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 리성욱 (중국조선족대모임 공모작품)

한국유람길에 오른 우리 부부가 인천항 제 1국제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바로  4월 1일 오전 10 시였다. 아침부터 재수 좋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아시아에서도 으뜸간다는 인천대교가 우리의 머리위를 가로 타고 멀리 하늘과 바다사이에 머리를 파묻어 끝이 없었다. 인천항 터미널 바로 남쪽 문앞에서 우리는 24호선 공공버스를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거기서 또 다시 지하전철 1호선을 갈아 타고 부천역까지 간후 곧바로 부천남부지역에서 월세를 맡고 사는 나의 여동생네 집으로 찾아갔다. 이미 출근했는지 그들은 집에 없었다. 우리는 나의 여동생이 사전에 전화로 알려준 곳을 뒤져 열쇠를 찾은후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우리는 짐들을 대충 정리해 놓고는 이내 꿈나라로 들어갔다. 연길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2박3일,기차와 배를 엇갈아 타고 오느라고 심신 모두가 피로로 꽉 찼기때문이었다. 

그 이튿날 우리는 여러가지 일 보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에서 대통로로 나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란 온통 벽에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간판과 광고판들뿐이였다.거기서 이상하도록 특이한게 광고판 내용보다도 간판 내용들이였다.“엉터리 생고기” “장어랑 아나고 바람 났네—해물 칼국수,아나고 전문집” “씽씽 노래방” “담쟁이—추억의 포차, 호프,소주,막걸리”등등 별의별 내용들이 다 있었다. 이라고 씌여있는 커다란 이마트(E-Mart)앞 길 남쪽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 우리는 예정대로 부천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신길역까지 간후 다시 5호선 전철을 환승한 후 오목교역까지 가서 내렸다. 전철 출구를 나와 다시 서쪽 방향으로 약 500메터가량 걸어 가니 길 왼쪽켠에 에스오일(S-Oil)이란 글이 쓰여 있는 주유소가 보이였다. 바로 그 주유소 옆에 있는 5층 건물벽에 란 커다란 간판이 걸려져 있었다.건물 2층에 바로 행정사 사무실이 있었는데 중국조선족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오목교에 있는 “출입경관리소(본관)”은 아니였다. 

우리가 행정사를 찾은 목적은 H-2비자를 받고 3년간 한국을 드나들던 아내의 재입국 신분증을 새것으로 다시 발급받으려는 목적이였다. 헌데 중국인 신분증을 중국에 있는 집에 두고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훗날 팩스로 부쳐 온 다음 다시 신청히기로 하고 거기서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는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다시 전철을 타고 부천에 온후 SK휴대폰 서비스사에 찾아가서 아내가 지난번 출국시 정지시켜 놓았던 휴대폰을 다시 열고는 곧바로 맞은편에 있는 “하나투어려행사”를 찾아 가서 제주도 관광 신청을 했다. 2박 3일 관광비용이 두사람 합해 75만원이 나왔다. 

우리는 이미 약속한 친구를 만나러 서울 동대문시장으로 갔다. 높다란 빌딩이였는 데1,2층 모두가 도매시장이였다.실로 그곳은 말이 시장이지 실상은 엄청난 규모의 물류집산지였다.그 넓고도 높은 건물안엔 많은 원단들과 의류 부품들로 꽉 차 있었고 도처에 사람들로 붐비였다.특히 인상깊은 것은 시장 안에서 여기저기로 짐을 배달하는 일꾼들이 보였는데 그들이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사용했던 지게를 메고 짐들을 운반하고 있었다.가까이서 지게를 보니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반들반들 빛까지 났다. 동대문시장밖 대통로 위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란 역시 지게 위에 숱한 원단을 싣고 고속으로 달리는 오토바이들이였다.어쩌면 현대화 운수공구에 옛날 지게를 장착해 사용한단 말인가? 사람의 등에나 작은 오토바이 뒤에 좀 더 많은 짐을 싣고 좁은 길을 빨리 오가자면 지금의 이 방법이 최선인듯 싶었다.중국에서도 짐을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많이 보았지만 모두 광주리 같은 것들이 아니면 넓은 널판자 따위들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였다.효율적으로 볼 때 지게와는 비교도 안된다. 비록 중요한 대발명도 아니고 조금만 머리를 굴러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같지만 이러한 아이디어가 하나 둘 모이면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동대문시장 동쪽에 우뚝 서 있는 옛 성문앞에서 기 념사진 몇장 찍고 동대문시장 북쪽 길옆 지하전철 4호입구로 갔다.거기엔 한자로 된 간판들이 건물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 ,,,,등등 한국속 연길이 따로 없었다. 연변 사투리 쓰는 조선족 또한 많이 보였다. 연길에 있을 땐 중국조선족들이 그냥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막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요즘들어 이삼십대의 젊은 조선족 고급인재들이 유명회사에 입사하고 있다는 등의 뉴스를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등 뉴스도 가끔 들은 적은 있었지만 영업을 하는 조선족들도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로 몰랐다.우리 부부를 포함해 일곱 일행은 친구의 초대로 그 곳에 있는 에 들어갔다.그 뀀점 사장님도 역시 중국 연길 태생으로 성이 박씨였다.나의 친구와 절친한 사이라 우리와 한상에 앉아 술잔을 나눴다.박사장님은 뀀점에서는 “참이슬”과 맥주 “카스”등 한국상품은 물론 조선족을 즐겨찾는 여러 종류의 중국술도 수입해 팔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록 중국에 있을 때 자주 먹어보던 음식들이였지만 서울에서 연길 양고기뀀 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분이 좋았다.나중에 박사장님은 우리가 중국에서 한국관광을 왔다는 것을 알고 잘 놀고 가라며 근처에 있는 노래방까지 안배했다. 

