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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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50연대부터 70연대까지 “연변일보”를 비롯한 연변의 조선문신문과 조선말방송들에는 “걱정도감”이란 대명사가 자주 오르군 했다. “걱정도감”이란 말 그대로 자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에 자주 참녜하는 사람을 일컫어 하는 대명사로서 농촌의 호조조, 초급사, 고급사와 인민공사에 있었는가 하면 도시의 직장과 사무실 심지어 가두의 주민위원회에도 가끔씩 있군 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들에서는 “걱정도감”이란 대명사를 흔히 정면인물에 비유했다. 예하면 농촌에서는 집체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바른 말을 하는가 하면 적극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고 도시의 직장 역시 기업의 이익에 손상을 주는 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또한 기업과 종업원들의 안전을 위해 자아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 등 부류였다.
하다면 가두와 주민구역에서 가난한 가정을 돕고 동네의 화목과 치안을 위해 자기와는 별반 상관없는 일에 자주 참녜하는 사람 역시 “걱정도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순자가 바로 주민구역의 “걱정도감”이었다.
 
순자가 “걱정도감”처럼 자기와는 별로 상관도 없는 일에 참녜해온 차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 별의별 희한한 일도 많았다. 한족거지가 쓰레기더미를 들추면서 음식물을 찾아먹는 것을 보자 그것이 가슴아파 음식물을 비닐봉지에 싸서 쓰레기더미가 있는 주위의 벽돌담장위에 놓아주어 거지었지만 보다 깨끗한 음식을 먹게 한 일, 남들 거의 모두가 꺼려하는 한 폐결핵환자(한족)의 집을 경상적으로 방문, 그 집 음식상에 반찬이 너무 없는 것을 보자 김치와 감자 등을 갖다주었고 신흥소학교 부근에서 신수리를 하는 한 여인(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한테도 김치 등 반찬거리를 갖다준 일, 두부장사를 하는 한족부부를 도와 돈을 받아주며 도와준 동시에 역시 김치 등을 갖다준 일, 동네에서 남편이 임신한 아내를 구타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말리다가 어깨까지 상하여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다는 일, 계모의 슬하에서 불쌍하게 자라는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옷도 주고했다가 그 애의 계모한테서 “별 싱거운 일에 참견한다”고 원망까지 산 일, 동네의 하수도 뚜껑이 파손되자 그것을 손수 만들어 덮어 놓은 일…이러한 일들은 한입으로 다 말할 수 없고 한두페지의 책에 다 적을수 없었다.
 
그렇다면 순자가 “걱정도감”으로 남들이 외면하는 일에 발벗고 나선 수많은 사연중에서 한 두 가지만 적어보기로 하자.
 
그것은 아마도 지난 세기 60연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에 있은 일로 추정된다. 그 날 집에 갑자기 손님이 오게 되었는데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었다.
 
그날은 몹시 무더웠다.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는데다 거기에 날씨까지 찜통처럼 무더운지라 순자는 그 손님한테 냉면이라도 사다 대접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요즘의 젊은 부부들은 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 그 시기는 집에 손님이 오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오는 일 같은건 거의 여자들의 담당이었다. 거기에 순자네 가정은 특별했다. 남편이란 단위의 사업에만 신경쓰고 가정일에는 일절 참녜하지 못하게 했으니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오는 일 같은 건 더욱 어림도 없었다.
 
이렇게 집을 나온 순자가 국수집으로 종종걸음을 놓던 중 불현듯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청년을 보게 되었다.
 
당시 거리로 오가던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 청년을 보고도 지나쳤다. 시끄러운 일을 찾아할 필요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순자만은 그럴 수 없었다. 순자가 가까히 가서 보니 술냄새는 없었고 얼굴색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누운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쓰러진 것이 분명했다. 그대로 그냥 방치해두었다가는 꼭 잘못될 것만 같았다.
 
“여보시요. 이 청년이 병으로 쓰러진 것 같은데 절 좀 도와주세요. 병원에 좀 데리고 가자요.”
 
순자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세우자 몇몇 청년들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순자는 다시 밀차를 밀고 가는 한 노인을 붙잡고는 사정하였다.
 
“이 밀차를 20분 정도만 씁시다. 저 청년이 위험한 모양인데 연변병원까지만 밀차에 싣고 갑시다.”
 
그 노인이 밀차를 내주자 순자는 그 몇몇 청년들과 함께 그 청년을 밀차에 실어서는 연변병원으로 향했다.
 
연변병원에 도착한 순자는 자기의 돈으로 진찰권을 뗀 후 그 청년을 구급실에 들여보냈다.
 
그 청년을 구급하는 동안 순자는 구급실밖에서 그 청년의 생사 때문에 걱정하다 보니 냉면을 사려던 계획을 까맣게 잊었다…
 
약 한시간 뒤 그 청년이 구급을 거쳐 쇼크상태에서 깨어나자 순자는 또 그 청년한테 찐빵을 사다주고 끓인 물도 가져다주고 팔다리를 주물어주고 하면서 오랫동안 간호해주었다.
 
“젊은이, 집이 어디에 있소? 연길이겠지?”
 
