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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 8개 현·시 지명에 스민 역사와 문화의 숨결

  • 김동욱(특약기자) 기자
  • 입력 2025.03.0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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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중국 길림성 동부에 위치한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한족, 조선족, 만주족 등 다민족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적 풍경을 자랑한다. 이 지역의 8개 현·시 이름은 천년을 넘나드는 언어의 화석처럼 민족 이동, 문화 교류, 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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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延吉市)

'연길'이라는 이름은 1902년 청나라 광서제 시기 처음 사용되었다. 청나라 광서 연간 초기 문서에 처음 등장한 '연집(烟集)'은 만주어 '연집와집(Yanji Weji)'(염소가 출몰하는 밀림)에서 유래했다. 1902년 행정구역 설정 시 '길상을 이어간다'는 뜻의 '연길'로 개명하며, 만주어 발음(Yanji)을 유지한 동시에 '회남자'의 '연년익길(延年益吉)' 뜻을 은유했다.


훈춘시(珲春市)

'훈춘'이란 이름은 동북아 최초의 해양문명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금대 여진어 '훈춘(Hunchun)'(따뜻한 물굽이)은 일본해 난류의 영향을 받는 부동항 특징을 생생히 묘사했다. 청 강희 53년(1714년) 훈춘협령 설치 당시 만주어로 '변방 요충지'를 의미하는 '훈춘"'으로 기록되었다. 현지에서 발굴된 '대육도구”(大六道沟)' 신석기 유적은 이곳이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의 교차점이었음을 입증하기도 한다.


도문시(图们市)

장백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두만강의 이름은 여진어 '투멘 울라(Tumen ula)'(만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다. 1881년 오대징(吴大澂)이 '중러 훈춘동계조약'에서 한자 표기를 최초로 규정했다. 흥미롭게도 조선반도에서는 이 강을 '두만강'이라 부르며, 이는 선비어 '두막루'(급류)에서 유래했다. 이런 초국경 하류의 이중 명명 현상은 동북아 민족 이동사의 살아있는 증거이다.


돈화시(敦化市)

698년 말갈족이 이곳에 진국(후에 발해국)을 건설했으며, "오동성" 유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청나라 광서 6년(1880년) 행정구역 설정 시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이름을 따 '발해 고도'의 문화 맥락을 계승하면서 "교화를 돈독히 한다"는 통치 이념을 담았다. 유교 경전과 변방 지리를 결합한 이 명명 방식은 중원 왕조의 국경 경영 지혜를 잘 반영한다.


용정시(龙井市)

'용정지명지'(龙井地名志)에 따르면 룡정시의 원래 이름은 '육도구'(六道沟)였으나, 그 곳 샘물은 맑고 달콤하며, 연중 마르지 않아 현지인들에게 '용의 우물'로 여기면서 길상과 풍요를 의미하였다. 1929년, 현지 정부는 공식적으로 '육도구'를 '용정'으로 개명하여 이 자연 경관의 문화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화룡시(和龙市)

화룡의 원래 이름은 '화룡곡'으로,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화룡'(和龙)은 만주어로 '두 산 사이에 낀 골짜기'(两山夹一沟)를 의미하며, '곡'(峪)은 한어(汉语)로 '산골짜기'를 뜻한다. 따라서 '화룡곡'(和龙峪)은 만주족과 한족(汉族) 언어가 결합된 지명이다. '화룡'이라는 명칭은 1883년(청나라 광서 9년) '길림성 조선 통상 장정'(吉林省朝鲜通商章程)에서 처음 등장했다. 1884년(광서 10년)에는 화룡곡에 통상국을 설치하였고, 1902년(광서 28년) 청나라 정부가 이곳에 분방청(分防厅)을 설립했다. 이후 1910년(선통 2년)에 화룡곡 분방청이 화룡현(和龙县)으로 개편되었다.


왕청현(汪清县)

왕청현은 현청 인근에 위치한 왕청강(또는 왕청하)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강 이름을 사용한 전형적인 지명 방식에 속한다. '왕청'은 여진어(만주어) '왕친'에서 유래하였으며, 본래 의미는 '보루'를 뜻한다.


안도현(安图县)

안도현은 청나라 선통 원년(1909년)에 설립되었다. 청정부는 동북 변경을 공고히 하고 일본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두만강 상류 지역에 현을 설치하였다. 현 이름은 "두만강 경계를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호하며 백성을 안전하게 한다(安定图们江界,保国安民)"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연변의 지명은 단순한 지리적 표식이 아니다. 만주어·여진어는 청제국의 변천 개척사를, 한자는 중원 왕조의 통치 철학을, 조선어는 이민족의 적응과 전통 유지를, 신화와 지형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 방식을 기록했다.  


이름 하나에 스민 수백 년의 언어·정치·문화적 충돌과 융합은 연변이 동북아의 "살아있는 박물관"임을 증명한다. 오늘날 이 지명들은 민족자치주의 현대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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