저녁 늦게야 친구들과 헤여진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빔밥집에 들어 가 무우깍두기에 콩나물비빔밥을 시켜먹었다. 여기 콩나물비빔밥은 참 맛이 좋았다. 한국요리사의 작식 기술이 뛰어나 그런지 아니면 . 식사후 우리는 운동도 할겸 도보로 청계천으로 갔다. 밤이 깊었지만 청계천은 등불이 환해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팔짱을 낀 젊은 남여 모습도 심심찮게 띄였다.청계천은 물이 하도 맑아 어두운 밤에도 물속에서 노니는 고기떼들을 볼 수 있었다. 물위엔 물오리인지 원앙새인지 쌍쌍이 짝을 맞춰 헤엄치고 있었다..하늘에 정말로 칠선녀가 있다면 그들은 꼭 이렇게 멋진 곳에 내려와 미역을 감으면서 신나게 놀았을 것이다.참으로 청계천의 밤은 황홀했다.우리는 그날 저녁 청계천에서 많은 사진을 찍으며 즐겼다. 

늦은 밤 우리는 전철을 타고 부천으로 돌아와 부천남부 자유시장내에 위치한 가계를 찾아갔다.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도 재입국 신분증 재발급 신청을 대리해주고 있단다. 때는 이미 밤12시가 넘었지만 아직도 시장안은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가게 사장님이 알려준대로 나의 안해 재 입국신분증 신청에 필요한 증명사진 찍으러 지하통로로 갔다. 자동 사진기가 있었다. 돈만 내면 선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였다. 잠간 돌아 다니면서 찾아 보니 지하통로 한쪽 옆에 예쁜 꽃천에 둘러싸인 사진기계가 보이였다. 안해는 꽃천 문을 열고 들어가 지정된 의자에 앉았다.그러자 스피카에서 부드러운 말투로 사진찍는 요령을 알려준다.가격표에 정해진대로 동전을 투입하자 무인 자동사진기계가 작동을 시작했다. 

눈은 어느 쪽을 바라 보라, 턱은 어느 쪽으로 살짝 돌리라,사진을 찍으니 움직이지 말라,“찰칵!” 샤타를 누르는 소리가 나자 화면에 방금 찍은 사진 모습이 나타나고 그것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 본다. 그렇다고 하자 몇촌짜리 사진을 찍으려는가고 또 물었다. 우리가 2촌짜리 사진이라고 하자 화면의 어느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한다.우리가 그 버튼을 누르니2분도 안지나 사진 3장이 사진기계속에서 스르르 밀려 나왔다. 티끌만한 흠집도 없는 표준사진이였다.참으로 신기했다. 예상밖에 사진을 쉽게 찍고 여동생네 집으로 다시 가는중 한 아줌마가 우리손에 전단 한장을 쥐여 주었다. 우리는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손에 돌돌 말아든채로 집에 들어갔다. 몸을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워 그 전단지를 펼쳐 보았다. 에서 특별행사를 한다는 전단지였다. 

