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국면에서 유럽이 사실상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며 ‘관전자’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행동을 독자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전통적 동맹인 유럽은 사후 통보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 시각) “이란 문제에서 트럼프에게 무시당한 유럽 지도자들이 거의 관전자가 된 세계에 적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주요 도시를 잇달아 타격하는 동안 유럽은 전략 수립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전 주미대사 킴 대럭은 “트럼프가 유럽의 의견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우선(America First)’은 사실상 ‘미국 단독(America Alone)’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공습에는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에 대한 ‘정밀 제거’ 작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강제 연행하는 등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나 유엔 승인 없이 일방적 행동을 이어왔다. 2018년 첫 임기 당시 시리아 공습에서는 영국·프랑스와 공조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협력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럽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 저지와 미사일 능력 약화라는 목표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일부 지도자는 하메네이 사망 소식에 사실상 환영의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법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안보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복합적 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별 대응은 엇갈렸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자국 기지를 ‘방어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은 백악관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금은 동맹을 훈계할 때가 아니다”라며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 군사행동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스페인 국방부는 자국 기지가 국제법 틀 안에서만 운용돼야 한다고 강조했고, 미군이 스페인 내 일부 전력을 철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럽연합(EU)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안보위원회’를 소집해 상황 점검에 들어갔다. 한 EU 외교관은 “정상적이라면 미국과 대화를 진행했겠지만 지금은 그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다”며 “EU는 관전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무차별적이고 불균형적”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나 미·이스라엘의 선제 타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유럽이 대서양 동맹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NYT는 “유럽이 트럼프의 중동 군사 모험주의를 묵인할 경우 더 큰 전략적 부담을 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대 발리 나스르 교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을 정당화하면서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국제법 원칙을 강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란 사태는 단순한 중동 위기를 넘어, 전후 국제질서에서 유럽이 차지해 온 위상과 역할을 다시 시험하는 계기로 떠올랐다. ‘미국 단독’ 기조가 굳어지는 흐름 속에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어디까지 확보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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