 일종의 오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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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계좌에서 사라진 4억위안 행방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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