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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기행 ⑨] 별을 헤던 청년의 고향… 용정에 살아 있는 윤동주의 시와 민족의 혼

  • 허훈 기자
  • 입력 2026.08.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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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위치한 윤동주 생가 입구. 윤동주 시인의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는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적이다. /사진=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화룡 봉오동에서 독립군의 함성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차를 달리자 풍경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첩첩산중을 벗어나 넓은 들판과 해란강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조선어와 중국어가 함께 적힌 간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 용정(龙井). 총성이 울렸던 봉오동과 달리, 이곳은 한 청년이 시를 통해 민족의 아픔과 양심을 노래했던 도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윤동주(1917~1945)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용정이라는 지명은 마을 한가운데 있던 샘에서 유래했다. 예부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우물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용의 우물', 즉 용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세기 말부터 수많은 조선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을 일구었고, 학교와 교회, 시장이 들어서면서 연변에서 가장 활발한 민족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지금도 거리에서는 조선어와 중국어가 함께 들리고, 조선족 음식점과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이 도시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용정 여행의 첫걸음은 명동촌(明东村)이다. 연변을 대표하는 조선족 마을인 이곳은 단순한 농촌마을이 아니라 근대 민족교육의 요람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교육만이 민족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그 중심에는 명동학교가 있었다. 명동학교는 일제강점기 연변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학교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가르치며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윤동주 역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과 신앙, 민족정신을 배우고 시인의 꿈을 키웠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윤동주 생가는 놀랄 만큼 소박하다. 흙담과 초가지붕, 작은 마루와 방은 당시 조선인 농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시인의 삶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한다. 생가를 둘러보다 보면 이 작은 방에서 한 청년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과 조국의 미래를 고민했을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윤동주는 1917년 이곳에서 태어나 명동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일본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항일 민족운동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고,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스물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시는 오늘까지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의 대표작 '서시'는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한국 현대시 가운데 하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어지는 구절,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짧은 두 문장이지만, 나라를 잃은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한 청년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윤동주는 거창한 구호 대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를 남겼고, 그 진실한 언어는 세월을 넘어 오늘도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다.


용정은 윤동주만의 도시가 아니다. 독립운동가와 교육자들이 모여 민족교육을 펼쳤고,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항일정신을 키워 나간 연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해란강은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강변 산책길과 오래된 조선족 마을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평온함을 전한다. 최근에는 윤동주 생가와 명동학교, 역사문화유적을 연결한 탐방코스가 조성되면서 한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문학 애호가와 역사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봉오동에서 독립군의 함성을 들었다면, 용정에서는 한 시인의 조용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총과 칼로 나라를 지킨 사람들과 시와 양심으로 시대를 견뎌낸 사람이 모두 이 땅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연변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윤동주는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시는 한 세기가 지난 오늘도 국경을 넘어 읽히고 있다. 용정의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가 '별 헤는 밤'에서 바라보았던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떠 있고, 시인이 꿈꾸었던 자유와 양심 또한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다. 연변 기행은 이 작은 도시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다음 연변 기행 마지막 ⑩편에서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한다. 천지를 품은 장엄한 자연과 연변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백두산의 사계절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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