“하얀 달빛에 흐드러진 벚꽃향에 흠뻑 젖어 들고 섬진강 물길따라 사랑과 추억이 영글어 가는 곳!” “쌍계사 벚꽃 축제----섬진강 화개 장터 산수유축제로 초대” 행사특가1인당 1만원이고 “관광코스는 아침(차내식) —섬진 강변---중식 (불고기전골) ---산수유축제---쌍계사 십리벚꽃-- -화개 장터—저녁(찰밥)—귀가”라는 것이였다.그 전단 뒷면에도 광고가 있었는데 거기엔 “거가대교 해저터널로 초대” 특별행사가격은 1인당 1.5만원이라고 씌여 있었다.아무리 적게 추산해도 하루 관광요금이 일인당 3~4만원이 들 것 같은데 이렇게 적은 돈으로 관광을 할 수 있다는게 참 마음에 끌렸다.논의 끝에 우리는 관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매부에게 이 일을 말하였다.그는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며 전단지에 밝힌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문의한다.답변은 싼 값으로 초대하는 것은 특별행사 특가이고 다른 뜻은 없다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확실하다고 판단하고는 밥도 먹지 않고 부천남부역 새천년 웨딩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그 버스에 이미 여럿 사람이 앉아 있었다.그들도 전단지를 보고 관광길에 나섰다는 것이었다.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야릇한 감이 났다. 부천,서울지역에서 부산까 지 먼 길인데 단돈 만원으로 우리를 밥까지 먹여주면서 관광시켜 준다니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뭐가 뭔지 딱히 몰랐다. 

버스에서 우린 김밥으로 아침을 에때웠다. 가는 길에서 여행사 과장이라고 자칭하는 한 곽씨성 여자가 하는 말이 원래 가기로 했던 거가대교대신 쌍계사로 간다고 하였다.그러자 몇 몇 사람이 왜서 거가대교로 가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그들은 이미 쌍계사에 갔다왔기에 거가대교로 가겠다는 것이였다.이에 그 여자는 관광 손님이 원래 적은 데다가 두곳으로 나뉘여 간다면 양쪽 차가 모두 사람 몇명 밖에 싣지 못해 여행사에서 감당해야 할 손해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그 여자의 말이 일리가 있었는지 더 이상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버스가 부산행 고속도로 휴계소에 도착하였다. 운전기사와 그 여자가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갔다오더니 거가대교로 갈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다른 버스를 환승하라고 알려 주었다. 7,8명이 내리고 나니 우리가 앉은 45명승 최신형 관광버스엔 모두 28명밖에 남지 않았다. 대부분 60,70세 이상의 노인들이였고 그 이하는 매우 보기 힘들었다. 

버스는 우리를 싣고 남으로 남으로 계속 질주하였다. 경기도 수원시를 스쳐지나 충청남도 천안시로,거기서 또 충청북도 청주시를 스쳐지나 청원시와 대전광역시로,그 다음 또 다시 충청남도지역에 들어와 금산시에 도착하였다. 

이미 점심때가 다 되였다.버스는 산길을 타고 어느 시골마을로 들어가 섰다..모두들 길에서 지치고 갈증이 나서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화장실로 달려 갔고 마실 물을 찾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몇 분후 그 여자가 모두들 어서 모이라고 불러 놓고는 여기가 금산 시의 특산이자 명작인 흑홍삼(黑红参)기지의 판매처라고 알려 주면서 이제 곧 흑홍 삼연구소 박사님의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우리가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자 한 젊은 남자가 흑홍삼 액을 시식하라며 우리들 주위로 분주히 돌아다녔다. 삼냄새가 세게 났다. 박사님은 강의를 곧 시작하였다. 

«……흑홍삼이란 인삼과 홍삼처럼 고혈압환자가 복용 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저혈압을 올려주고 고혈압을 낮춰주고 면역력을 조절해 주는 특효가 있다»는 것이였다. 박사님의 강의 내용을 들어보면 흑홍삼은 확실히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본 가장 좋은 약이었다.박사님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공장장님이 들어오더니 흑홍삼을 사라고 홍보를 시작한다.현재 시중가격은 얼마인데 직매장 가격은 시작가격보다 매우 싸다면서 많이 사면 작은 포장의 흑홍삼을 하나 더 증송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어머니,얼마나 값 싸세요, 어서 사세요,몸에 대단이 좋은 것입니다!»허나 너무나 엄청난 가격이였다.1차 구매량 금액은 16 만원부터 23만원 좌우였다.모두들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이때 수명의 여자들이 욱 몰려 들어와 손님 한명도 빼놓지 않고 흑홍삼을 사라고 선전했고 현금없어도 신용카드만 있으면 열두달 할부도 가능하다고 마구 들이댔다.나는 그만 당황해서 가지고 온 돈이 적어서,중국에서 왔기에 신용카드가 없다는 말로 찰거마리처럼 달라붙는 그 여자들을 물리쳤다.. 그래도 어르신 몇분이 흑홍삼을 좀 샀기 때문에 우리는 문밖에 나올 수 있었다. 밖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찜질방에서 금방 나온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땀방울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우리가 그다음 도착한 곳은 이였다. 점심 시간이여서 문을 닫았기에 또 다시 차를 돌려 다른 마을에 있는 로 갔다. 거기서 모귀현 박사님이 우리에게 끼토산에 대하여 강의를 해주셨다.

