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 김 혁 (재중동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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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영화인들의 최고의 축제이건만 어딘가 싱겁다. 그리고 시끄럽다. 이번 아커데미 시상식은 역대 가장 뻔한 시상식이었다는 조롱을 면치 못했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등 주요 부문의 수상작과 수상자는 미국 빅데이터 분석 업체와 베팅 사이트 등이 내놓은 전망과도 어쩌면 100% 일치했다.


또한 올해 아카데미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로 하얬던 해”인 1998년 이후 17년 만에 다시 백인 일색의 후보를 지명해 논란을 불러왔다.


이번 아카데미는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흑인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대기와 그의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1963년의 평화대행진을 재현한 전기 영화 '셀마'가 감독상과 연기 부문상 노미네이트에서 제외되자 흑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셀마’는 지난 해 퍼거슨 시 사태를 필두로 미국 곳곳에서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와 관련한 끊임없는 이슈들을 동반한 채로 계속해서 화제를 모았고, 여전히 무난한 흥행 성적을 지키고 있던 영화였다.


결과 '셀마'는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겨우 주제가상 하나를 달랑 건졌을뿐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한 닐 패트릭 해리스는 "오늘 'best and whitest' 작품들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고이자 가장 하얀' 작품들이란 뜻이다. 자신들을 향한 논란을 유머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번 논란에 대해 아카데미에 일침을 가한 발언이었다.


배우 숀펜은 '버드맨'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를 향해 "저 사람에게 왜 그린카드를 줬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린카드는 이민자들에게 발급되는 영주권이다. 그리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는 멕시코 인이었다. 이 발언 역시 논란이 되었다. 그의 발언이 다소 경솔했다는 반응이다.


시상식에서 보통 수상소감이 길어지면 수상 소감을 끝내라는 의미로 음악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날 ‘셀마’로 주제가상을 받은 로니 린이 수상 소감을 전할 때는 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주요 부문 후보에 흑인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영화가 주역이 되는 세계 최고 영화축제이건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에도 ‘백인 중심의 잔치’라는 오명을 털어내지 못한채 우리에게 '인종주의'의 논란을 다시 한번 화두로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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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은 미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8월 10일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18세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총을 맞아 숨졌다. 머리와 팔 등에 최소 여섯발을 맞았으며 숨진 뒤에도 4시간 동안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였다. 브라운이 비무장 상태에서 무고하게 사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 11월25일, 브라운을 총으로 쏴 사망케 한 백인 경찰 대런 윌슨에 대해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뉴욕 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흑인 에릭 가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관에 대해서도 뉴욕시 대배심이 12월 3일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9월에는 백인인 남편에게 키스를 하던 다니엘르 왓츠라는 흑인녀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매춘녀로 오인 받은 그녀는 즉각 “이 사람이 나의 남편이다”라고 항변했으나 매춘부가 아니고 남편이 그녀의 고객이 아니라는것을 경찰이 인정할때까지 수갑을 찬 채 붙잡혀 있어야 했다. 체포당하며 그녀는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다.


"미국에서 백인 남성에게 키스하는 흑인 여성은 매춘부라고 봐야 하느냐"며 사건은 또 한 번 인종 차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러니 적인 것은 그녀가 바로 인종차별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흑인 노예로 출연했던 녀배우였다.


영화의 감독 타란티노는 "미국은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노예제도는 미국의 원죄 중 하나다. 아직도 그 죄를 씻지 못했고 여전히 흑인과 백인이 서로를 대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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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사태 이후, 흑인을 상대로 한 각종 증오 범죄, 스나이퍼들이 사격 연습 때 흑인 범죄자 얼굴을 표적으로 사용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흑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도 미국은 스크린과 현실에서 “부당한 흑백스토리”를 그냥 연출하고 있다.

 

뜬금없는 연상일지 모르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해외에서 차별 받으며 3D업종에 혹사하는 수십 만에 달하는 우리 족속들의 이야기들이 그물그물 떠올랐다. 이는 비단 먼 서구나 영화에서만 자행되는 일이 아니다. 피부색이나 나라를 두고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은 우리가 고국이이라는 감동과 민족적 동질감에 대한 기대를 품고 찾아갔던 그 곳에서도 낯익은 소재다.


숀펜이 ‘조크’를 던진 감독상 수상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의 수상 소감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금의 이민자들이, 예전 이민자의 나라를 만든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고 존중받길 기도한다".

 

-“청우재(聽齋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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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칼럼] 흑백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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