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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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부처의 차관이 장관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사방침에 맞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부처의 각종 행정시스템과 업무시스템을 잘 알고 있고 게다가 차관을 지냈으면 행정경험이 있고 업무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이상적인 인선이다. 물론 그 차관이 특별한 흠결이 있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는 변수(이럴 경우 그 부처의 고위관료 중에서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것)는 있겠으나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인사는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는 것이 모양새도 좋고 나라 발전에 이득이 된다. 진정한 좋은 인사는 본래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는 장관 인사를 이 원칙에 따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 원칙을 적용하는 사례가 쌀에 뉘만큼 드물다.


문재인 정부 나머지 1년을 책임질 개각이 5월 14일 마무리 되었다. 이번 인사에 있어서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사례가 어쩌다 시도되었다가 결국 불발되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얘기다. 부인의 ‘도자기 사건’이 문제가 되어 자진사퇴하는 바람에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의도 정가의 뒷이야기에 의하면 박준영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자신의 본의가 아니라고 한다. 박준영의 흠결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부 장관후보의 논문 표절, 국비가족여행, 위장전입 등등의 흠결이 더 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할당제 공약 때문에 남자인 박준영이 밀려났다는 후문이다. 남녀의 비례문제를 떠나 결과적으로 해당부처의 전문가가 장관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또 교수인 선비가 장관에 오르는 현인정치가 실시된 셈이다.


신임 금융감독원장 후보군으로 학계 출신 인물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기존 금감원장 후보군으로 올랐던 관료 출신, 내부 인사 외에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 물망에 오르며 업계 안팎에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선비 등용 인사의 전형(典型)이다.


연구원, 교수를 하다가 그 분야의 이론적인 전문성이 강해 학회 부회장,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선비에게 갑자기 최고 행정직인 장관을 맡게 하는 것은 머슴에게 갑자기 비단옷을 입히는 것과 같이 전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런 일이며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여겨왔으니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정상화로 되어온 전형(典型)적인 비극이다.


교수나 변호사가 고위급에 직행하는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은 따지고 보면 본질과 형식의 문제이다. 행정력이 있든지 말든지, 그 분야의 실천 경험이 있든지 말든지 겉 무늬만인 형식만 갖추면 된다. 진정 나라 발전을 위하는 본질을 추구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인사방침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개각을 지켜보노라니『한비자에』에 있는 두 고사가 떠올랐다.


옛날 진백(秦伯)이 자신의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딸의 옷차림새는 진나라에 가서 꾸미도록 하고 몸종 칠십 명을 하려한 옷을 입혀 따라가게 했다. 진나라에 도착하자 진나라 사람들이 그 몸종만을 아끼고 공주는 천대했다. 이것은 몸종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딸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초나라 사람으로 정나라에서 진주를 파는 자가 있었는데 목란(木蘭)으로 나무 상자를 만들고 계수나무와 초(椒)로 향기를 냈으며 주옥을 달고 붉은 보석으로 장식했고 비취 깃을 달았다. 그러자 정나라 사람은 상자만 사고 그 진주는 돌려보냈다.


한비는 이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상자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진주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주변은 모두 교묘한 말이거나 장식적인 말이다. 군주는 그 꾸민 면만을 보고 실용적인 면은 잊고 있다. 만일 말을 교묘하게 한다면 사람들이 그 꾸민 면만을 마음에 담고 실질적인 면은 잊을까 두렵다. 이것은 꾸밈으로 실용적인 면을 해치는 것이며 초나라 사람이 진주를 팔려고 한 것이나 진백이 딸을 시집보낸 것과 같은 일이다.”