«끼토산이란 끼틴과 끼토를 합하여 만들어 낸다.끼틴이란 게,새우등 해산물의 껍데기에서 채집하여 만들어 내는데 끼틴과 끼토를 합하여 제약하면 끼토산 약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였다.또 «이 끼토산은 사람의 몸의 피를 맑게 해 주고 콜레스트롤을 낮게 해 주어 동맥 경화를 예방하고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박사님의 강의가 끝나자 역시 어디선가 많은 여자들이 몰려와 약을 사 가라고 한바탕 성화를 부렸다.연달아 두번째로 당했지만 그래도 면역력이 생겼는지 모두들 태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은 좀 늦었지만 금산구역의 에서 불고기 전골에 밥을 간단히 먹었다.식사후 우리가 식당을 나올 때 또 관광버스 두대가 들어 서더니 숱한 사람들이 식사하러 들어오는 것이였다.어찌된 영문인지 모두들 말 한마디도 없었고 모두 검은 연기에 그을린 것처럼 얼굴색이 어두웠다. 

버스에 올라 탄 우리는 이제는 쌍계사로 곧바로 가겠지하고 무거운 짐을 벗은듯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누군가 키드득 키드득하면서 웃음 소리를 내였다.그 소리에 모두들 서로 머리를 돌려 살펴 보면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버스는 부르릉 거리면서 고속을 내여 달리는 것 같더니 삑하고 소리를 내면서 또 정거를 하는 것이였다. 차에서 내리고 보니 아까 점심에 왔다갔던 이였다.곽과장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서 모두들 빨리 직매장 강의실로 들어 가라고 재촉했다.그제야 여행사의 진의를 깨달은 사람들은 직매장에 들어가기 싫어 너도 나도 화장실로 향했다.하지만 곽씨성 여자는 인내심있게 한명 한명 설득해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강의실에 모두 끌어들였다.그러면서 하는 말이”손님들이 동작이 늦으면 그만큼 관광할 시간이 적어진다”고 했다. 

강의실은 살림집처럼 구들위에 바닥재를 쭉 펴 놓아서 그 우에 풍덩 들어 앉으면 됐다. 우리를 기쁘게 맞아준 사람은 키가 9척이나 되고 몸이 우람져 씨름군같이 생긴 사나이였는데 커다란 검정테 안경에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가진 유머감이 넘치는 사람이였다.그는 우리를 보자 환한 얼굴에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또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하고 소리쳤다.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러자 «아이쿠 어머니!어제 밤에 싸웠어요?»그래도 아무 대꾸도 없었다. 

«아참,깜박 잊었구만!어머니 이재 금방 흑홍삼판매장과 삼성제약 끼토산연구소로 갔다 왔지요?그렇지요?……당했구나,당했어!ㅉㅉㅉ……억수로 당했구나!……거기서 많 이 당했지요?» 그러자 «예!»하고 모두들 대답하는 것이였다. 

«괜찮아,괜찮아,여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여기는 저의 아버지가 옛날 부터 사슴을 기르다가 그 농장을 저에게 넘겨 준 것이여서 여기서는 그저 편하게 저 의 강의만 들으면 돼요»라고 말했다.그제야 모두들 안심하고 희희닥닥거리면서 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그는 손에 백센치가 거의 되는 녹용을 들고 강의했다. 

