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 리운학


사람이 살면 천년을 사냐 만년을 사냐?
내가 무슨 죄를 져서 병든 안해를 외국으로 돈벌이를 보내며 이 눈물을 흘려야 하냐?

안해의 트렁크를 들고 터벅터벅 걷는데 아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전송하고 쌍둥이 손자, 손녀는 우두커니 서서 웃지도 울지도 않고 손도 젓지 않았다.

안해는 연길 역으로 달리는 택시에서 나의 손을 꼬옥 잡고 차창너머로 해란강만 굽어 보았다.
안해의 고운 얼굴에는 이제 가면 살아서 만날지...하는 기색이 너무도 력력했다.
남들은 비행기 편으로 가지만 안해는 돈 때문에 기어코 기차를 선택했다.

안해와 나는 암병환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위층 침대에 올라갔다.
둘은 건너지 못할 공간이 생겨 서로 팔을 펴 손에 손잡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과 눈으로 말했다.
끊을줄 모르고 흘러 내리는 그 눈물...
날이 새면 갈라지는데 왜서 이 밤은 빨리도 깊어가냐?
어느 시각에 잠이 들었던지 눈을 뜨고 보니 차창밖은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안해도 차창 밖을 보다 말고 멀거니 나를 건너다 본다.

돌아 누으며 눈물을 씻는 안해, 나는 슬그머니 손을 뻗쳐 안해의 잔등을 다독거렸다.
기차는 고동을 길게 울리며 구태역을 지났다.
거위털같은 눈은 새벽하늘을 꽉 덮고 억수로 쏟아졌다.
(저 눈이 돈이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면 세상에 좋은 병원은 다 갈수 있겠는데...)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떠나가는 안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나의 마음가짐 이였다.

장춘 역에 내리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진눈까비가 내 발목을 적셨다.
트렁크를 든 나는 안해를 마주보기 겁나서 그저 수걱수걱 걸었다. 구두는 새것인데 웬 영문인지 물이 새여 양말은 물참봉이였다.
식당에 들어 서면서 이제 갈라지면 생 리별일지 모르니 맛있는 음식이나 먹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안해는 먹을 념 없이 머리도 들지 못하고 밥을 뜨는 나만 보고 있었다.

나의 가숨 속에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침 밥은 먹었는지 말았는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택시에 앉아 공항으로 향했다.
나의 가슴은 자꾸 바질바질 타 들기만 하고 입안은 말라 말소리도 새여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안절부절이였다.
시계만 쳐다보는 나의 마음을 그 누구인들 알소냐? 이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부부는 알고있다.
3분전 라는 통지가 형광판에 나타났다.
어쩌나 싶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나는 너무도 좋아서 안해의 트렁크를 들고 먼저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물보라를 마구 날리며 도심으로 향해 달렸다.
나는 문득 마음이 무거워났다.
남은 돈이 얼마 안돼 근심이 태산같았다.
안해와 함께 보낼 밤, 돈 때문에 싸구려 려관을 찾느라 이곳 저곳 뛰여 다녀서야 동북 석탄관리국 초대소(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여관) 방값이 하루밤에 37원이여서 그곳에 행장을 풀수 있었다.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간다.
나와 안해는 제 침대에 누워 서로 멀거니 보기만 했다.

나는 이불을 제끼고 안해의 침대에 올랐다.
안해는 바라던 듯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안해는 어린 애를 홀로 집에 남겨두고 장보러 가는 어머니마냥 나의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나는 안해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안해는 내 병을 치료할 돈을 벌고저 이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목이 메여 말이 나가지 않고 가슴에서 주먹같은 것이 자꾸 타래쳤다.

안해는 나의 목을 더구나 꼭 끌어 안는다.

아침부터 공항 대기실은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벽 시계의 시침은 쉬임없이 돌더니 8시 30분을 가리켰다.

나는 제정신없이 밖으로 내 뛰였다.
공항 주위를 아무리 돌아도 랭면집은 없었다. 나는 다짜고짜 택시를 잡았다.
이 랭면만은 꼭 사줘야 한다.
내 머리에는 군 복무시절에 안해에게 랭면 빚을 졌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까지 랭면 빚을 진다면 한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가슴은 기름가마처럼 타 들었다.
내가 랭면을 사 들고 대기실에 들어서니 국내선을 기다리는 려객밖에 없었다.
황황히 안해만 찾았다.
안전검사 입구는 려객들로 웅성거렸다.
정신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서니 안해가 안전검사를 받으며 자꾸 밖을 살핀다.

마침내 나를 알아본 안해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경찰이 안해의 팔을 잡아 끌었다. 빨리 나가란다.
안해는 어쩔수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풀썩 물앉는다.
경찰의 부추김을 받는 안해가 눈굽을 찍는다. 나도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비닐 주머니는 어느새 찢어졌는지 육수가 줄줄 흘러 나왔다.
앙칼진 소리에 머리를 쳐드니 복무원이 눈이 째지게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뜻밖에 70년대 군복무때 나의 전사가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나는 아내가 탑승하기 전에 랭면을 건네주려고 그의 부추김을 받으며 공항 철대문에 붙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때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멀어 도무지 안해를 알아볼 수도 없었고 소리를 쳐도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지만 나는 눈이 꿀종지가 되여 려객기를 바라보면서 안해를 찾았다.
한 녀성이 손을 흔드니 나는 안해가 아닌가 싶어 랭면 주머니를 높이 쳐들고 흔들어 보였다.

생리별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가?
저녁, 집에 도착하여 문고리를 잡고보니 더럭 겁이 났다.
애들이 제 집으로 다 돌아가고나니 썰렁한 큰 집이 더구나 한산해 보였다.
그렇게 떠나간 안해, 손꼽아 헤여보니 2년 세월이 흘렀다.
안해가 곁에 없는 이 2년은 천만년같이 길게만 느껴진다.
늘그막 우리 부부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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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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