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욕의 연출인가, 기억을 흔드는 질문인가
글|안대주
최근 중국에서 개봉한 고장(古裝) 역사 대작 드라마 《태평년》이 고대 항복 의식인 ‘견양례(牵羊礼)’를 파격적으로 영상화하면서 중국 온라인을 중심으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신체 노출과 굴욕을 암시하는 연출, 극단적인 참상 묘사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과도한 각색”이라는 비판과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게 한다”는 평가를 동시에 낳고 있다.

견양례는 본래 상·주(商周) 시기 중원 왕조에서 행해지던 항복 의식으로, 핵심 절차는 ‘육단견양(肉袒牵羊), 지모헌토(持茅献土)’였다. 상반신을 드러내고 양을 끌며 띠풀을 바쳐 토지와 권력의 귀속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엄숙한 성격을 띠었으며 남성 군주나 관료만 참여하는 정치적 의례였다.
실제로 『사기(史记)』에는 상나라 귀족 미자기가 주 무왕에게 항복할 당시 “상반신을 드러내고 얼굴을 묶은 채 왼손에 양을 끌고 오른손에 띠풀을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굴욕을 통한 처벌이 아니라 정권 이양을 상징하는 형식적 의전이었다.
논란이 되는 ‘여성의 나체, 양가죽을 두른 굴욕 의식’은 남송 이후, 특히 청대 위서로 평가되는 『정강패사(靖康稗史)』에서 과장·왜곡된 설정으로 등장한다. 이를 금나라 특유의 잔혹한 형벌처럼 묘사했지만, 정사인 『금사(金史)』에는 북송 휘종·흠종이 단지 ‘소복 차림으로 사묘를 참배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거란 멸망 당시에도 이 의식은 거행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가 해당 장면을 거란 정복 서사에 결합한 것은 명백히 사료와는 거리가 있는 예술적 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강한 반향을 일으킨 사실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극 중에서는 황혼의 고비 사막을 배경으로, 포로들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 양가죽을 두르고 목에 밧줄을 건 실루엣 장면이 등장한다. 직접적인 유혈 묘사는 절제했지만, 비극성과 허무함은 오히려 극대화됐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역사극이 애써 피해온 어두운 현실의 장막을 걷어냈다”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드라마 1회에 등장하는 난세 속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자식을 삶아 식량으로 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인 ‘태평년(太平年)’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 설정은, 태평성대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붕괴와 비참 위에 세워졌는지를 되묻는 장치로 읽힌다. 겉으로는 태평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 축적된 잔혹한 기억을 의도적으로 호출한 연출이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고증의 정확성에만 있지 않다. 의식의 세부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정강의 치욕’으로 대표되는 집단적 역사 기억은 여전히 중국 사회의 문화적 무의식에 깊게 각인돼 있다. 누리꾼들이 “나라가 약하면 백성이 욕을 당한다”는 말을 되새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굴욕의 기억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민족적 분발을 자극해온 거울이기도 했다. “정강의 치욕이 아직 씻기지 않았다”던 악비의 절규가 오늘날까지 반복 소환되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태평년》의 견양례는 실제 역사라기보다 기억의 압축이다. 그것이 불편하다면, 문제는 장면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과거를 기억해왔고, 어떤 기억을 외면해왔는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왜곡이라는 말로 이 장면을 덮기 전에, 이 연출이 왜 지금 이토록 강하게 작동하는지 묻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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