대한민국 선비들은 고위급에 직행하는 벼슬 외에도 사회 전반을 통틀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 한나라 때 한 무제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이후로 유학자인 선비들이 여론을 장악해 온 전통이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는 사라진데 비해 한국은 유교일변도인 조선조 500백년을 거쳐 오늘까지도 선비들의 왕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기관은 주로 신문과 방송이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신문은 예전 같지 않게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데 비해 방송은 점점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은 이유이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상파 방송이든 종편방송이든 평일에는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뉴스를 송출한다. 이 중에서 저녁 황금시간대인 8뉴스와 9뉴스가 뉴스 중의 메인이다. 한국에 이주해서 처음 몇 년 동안 한국뉴스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많은 분야의 뉴스를 비롯해 민생 분야까지 고르게 진행하여 다양성이 풍부한 재미도 있지만 특히 찬양일색 뉴스만을 보다가 부정적인 뉴스가 비중이 더 많은 뉴스를 접하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얼굴인 대표방송 메인 뉴스인 9뉴스가 심지어 오토바이 안장 밑에 벌이 둥지를 튼 일까지 뉴스로 취급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먹은 적이 있다. 만약 중국에서 이런 일까지 뉴스로 취급한다면 하루 뉴스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도 모자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듯 한국뉴스를 재미있게 보다가 어느 시점에 맛을 잃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사소한 가령 살인사건과 뉴스를 매일 여러 차례 한두 동안 너무 지루하게 방송하니 신물이 나고 지겨워서 뉴스에서 눈을 떼기 시작했던 것 같다. 특히 조국사태와 윤석열사태는 일 년 넘게 매일 수차례씩 지속적으로 뉴스로 다루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지겹고 지치게 만드는 뉴스는 이른바 뉴스분석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 지상파방송과 종편방송은 교수, 변호사, 연예인 등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의 세상이다. 시청자들이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 그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들다보니 연예인의 대거 출연은 이해할 만한데 교수와 변호사의 대거 출연은 어쩐지 시청자들의 눈꼴을 시게 만든다. 특히 종편방송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시간까지 하루 종일 뉴스와이드, 뉴스파이터, 돌직구쇼, 신통방통, 정치부회의 등 패널들을 출연시켜 뉴스분석 프로그램이 엄청 많다. 이 모든 프로그램이 다루는 뉴스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게 거기서 그것이다. 패널들도 이 방송국 저 방송국에 요일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쳇바퀴 돌듯 빙빙 돌아다닌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들의 패널들이 절대다수가 교수와 변호사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패널, 예하면 전직 국회의원, 가끔 행정직에 있었던 전직 고위공무원들이 가끔 출연하고 있고 박사출신 연구원들도 출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패널은 선비중심으로 채워져 있다.


이론만 강하고 실전경험과 현장경험이 전무한 선비들이 뉴스분석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의 얘기를 하는듯한 웃기는 일들이 많다. 여의도 00연구소 00박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방송 저 방송, 시간대에 따라 여기 저기 출연하는데 하는 발언을 듣노라면 이 분은 마치 진공 속에서 사는 인간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 분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거짓말을 한 것인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일차적으로 하는 말이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증거가 하나 둘 밝혀지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범죄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그때서야 ‘신중치 못했다.’는 말로 한 발 크게 물러선다. 어떤 거물급 정치인은 ‘만약 사실이라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지하철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만천하에 하늘에 맹세하듯 결백을 주장하다가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듯 대한민국에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김정은 국방위원장에게 십계명을 들이대는 언행을 너무 유치해서 차마 듣기조차 보기조차 거북할 정도다.


학계는 학계의 생리가 있듯이 행정은 행정의 생리가 있다. 어쩌면 행정의 생리가 학계의 생리보다 더 복잡하고 추접스럽기까지 하다. 학계는 행정에 비해 보편적으로 깨끗하고 신성한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청정지역’에서 살아온 학자가 갑자기 흙탕물로 비유되는 고위행정직에 오르면 맡은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 도리로 뉴스분석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정부의 행정비판에 열을 올리는 선비들은 오히려 사회를 혼란시키는 작용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자들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옛 서적들만 읊어대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이는 시대의 치세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이나 생각만으로는 인간사의 재난을 피하기에 부족한데도 함부로 통치술을 익힌 인사들을 헐뜯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은 위험해질 것이며 그들의 계획을 사용하는 자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가장 심한 재앙인 것이다. 그들은 통치술에 정통한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론과 유세에 뛰어나다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이 명분은 같으나 실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문을 추종하는 자와 통치술을 익힌 인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개미구릉을 큰 언덕에 비교하는 것과 같이 차이가 대단히 크다.”


한비자가 한 말이다.


선비들이 판치는 선비의 왕국, 이것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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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선비들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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