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화영
한국에서 운전하다 보면 반복해서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켜는 순간, 뒤차가 속도를 높인다. 비켜주기는커녕, 들어올 틈을 원천 차단한다. 마치 양보가 곧 패배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도로에서는 ‘내가 우선’이라는 판단이 너무 빠르게 작동한다. 사고가 나도 상대 책임이라고 계산이 서면, 굳이 양보할 이유가 없어진다. 충돌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대로 간다. 법을 잘 아는 것이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런 태도는 도로 위 긴장을 상시화한다. 작은 차선 변경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경적이 잦고, 분노가 쉽게 터진다. 이른바 ‘노로증’이라 불리는 운전 중 과민 반응도 낯설지 않다. 한국 도로가 유독 피곤한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과의 대비다.
중국의 도로는 혼잡하고 규칙이 느슨해 보인다. 난폭 운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차선 변경 상황에서는 한국보다 양보가 더 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뒤차가 속도를 줄여 주는 장면도 드물지 않다. “먼저 가라”는 신호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는 중국 운전자들이 더 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다. 오히려 규칙보다는 상황을 먼저 본다. 내가 조금 비켜주지 않으면 흐름이 막힌다는 걸 안다. 그래서 손해를 보더라도 길을 내준다. 이 양보는 미덕이라기보다, 도로를 굴러가게 만드는 최소한의 선택처럼 보인다.
반면 한국에서는 양보가 선택이 아니라 손해로 인식된다. ‘왜 내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상대를 함께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앞자리를 빼앗으려는 경쟁자로 본다. 규칙은 방패가 되고, 권리는 무기가 된다. 그 결과 도로는 더 빡빡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제도적으로 매우 선진적인 교통 체계를 갖춘 나라다. 우측 통행, 정교한 신호 체계, 엄격한 법 적용까지 갖췄다. 그런데 운전 문화만 놓고 보면 성숙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것과,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여전히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도로가 이상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한국 운전자들이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왜 방향지시등을 ‘양보 요청’이 아니라 ‘침입 신호’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언제부터 차선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게 됐을까.
운전 문화는 시험장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캠페인 문구로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조금 늦어질 걸 알면서도, 굳이 앞을 막지 않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선택이 반복되지 않는 한, 한국 도로의 긴장감은 계속될 것이다.
중국 운전자들이 더 착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도로에서는 혼자만 잘 가서는 결국 아무도 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한국 운전자들이 아직 덜 익숙한 건, 그 단순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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