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과 더불어 새롭게 인식되는 역사
■ 김철균
(전번기 계속)한국군은 기세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 때는 아버지네가 슬쩍 몸을 피한 뒤었다. 한국군은 아버지네를 포위했다고 여겼으나 진짜 포위망에 든 것은 한국군이었다. 새벽녘에 한국군이 원주 시가지에 모습을 드러내자 거센 공격을 받았다.
원주에서 일승을 거두었을 때 다른 인민군부대가 이미 서울을 공략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서울점령, 이는 단지 군사상의 영향뿐이 아닌 다른 정치 외교상 큰 영향이 미치었다. 서울함락으로 한국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인민군의 사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한편 서울점령은 또 다른 다른 의미도 있었다. 기실 서울점령은 중국에서 나간 아버지네 군단이 맡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더 빨리 또한 더 완벽하게 점령할 수도 있었다. 헌데 최고사령부는 그 임무를 항일빨치산 직계인 김책한테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의문스러운 것은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부대는 3일간 남진을 멈추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당시 조선 부수상 박헌영이 “서울만 점령하면 남조선 곳곳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될 것인즉 그들한테도 기회를 주자”고 제기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그 3일간 때문에 한국군과 미군은 시간을 벌었다. 즉 미군이 한국에 공수되어 경기도 오산에 방어진을 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중부전선의 아버지네 군단은 달랐다. 아버지네 7군단은 “닫는 말에 채찍질하든” 진군, 진군 또 진군을 거듭하면서 원주에서 단숨에 안동까지 쳐내려갔다. 그리고 안동전투에서 아버지네 2연대는 한국군한테 무리죽음을 주어 “근위연대”란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이어 서부전선의 인민군은 오산이란 곳에서 처음으로 스미스 대위가 인솔하는 미군과 접전, 침투, 교차적인 공격방식으로 단시간내에 미군진지를 격파했는데 접전결과 2차대전의 가장 큰 전승국 군대라는 미군도 별 것이 아니었단다.
한편 아버지네 군단은 맹진격으로 대구부근까지 쳐내려갔다. 헌데 아버지가 소속된 연대는 무의식중 한국군의 포위망에 들었다. 한국군은 우회전술로 무작정 진격만 하는 인민군의 등뒤에 나타났던 것이다.
“수송선이 길어진데다 우리가 무작정 진격만 했기에 보급부대가 미처 전투에 필요한 탄약과 약품 등을 공급해주지 못했으며 매일같이 가해지는 공습에 우리의 전력소모도 막대했다. 인민군은 전쟁개시 후 처음으로 되는 곤경에 빠졌다.”
당시의 전투는 자못 치렬했다고 한다. 식량과 탄약이 공급되지 않았기에 아버지네 연대는 거의 굶은 상태로 한국군과 숨박꼭질을 하면서 포위망을 돌파할 기회를 노렸다. 이 때에 와서 탄약이 없는 중무기는 오히려 거치장스럽기만 했다. 인민군은 그것을 몽땅 불살라버렸다.
한국군의 포위망은 점점 조여들기만 했다.
긴요한 관두, 인민군은 정찰끝에 한국군의 가장 약한 고리를 장악하고는 어느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남아있는 전력을 총 집중하여 그 약한 고리를 무찔렀다. 인민군이 결사적으로 달려드니 한국군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단다. 아무렴 중국의 드넓은 대지를 메주밟듯 주름잡으면서 장개석의 800만 대군을 때려잡았던 아버지네가 이런 포위를 돌파하는 것쯤은 예견했던 것보다 퍽 쉬웠던 모양이었다.
이는 인민군이 38선을 돌파한 이래 처음으로 있은 퇴각이었다고 한다.
“포위를 돌파해나오니 후방으로부터 신식무기들이 지급됐다.”
사병과 무기탄약을 보충받은 인민군은 그 길로 한국군과 미8군의 지키고 있는 낙동강 방어선을 향해 공격을 들이댔다. 당시 아버지네 연대의 주공격 목표는 한국군이 지키고 있는 영천방면의 모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 고지만 점령하면 대구는 물론 부산까지 곧바로 쳐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50년 8월 하순부터 9월 상순까지의 낙동강― 당시 반도 남반부의 한쪽모퉁이를 가로 지르는, 그닥 크지 않은 그 강은 그야말로 쌍방의 공방전으로 하여 그 푸르던 강물이 붉디붉은 피물로 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단다.
미8군과 한국군은 한사코 저항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이제 낙동강방어선만 내놓으면 대한민국정부가 그대로 부산앞바다에 침몰되니 말이다. 아울러 미공군은 10분 간격으로 한번씩 날아와 공습을 가하는 걸로 인민군을 화염속에 몰아넣었는가 하면 인민군보급선을 아예 차단해버렸다. 공습이 끝나면 또한 한국군이 밀물처럼 몰려들었고 손실은 쌍방이 모두 엄청났다는 것이 아버지의 분석이었다.
특히 이번 공습에 인민군 사상자가 많았다. 그들이 눈을 감으면서도 “우리한테 왜 비행기가 없냐?!”고 절규했다고한다.
인민군은 빠른 기동력과 침투의 방법으로 상대방 진지를 하나씩 공략하면서 반도 “토끼의 꼬리부분”의 마지막 3면 포위망을 점점 좁혀갔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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