그 청년이 겨우 말하기 시작하자 그 청년한테서 집 주소를 알아내고는 연변병원 앞 골목을 여기저기 누비면서 겨우 그 청년의 집을 찾아낸 뒤 그 청년의 상황을 집에 알려주었다. 헌데 당시 그 청년의 어머니란 여인은 순자가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기는커녕 “그앤 원래 그래요. 그앤 간질병(전간병)이 있어서 자주 그렇답니다” 라고 하며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좋은 일을 하고도 쓴 소리를 듣는판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 순자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도 않았다. 원체 칭찬이나 받자고 한 일이 아니였으니까.
 
후에 알고보니 그 여인은 그 청년의 계모였던 것이다.
 
한편 그날 집에서는 냉면을 사러 간다던 순자가 몇시간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일이 생겼다고 온 동네와 냉면집으로 오가는 길손들과 물어보며 난리를 벌였다. 그러다가 길손들로부터 웬 아주머니가 청년들과 함께 길가에 쓰러진 청년을 밀차에 싣고 연변병원으로 가더라는 말을 듣고 순자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느라고 냉면을 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자가 지친 몸을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설 때는 저녁밥을 지을 때가 막 다가오고 있었다. 
……
또 한번은 어느 해 겨울날에 있은 일로 역시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준 일이다.
 
그날은 추워도 그해 겨울중에서도 유별나게 추운 날이었다.
 
그날 저녁무렵 순자는 석탄을 사려고 석탄판매부에서 줄을 섰다가 너무나도 추워 옷을 더 껴입으려는 속 셈에서 집으로 발길을 향하던 중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을 보게 되었다.
 
(참, 남정들은 술 때문에 큰 코 친다니깐.)
 
순자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그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쓰러져있는 것 같아서 더욱 지나칠 수 없었다. 여름도 아니고 이 엄동설한에 얼어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이렇게 자면 어떻게 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그 남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주버님. 손 좀 빕시다. 저기 한 사람이 술취해 누웠는데 아무래도 얼어죽을 것만 같습니다.”
 
순자가 길가는 한 남정을 붙잡고 도움을 청하자 그 남정은 순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저 사람이 아주머니한테 뭔데 그럽니까?”라고 반문하고는 휭하니 가버렸다.
 
겨울날 저녁이라 행인들도 퍽 드물었다. 그 뒤 순자가 재차 두사람을 붙잡고 도움을 바랐으나 그들 역시 모르는체 하면서 그냥 지나가버렸다.
 
바로 이 때 공원다리쪽으로부터 트럭 한대가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달려왔다. 순자는 저 트럭을 세워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무작정 트럭앞을 막아나섰다.
 
“칙 ㅡ ”
 
트럭은 급정거를 하더니 중년운전사가 차창을 열고 얼굴을 내보이면서 “무슨 짓이요?”라고 투명스럽게 내쏘았다.
 
“미안합니다. 다른 일이 아니라 저기 한 사람이 술취해 길가에 누웠는데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제야 운전사는 말씨를 눅잦히며 “그렇다고 차앞을 막아서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하면서 차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순자는 그 운전사와 함께 그 중년남정을 차에 싣고는 가까이에 있는 파출소로 찾아갔다. 헌데 파출소 일군들은 “술취한 사람은 파출소에서 책임질 범위가 아닙니다. 병원이나 다른 곳으로 가져가보십시요”라고 하며 받아주지를 아니했다. 그러자 트럭운전사마저 “파출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주정뱅이를 내가 붙잡고 있을게 뭐요”라고 하더니 트럭을 몰고 사라져버렸다.
 
파출소에서 받아주지 않고 트럭운전사마저 사라져버렸지만 순자만은 그 술취한 남정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의 힘으로 그 덩치가 육중한 남정을 업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어쩐담?…)
 
어찌할 방도가 나타나지 않아 궁리하던 순자는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의 보일러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이자 무작정 그 보일러실로 달려갔다.
 
“여보세요. 절 좀 도와주세요. 저기 한 사람이 술에 취해 누웠는데 얼어죽을 것 같아요.”
 
순자가 눈물이 글썽하여 호소하자 보일러불을 때던 2명의 노동자가 생각밖으로 아주 쉽게 호응해나섰다.
 
“그래야지요. 우리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앞으로 어떤 일이 있겠는지 장담할수 없는게 아닙니까?! 그리고 아주머닌 참 맘씨 착한 분이군요.”
 
순자는 보일러실 2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술취한 장정을 밀차에 실어 보일러실로 들여가서는 따뜻한 온돌위에 눕혔다.
 
그날 역시 순자의 남편과 자식들은 순자가 저녁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자 거리와 갈만한 집들을 돌아다니며 찾았다고들 한다.
 
그날 밤 순자는 또 그 술취한 장정이 근심되어 집에 돌아가 남편과 아들의 옷 그리고 신들 중에서 그한테 맞을 신과 옷가지들을 가져다주고 그가 숨을 고르게 쉬면서 의식을 회복한 뒤에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보일러실의 노동자들에 따르면 그 장정은 연길시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라고 했다. 그러자 순자는 또 수소문해가며 ××공장에 다닌다는 그 장정의 집을 찾아가서는 그의 아내한테 “남정들이 저러는데는 집 사람의 잘못도 있을 수 있으니 아무쪼록 집안에서 바가지를 긁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여러가지로 교육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걱정도감”중에서도 순자와 같은 “걱정도감”은 없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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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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