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백두산 천지를 마주한 뒤, 발걸음을 옮겨 백두폭포(중국명 장백산폭포)로 향했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가파른 절벽을 타고 떨어지며 웅장한 포효를 만들어냈다. 높이 68미터, 너비 30미터에 달하는 폭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대자연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을 쏟아냈다. 흩날린 물보라가 얼굴을 스치자,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폭포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가 뒤섞여 흘렀지만, 웅장한 자연 앞에서는 감탄의 목소리만이 공통어처럼 울려 퍼졌다.
“이 물소리를 들으니, 마치 조국의 심장이 뛰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박정우(62)씨는 두손을 꼭 쥔채 폭포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 교과서에서만 보던 백두산을 이제야 직접 찾았다고 했다. “민족의 뿌리를 확인하는 순간, 이 차가운 물보라조차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반대편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온 대학생 리자치(21)는 “어릴 때부터 책에서 본 장백폭포는 중국의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었어요. 그런데 직접 보니 교과서의 사진보다 훨씬 장엄합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곁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과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같은 풍경 앞에서는 친구가 될 수 있네요.”
현지인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폭포 입구 근처에서 옥 장신구와 토산품을 팔던 조선족 여성 김화영(45)씨는 “여름엔 중국 남방에서, 가을엔 한국과 러시아에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며 “백두산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조상들이 지켜온 이 산이 앞으로도 평화의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자는 잠시 폭포 옆 바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굉음 속에서 들려오는 건 단순한 물소리가 아니었다. 역사의 상흔, 민족의 기억,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질 희망의 메아리였다.
백두폭포를 뒤로하며 다시금 천지를 올려다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와 땅끝까지 울려 퍼지는 폭포의 합창은, 백두산이 단지 ‘민족의 성산’이라는 상징을 넘어 동북아 사람들의 공동의 기억이자 미래를 향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싸늘한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지만,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따뜻한 빛이 번져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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