«……록용의 제일 끝머리는 분골이라고 하는데 사람의 머리에 좋고 치매를 예 방하고 정신을 맑게 해주며 분골에서 아래로 내려 가면서 세개 부분으로 나뉘는데 상대,중대,하대라고 한다.상대는 중심 부분이 검고 겉 부분이 붉으며 사람의 욕 (欲)을 올려 주는 작용을 한다.중대는 사람의 피를 만들어 주고 하대는 뼈를 돕는 다.……» 

강의 도중 그는 예쁜 아가씨 몇명을 불러들이더니 여러분들께 자기네가 직접 만들었다는 록용술을 대접하라는 것이였다. 공짜여서 모두들 작은 주전자에 가득 담은 술을 다 마시고 좀 더 달라고 해서 더 마셨다. 술이 배속에 들어가서 좀 쨍하게 될까말까 할 때 아가씨들이 허리춤에서 기록부를 꺼내 들고 손님과 일대일로 코를 딱 맞대고 앉아서 록용을 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하였다.그제야 또 걸렸구나 하며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몸으로 문을 막아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우리 부부는 다행이도 강의가운데서 튀어나온 “금산록용은 한국의 보물이고 명품이기에 수출을 국가적으로 엄금하고 있다”는 대목을 아가씨들한테 다시 들려주면서 중국신분증을 꺼내 흔들어보였기에 남먼저 문밖을 나올 수가 있었다. 

그곳을 떠나 쌍계사로 가는 길에서 곽과장은 이제는 직매장 같은 곳으로 가지 않는다면서 오늘 약 산 사람이 셋밖에 안돼 여향사 손실이 매우 크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윽고 우리한테 한봉지씩은 꼭 사야 된다고 애원했다.사탕 봉지를 받고 상표에 붙은 가격을 보니 3천원정도밖에 안됐다. 우리 부부는 처음 이런 일을 당해 당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미안한 감도 들어 집에 돌아갈 때 선물로 장만할겸 2만원을 주고 네봉지를 샀다. 

버스는 마침내 구레시에 들어섰다.화개장터로 가는 길에서 곽과장이 또 입을 열 었다. 오늘 여러 분들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왔고 또 안전하게 차를 몰고 돌아가야 하기에 운전기사와 자기에게 수고비로 5천원씩 더 내라는 것이다.우리는 그들이 달라는대로 또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섬진강변을 따라 앞으로 나가면서 곽과장은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여러가지 우스개 소리도 해 보았고 섬진강 쪽배나루터 전설도 들려 주었다. 

화개장터에 도착하였다.이미 해가 서산 마루에 걸려 인차 어둠이 깃들 것만 같았 다.우리는 화개장터를 대충 돌아 보았다. 장터 어구에서는 젊은 각설이 둘이서 흔들거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곳에는 중년각설이 부부가 다음 무대를 준비하느라 분망하게 보내고 있었다.조용남이 노래를 불러 소문이 났다는 는 먹을 것이 없는 소문 난 잔치와도 같았다.이름뿐이지 아주 자그마한 시장이였다. 물건 이란 주로 약초가 많았고 작은 음식점 주인들은 서로 제집에 들어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우리가 다시 버스에 올라 앉으니 곽과장은 섬진강건너 쌍계사 십리 벚꽃축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였다.리유는 지금 그쪽에 차가 많아서 길이 막혔다는 것이였다. 

«당신네들 이게 무슨 짓거리야? 이것은 유람이 아니고 사기다 사기!……어디 두고 보자,돌아가서 당신네를 고발할테다!” 

한60대 어르신이 격분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 분은 부인과 부인의 친구 셋이서 우리와 함께 관광길에 올랐던 것이다.그의 손은 노여움에 부르르 몹시 떨고 있었다.이에 곽과장은 운전기사와 뭐라고 상의하더니 다시 쌍계사로 간다고 알려주었다.전라도와 경산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위에 가로 놓인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스는 천천히 쌍계사쪽으로 떠났다.차가 한꺼번에 몰려 길이 막혔다던 길에는 자동차 한대도 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얼마 안지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아름드리 벚꽃나무에 하얀 벚꽃들이 활짝 핀 모습이 어슴프레 보였지만 날이 어두워 벚꽃구경을 별로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곽과장은 손님들에게 저녁식사로 대접할 찰밥을 준비했다면서 자기를 도와 손님들에게 저녁을 공급할 분이 있으면 나오라고 했다.겨우 아줌마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나의 안해도 자리에서 일어나 거들어 주었다.식사 후 모두들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곽과장이 조용히 나의 안해를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무엇인가 손에 살며시 쥐어주고 가는 것이였다.알고보니 흑홍삼 판매처에서 공장장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겠다던 홍삼세수비누 4개였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니 이미 밤 11시가 지났었다.몸을 씻고 오늘 하루의 여행길에서 쓴 돈을 계산해보니 모두 6만3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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